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2월 29일 화요일 오전 09시 20분 20초 제 목(Title): 고종석/국어의풍경들-고유어수사 [고종석에세이] 국어들의 풍경들-13/고유어 수사 ▶프린트 하시려면 대부분의 바깥 문명들에서 그러듯, 우리도 수를 헤아릴 때 십진법을 사용한다. 십진법이 가장 보편적인 기수법이 된 것은 말할 나위 없이 사람의 손가락이 열 개이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어에서 고유어로 헤아릴 수 있는 가장 큰 수는 아흔아홉이다. 곧, 두 자리 수까지만 고유어로 헤아릴 수 있다. 중세 한국어에서는 백(百)을 뜻하는 `온'과 천(千)을 뜻하는 `즈믄'이 쓰였지만, 이제 그 말들은 사라져버렸다. 외솔 최현배에 따르면 이밖에도 만(萬)을 뜻하는 `골', 억(億)을 뜻하는 `잘', 조(兆)를 뜻하는 `올' 따위의 고유어 수사가 있었다고 하지만, 불확실하다. 고유어의 한 자리 수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이고, 두 자리의 기본 수는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이다. 평범한 사람의 언어적 직관으로 보아도,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 여든 아흔이라는 말들의 뒷부분이 기원적으로는 동일한 형태소였을 것이라는 짐작은 할 수 있다. 또 셋과 서른, 여섯과 예순, 일곱과 일흔, 여덟과 여든, 아홉과 아흔이 의미적으로만이 아니라 형태적으로도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는 게 한눈에 보인다. 우리말에서 특이한 것은 둘과 스물, 넷과 마흔, 다섯과 쉰 사이에 있을 법한 형태적 관련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유어 수사들은 또 여러 변이형태들을 지니고 있다. 우선 이 말들이 관형사로 쓰일 때, `하나'는 `한'이 되고, `둘'은 `두'가 되고, `셋'은 `세'가 되고, `넷'은 `네'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짐승이나 물고기를 셀 때 “하나 마리, 둘 마리, 셋 마리, 넷 마리”라고 말하지 않고,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관형사들 가운데 `세'와 `네'는 단위를 나타내는 일부 불완전 명사 앞에서는 `서'와 `너' 또는 `석'과 `넉'으로 다시 바뀌기도 한다. 서 돈, 서 말, 서 푼, 서 홉, 석 달, 석 자, 석 장, 석 줄, 너 근, 너 되, 너 말, 너 푼, 너 홉, 넉 달, 넉 섬, 넉 자 같은 말에 이 `서' `석' `너' `넉'이 보인다. `스물'도 관형사로 쓰이면 “스무 집” “스무 개”에서처럼 `스무'로 변한다. `다섯'과 `여섯'은 형태를 그대로 지닌 채 “다섯 마리, 여섯 마리”에서처럼 관형사로도 사용되지만, 단위를 나타내는 일부 불완전 명사 앞에서는 역시 `닷'과 `엿'으로 변하기도 한다. 닷 냥, 닷 말, 닷 돈, 엿 냥, 엿 말, 엿 돈 따위의 표현에서 그 `닷'과 `엿'이 보인다. `다섯'은 또 수사로 쓰이든 관형사로 쓰이든 불명료함을 드러낼 때는 `댓'으로 변한다. “군인 댓을 데리고 오다”나 “잉어 댓 마리”라고 말할 때, `댓'은 `다섯 가량'의 뜻이다. `두엇'이나 `너덧'도 `둘 가량' `넷 가량'의 뜻이지만, “둘보다는 좀 많은” “넷보다는 좀 많은”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두엇'의 `엇'이나 `너덧'의 `덧'이 `셋' `다섯'과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너덧'은 “그 남자 애인이 너덧은 될걸”이나 “강아지 너덧 마리”에서처럼 수사로도 관형사로도 쓰이지만, `두엇'은 “친구를 두엇만 불러라”에서처럼 수사로만 쓰일 뿐 관형사가 되면 `두어'로 바뀐다. 예컨대 우리는 “쌀 두엇 가마”라고 말하지 않고 “쌀 두어 가마”라고 말한다. “쌀 두어 가마”는 “쌀 두 가마쯤”이라는 뜻이지만, 두 가마에서 좀 넘친다는 뉘앙스가 있어서, 두 가마에서 모자랄 때는 사용되지 않는 듯하다. 이 숫자들은 또 앞이나 뒤의 숫자와 결합하면서 흔히 조금씩 형태를 바꾼다. 한둘, 두셋, 서넛, 두서넛, 네다섯, 네댓, 대여섯, 예닐곱, 일고여덟, 일여덟, 열아홉 따위의 말들에서 보듯, 이 숫자들이 혼자 쓰일 때와는 달리 조금씩 그 형태가 일그러져 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댓, 두엇, 너덧과 함께 이런 수사들을 불확정수라고 한다. 한둘, 두셋, 서넛, 두서넛은 관형사가 되면 한두, 두세, 서너, 두서너로 바뀐다. 물고기의 수효가 딱 넷일 때는 “네 마리”이지만, 셋인지 넷인지 확실치 않을 때는 “세네 마리”가 아니라 “서너 마리”다. 서수사(사물의 차례나 등급을 나타내는 수사)는 양수사(기본 수사) 뒤에 접미사 `째'를 붙여서 둘째 셋째 넷째 다섯째 따위로 만들지만, `하나'에 대응하는 서수사는 예외적으로 `첫째'다. 그러나 두 자리수 이상이 되면 다시 `하나'로 돌아와, `열첫째' `스물첫째'가 아니라 `열하나째(열한째)' `스물하나째(스물한째)'가 된다. 이밖에도 접미사 `째'가 덧붙을 때 양수사의 형태가 살짝 변하는 예가 더 있다. 열두째, 스무째, 스물두째 따위의 말들이 그렇다. 에세이스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