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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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wha ] in KIDS
글 쓴 이(By): IH8U (마담 X)
날 짜 (Date): 1998년 10월 19일 월요일 오후 09시 14분 12초
제 목(Title): 대답/ 김활란의 행적..




.. 이곳 대부분의 글들이 '친일파' 김활란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친일의 근거로 조광, 매일신보의 몇개의 글과 그녀가 끌려
다닌 연설회의 내용을 들고있기에 한 인간을 평가하는 방법으로 부당
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군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흥분하기 전에 제발
차분히 당신의 평가가 정당한가를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 김활란의 모친 박또라.. 그녀가 열살때 노름빚에 몰린 그의 아버지는
또라를 부잣집에 팔아넘깁니다. 눈앞에서 딸을 빼앗긴 어머니는 짜고있던
베틀의 베를 모두 찢어버린뒤 애통해 하다가 곧 세상을 떠납니다.
가난과 무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여성의 위치는 가슴에 못이되어 그
딸에게까지 전해지지요. 그녀는 가난한 가운데 세딸을 이화학당에 보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삶과는 다른 삶을 기대하며..

.. 1930년 그녀가 한국 최초의 여자박사가 되었을때 미국의 독립운동가들은
그녀가 그곳에 남아 같이 활동할것을 원했으나 '나는 여성교육을 통하여
조국의 발전과 독립에 이바지하겠다며'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신조를
한번도 저버린적이 없습니다.

.. 1939년 최초의 여성  교장으로 취임했을때는 이미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해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교들이 폐교되고 선교사들도 모두 귀국했습니다.
선교사의 재정지원이 끊겼을때 학교를 폐교에서 구한것은 전국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한 모금의 결과입니다. 원산의 유명한 기생 주태경은 평생
모은 재산 10만원을 쾌척합니다.
*** 그들이 이화에서 기대한것이 무엇일까요? ***

.. 그 이후에도 탄압은 계속되어 학교에 군대가 주둔하고 결국 이름도
여자청년연성소, 경성여전 등 이화라는 이름을 말살하려 했지요.
*** 그들이 이화에서 두려워한 것이 무엇일까요? ***

김활란의 연설회 참여는 이 당시의 일이지요. 아마 학교를 그냥 닫을까도
많이 망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이 민족
에게서 교육의 희망마저 꺼버릴수는 없었던것 같습니다. 이당시 김활란의
갈등은 예의 눈병사건에 잘 나와 있습니다.

.. 어쩌면.. 김활란 자신도 정신대의 일원일수도 있습니다. 육체만 짓발
핀다고 정신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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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직후 미처 피난하지 못했던 교수들이 점령군의 강요로 써냈던 자술서
때문에 갈등이 깊어졌을때 그녀는 자술서뭉치를 불태워버렸습니다.
그 자술서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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