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 Liszt (장 진 웅) Date : Sun Nov 15 11:54:45 1992 Subject: 소나기(15년 후): Part 3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왔다. 이른 저녁 어스름한 어둠처럼 주위가 희미해졌다. 산길 옆의 참나무 잎에 빗방울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급히 길을 재촉했으나 빗줄기는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세찬 바람이 몰아치면서 하늘에서 비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둘은 달리기 시작했다. (어째 오늘은 달리기만 한다냐.) 한참을 달렸다. 길옆의 나무들 아래서 비를 피하면서 왔건만 이미 옷은 속까지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비안개 속에의 산 기슭을 보니 바둑판 처럼 조그만 논들이 있고 그 옆 논들이 끝나는 곳에 원두막이 있었다. 마을이 아주 멀리 내려다 보였다. 그리로 가서 비를 피했다. 참외밭을 걷어 낸지 얼마 안되는지 원두막은 아직 깨끗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원두막은 논과 참외밭 사이의 중간에 있었다. 며칠전까지 원두막을 사용했던 모양인지 조그만 이불도 있었다. 창문 모양으로 난 덮개를 닫아 비 들이치는 것을 막고 이불을 덮으니 아늑했다. 비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소녀는 이미 옷이 다 젖어서 떨고 있었다. 하얀 셔츠가 젖자 몸에 달라붙어 윤곽이 다 드러났다. 청년의 눈동자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짐짓 원두막 바깥을 보는 것 처럼 기웃 거렸다. ``왜 자꾸 힐끔 거리니? 지금 이상한 생각 하고 있지? 그렇지? 그렇지? 그렇지?'' 소녀가 이불로 몸을 가리면서 물었다. 그러는 소녀의 뺨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하느님께 맹세해요. 내가 만약 이상한 생각을 했다면 하늘에서 벼락이 칠 겁니다.'' 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번쩍!! 우르르릉!!! 꽈과꽝!!!!'' 청년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찬 비바람 가운데로 엄청난 굉음을 내며 원두막으로 벼락이 떨어졌다. 원두막 기둥을 때리면서 굵은 기둥하나를 박살내 버리고 불이 붙었다. 소녀와 청년이 너무 놀라 정신이 반쯤 나갔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도망가자 기둥이 부러진 원두막이 중심을 잃고 참외밭 아랫쪽의 논으로 넘어가기 시작 했다. ``넘어 간다아아아아아아!!!'' 원두막이 아랫쪽으로 넘어가면서 소녀와 청년은 논바닥 진흙으로 고꾸라져 박혀버렸다. 소녀의 얼굴은 논흙 속으로 반쯤 박혀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하얀 티셔츠는 진흙으로 까만색으로 변해버렸고 청년의 와이셔츠와 구두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잠시 후에 비가 그쳤다. 해가 밝게 산기슭을 비추었다. 소녀를 보니 넘어가는 원두막 기둥에 걸려서 다치지는 않았지만 티셔츠가 엉망으로 찢어져 있었다. 소녀가 울었다. ``흑흑... 왜 오자고 해서 이 고생을 시키는거야... 엉엉...'' ``내가 오자고 한게 아닌데요.'' ``시끄러! 변증법적으로 보면 네가 오자고 한거나 마찬가지야, 엉엉...'' ``미안해요.'' 소녀를 일으켜서 참외밭 끝의 계곡가로 갔다. 청년은 옷을 벗어 빨아서 와이셔츠는 다시 입고 난닝구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거 입으세요.'' 소녀가 자기의 엉망이 된 옷을 보더니 말없이 청년의 난닝구를 받아 입었다. 청년은 줄곧 15년 전 그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다. 동리로 들어가는 개울가에 도착하니 세찬 소나기에 개울물이 엄청 불어 있었다. 시뻘건 흙탕물이었다. 청년이 소녀를 보고 등에 업히라고 했다. 소녀가 싫다면서 뒤로 뺐으나 청년은 완강하게 소녀를 끌어당겼다. 소녀는 눈을 흘겼다. ``나를 등에 업고서 엉큼한 생각 할라고 그러지?'' ``무슨 소리예요..? 내가 만약 음흉한 생각을 한다면 마른 하늘에서 날벼......'' 청년이 말을 하다 말고 실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소나기가 내린 토요일 오후는 그렇게 저물었다.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