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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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wha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partde.postech.> 
날 짜 (Date): 1998년 11월  4일 수요일 오전 10시 29분 03초
제 목(Title): 김활란상을 제정한다면..


처음에는 김활란의 일생을 잘모르고, 그래서 김활란상 제정 찬/반에도
별로 관심이없다가, 여기 언쟁이 격화되길래.. 과연 무엇때문에
이렇게 의견이 엇갈리는가 해서 김활란상 관련해서 자료를 잃고
나름대로 생각하는바를 한번 적어봅니다.  (캡춰부탁합니다)


우선 저는 김활란이 몇몇 언론, 강연회들을 통해서 징용, 위안부를
부추긴것에 한도움을 주었고 이로인해 많은 우리민족이 피해를
입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활동이 거의 없던 시절에
마침 미국의 도움(간접적인 도움, 미국에서조차 여성의 사회활동이 금지되었으면
여성이 하나의 사회인으로,여성운동의 선구자로 깨어나질 못했겠죠 ?)을받아
적극적인 사회활동을한 여성운동의 선구자였던것도 사실일거라 생각합니다.

현재 김활란의 이름을 따서 상을 만든다는것은, 분명히 우리민족에게
해를 끼친적이있는데도, 역사의 심판(약 50~80년이 지난 현재의 심판이지만)을
좋은쪽으로 하게되는것이 아닌가 우려되는군요.
또한, 이러한 역사적 심판자체가 이후의 역사학자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있다고
보아집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만일 김활란의 여성운동을 기리고자 굳이 김활란상을 제정한다면,
김활란에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명시하는것은 어떨까요 ?
즉, 상패나 트로피(있는지는 모르지만) 또는 김활란상에 관련된 문서등에
김활란의 일대기(그의 사회활동시작 시기인 미국 유학과, 귀국후 일제 식민지 시대,
6.25후의 이승만 정권시대까지의)를 간략히 비판해놓은 글을 적어놓는것이죠.
예를들어 "김활란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일본의 제국주의 군사 행동에 도움을
주고, 우리 민족이 징용되고 위안부로 쓰여지는데 일조를 했으나, 그의
선구자적인 여성운동만은 높게 평가할만하다"라는 등의 그의 잘잘못을
뚜렷이 명시하자는 것이죠. - 그런데, 이러한 문구를 결정하는데도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겠군요..

정리하면, 김활란의 전체적인 업적은 우리민족에게는 도리어 해가 되었을 수도
있기에 제재를 가하거나(다른 상에는 없는, 김활란을 비평하는 문구를 싫는다거나)
또는,아예 김활란의 이름이 포함된 상을 제정하지 않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어떤단체가 제시한 "유관순상"으로 이름을 바꾸는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보아지는군요.

............

앞에서 이미 어느분이 질문하셨지만
과연 김활란의 업적은 어떤것이 있는가.. 과연 얼마나 좋은일을 많이 하셨길래
그의 친일행각조차 묻어버릴(?)수 있을까 해서
한번 위에 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글 쓴 이(By): xxx (좋은친구)
>제 목(Title): 구국운동의 기수 김활란
>
>3.1운동 이후 일본에
>대한 국민적 저항운동이 계속되면서 지식인들, YMCA·YWCA의 계몽단체 등이
>한민족의 재건을 위한 농촌부흥운동을 전개하자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
>신간회의 영향을 받은 자매단체인
>근우회의 창설(1927)을 주도하며 구국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 글 쓴 이(By): xxx (좋은친구)
> 제 목(Title): 복음의 전도자 성녀 김활란
>
>‘7인 전도대’를 조직하여 평양·신의주·안주 등지를
> 순회하며 농촌계몽과 복음 전도활동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일제의
> 극심한 탄압으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글 쓴 이(By): xxx (좋은친구)
>제 목(Title): 한국의 진정한 여성지도자 김활란
>
>한국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대학교장(총장)이 등장한 것이다. 아울러
>각종 여성단체를 조직하여 여성들이 힘을 합해 여성의 지위향상과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 글 쓴 이(By): xxx (좋은친구)
> 제 목(Title): 유능한 외교관 김활란
>
> 김활란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시키고자 1948년
> 제헌국회의원선거에 출마하였으나 아쉽게 낙선하였다
>
> 전쟁이 한창이던
> 1950년 공보처장직을 맡은 그는 전쟁이 장기화될 것을 우려하여 1951년 1월
> 민간외교기구인 ‘전시 국민홍보 외교동맹’을 조직하고 미국 대통령을 방문하여
> 다양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
> 일곱 차례나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 등 수많은 기독교, 정치, 사회에 관련된 국제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조국을
> 위해 노력하였으며, 한국을 알리는 문화사절로서의 역할도 훌륭히 담당했다.

>  글 쓴 이(By): xxx (좋은친구)
>  제 목(Title): 독립 투사  김활란 3.1운동에 참가
>
>  이화학당의 교사로 재직하던중 1919년 3.1 독립운동의 거사를 앞두고 김활란은
>  이화학당의 동료교사였던 박인덕, 신줄리아 등과 함께 3.1 운동에 지식인 여성과
>  여학생의 참가를 계획한 비밀결사를 주도하였고 학교와 교회, 여성단체에서 모은
>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역할도 담당하였다. 그러나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  동료들이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고, 쫓기던 김활란은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  간신히 피신할 수 있었다.

글의 내용이 왜곡되지 않겠다고 생각한 범위 내에서, 요약을 하느라
가위질해서 올렸습니다.
(헌신적으로 남을위해서 활동한 흔적은 곳곳에서 묻으나오는것 같군요..)

............

마지막으로, 김활란이 몇몇언론에 올린 남녀의 일본 제국주의에 도움을 줄것을
독려하는 글, 강연회등이 자의가 아니었다면
충분히 동정이 갈 수 있고, 그 입장이 이해가 갈것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그렇다고, 김활란의 우리민족에대한 해악을 정당화 할 수 있는것은 당연히 아니죠)

어느 글에서 보았는데,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가 커다랗게 그려진 옷을 입고
마라톤에서 승리했을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저항이 단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것이라는 얘기에서 문득 김활란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 쓸데 없는 생각이지만.. 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을해서
시상식때 몸에있던 일장기를 찢어버리는등의 적극적 저항을 하지않았나..
약간 궁금하군요.. 물론 생명을 걸어야되는 엄청난 일이긴하지만..
만일 그랬더라면 전 세계 생방송(음.. 그당시에도 생방송이었남?)에
한국은 독립을 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띄웠을수도 ? (물론 이는 스스로의 힘이 
아닌,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독립을하려는 소극적인 독립운동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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