Hangul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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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2월 29일 화요일 오전 09시 30분 26초
제 목(Title): 고종석/국어의..-한국어어휘의 이중계보 


[고종석에세이] /국어의 풍경들 15-한국어 어휘의
이중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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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어휘의 세 층은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라고 한 적이 있지만, 그
가운데 우리말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고유어와 한자어다. 그러니까,
우리말의 어휘는 크게 보면 두 계보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상대 이래
한자어의 대량 유입은 많은 고유어를 한국어에서 사라지게 했고, 그것은
우리에게 큰 아쉬움이다. 그러나 비슷한 뜻의 한자어가 한국어에 수입된
경우에도 고유어의 상당수는 그대로 남았다. 대체로 고유어가 이미 있었던
상태에서 그 위를 한자어가 덮은 형국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먼저 한자어가 수입된 이후에, 고유어를 살리려는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고유어 계통의 유의어들도 있다. 이 경우에는 고유어쪽이 그것의 한자어
유의어에 견주어 그 형성이 늦은 셈이다. 특히 고유어로 된 문법 용어의
대부분은 그것들에 대응하는 한자어보다 형성이 늦었다. 예컨대 `움직씨'나
`이름씨' 같은 말들은 `동사'나 `명사'보다 더 늦게 우리말 어휘 목록에 올랐다.
`먹거리'라는 고유어도 `식품'이라는 한자어보다 훨씬 더 늦게 국어 사전에
올랐다. 그 시간적 선후관계야 어떻든, 한자어의 유입 덕분에 한국어에는
계보를 달리하는, 즉 고유어 계통과 한자어 계통의 유의어쌍이 무수히
형성되었다. 

                            예를 들자면 봄바람과 춘풍, 여름옷과 하복,
                            가을밤과 추야, 겨울잠과 동면, 아침밥과 조반,
                            사람과 인간, 목숨과 생명, 가슴과 흉부,
가슴둘레와 흉위, 배와 복부, 허파와 폐, 지라와 비장, 이자와 췌장, 눈알과
안구, 목구멍과 인후, 엉덩이와 둔부, 이앓이와 치통, 배앓이와 복통, 피와
혈액, 살갗과 피부, 온몸과 전신, 키와 신장, 몸무게와 체중, 이물과 선수,
고물과 선미, 가루와 분말, 덧셈과 가산, 뺄셈과 감산, 곱셈과 승산, 나눗셈과
제산, 제곱과 자승, 세모꼴과 삼각형, 사다리꼴과 제형, 가로줄과 횡선,
세로줄과 종선, 모눈종이와 방안지, 누에치기와 양잠, 언덕과 구릉, 입맛과
구미, 빚과 채무, 제비뽑기와 추첨, 뱃길과 항로, 뽕밭과 상전, 바다와 해양,
열매와 과실, 꽃잎과 화엽, 콩기름과 두유, 풋나물과 청채, 나이와 연령,
늙마와 노년, 늙은이와 노인, 안팎과 표리, 새해와 신년, 가뭄과 한발, 햇빛과
일광, 달빛과 월광, 돌솜과 석면, 돈과 금전 등 한이 없다. 

이런 유의어쌍 가운데서 고유어 계통의 말들은 대체로 친숙한 느낌을 주고,
한자어 계통의 말들은 공식적인 느낌을 준다. 이것은 영어의 경우와 비견할
만하다. 영어의 어휘도 크게는 게르만 계통의 어휘와
(그리스―)라틴―프랑스어 계통의 어휘로 대별할 수 있는데, 이 두 계통의
어휘가 무수한 유의어쌍을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영어에서도 게르만
계통의 어휘는 대개 친숙한 느낌을 주는 데 비해, 라틴―프랑스어 계통의
어휘는 공식적인 느낌을 준다. 예컨대 영어의 inside와 interior, outside와 
exterior,
birth와 nativity, backbone과 spine, breath와 respiration, work와 labor 같은 
유의어들
사이의 관계는 우리 말에서 안과 내부, 바깥과 외부, 태어남과 출생, 등뼈와
척추, 숨쉬기와 호흡, 일과 노동 사이의 관계에 비교할 만하다. 

국어순화론자들 가운데 근본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우리말의
유의어쌍들 가운데서 한자어를 죄다 추방하고 싶어한다. 이런 한자어들이
고유어들과 완전한 동의어라면 우리말에서 추방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완전한 동의어가 아니다. 실상 어떤 언어에서도 완전한 동의어는 아주
드물다. 예컨대 “목숨을 걸고 이 일을 완수하자”와 “생명을 걸고 이 일을
완수하자”에서 보듯 `목숨'과 `생명'은 언뜻 같은 뜻의 말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목숨'은 사람이나 짐승, 곧 유정명사에만 쓰일 뿐, 식물에
대해서는 쓰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꽃도 생명을 지니고
있다”라고는 말해도 “꽃도 목숨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또 생명과는 달리 목숨은 사물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생명이 길 거야”라고는 말할 수 있지만, “그의 작품은 목숨이 길
거야”라고 말할 수는 없다, 빈정거리는 경우를 빼놓고는 말이다. 또 “한
생명을 잉태하다”라는 말은 자연스럽지만, “한 목숨을 잉태하다”라는
말은 부자연스럽다. 이런 경우들은 한자어가 그 고유어 동의어보다 뜻의
폭이 넓은 경우다. 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예컨대 피와 혈액을 보자.
혈액은 물질로서의 피만을 가리켜서 의학적 뉘앙스를 가질 뿐 생명 현상과
관련되는 다양한 뉘앙스를 지니고 있지 않다. “피끓는 젊음” “피를 나눈
사이” “정말 피를 말리는구먼” 같은 표현에서, 익살을 부릴 의도가
아니라면, `피'를 `혈액'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는 없다. 에세이스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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