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27일 화요일 오전 11시 05분 09초 제 목(Title): 한21/한자몰라도 과학은 있다 한자 몰라도 과학은 있다 언론의 상업주의에 휘말린 한글 전·혼용… 우리말 잘 쓰기 경쟁부터 벌여야 (사진/"한글이 망하지 않으면 한국이 망한다?" 한글 전용법이 발표된 이후 한자타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한글 전용법이 공포된 지 50년이기도 하고 한글 전용과 국한문 혼용 주장이 논쟁을 벌인 지 50년이 되기도 한다. 한글 전용(이하 전용)과 국한문 혼용(이하 혼용) 논란은 해를 거듭하며 계속돼왔고, 올해도 어김없이 벌어졌다. 포문은 혼용론자들이 먼저 열었다. 지난 3월17일 한국어문회(이사장 이응백) 등 혼용론자들은 교육부에 글을 보내 “한글전용법을 폐지하고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한글학회(회장 허웅)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글 전용을 강화하고 초등학교의 변칙적 한자교육을 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건의문을 보냈다. 그뒤 학계는 두 주장으로 갈려 각각 전용·혼용 운동을 벌이며 논쟁을 가열화했다. 교육부는 4월26일 “교과서의 한글·한문 정책은 변화가 없다”는 공식 의견을 발표했다. 그리고 전용·혼용 강화를 주장하는 한글학회와 한국어문회 등 학술단체에 “각각의 주장은 그동안의 문자교육정책에 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회신을 보냈다.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기존의 정책 기조를 그대로 지킨 것이다. 한자 배우면 우리말 이해 높아진다? 이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월간 조선>이었다. 이 잡지는 지난 7월호부터 10월호까지 ‘출판 산업의 활로는 한자교육에 있다’ ‘한글 전용이 과학교육 망쳤다’ ‘IMF보다 더 심각한 국가적 위기-한자 사망 5분 전의 한국사회’ ‘한글(전용)이 망하지 않으면 한국이 망한다’는 일련의 논쟁적인 기사와 외고를 실어 혼용론에 힘을 몰아줬다. 이에 힘을 얻어 혼용론자들은 9월부터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이하 총연합회)라는 연합단체를 결성하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모두 24개항에 이르는 ‘한자교육의 필요성’이라는 글에서 △한국어의 특수성 △전통문화 계승발전 △교육적 효과 △국제적 유대관계 차원에서 한자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혼용론자들의 파상 공세에 전용론자들도 반격에 나섰다. 한글학회는 한글날을 하루 앞둔 10월8일 ‘전국한글전용실천추진회’(이하 추진회) 발족대회를 열고 “전용론과 혼용론 논쟁은 글자생활의 편리함과 효용성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전용·혼용 논쟁은 일단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논점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지난 3월 혼용론자들이 교육부에 건의한 내용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가 한자문화권에 속해 어휘의 70%, 학술용어의 90% 이상이 한자어인데도 한자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과정에서 한자 1천자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총연합회의 강재규씨는 이 논쟁의 핵심이 ‘교육’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가 강조하는 것은 체계적이고 철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자를 자신의 문자생활에 쓰고 안 쓰고는 개개인의 의사에 달린 것이다. 한자를 알면 우리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논리, 사상, 철학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전용론자들은 ‘교육’이 핵심이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추진회의 이대로 공동대표는 이런 주장이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고등학교에서 한자를 교육하는 것은 우리말을 이해하기 위해 좋고 필요한 일이다. 이미 초등학교에서도 자율적으로 한자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것은 한자교육이 아니다. 한글 전용법을 폐지하고 교과서 등 공문서에 국한문을 혼용하자는 것이다. 한자에 중독된 자신들의 한자 선호를 국민에게 강요하려 하는 것이다.” 논쟁의 핵심이 교육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다른 혼용론자들의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혼용론자인 박광민 한국어문교육연구회의 연구위원은 “한글을 국어의 중심 표기 수단으로 쓰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한자에 대한 교육이 초등학교부터 제대로 이뤄지면 국한문을 혼용해도 별 무리가 없다고 본다. 한자를 드러내 쓰면 단어의 뜻이 더욱 분명해지고 동음어를 구별하거나 음의 장단을 구별하는 데도 편리하다. 배우면 편리하게 쓸 수 있는데, 배우지 않고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꾸로 된 논리다.” 논쟁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별로 새로운 내용은 없어보인다. 그런데 이 논쟁 과정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들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한글 전용의 폐해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논조를 편 <월간 조선>의 태도다. <월간 조선>은 한글 전용이 “출판산업을 죽이고, 과학교육을 망치고, 문학 표현의 다양성과 깊이를 사라지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글 전용이 “국가 생산력 축소, 전통 단절, 국민의식 서구화로 가고 있어, 혼용·전용의 논쟁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거대한 문명충돌로 비화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새로울 게 없는 논쟁, 틈만 나면 재연 이런 <월간 조선>의 주장에 대해 중앙대 강내희 교수(영문과)는 ‘상업주의 언론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다. “<월간 조선>이 일종의 희생양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그들이 신문을 팔기 위해 좌파를 공격하는 것과 비슷하다. 평소 <조선일보>는 세계화를 입버릇처럼 얘기해왔다. 민족주의와 전통을 강조하는 <월간 조선>의 혼용론은 상업주의 우익 언론의 자기분열처럼 보인다.” 50년간 계속돼온 전용·혼용 논쟁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 이 논쟁의 승패는 분명해 보인다. 한글학회의 김한빛나리 정보통신 간사는 이런 전용·혼용 논란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미 90% 이상의 출판물이 한글 전용을 하고 있지만 일반인 중 전용이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극소수의 혼용론자들만 한자가 섞여 있지 않아 불편하니 한자를 함께 쓰자고 한다. 이미 논쟁거리가 아니다. 심지어 혼용하자고 주장하는 <조선일보>조차 한자 표기를 줄이는 상황이다. 이제 초점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말을 더 쉽고 정확하고 아름답게 쓸 수 있는가 하는 데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 김규원 기자 gim@mail.hani.co.k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