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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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wha ] in KIDS
글 쓴 이(By): wish ()
날 짜 (Date): 1994년07월24일(일) 06시02분16초 KDT
제 목(Title): 벚꽃나무 열매가 익어가는 때..



4월 경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이 지고 나면 열리는 열매가 바로 우리가 
체리라고 부르는 과일이다. 앵두보다 더 크고 더 검붉은..칵테일 같은데 폼으로 
곧잘 얹혀나오곤 하는 그 열매.
우리나라에도 벚꽃은 많이 피지만 종자가 다른지 그 꽃이 지고나면 열리는 체리는 
좀 다르게 생겼던걸로 기억하지만.. 

영국의 벚꽃은 스산하고 끔찍한 겨울을 견딘 상이라도 되는양 정말 탐스럽게 피며 
봄의 한때를 황홀하게 만든다..비바람이 잦아서 오래 감상할 기회는 안주지만..


그 꽃이 지고나면 맺기 시작하는 체리가 바로 이쯤이면 칵테일 잔에 올라도 될만큼 
탐스러운 색으로 익어가는 것이다.
학교와 기숙사 근방 곳곳에서 나무에 가득이 몽글몽글 달려있는 그 체리를 감상할 
수 있다..7월의 막바지 이때쯤엔..

작년 이맘때 체리가 이만큼 익어가고 있을 때..난 내가 해결할 수 없었던 하나의 
문제를 떠나며 꽤나 가슴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그 때를 기점으로 가슴과 머리속으로 해일처럼 밀려들던 수많은 생각들을 견딜 수가 
없어서 혼자 불현듯 여행을 떠났던 기억도 난다.. 그때는 이미 그 체리의 많은 양이 
나무위가 아니라 잔디위로 떨어져 내려 있었고.. 

예전에는 서울에서 대성리로 혹은 춘천으로 떠나는 과 엠티도 제대로 따라다녀 볼 수
없었는데...배짱은 확실히 커졌다..그저 뚝딱 쬐끄만  학교 책가방 배낭을 하나 
달랑 들고 영국 열도 끝에 떠있는 '와이트'라는 이름의 섬엘 갔었다.. 

그저 머리도..마음도 다 비워버리고 싶어서..그럴 수 조차 없게 만드는 숨막히는 
학교도 잠시 완전히 잊고있고 싶어서.. 될 수 으면 멀리 가봐야지..하고 고른게 그 
섬이었던 것 같다..

3박 4일 동안 한것은  램블하이킹..발바닥에 물집이 생겨서 더이상 걸을 수 없어질 
때까지 걷고걷고 또걷고..B&B에서 자고..또 새로운 장소를 또 걷고..

영국의 척박한 자연은 그대로 또 절경이다..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 묘사되는 그 
황무지가 영국 자연경관의 대부분인데..그게 참으로  감동적인 것이다..
바람을 견디는 거칠지만 아름다운 야생화와 낮은 풀로 덮인 능선을 따라 한쪽에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절벽을 따라..걷다가 지쳐서 아무 생각도 안날 때까지 걸었던 
생각...

선글라스 자국만 하얗게 빛나는 만화주인공같은 얼굴을 하고  돌아왔었다.. 

곧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고..가을이 오고..겨울을 지나며..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그 때를 시작으로 해서..
내가 누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생각도 들었고..괜히 심각하게스리..

대학교 1학년때..2학년때....지나간 시간들을 차례로 거슬러 올라와 보기도 
하고..또 그이전의 사춘기 시절로 내려가 보기도 하고..마치 화일 케비넷을 
엎어뜨리고 나서는 거기 주저앉아 하나하나 인덱스를 새로 달아가며 정리작업을
할때처럼.. 오랜 시간들을 거쳐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반추하고 
정리해보는 일을 했었다..

크토록 스산한 영국의 정나미  떨어지는 겨울..그 겨울이 지나려 할때 쯤에야
비로소 그 화일 케비넷을 닫을 수 있을 것 같았다..내가 어디서있는지..어떻게 
가야할지....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러자 어느덧 내 앞에 봄이 와 았었다.. 놀랍게도..


기숙사로 오는 길 모퉁이 아름드리 벚나무에는 어느틈에 그 나무 가득 빠알간 
체리들을 또다시 가득 맺고 있다..


난 이제 더이상 내가 누구인지를 묻지는 않는다...

여행을 떠나지도 않을 것이며...


그저...그저...나무 가득 열린 열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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