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csAnim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ComicsAnim ] in KIDS
글 쓴 이(By): ksangeun (Mar.Proust)
날 짜 (Date): 1999년 9월 22일 수요일 오후 05시 33분 04초
제 목(Title): Re: 지브리와 선라이즈


역시 하이텔의 mamoru님의 글 인용입니다.

역시 저자와 사전 동의가 없었으므로 문제 발생시 바로 삭제합니다.

----------------------------


------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대한 비판 ------
 - 이 글을 읽으시기 전에
  디즈니에 이어 미야자키 편을 올립니다.
  디즈니 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 글은 제 개인적인
 관점이며,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강요 내지는 설득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대한 비판
  먼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일본의 만화는 미국에 비해 역사가 짧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데츠가 오사무' (63년, 일본 최초의 TV용
 애니인 '철완 아톰'을 내놓은 인물. 일본 애니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으로, 애니메이션 계에서는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래, 30년 정도의 짧은 기간동안
 엄청난 성장을 하여, 지금의 '만화 왕국'를 이룩해 놓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역시 데츠가 오사무의 영향을 받았다.
 (아니면 디즈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데츠가 오사무 이래, 일본 애니계에는 디즈니 풍이
 유행했었는데, 미야자키 역시 이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폭력이나 섹스를 배제하고, 훈훈한 인간미와 사랑을 작품에
 담고 있으며, 권선징악적이고, 모든 작품이 해피엔딩이다.
 디즈니의 애니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가 '일본의 디즈니'라
 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모방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스타일에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일본적인
 정서를 많이 도입했다. 79년 발표된 그의 작품 '루팡 3세-
 카리오스트로의 성'에서는 프랑스라는 배경하에서도 일본의 칼잡이가
 등장하는 등,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동심적인 요소들을 담으려고 애쓴 흔적이 많다.
 (이웃의 토토로, 라퓨타, 코난, KIKI's Delivery Service 등이
 그렇고, 추억은 방울방울도 어린 시절의 추억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대학 재학 시절, (학습원 대학 경치경제 학부를
 졸업했음.) 그룹 활동으로 아동 문화 연구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여기까지 본다면, 그의 작품들은 전혀 비판할 점들이 없다.
 일본 애니의 고정관념 (과다한 폭력이나 섹스)을 깨고, 따뜻하고
 훈훈한 내용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으니까.
 나도 이런 점들은 전혀 꼬집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실제로 그의
 80년대 작품들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84년), '천공의 성
 라퓨타'(86년), '이웃의 토토로'(88년), 'KIKI's Delivery Service'
 (魔女の宅急便, 89년) 들은, 그냥 편안히 보고 즐길 수 있는 류의
 작품들이라고 (나는) 생각하므로, 비판을 하지 않겠다. 이런
 작품들까지 비판한다면, 째째한 편집광으로 몰릴테니까 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는 작품속에 현실성을
 가미하여, 성인층을 노린 작품들을 발표한다.
 오모히데 포로포로(91년)과 붉은 돼지(92년)가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이 두 작품이다.
 사실, 오모히데 포로포로는 미야자키의 감독 작품이 아니라,
 그가 제작을 맡고, 미야자키의 작품들에서 제작을 맡아오면서
 그와 항상 콤비를 이루던, 다카하다 이사오가 감독을 맡은
 작품이다. 하지만, 다카하다는 '태양의 왕자 호르스의 모험',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라퓨타',
 '토토로', '나우시카'... 등에서 미야자키와 오랜 세월 함께
 활동하면서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미야자키 풍'이고,
 감독은 아니더라도, 제작을 맡은 미야자키의 스타일도 많이
 작용하여, 추억은 방울방울도 미야자키의 (혹은 미야자키 풍의)
 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럼, 본격적인 비판으로 들어가보자. (난 왜 이렇게 서론이 길지?)
 
  우선, 추억은 방울방울을 보자. 다들 아시겠지만, 27세의 도시
 직장 여성인 다에코가 10일간의 농가 연수동안 낭만적인 농촌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농촌 총각과 사랑에 빠져, 결국은 농촌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내가 느낀 바로는, 말도 안되는 스토리 라인이다. 도대체 10일간의
 농가연수로, 도시 사람이 농촌에 눌러 살게 된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는 것부터가 넌센스이다. 여기 한 일본 비평가의 말을
 인용해보겠다.
   '이 영화는 대단한 거짓말을 하고있다. 10일간의 농가 연수로
   다에코에게 연심이 싹트고, 농가에 결혼해 들어가기로 결심한다는
   기적을 묘사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런것은 영화가 묘사하는
   "꿈"이 아니다. 잔혹한 거짓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오모히데 포로포로는 야마가타현(이 작품의 배경인 농촌)의 자체
   광고 영화라면 일등상일것이다.'
 일본의 농촌도 우리나라 농촌과 마찬가지로, 농촌 총각 문제가
 심각하다. 그러므로 이 비평가가 '잔혹한 거짓말'이라고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농촌에서 이러한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는
 농민들의 고통은 생각지도 않고, 목가적인 생활에 대한 도시
 사람들의 막연한 동경이나 낭만적인 환상만을 묘사하여,
 결과적으로는 농촌 사람들을 우롱한 셈이 되었다.
 성인층을 겨냥한 영화는 현실성이 참 중요하다. 미야자키도 자신의
 80년대의 작품들과는 달리, 좀더 현실성을 가미하여 이 작품을
 제작했으나, 그동안 어린이들 풍의 작품들을 많이 제작해 와서
 그런지, 성인용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현실성의 가미에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두번째로,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야자키의 작품은 일본적인 정서가
 짙다. 앞에서 봤듯이, 프랑스에 사무라이가 등장하질 않나...
 (미야자키처럼 국제적인 감독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기모노 입고 나와서 일본식으로 차를 마시는 것'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그러니까 아주 근본적이고도 뿌리깊은 일본
 정서를 작품속에 깔아놓는다.
 붉은 돼지의 경우는 심하지 않다. 그러나 오모히데 포로포로의 경우에는
 좀 심하다. 이 작품은, 일본 문화에 대해서 깊은 인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보면, 이해 못할 부분들이 꽤 된다.
 다에코가 맨발로 밖으로 나왔다가 왜 아버지에게 따귀를 맞는지,
 타카라즈카가 뭔지, 이 작품에서 잇꽃의 의미가 뭔지...
 우리가 아무리 일본 애니를 많이 보고, 어떤 이들이 말하듯이 일본
 문화에 젖어 있다고 해도, 일본의 근본적인 정서를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는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자라왔고, 살고 있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세계적인 애니메이터가 되었어도 이렇게 일본적인 것을
 고집하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일본 제국주의와 국수주의
 사상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그는
 지독한 인종 편견 주의자이고, 특히 한국인들을 경멸한다.
 일본만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우리들(일본인들)은 신성한
 천황을 모시고 있는 황국의 국민들이므로, 일본인은 신성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특권 의식이랄까...
 사실, 이 얘기는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개인적인 사상이나
 인간성 문제 말이다... 여기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작품'
 이지, '미야자키라는 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그러한 사상이 그의 작품에 묻어나오는 걸 어쩌랴...
 
  붉은 돼지에 대해서도 한마디하자.
 이 작품의 배경은 1920년대 후반, 파시즘이 팽배한 이탈리아이다.
 왜 이런 배경을 설정했는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러한 배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듯이
 진행된다. 혹자는 파시즘이라는 배경 (전체주의 속의 억압된,
 경직된 사회)은 주인공 포르코의 인간에 대한 불신, 갈등, 혐오를
 더욱 확실히 나타내주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파시즘의 이탈리아라는 배경은 이런 양념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미묘한 문제다. 이런 미묘한 문제는 그냥 얼렁뚱땅
 넘겨버리므로써, 배경 설정과 그 의미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미야자키의 주제 전달 방법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세련되지 못하다. 주제를 너무 표면적으로
 드러내놓고, 관객들에게 하나하나 꼬치꼬치, 진부하게 설명해준다.
 오미히데 포로포로의 라스트 신에서 농가 연수를 마치고 도시로
 돌아가려는 다에코를, 국민학교 5학년 때의 다에코가 나타나서
 돌아가자고 붙잡는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구나 다, "농촌의 낭만적인 생활로 돌아가자..."
 라는 주제를 알고 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 친절하게(?)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을까? 이 라스트 신 때문에 잘 나가던
 영화가 끝에 가서 진부해져 버린다. 국민학생 대상의 계몽 영화도
 아닌데 말이다...
 붉은 돼지도 마찬가지이다. 역시 라스트 신에서의 피오의 독백
 "지나씨의 내기가 어떻게 됐는지는..." 이 독백은 없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 준다.
 위의 두작품을 보면서,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이 생각났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특히 반전 영화들은 관심이 있어서 많이
 봤는데, '플래툰'은 그 중에서도 최하이다. 영화가 잘 나가다가,
 라스트에 가서, 헬기에 실려가는 찰리 쉰의 마지막 독백...
 으... 너무 유치하다. 처음 학교에 들어간 국민학생들에게
 선생님이 가나다라 부터 하나씩 가르쳐주는 것과 다를게 없다.
 작품의 주제는 작품 전체를 통해, 은은하고 내면적으로 표현되어야
 제맛이 나는 것이다. 그래야, 작품을 본 후에도, 뭔가 생각하게
 되고, 감동이 오래도록 남는 것이다.
 
 - 끝으로
  후우... 드디어 끝났군요. 베스트 7 에다가, 디즈니, 미야자키의
 비판까지... 펜만 들면 너무 직선적이 되어버려서, 비판이 너무
 신랄하다고 미야자키 팬들에게 욕먹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아시죠? "이런 의견도 있구나..."라는 거죠, 뭐.
 제 비판을 읽으시면서, "별 이상한 걸 다 꼬치꼬치 캐가면서
 애니를 보는군..." 하시거나, "그렇게 따지면 좋은 만화는
 하나도 없겠다..." 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저도
 그렇게 골치 아프게 따져가면서 감상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두루두루 즐기는 편이지요. 앞으로는 좋은 애니들 많이 추천해
 드릴께요. 끝으로 저에게 격려 메일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요,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 Dedicated  to  Fatima -  mamoru
               
   Department of Computer Engineering, Hankuk Aviation University 
                                        sekim@mail.hangkong.ac.kr
                                   http://sekim.ce.hangkong.ac.kr
                                                  Sang-eun A. Kim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