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gulKorean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Gambler) 날 짜 (Date): 1994년07월19일(화) 10시52분46초 KDT 제 목(Title): 한자는 우리 글일 수도 (2) 한민족의 원형을 찾아서 () 제목 : [국어]{문자2} 뱀막으려 돼지,,한자는 우리 #66/81 보낸이:정인봉 (hanerl ) 09/17 02:01 조회:58 1/9 다음은 지난 4월 11일자 스포츠 서울 문화란에 실린 글입니다. [[ 토정비결작가 이재운의 민속기행 <29> 문자 (2) ]] [ 지 붕 ( ) 과 돼 지 ( 豕 ) 로 구 성 된 집 가 ( 家 ) ] [ ] [ 고 대 한 민 족 생 활 상 그 대 로 반 영 ] { 뱀 막으려 집안에서 돼지 사육,, ' 한 자 는 우 리 글' 한 증거 } { 日 가운데 획은 신 - 인간 이어주는 전령사 '세발달린 까마귀' } { } { 샤머니즘 폭넓게 번져있던 고조선 시대 문화에 근원 찾아 } # 사진 1 # 가림다문자와 훈민정음. 가림다문자는 옛 조선시대에 쓰던 문자로 훈민정음의 모체라는 학설과, 가림다 문자는 후세인의 위작일뿐이 라는 학설이 맞서고 있다 # 사진 2 # 고구려 시대인 4 - 5세기 작품 '일상 투각문 금동 장식품.' 가운데 원이 태양을 상징하며 그 안에 하늘과 일간을 잇는 전령사인 까마귀가 들어있다. 한자(漢字)라는 말이 생긴 것은 문자가 발명된 수천년 후의 일이 다. 그리고 문자(文字)라는 말만 해도 그리 오래된 단어가 아니다. 먼저 문자의 어원을 살펴보자. 3천 5백년 전인 은나라 때에는 字는 없고 文이 있었는데, 그 뜻도 글 이 아닌 무늬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으로 본다면 갑골문 자나 전서(篆書)는 그 자체가 훌륭한 무늬이며 부작에 쓰인 문자 또 한 그래픽 요소가 강한걸로 미루어 연관 고리가 있음직하다. 字라는 글자는 청나라 때 고증학자 고염무가 그 기원을 밝혔는데 진나라때 여씨 춘추를 쓴 여불위(呂不韋)가 처음이라고 한다. 여불위 는 '여씨춘추'를 탈고한뒤 "누구라도 내 글에서 한 字라도 빼거나 고 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겠다"는 글을 성문에 붙였다는 것이 다. 그러다가 문과 자를 합쳐서 문자라고 한것은 서기전 219년(진시황 28년)부터라고 한다. 그러나 진시황은 문자에 관한 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 민족이 처음으로 국가를 통일한 것이 바로 진나라이다. 진나 라 이전에는 소규모 부족 국가로 여기저기 나뉘어 있던 민족이었으나 진나라가 세워지면서 중국 민족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국 인은 마침내 지금의 황하 유역을 차지하고 동이족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때 진시황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문화 정리였 다. 그것이 분서(焚書)로 나타났다. 그때 승상 이사라는 사람이 그 동안의 문자를 정리하여 소전(小篆)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글자가 매우 형편없이 급조된 것이라고 비난하던 정모라는 학자가 옥 에 갇히자 이때 옥중에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맨 나 중에 개발된 해서(楷書)와 비슷한 예서(隸書)다. 아무튼 이 두 사람은 새로운 문자를 창제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어 떤 문자를 자체(自體)만 정리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진나라가 금세 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서자 허신이라는 사람이 문자를 해설한다는 뜻 으로 문자 9,353자를 해제한 '설문해자("設文解字)'를 만들었다. 그 로부터 문자 앞에 한나라 한(漢)자가 붙어서 한문(漢文) 한자(漢字) 가 된 것이다. 이것이 한자의 역사이고 문자의 역사이고 보면 한자 이전, 문자 이전의 세계는 어떠한 것인지 짐작조차 불가능하다. '월간 신시' 3월호에는 마침 '한자가 우리글이라는 증거'라는 명지 대 진태하 교수의 글이 실려 윱. 진 교수의 글에 의하면 한자는 명백한 동방문자, 나아가 한민족이 발명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한다. 그 주장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문자를 구성한 철학적 배경이 곧 한민족의 생활상을 담았고 한자가 발명되고 사용되기 시작한 강역이 곧 우리 민족의 터전이었다는 것이 다. 산동반도나 황하 유역이 동이 문화권에 있었음은 이미 지난 회에 밝힌 바있으므로 생략하고 문자에 담겨 있다는 한민족의 생활상이란 무엇일까. 진 교수는 그 예로 집을 나타내는 '家'자를 예로 들었다. 집을 나 타내는 갓머리와 돼지 豕로 구성된 이 글자는 문자 연구 전문가인 중국인들을 혼란시켰다. 도대체 집을 나타내는 글자에 왜 돼지가 들 어앉아 있을까? 그래서 본래 돼지 우리를 뜻하던 것인데 나중에 집 가로 바뀌었다는 등 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진 교수는 지금도 남아 있다는 제주도의 가옥 형태를 들어 설명했다. 즉 원시 부족국가 시절 동이족은 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천적인 돼지를 집안에 길렀다는 것 이다. ( 그러나 家에 대하여 문자 연구가 박소천씨는 다른 주장을 한다. 豕는 돼지를 뜻할 뿐만 아니라 깨우칠 了로 구성된 '깨우칠 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 화가, 음악가, 대가 하는 家가 되었다 는 것이다) 또 하나 진 교수가 예로 든 日을 보자. 日자는 ⊙ → Θ → 日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태양을 나타낸다면 동그라미 하나 그릴 것이지 왜 가운데에 점을 찍었을까? 이 점은 곧 새를 나타내는 乙로 바뀌는데 도대체 태양과 새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중국 학자들은 태양 흑점을 나타낸다고 무리하게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샤머니즘(新敎)이 동이족 사이에 폭넓게 퍼져 있던 옛 조선을 생각해 보면 금새 상상이 가는 게 있다. 바로 신계와 인간계를 잇는 전령사라는 '세 발 달린 까마귀(日中有金烏, 三足烏)'를 넣은 것이다. 문자 특히 한자 연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 주체적이고 주관적 인 해석을 가할 필요가 있다. 한자 연구가 박소천씨는 "한자를 풀어나가다 보면 그 속에서 우리 고대사의 비밀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문자라는 것은 箏윰 갑자기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활상이나 철학을 바탕 으로 하기 때문에 그 속에 민족성이나 민족 문화가 깃들여 있을 수밖 에 없다는 것이다. 즉 한자 속에는 우리 동이족의 옛 문화와 습속이 진하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유교 맹신자들의 사대주의에 빠져 그저 한자는 중국 문자려니 하고 의심없이 지낼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학계에서 더 활발하게 논의를 해 서 한자 발명자가 누구인지, 과연 우리나라는 중국에서 수입해다 써 온 것인지 밝혀 볼 일이다. 다음에는 우리 한글에 대해서 알아보자. 한글을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고유의 문자라고 사전적으로 이해 하고 받아들인다면 마음이 편하지만 몇 가지 다른 주장이 있고, 그 주장을 믿으려면 너무나 엄청난 내용들이기 때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 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1984년 1월호 '광장'지에는 깜짝 놀랄 논문이 게재되었다. 주장인 즉, 훈민정음 28자는 고조선 시대에 있던 가림다(加臨多) 문자 38자 를 줄여 정리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 논문이 발표되자 학계가 한바탕 술렁거렸다. 그러지 않아도 일본 학자들 중에서는 훈민정음은 일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 문자를 모방한 것에 불과 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 서 쓰는 문자 역시 한글과 똑같은 것으로 미루어 훈민정음은 독창적 인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문자를 베껴쓴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 던 차에 나온 주장이었으므로 학계에서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한글에 관한 내용은 다음 회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단기 4326, 오늘,, 빛고을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