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wha ] in KIDS 글 쓴 이(By): dryad (나무요정) 날 짜 (Date): 1995년04월27일(목) 19시45분11초 KST 제 목(Title): 이화의 멋 2 30년대 전시체제를 굳힌 일본의 압정이 심해지자 여덟가지 빛깔로 알록달록하던 이화 학생들의 의상도 검정 치마 흰 저고리로 변했다. 길었던 저고리 기장이 짧아지고 그 대신 치마가 길어졌다. 기숙사에서는 이불 색깔까지 규제했는가 하면, 본관 지하실에 있는 염색실에서는 학생들의 생깔이 있는 목도리를 검정색으로 물들여 주기도 했다. 국어가 말살되던 해인 1938년, 한복이 상징하는 민족적 색채를 용납할 수 없는 시국에서 양복을 입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김활란 학감은 강당에 모인 학생들에게 '너희들, 사정을 왜 몰라주느냐?' 고 호소했으나 학생들은 고집스러웠다. 끝내 재학생들에게는 한복을 용인하되 신입생에게는 양복을 입도록 한다는 선에서 결말이 났다. 이때 이화에는 일본 학생이 몇명 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일본 고유의 기모노 복장으로 등교하였다. 이화 학생들은 무슨 빌미를 잡아서라도 기모노 차림의 일본 학생을 울려놓고 말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는 일본옷을 입고 등교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화인은 무척 dynamic했나 보다. (물론 6.25 동란 후 어려운 시절에 이화인들은 다른 모든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KJP를 입었다. KJP란 구제품(Ku-JaiPum)의 비밀스런 약자였다.) 이화인이 입어왔던 옷은 단지 멋 자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운동의 연장선 속에서도 의미가 있었고, 옷을 입는 법을 통해 사회에 대한 저항을 표현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대학문화라는 것이 존재했고 사회에 직접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자본의 논리로부터 대학이 자유로왔던 그 시대와는 다른 요즘도 학교 곳곳에서 편견이나 기존의 관습을 부정해 보려는 실험적인 옷을 입고 나름대로 자기 표현한 이화인을 보면 우리가 그저 정체되어 있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화 1세대는 어렵고도 특별한 시대를 지나왔다. 가부장적 사회분위기와 식민지가 된 조국의 현실은 선배들을 적극적 반항아로, 활발한 여성 선각자로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