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omicsAnim ] in KIDS 글 쓴 이(By): leat () 날 짜 (Date): 1996년02월28일(수) 23시31분12초 KST 제 목(Title): [퍼온글]Rough 9/10 ▶ ROUGH 9/10 ◀ 기차표 ------------------------------------------- 창우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경기장 앞의 공원길을 따라 걸어갔다. 한참 을 걸어가던 창우는 전의 울타리 앞에 현주가 서있는 것을 보았다. "대답도 안 듣고 갈거니..?" 현주가 고개를 돌려 창우를 보며 말했다. "변명할 거리도 생각나질 않아..." "자신의 기분이 어떻든 간에.. 난 너의 승리 만큼은 의심해 본적이 없었 어." "나도 그래..." "오십미터 턴할때 어쩌면 하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가슴이 막히는 듯 했 어. 마음속에서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창우는 고개를 들어 현주를 바라보았다. "이건.... 위로나 동정의 말이 아냐.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었어. 그런 너 의 모습을 보니.. 지금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네가 처음으로 가깝게 느껴 졌어." 현주와 창우는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창우야.. 내일 다이빙 경기때 곁에 있어주지.... 않을래.. 이거면.. 대답 이 됐는지.. 모르겠다.." 현주는 창우에게 말을 하고 고개를 떨궈 바닥을 바라보았다. 창우는 길 위에 서서 놀란 눈으로 말없이 현주를 한참동안 바라보고만 있었다. * * * * * "응..응.. 그래.. 그럼.. 몸조심하거라." 소리 어머니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소리 아버지에게 말했다. "여보.. 소리가 내일 폐회식을 보고 수영부원들과 같이 오겠대요." "준영이하고 같이 오는게 아니고?" "준영이는 집에 볼일이 있다고 따로 간다나 봐요.." "여전히 맘에 안드는군!" 소리 아버지는 맥주병을 들어 컵에 맥주를 가득 채웠다. 마침 텔레비젼에 서 낮의 결승전 모습을 중계하고 있었다. "오늘 거행된 백미터 자유형 결승은 한통 고등학교의 장기탁군이 대회 신 기록을 세우며 우승했습니다." 아나운서의 해설과 함께 화면에 기탁의 모습이 비쳤다. 소리 아버지는 리모콘으로 화면을 꺼버리고 맥주를 들이켰다. 소리 아버지는 문득 전에 생일날 기탁과 함께 술을 마시던 기억을 떠올렸다. 비록 그땐 철이인줄 알 긴 했지만.. 소리 아버지는 리모콘을 들어 텔레비젼을 다시 켰다. "그럼 그 경기의 모습을....." * * * * * 다음날.. 현주는 높은 점수로 다이빙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오던 현주는 통로에서 기탁이 일행을 만났다. "축하해.." "축하한다~" "축하해.." 기탁도 벽에 기대어 서서 현주에게 축하의 말을 했다. "고마워. 네가 포기해준 덕분이야..." 현주는 소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 얘도 참.. 내년에 잘 부탁하겠습니당~~" "나야 말로.... 잘 부탁해.. 그럼 또 보자.." 현주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통로를 계속 걸어갔다. 기탁은 뭔가 전과는 다른 현주의 태도에 약간 이상함을 느꼈다. "오늘은 어째 고분고분하다?" "1등을 했는데 당연하지.." * * * * * "그럼 조심해. 소리야.." 준영이 갤로퍼를 역 앞에 세워 놓고 소리에게 말했다. "걱정마..." "하하~ 걱정마. 이 박경석 선생님이 알아서 할테니~" 준영은 기탁이 일행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잘들 부탁한다.. 아.. 그리고.. 기탁아. 10일후 한국 선수권에서 만나자!" 준영은 차에 올라타 집쪽을 향해 떠났다. "자아~ 우린 역으로~" * * * * * "어머? 어머머?" "왜그래 소리야?" 소리가 당황한 표정으로 가방을 뒤지고 있자 태구가 물었다. "표..가 없어." "뭐?" 코치가 놀란 눈으로 소리를 보며 말했다. "어제 내가 분명히 건네 줬다." "네.. 그랬어요.. 아.. 아차차.. 오빠 차에 있다!!" "으이구 덜렁이.." 기탁이 피식 웃으며 소리를 나무랬다. 소리가 갑자기 소리치며 어디론가 뛰어갔다. "어디 가는거야?" "전화!" "전할수 있을거 같애?" "학교 풀장에 들른다고 했으니까 전할 수 있어." 소리는 준영의 학교에 전화를 걸어 연락을 했다. 기탁은 소리의 옆에 서 서 소리에게 말했다. "그냥 새로 사!" "싫어.. 그게 얼마인데 그러니? 아직 15분 남았어. 잘하면 될거야!" * * * * * 차를 타고 학교로 들어간 준영는 연락을 받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바보... 으휴.. 지름길로 가야 겠군." 준영은 평소에 시간이 급할 때 다니는 골목길로 차를 돌렸다. 준영은 자 꾸 시계를 바라보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차를 더 빨리 몰았다. 동네 개천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던 준영은 조그만 꼬마 아이가 세발 자전 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준영은 순간적으로 브레이크 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준영의 갤로퍼는 흙먼지를 남기며 균형을 잃고 말았다. * * * * * "앞으로 3분만 기다리면 돼." "되게 질기네.." 소리가 웃으며 말하자 기탁이 답답한 듯이 말했다. 내탓이야 ----------------------------------------- 균형을 잃은 준영의 갤로퍼는 왼쪽으로 넘어지며 다리 난간의 기둥에 그 대로 부딪치고 말았다. 범퍼가 찌그러지며 차체는 구겨진 알루니늄 캔같이 한쪽으로 눌려져 버렸다. 세발 자전거를 몰고 다리 건너편을 가로질러 가던 꼬마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천천히 자전거를 몰고 갔다. 핸들에 머리를 부딪힌 준영의 머리에서 피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 * * * * 기탁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기탁은 떨리는 눈으로 신문의 기사를 천천히 읽었다. '강준영 선수 생명의 위기.. 오른발 인대 손상..' '생명의 위기'라는 문구가 자꾸만 기탁의 머리속을 맴돌았다. "어휴 더워라!" 기탁이 아버지가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하나 꺼내들고 거실로와 소파에 앉 았다. "푸하.. 너도 어지간히 재수없다.." 기탁이 아버지가 맥주를 한모금 들이키고 나서 기탁에게 말했다. "재수 없다구요? 제가요? 강준영 선수만 없다면 제게도 우승 가능성은 있잖 아요." 기탁의 비겁한 말에 기탁이 아버지는 이상하다는 눈으로 기탁을 한참 바 라보다가 다시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생각하니..? 난.. 그게 네 목표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아.. 미안..미안.." 기탁이 아버지의 말투에는 기탁을 조소(?)하는 듯한 느낌이 섞여 있었다. 기탁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로 가서 섰다. '내 탓이야.. 내 탓이야..' 창밖을 보던 기탁은 소리의 절규하는 듯한 슬픈 목소리를 떠올렸다. * * * * * 소리가 없어 어쩐지 썰렁해 보이는 학교 수영장에서 주현과 강우는 풀 한 쪽에 앉아 얘기를 하고 있었다. "소리는 계속 병원에만 있는 모양이네." "그런가봐.. 모두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니까. 차에 표를 놓고 내리지 않 았더라면, 전화로 전해달라고 전하지 않았다면 하고.." "지금 그앤 자기를 자책하고 있다구! 괜한 자책감에 빠져 있긴 .. 바보같 이." 주현은 강우의 말에 벌떡 일어나서 강우에게 소리쳤다. "내가 소리라도 그럴거야! 넌 소리의 마음을 이해 못하겠냐?" "하니까 이런 말 하지!! 소리가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는 건 나도 괴로 워.." "휴우..." 기탁이 또 풀로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강우는 그 소리를 듣고 기탁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야! 언제까지 수영만 할거야? 밥먹으러 안가? 장기탁!" * * * * * 기탁은 창문가에 서서 반대편에 보이는 불이 꺼진 소리 방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깨끗하게 쳐진 분홍색 커텐에 소리의 웃는 얼굴이 아른거렸 다. 기탁은 그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냥 가만히 서있다가 한숨 을 내쉬고 침대로 가서 누웠다. '내 탓이야..' 또 소리의 슬픈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기탁이 있냐?" 문 밖에서 기숙사의 한 친구 목소리가 들렸다. "왜?" "전화 받아!" 기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소리였다. "아..." "아냐.. 여긴 별로.." "으응.. 신문에서 대강 읽었어." "응. 응." "괜찮아! 그건 보통 사람의 경우고 강준영 선수는 아니야." "응?" "지금은 아직 사고의 충격이 있으니까 그렇지.." "응.." "야.. 소리가 작다." "그래. 그으래. 당연하지." "너무 많이 생각하지마.." 기탁은 소리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펑펑쏟으며 울던 소 리의 모습을 생각했다. '내탓이야.. 내탓이야..'라고 울먹거리며 말하던.. "응?" "이름뿐인 한국 선수권이 되버렸지." "알고있어." "보러오지 않는게 내겐 편해." "넌 강준영 선수 응원이나 해." "그럼 끊는다.." "으응.." "안녕......." 기탁은 수화기를 조용히 내려 놓았다. * * * * * '너에게 보여줄 기회는 올해 뿐이야.' '10일후 대회에서 만나자.' 기탁은 또 창밖을 보며 이번엔 강준영 선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기탁은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우며 중얼거렸다. "너무해요.. 강준영 선수.." 올해의 우승자 ------------------------------------ 시간이 흘러 여름 방학이 며칠 남지 않게 되었다. 강우와 주현은 기숙사 방에서 밤새도록 숙제를 하고 있었다. 주현은 새벽녘이 되어서 잠들었는지 정신없지 잠을 자고 있었다. 한참 끙끙대며 숙제를 하던 강우는 코를 골고 있는 주현을 한참 바라보다 가 의자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주현의 책상으로 갔다. 강우는 책상위에 놓 인 노트들을 뒤적거리며 주현의 수학 숙제 노트를 찾았다. "얼마 줄래?" 주현이 자다말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강우가 몰래 가져가려던 노트를 집어 들어 강우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100원줄테니까 거슬러줄래?" * * * * * 기탁은 한국 선수권 수영 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기록했다. 그날 신문의 스포츠 면은 어린 나이로 한국 선수권 수영 대회에서 100m 자유형을 재패한 기탁의 사진과 기사로 가득차 있었다. * * * * * "우선 축하해.." 소리가 학교 운동장 근처의 철장 옆에 서서 말했다. "우선 고맙다.." "에? 아.. 후아아아암~~~" 소리가 갑자기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해댔다. "야..야.." "미안해.. 수면 부족이라서. 방학 숙제를 한꺼번에 하려니까 잠이 모자라 서.." "......" 기탁은 아까부터 만지작 거리던 봉걸레 자루를 들어 머리를 톡 쳤다. "얍~!" "숙제 다했니..?" "했어..... 반만....." "음.. 학교의 영웅인데 선생님도 좀 봐주실거야. 시대회, 도대회 고등학교 대회에서 한국 선수권까지.. 이번 여름은 정말 힘든 시기였어." "그래도 너만큼은 아니야...." 기탁은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리는 기탁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병원 옮긴다며? 강준영선수.." "응. 결과를 봐서 복귀시킨대. 난 늘 골치거리였어. 늘 오빠를 귀찮게만 했 어. 옛날부터 내내.." "언제야?" "응?" "강준영 선수 오는거.." "아.. 아마 모레쯤." * * * * * 어두침침한 병실에서 기탁은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애써 참으며 준영이 누 워있는 침대 앞에 서 있었다. 초췌한 모습의 준영이 기탁을 보는 눈빛은 전과 같은 그런 자상한 눈빛이 아니었다. "저.. 그럼 이만 슬슬.." 기탁은 용기를 내어 말하고 몸을 돌렸다. "일부러 와줘서 고맙다." 한마디도 하지 않던 준영이 말을 꺼냈다. "한국 챔피언.." "네?" "잘난체 하지마.. 그런건 경기도 아니야!! 뭐가 한국 선수권이야!! 세계가 보면 웃을 일이다!"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치는 준영을 기탁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 * * * * "굳이 듣지 않아도 모르는 건 아닌데.." "너도 그랬잖아. 지금은 사고의 충격으로 이성을 잃은거라구." 기탁과 소리는 병실을 나오며 얘기했다. "미안해.." "넌 사과할 것 없어. 내가 나빴어. 환자의 기분은 생각않고.. 좀더 시간 을 두고 다음에 올걸.." 기탁은 현관까지 나와서 발을 멈추고 말했다. "됐어. 들어가.." 기탁은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하고 밖으로 걸어나왔다. "기탁아.." 소리가 부르는 소리에 기탁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세계가 웃어도.. 난 웃지않아. 누가 뭐라해도 올해의 우승자는 너야.." 기탁은 소리의 말을 듣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손을 들어 인사 를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 * * * * "난 반드시 재기한다." 준영이 주먹을 꽉 쥐며 소리에게 말했다. "지금의 한국 기록은 아직 아냐. 반드시 기록을 갱신할 자신이 있다구. 부 탁한다. 소리야.. 곁에 있어서 나의 힘이 돼 줘.. 네가 없으면 안돼.." 소리는 창가에 서 있다가 고개를 돌려 준영를 보았다. "부탁이야......." "응...." 소리는 준영의 말에 조용히 대답을 했다. 미안해 ------------------------------------------- "운동을 쉰다고요?" 학교 수영장에서 선수들을 보고 있던 박경석 코치가 최윤희 코치에게 물었 다. "그렇군.. 그 애의 기분을 생각한다면 이해 못 할것도 없지." "그래요. 불안한 상태에서 연습을 시키는 것도 무리고.. 하지만 아까워요. 다이빙에 재능이 있는데.." 한 선수가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렸다. "장기탁..너 아직 숙제 남아있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으며 강우가 주현의 숙제 노트를 보여주었다. "아.. 빌려 준다고?" "내가 언제 빌려준댔냐? 김치국 마시지마. 이게 얼마짜린데 그래! 짜샤!" "얼마인데?" "돈은 필요없고 네 하루를 내게 빌려 주면 돼." "뭐라고?" * * * * * 일요일이었다. 기탁은 아침일찍 물주전자를 들고 탁이의 우리로 갔다. 마 침 소리가 탁이 우리 앞에 앉아 있었다. "기탁아, 물은 내가 금방 갈아줬어." "아. 그래? 음.. 오늘도 병원에 갈거니?" "응.." 기탁과 소리가 몇마디를 나누고 있는데 멀리서 강우가 기탁을 부르는 소 리가 들렸다. 소리는 약간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럼.." "그래...." * * * * * "뭐하는 거냐?! 빨리 나가야되니까 얼른 준비해." 기탁이 주전자를 들고 남학생 기숙사로 돌아오자 강우가 기탁을 보고 말 했다. "내가 왜 네 데이트에 나가야 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유명인을 데리고 나가기로 약속했거든. 하지만 명심해 넌 어디까지나 들러 리고 주인공은 나라구.." "알았어." * * * * * 대공원에서 만난 강우의 데이트 상대는 최연수라는 예쁜 여학생과 오미희 라는 예쁘다고 말하긴 좀 그런 여학생이었다. 기탁은 두 여자를 번갈아 바 라보다가 강우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어디가 진짜냐?' '보면 모르냐 짜샤!' "어서와 얘들아~" 미희가 강우와 기탁을 반기며 말했다. "저.. 우리 보트 타러 갈까?" "어머! 그거 좋다 얘~" 강우의 말에 미희가 얼굴을 활짝 피며 말했다. * * * * * "지난번에 네 경기 모습 전부 비디오로 찍어 놨어." "그래? 영광이다.." 연수의 물음에 기탁은 무뚝뚝하게 대답을 하며 노를 저었다. 미희와 함 께 보트를 타고 있던 강우는 화난 눈초리로 기탁을 노려 봤다. 보트 타기를 끝내고 걸어가는 길에 강우는 기탁의 옆으로 와 기탁의 신발 을 꽉 밟았다. 기탁은 씨익 웃으며 강우에게 말했다. "네가 가위바위보로 짝을 정하자고 그랬잖아!" "어서와~ 얘들아.." 미희가 연수와 함께 걸어가다가 고개를 뒤로 돌리며 강우과 기탁을 불렀 다. * * * * * "강우야, 사진 좀 찍어줘.." "그..그래.." 연수가 강우에게 카메라를 건네 주며 말했다. 강우는 얼굴을 찌푸리며 카 메라를 들고 기탁과 연수를 찍었다. 연수는 기쁜 표정으로 기탁에게 살짝 기댔고 기탁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강우가 셔터를 누르자 마자 기탁은 연수를 살짝 밀어내고 강우에게 뛰어와 카메라를 ㎍으며 말했다. "이번엔 바꿔서 찍자!" 이번엔 미희가 강우와 연수 사이에 끼여 함박웃음을 웃으며 양손에 브이자 를 그렸다. 강우는 연수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기탁은 카메라를 눈에 대며 강우에게 말했다. "강우야 웃어!" 사진을 찍고 나서 넷은 동물원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연수는 동물원에 도착하자 마자 깡총깡총 뛰어 울타리로 갔다. "기탁아~ 이리와봐. 여기 원숭이 우리야~ 봐! 고릴라다~" 연수는 울타리 옆에 서 있던 고릴라 같이 생긴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머~ 죄송합니다~ 하하~" 연수가 한참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데 그 고릴라같이 생긴 사내가 고개를 돌려 연수를 노려보았다. 사내는 갑자기 연수에게 달려들어 연수의 두 손을 움켜 잡았다. 연수는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 던 기탁이 말했다. "모르고 그런건데.. 이해를 하셔야죠." 그 고릴라같은 사내는 기탁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기탁을 보고는 기탁에게 뛰어와 주먹을 날렸다. 기탁은 힘없이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사내는 기탁에게 또 뛰어가 머리를 손으로 눌러 바닥에 문질렀다. 연수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강우는 소리를 꽥꽥 지르며 기탁의 머리를 누 르고 있던 사내의 목을 팔꿈치로 내려 쳤다.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돌아서자 이번에 강우가 뒤돌려 차기와 스트레이트 한방으로 그 사내를 완 전히 보내버렸다. 강우는 사내를 쓰러뜨리고 기탁에게 걸어가 기탁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 다. 연수는 울타리에 기대서서 놀란 눈으로 강우의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 * * * * "연기한번 잘하더군.." "뭐?" "네가 그런 고릴라 같은 놈에게 간단히 넘어갈 애냐?" 데이트를 끝내고 기숙사로 가는 길에서 강우가 기탁에게 말했다. "너야말로 대단하더라.. 어쨋든 잘됐다. 그 여자애 너를 보는 눈빛이 다르 더라. 하지만.. 너라는 녀석도 엉터리다. 소리가 없으면 못살것 같이 호들 갑이더니 금새 마음이 바뀌었나?" "미안하다고 하는데 별 수 있나....." "뭐?" "소리의 대답이야.." 기탁은 강우의 말에 놀라 강우를 바라보았다. "엇그저꼐.. 친구와 사이가 아닌 특별한 사이로 지내자고 얘기했었어." "바보야.. 시기적으로 안좋다는 것 몰라서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늦을수록 소리의 마음은 그자에게 갈지 모른 다는 생각이 들어서.." "......." "하지만, 난 원래 천성적으로 풀이 죽거나 하지 않아. 그래서 아예 새로운 여자애를 찾기로 마음 먹었지. 남자답게 포기하는 거야.." 기탁은 기지개를 펴며 앞으로 먼저 걸어가는 강우를 보고 중얼거렸다. "미안하다고 그랬다고.........?" 기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터벅터벅 강우를 따라갔다. 마라톤 대회 -------------------------------------- 지루한 가을 오후의 영어 수업 시간이었다. 영어책을 펴놓고 기탁은 턱을 괸 채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소리는 1반이고, 나는 2반이다.. 그리고 운동을 쉬고 있는 소리는 방과 후 에는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물론 기숙사도 전과 다름없고 교실도 벽하나 차이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말날수 있어.. 하지만.. 아무 생각없 이 하루를 보내고 있자니.. 우연이 아니고는.. 우연이 아니고는..' 칠판에 문장을 하나 주욱 써내린 영어 선생님이 기탁을 지적했다. "장기탁.." 기탁은 선생님이 한번 이름을 불렀는 데도 계속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 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고는.. 좀처럼.. 엥? 장기탁? 나잖아..?' 기탁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석해봐.." 영어 선생님이 칠판의 긴 문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탁은 칠판을 멀뚱멀 뚱 바라보다가 말했다. "우리가 그런 사이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뭐라고??" 이렇게 헛소리를 할 정도로 기탁의 머리는 온통 소리와의 일에 대한 생각 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윽고, 수업이 끝나고 영어 선생님이 밖으로 나갔다. 기탁은 어슬렁어슬 렁 시끄러운 복도로 걸어나왔다. '우연이 아니고는..... 만날수..' 기탁은 아까 하던 생각을 하며 2학년 2반 교실 문앞에서 잠깐 서 있었다. 문 안을 들여다 보며. 그때 선생님 심부름이었는지 쓰레기 상자를 두개 들 고 가던 태구가 낑낑대며 기탁을 불렀다. "기탁아! 이것 좀 도와줄래?" 기탁은 머뭇거리며 태구에게 뛰어가 짐을 덜어주었다. 기탁은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태구와 함께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기탁이 태구와 함께 가 고나서 소리는 책을 하나 손에 들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쓰레기 상자를 들고 밖으로 걸어가던 기탁은 복도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았다. 10월 10일에 있을 24회 교내 마라톤 대회에 대한 안내 포스터였다. 기탁이 잠깐 멈춰서서 포스터를 보고 있자 태구가 인상을 찌푸리며 콧방귀 를 뀌었다. "치.." "응?" 기탁이 고개를 돌려 태구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때 복도 반대편에서 날카 롭게 생긴 한 남학생이 그들쪽으로 걸어왔다. 그 학생을 본 태구는 약간 멈 칫하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오냐.." 그 학생은 갑자기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풀고는 태구가 들고 있는 상자에 집어 던지며 말했다. "같이 버려라. 아 그리고 50등이내다. 뚱뗑아~ 킬킬" 그 학생은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오던 길로 계속 걸어갔다. 기탁은 상자를 내려들고 태구에게 물었다. "누구야?" "육상부 주장.." "꽤 인상이 좋구먼.." "그래.. 다들 좋아한다.. 어쩔래.." 태구의 약간 뾰로통한 말투에는 비꼬는 듯한 느낌이 섞여 있었다. 기탁이 다시 물었다. "뭐가 50등 이내라는 거야?" "이거.." 태구가 포스터를 손바닥으로 철퍽 때리며 대답했다. "육상부원은 전교 50등안에 들지 않으면 팬티만 입고 테니스부 앞을 달려 야 돼." "그런 전통이 있었어?" "바보야! 전통이 아냐! 누구나가 좋아하는 잘난 주장이 정하신거야." "그럼 작년엔 몇등이었냐?" "102등.." "그럼 테니스부 앞을 뛰어야 겠군." 기탁은 테니스부에 희연이 있는 걸 생각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뛰었다 하면 난 실격이야. 그 녀석은 마라톤 부라서 잘 뛰지만 난 포환부 라서 잘 뛰질 못한단 말이야. 놀리지마.. 심각해." "그럼 테니스부 앞을 뛰어...." "으....." 태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살살 웃고 있는 기탁을 노려보았다. * * * * * 어둑어둑해져서야 강우와 주현, 기탁은 수영 연습을 마치고 수영장 건물을 나왔다. 주현이 볼멘 소리로 말을 했다. "밖이 어두워 졌네.. 이렇게 늦게까지 연습을 시키다니.. 지독한 코치야." "짜샤! 다 너 때문이야." 강우가 팔꿈치로 기탁의 머리를 툭 때리며 말했다. "눈치봐서 나왔어야지. 에잇!" 어디선가 갑자기 들려오는 빠른 발자국 소리에 기탁과 강우는 고개를 돌 려 그 쪽을 보았다. 아까 낮의 그 학생이 육상복을 입고 뛰어 가고 있었다. 강우가 그 학생을 보다가 말했다. "저쪽도 되게 열심이네.." "마라톤 대회가 얼마 안남았잖아." 주현이 강우의 말에 대답했다. 기탁은 주현이 좀 알고 있는게 있는 것 같 아 주현에게 물어보았다. "저 주장 빠르니?" "응.. 시대회 4,5위래. 빠른건 아니지 뭐.." "흐음.." "하지만 교내 대회에선 영웅 취급을 받을 거야." 주현의 말에 강우가 끼어들어 말했다. "글�♧첵척�..." "글쎄올시다라니?" "작년 마라톤 대회 기억 아나냐?" "작년? 아.. 맞다. 희민이가 1등해서 이상한 메달하나 받았었지.." "24년의 전통있는 대회치고는 형편없는 메달이었어." "야.. 주현아, 그럼 그 주장은 2위였겠네?" 기탁이 다시 주현에게 물었다. "2위는 나였어.." "뭐?" "그래서 올해의 우승후보는 이몸이다 이 말씀이야! 그 녀석은 작년에 3위하 는 바람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 "그런데 왜 너 정식으로 육상부에 안드냐?" "육상부하나 여자 애들은 하나같이 메주들이걸랑." "응..그렇군..쩌업.." * * * * * 저녁이 되어 기탁은 기숙사 침대에 누워있었고 태구는 바닥에 엎드려 비 비젼을 보고 있었다. 누워있던 기탁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아무 생각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무슨 소리야 그게?" "아.. 아냐 아무것도.." 기탁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물론.. 기숙사는 전과 다름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만날수 있 어.. 하지만..' 기탁은 또 아까 하던 생각을 하며 창가로가 창문을 드르륵 열었다. 그런 데, 기탁이 창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반대쪽 기숙사의 창문이 같이 열렸다. 서로 동시에 창문을 연 소리와 기탁은 방안의 불빛으로 생긴 서로의 실루허 엣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소리가 미소를 지으며 기탁에게 손을 흔들었 다. 기탁은 손들 생각도 없이 그냥 그냥 소리를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 * * * * 차분함을 되찾은 태양으로 긴 그림자는 드리우고 조용히 부는 바람은 가 을색.. 어느덧, 마라톤 대회는 다가왔다. 기탁은 학교 운동장에 세워져 있는 게시판 앞에서 역대 교내 마라톤 대 회 우승자 명단을 보고 있었다. 제 1회 우승자는 황응조라는 사람이었다. 기탁은 그 이름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이상한 이름이군.." 기탁은 학생들이 출발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운동장 한쪽 구석으로 갔다. 그 쪽은 온통 학생들의 얘기 소리로 무슨 장터 골목 같아 보였다. 기탁은 무심코 걷다가 계단으로 올라가는 쪽에 누워있는 태구를 보았다. 기탁은 태 구에게 걸어가 말을 했다. "연습은 끝났니?" "시합전에 연습하는 사람이 어딨냐? 기운 다 빠지게.." "아.. 그게 아니고 발가벗고 테니스부 앞을 달리는 연습..말이다. 헤헤~" 기탁은 말을 해 놓고는 태구에게서 한발짝 물러섰다. 갑자기 밀려올 일 대 공격을 피하기 위해.. 하지만 태구의 반응은 의외였다. "헤헤헤~" "얼라? 너 50등안에 들어올 자신 있어?" "조건을 내걸었지!" "조건?" "그래.. 주장이 메달을 딸 경우에만.. 즉.. 그녀석이 2등을 한다면 모든 일은 없었던 걸로 하기로. 이번엔 손구정이라는 녀석이 우승할 가능성이 높아. 주장은 작년 이래로 기록이 신통치 않거든.. 믿어 볼만해.." 태구는 자신 만만한 목소리로 가슴을 떡 펴고 기탁에게 말했다. "손구정?" "음.. 기탁아, 근데 너는 작년에 몇등이었냐?" "17등.." 기탁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약간 떫더름한 표정을 대답했다. 태구는 인 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젠장, 너같은 녀석이 있기 때문에 나같은 불쌍한 육상부원이 고생을 하 는 거야." "바보야 앞에 있는 녀석이 넘어지지 않았다면 난 18등이었어." "야..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기탁은 씨익 웃으며 운동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자애들이 들어올 때가 됐지?" "소리는 작년에 몇등이었냐?" "글쎄..." "남녀 20등까지는 상준대지?" 기탁은 태구의 물음에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작년 마라톤 대회때를 생각하 고 있었다. 마라톤 대회가 끝나고 대회도중 넘어져서 기탁이 바로 뒤에 들 어온 남학생이 소리가에게 다가가 말했었다. '네가 여자 18등이었니? 나도 18등이야 이거 대단한 인연인데.. 우리 차라 도 한잔.....' 그에 비해 기탁에게는 이상한 여자애가 자기가 17등이라며 기탁에게 프로 포즈를 했었다. 기탁은 그때를 생각하며 눈썹끝을 치켜 올리며 인상을 썼 다. 옆에서 같이 걷던 태구가 기탁의 얼굴을 바라보곤 물었다. "야..너 근데 왜 땡감씹은 얼굴이냐?" "누가?" 그때, 준비 운동을 하고 있던 육상부 주장 응조가 태구와 기탁이 있는 쪽 으로 뛰어오며 말했다. "50등 이내다.. 뚱뗑아.." "헤헤~" 태구는 주장이 뒤로 지나갈 때까지 손을 들어 머리를 긁으며 멋적은 듯 웃었다. 그런데, 주장이 그들 뒤로 뛰어가자 마자 태구는 비웃는 듯한 미소 를 지으며 음흉스럽게 말했다. "흥.. 지가 구정이를 이길줄 아나보지? 흥~ 흥~" "아.. 태구야. 구정이는 오늘 쉰데.." 태구의 싱글벙글 웃던 얼굴이 딱 굳어버리고 이내 허옇게 질리기시작했다. 기탁은 이상하다는 듯이 태구에게 말했다. "몰랐냐?? 음음.. 구정이는 어제부터 설사가 심하대. 식당에서 주워 먹은 찹쌀떡이 원인인가봐." "뭐?" "이제야 연습할 기분이 드냐? 흐흐~" "그럼 응조 주장이 1등이잖아." "그 사람 이름이 응조였냐?" "엄마야! 어쩌지.. 으으... 돌아버리겠네.." "응조? 응조? 음..." 태구와 기탁이 다시 남학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오는데 갑자기 남학생들 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1등이 들어온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교문을 통해 가쁜 숨을 내쉬며 골인점으로 뛰어오는 여학생은 놀랍게도 소 리었다. 소리는 끝까지 이를 악물고 땀을 뻘뻘 흘리며 골인점을 향해 뛰어 갔다. 마지막 20미터를 소리는 가까스로 뛸 수가 있었다. 1등으로 골인을 한 소리는 도착하자 마자 바닥에 쓰러지듯 앉았다. 다른 남학생들은 놀란 눈으로 소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기탁은 생 각보다 소리가 너무 잘뛰어 아주 놀란 표정이었다. 기탁은 소리가 1등을 하 는 모습을 보며 또 작년 마라톤 대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번에 18등이었 지만 이번엔 1등이다.. '여어~ 네가 여자 1위니? 대단한 인연인데 차라도 한잔..' 소리와 인연을 운운하려면 1등을 해야 하는 것이다. 기탁은 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상품으로 주는 메달을 쌓아 놓은 천막에서 두 학생이 우승 메달을 들어 보며 얘기하고 있었다. "이게 우승 메달이야." "너무 했다.." 우승메달은 아주 초라하게 도금이 되어있는 것이었다. 차라리 국민학교 3 년 개근상 메달이 더 좋을 정도였다. 메달의 디자인 자체도 아주 촌스러웠 다. "1회때 부터 똑같대." "금을 쬐끔 섞으면 어디가 덧나나. 으휴.. 이것도 메달이냐 정말.. 창피해 서 1등했다는 얘기도 못하겠다." "하지만 우리는 상관없잖아. 키득~" 메달을 보고 투덜대며 천막을 빠져 나오는 학생을 보고 응조는 천막안으로 들어가 메달을 하나 집어 보았다. 응조는 고개를 숙인채 메달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육상부 대표가 메달한번 못따서야 말이 아니지." 기탁이 멀찍이서 응조 주장을 바라 보고 있는데 강우가 다가와 기탁에게 말했다. "그럼 제작년에도 못땄단 말야? 희민이도, 구정이도 없는데?" "뛰었으면 땄겠지.. 그때 설사를 심하게 해서 출발 직전에 포기 했었대." "뭐? 그렇담 원인은 찹쌀떡이군.." "뭐라고?" "우연치곤 이상하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메달이라도 체면이 걸린 문제라 따고 싶을게다." "체면.. 그 뿐일까?" "뭐?" 기탁은 응조 주장을 바라보며 응조 주장이 이상하리 만큼 메달에 집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지 체면이 걸린 문제만은 아닐텐데.... "남자 집합!!" 체육 선생님의 목소리가 운동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 * * * * 한통 고등학교 제 24회 교내 마라톤 대회.. 여자는 4킬로미터 남자는 10 킬로미터를 뛰는 경기였다. 기탁은 출발대 앞에 서서 소매를 걷어 부치며 생각했다. '아.. 난 죽었다..' 기탁은 소매를 걷어 부치고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여학생들 쪽을 보았 다. 기탁은 곧 미소를 지으며 기탁을 보고있는 소리를 발견했다. '야아.. 네가 여자부 1위니? 굉장한 인연인데.. 차라도 한잔.. 으.. 바보.. 넌.. 너무 잘 뛰었어!' 기탁은 한숨을 폭~ 내 쉬었다. "준비............ 탕~~~~~~~~~~~~" 체육 선생님의 총소리에 남학생들이 우르르 출발선을 지나 달려나가기 시 작했다. 기탁도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학교를 나와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응조 주장이 뒤에서 뛰어나가 기탁을 지나갔다. 주장은 급 히 팔을 휘두르며 뛰다가 팔꿈치로 기탁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다. 주장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앞으로 뛰어 가기만 했다. 기탁은 코를 어루만지며 인 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저 자식이..!" "야야.. 대충 봐줘라.." 뒤에서 독대 선배가 뛰어와 기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보잘 것 없는 경기지만 응조한테는 일생 일대의 대승부니까." 기탁은 의외로 심각하게 들리는 응조의 사연에 솔깃하여 고개를 돌려 독 대를 보았다. "제 1회 우승자도 황응조라던데요?" "그건 쟤네 아빠야.." "아.. 어쩐지.. 동명이인이었구나.. 아버지와 아들이 이름이 같네.. 음.. 그래서 그렇게 필사적이구나.." "거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어. 어렸을때 아빠가 딴 메달을 가지고 놀다가 강에 빠뜨렸대.. 그게 그 애 아빠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대. 그래서 마라톤 을 시작했어." 독대는 가까스로 기탁을 따라가며 얘기했다. "강에 빠뜨린 아빠의 메달을 되찾기 위해.. 즉, 이 대회만을 위해서 시작한 거래." "자세히도 아네요." "녀석과는 어릴때부터 아는 사이니까.." 기탁은 독대의 얘기를 들으며 한참을 뛰다가 갑자기 독대의 말이 들리질 않아 뒤를 돌아 보았다. 독대는 한 오십미터쯤 뒤에서 헥헥거리며 뛰어 오 고 있었다. 한참을 뛰어 기탁은 학교 앞의 조그만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게 되 었다. 기탁은 앞에 뛰어가는 강우를 보고 마구 뛰어가 강우를 잡고 말을 했 다. 강우는 브이자를 그리며 기탁에게 신호를 했다. "여어~~" "우리 몇등 정도냐?" "앞에 20명은 더 있어.." "휴우.. 그럼 먼저 간다." "야아.. 좀 천천히 가자.." "하는데 까진 해봐야지..." 기탁은 이를 꽉 물고 강우를 제치고 앞으로 열심히 뛰어갔다. * * * * * "우와~ 여어~ 강소리~" 박경석 코치가 현관 앞에 붙여놓은 마라톤 코스 지도를 보고 있는 소리를 불렀다. 소리는 경석 코치의 말을 듣고 뒤를 돌아 보았다. "너 잘하더라.. 소리야." "놀라셨죠? 그래도 저만은 못하실걸요." "놀랬어.. 다시 봤다니까." "이게 남자 코스에요?" 소리가 코스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의 말 에 대답했다. "그래. 아마 남자는 응조가 우승할거야. 분명해." "그럼 저랑 라면내기 하실래요?" "뭐? 너는 누구한테 거는데." "장기탁.." 소리는 고개를 돌려 현관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코치는 소리의 굳은 표정에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겠지이~ 핫핫~ 그럼 진짜 내기할랴?" "좋아요." 소리는 당연한듯이 코치의 물음에 대답했다. 코치는 말없이 담배를 뻑뻑 피우며 소리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았다. 소리는 역시 장난이 아닌 진지한 표정이었다. 자신감이 있는 듯한.. "안할래.. 널 보니까 자신감이 없어졌다. 라면값이 아깝걸랑. 헐헐헐~~" 코치는 너털 웃음을 웃으며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 * * * * 땀을 삘삘 흘리며 뛰어가던 태구는 이윽고 5km 중간지점에 도착했다. 태 구는 중간 지점앞에 앉아 있던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았다. "저 지금 몇번째에요?" 선생님은 태구를 힐끔 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91번째." "히야~ 1등은 역시....." "황응조야." "히이익." 태구는 또다시 사색이 되어 헐레벌떡 뛰어갔다. * * * * * 기탁은 있는 힘을 다해 끝까지 뛰었다. 이제는 기탁의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기탁은 정말로 자신의 한계점까지 다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내딪는 발 조차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어떠냐.. 헉헉.. 10명.. 헉헉.. 넘게.. 제꼈다. 헉.. 끝까지 할수 있 어.. 헉헉.." 기탁은 중얼 중얼 거리며 있는 힘을 다해 발을 뻗었다. 이제는 기탁은 이 미 뛰고 있는게 아니었다. 거의 기다시피 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으아.. 죽갔다.. 바보, 그렇게 잘할 건 또 뭐야! 그냥 헥헥~ 으휴.. 바 보같은 녀석.. 그냥 10등 정도만 했으면.... 에에잇! 모르겠다! 쉬자!" 기탁은 결국 포기하고 길가의 벤치에 걸터 앉았다. 기탁은 가만히 앉아서 심호흡을 했다. 마침 한 선수가 기탁의 앞을 지나갔다. 기탁은 그 선수에 게 말을 걸었다. "어이.. 잠깐만" "말시키지마.." "여자도 여기를 지났대냐?" "지났어.." 기탁은 선수의 말을 듣고 주위를 휙 둘러보았다. 기탁이 앉아 있는 곳은 종합병원을 감싸고 도는 길이었다. 기탁은 병원 울타리에 붙어 있는 표지판 을 보고 이 곳이 준영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임을 알게 되었다. 자리에 일 어서서 병원을 바라보던 기탁은 이를 악물더니 다시 뛰기 시작했다. '너무 심하게 잘 뛰었어.. 그 바보가.. 바보가..' 기탁이 뛰어 갈때까지 멀리 병원 창문 중 하나에서 목발을 집고 기탁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준영이었다. 준영은 소리가 지나갈 때 부터 지금까지 줄 곧 그 곳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개의 메달 -------------------------------------- '10킬로미터.. 진짜 마라톤 코스의 1/4이다. 고작해야 1/4....' 기탁은 자꾸만 자기 암시를 걸며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조그만 공원을 지나가던 기탁은 앞에 달려가는 학생을 따라가며 물었다. "미안한데요.. 지금 몇위세요?" "켁..켁..켁.. 헥.. 헥.. 헥.. 헥.." 학생은 기탁을 돌아보고 숨을 가쁘게 몇번 몰아쉬다가 바닥에 그대로 쓰 러지고 말았다. "젠장! 응조는 어디 있는 거지.." 기탁은 쓰러진 학생을 뒤로 하고 또 앞을 향해 뛰었다. 선수들 사이의 간 격이 벌어져서인지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던 기탁은 어떤 건물 울타리에 부착된 표지판을 보았다. 그 표지판에는 '골인까지는 앞으로 2킬로미터! 힘내세요!'라고 씌여져 있었다. "이를 악문다!!" 기탁은 이를 꽉 깨물며 다시 앞을 향해 뛰었다. 변두리 지역을 벗어나 이 제 약간 번화한 주택가를 통과하게 되었다. "아~ 헥헥~ 얼마나 고독한 경기인가.. 헥헥~" 중얼거리며 앞으로 앞으로 뛰어가던 기탁은 멀리 앞에서 뛰어가는 응조를 발견했다. 응조도 기탁을 발견하고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선배님.. 만나고 싶었습니다.. 흐하하하!' 기탁은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응조를 향해 마구 뛰어갔다. 응조도 기 탁을 발견하고는 급한 마음이 들었는지 전보다 훨씬 빠르게 뛰어 가기 시 작했다. 기탁을 떼어 놓기 위해 뛰어 가던 응조는 교차로에서 짐을 가득 싣고 반대쪽에서 오던 자전거와 부딪치고 말았다. 자전거에 타고 있던 아줌마는 바닥에 나둥그러졌고 자전거 앞에 담아 두 었던 짐들이 온통 바닥으로 굴렀다. 응조는 몇발짝 앞으로 뛰어 가서는 뒤를 돌아보며 멈칫 하고 서 있었다. 그때, 응조의 뒤를 쫓아 뛰어오던 기 탁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자전 거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으세요 아주머니?" "아.. 고마워요." 기탁이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며 아주머니에게 말하자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기탁은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다가 어정쩡하게 뒤를 돌아보며 서 있는 응조를 보았다. 응조는 기탁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휙 돌리 고 앞으로 뛰어가 버렸다. "저게!" 기탁은 응조의 비겁한 행동에 화가 났는지 투덜거렸다. 자전거 핸들을 잡 고 자전거를 아주머니 옆에 세우던 기탁은 손에 감촉이 이상한 것을 느끼 고 손을 펴 보았다. 기탁의 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기탁은 황급히 아주머니에 물어보았다. "아주머니! 어디 다친데 있으세요?" "에? 허리를 약간 삐었을 뿐이고, 다른덴 괜찮아요." "....." 기탁은 아주머니의 대답을 들으며 자기 손에 묻은 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 다. 기탁은 자전거를 아주머니에게 넘겨주고 짐들을 꾸려 짐칸에 담았다. "저.. 이거요." "아이구, 고마우셔라. 친절하기도 하시지.." "저.. 그럼." 기탁은 아주머니에게 짐을 전해준 후 다시 학교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런데 갑자기 아주머니의 비명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앗!! 위.. 위험해! 저.. 저기.." "에..엥?" 기탁은 뛰는 걸 멈추고 뒤로 돌아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우리 그이한테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럼, 그럼, 호호호~" 한 아주머니가 과자를 먹으며 전화기에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갑 자기 급하게 초인종이 마구 울렸다. "아, 누가 왔나봐. 잠깐만.." 아주머니는 과자를 입에 물고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며 기탁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기탁은 신발을 신은 채로 베란다로 뛰어갔다. 베란다에는 서너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아이 가 쌓아놓은 박스를 밟고 올라가 베란다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갑자기 꼬마가 밟고 있던 박스가 균형을 잃으며 아기가 베란다 밖으로 떨 어졌다.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달려온 기탁 덕분에 아스팔트 바닥위로 떨 어지는 일을 면할 수 있었다. 기탁은 겨우겨우 아기를 구해 들어서 아기 어머니에게 안겨 주었다. "여기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까르르 웃고 있었다. 전화로 수 다를 떨고 있던 아주머니는 기탁이 밖으로 나갈때까지 아무말도 못한채 멍 하니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기탁은 그 집 밖으로 뛰어나와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에잇.. 빌어먹을.. 이건 내가 할 몫이 아닌데.' 기탁은 투덜 투덜 대며 빌라 밖으로 나와 학교 쪽으로 뛰었다. 그런데, 그 빌라 바깥에 서 있던 아주머니가 기탁을 불렀다. "저! 학생! 학생! 잠깐만, 이름이 뭐죠?" "황응조!" 기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가며 소리쳤다. "이상한 이름이네..." 아주머니는 자전거 핸들을 잡고 기탁을 보며 중얼거렸다. * * * * * '난 운이 없는 팔자로 태어 났나 봐. 에잇!' 기탁은 아직도 투덜투덜대며 2위라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다. 기 탁이 교문 안으로 들어가자 친구들의 환호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2위가 온다!" 기탁은 자기가 2위라는 얘기를 듣고는 힘이 쫙 빠지는 걸 느꼈다. '열심히 뛰었는데 2등이라니.. 으으..' 학교 운동장 구석의 건물에 소리와 같이 기대서 있던 경석 코치는 황응조 가 1위로 골인점을 향해 달려 오는 걸 보고 말했다. "라면 걸걸 잘못했다.." "휴우~ 큰일날 뻔 했다." 소리는 한숨을 폭 내쉬며 코치의 말에 답을 하다가 교문안으로 들어오는 기탁을 보았다. "어라?" 기탁은 교문안으로 뛰어 들어오다가 아직 골인점에 도착하지 못한 응조 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왜 그러지? 들어와도 벌써 들어왔어야 하는데..?' 비틀비틀 뛰어가는 응조를 계속 바라보며 기탁은 골인점을 향해 뛰었다. 응조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탁은 응조의 표정을 바 라보다가 문득 응조의 무릎의 옷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 기탁은 그㎖서야 왜 아까 자기손에 피가 묻어 있었는 지 알게되었다. 기탁 은 잠깐만에 비틀거리며 뛰어가는 응조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전국대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게 아니야. 이 대회만을 위해서 마라톤을 시작한 거라구. 강에 빠뜨린 아빠의 메달을 되찾기 위해서..' 기탁은 응조의 뒤를 바짝 쫓아가며 독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기탁은 잠 시 멈칫했지만 다시 뭔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지고 뛰어 응조를 제치고 골 인점으로 들어갔다. 기탁은 바닥에 쓰러지듯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응조도 기탁의 옆에 서서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역시 라면을 걸걸 그랬죠?" "휴우~ 큰일 날뻔 했다." 소리가 웃으며 말하자 코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 * * * * 한참이 지나 선수들이 하나씩 하나씩 들어왔다. 태구도 92등으로 골인을 하고 기탁에게 뛰어와 말했다. "고맙다. 기탁아, 너 때문에 발가벗고 뛰는 신세 면하게 됐어. 식은 땀이 났었다야." "바부.. 넌 뚱뚱해서 땀이 더 나는거야." * * * * * "에.. 그럼.. 지금부터 시상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선생님 한분이 조회대에 올라가 마이크에 대고 말을 했다. 기탁과 소리는 나란히 상장을 들고, 메달을 메고 시상대위에 섰다. 소리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기탁에게 살짝 말했다. "잘뛰었어.." "너무 잘 뛰어서 탈이었지.." 기탁은 앞을 보며 소리에게 말했다. "에.. 이번에는 특별 표창이 있습니다. 조금전 학교로 연락이 왔는데 우 리 학교 학생이 경기중 부딪친 여자분을 도와주고 게다가 베란다에서 떨어 질 뻔한 아기를 구해줬다고 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조회대로 올라가 말했다. 운동장에 모여있던 학생들 은 그게 누군가 하고 서로 주위를 둘러보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뛰어 2등을 했습니다. 황응조 학생 앞으로 나 와 주세요. 우승 못지않은 명예이므로 이 메달을 수여합니다!" 기탁은 자기가 무심코 말했던 이름으로 인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줄은 예상 못했었는지 아주놀란 눈치였다. 응조는 자기의 이름이 지명이 되자 당황해 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아.. 아니.. 난.. 난.." "자, 어서 나가." 기탁은 머뭇거리고 있는 응조를 밀어내며 말했다. 응조는 놀란 눈으로 기 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난 이런 메달 두개 필요 없어." "......."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고 응조는 기탁에게 떠밀려 시상대 위로 올라갔다. 응조는 눈물을 글썽이며 시상대에 올라 기탁을 바라보았다. "음음.. 음... 메달을 딸 경우 50등안에 들지 못한 육상부원은.. 어떻 게.. 엄마야.. 흑흑.." 태구는 힘이 빠지는 지 바닥에 털썩 걸터 앉으며 말했다. 소리의 기대 -------------------------------------- "오빠.. 들어가도 되지?" 준영이 입원하고 있는 병원의 문 바깥쪽에서 소리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준영은 소리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궁금해진 소리는 그냥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을 열고 입원실 안으로 들어온 소리는 준영를 보고 깜짝 놀라 고 말았다. 준영은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바닥에서 물구나무를 하고 있 었다. 소리는 준영에게 달려가 황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리하지 말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잖아!" "다리에는 부담을 주지않아." 준영이 물구나무 선 채로 덤덤하게 대답하자 소리는 목소리를 더 높여 말 했다. "안되면 안되는 거야!" "난.. 곧 풀로 돌아갈거야. 그러니까 움직여 두지 않으면 근육이 굳어져서 운동을 못해!" "운동을 못하다니?" "내년 한국 선수권 대회.." 준영은 발을 내리고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의사 선생님께서 전에.." "아무 소리마!!! 의사는 상관없어 너만 아무 소리 안하면 돼.. 너만.. 사 고는 네 책임이 아니야, 널 원망하진 않아. 하지만 의사랑 같이 나를 끌 어내리려 한다면.. 평생을 두고 원망할거다." 소리는 멍하니 벽에 기대 서서 준영의 말을 듣고 있었다. "걱정말고 나를 믿어. 소리아. 내가 지금까지 너의 기대를 져 버린적이 있니? 네가 기대하면 난 그것에 응답할 수 있어. 옛날부터 늘...." "휴우.... 그렇게 말하니까 아무말도 못하겠네.." 소리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준영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잘 알아.." "좋아. 그런 의미에서 물 한잔 부탁해~" * * * * * 기탁은 자기에게 있어서는 가장 컸던 대회를 마치고도 전보다 훨씬 더 많 은 양의 연습을 했다. 기탁은 수영부원 후배에게 시계를 맡겨 놓고 시간을 재 달라고 부탁했다. 기탁은 백미터를 헤엄친후 물 밖으로 나와 그 후배 에게 물었다. "시간은..?" 기탁은 자기가 물어보면서 후배가 들고 있던 시계를 빼앗아 들어 시간을 보았다. 시계를 들여다본 기탁은 다시 표정없이 출발대에 올라가며 말했다. "한번만 더 부탁한다!" 기탁이 출발대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 아까부터 기탁을 지켜보고 있던 코치가 웃으며 기탁에게 말했다. "야, 그렇게 열낼 필요있냐? 한 고비 넘겼는데 이제 좀 쉬어 가면서 해.." 코치가 상냥하게 말했지만 기탁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후배에게 말했다. "다시 한번 부탁하자.. 내가 뛰어들면 눌러.." "네.." 코치는 목을 긁적긁적 거리며 멋적은 표정으로 기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 다. * * * * *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보던 태구가 갑자기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태구 는 뒤로 돌아서서 침대에 누워있는 기탁을 보며 말했다. "히~~~~~ 나의 그대가 오셨다~" 태구는 웃으며 밖으로 뛰어 나갔다. 기탁은 관심이 없는 듯 누워있다가 태 구가 밖으로 나가자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바라보았다. 태구는 기숙사 마당 에 다소곳이 서서 기다리고 있는 희연에게 손을 흔들며 걸어가고 있었다. 기탁은 둘이 사라질때까지 밖을 바라보다가 기지개를 켜고는 밖으로 나갔 다. "아아. 빨래나.. 할까.." * * * * * 기탁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세탁기 앞에 앉아 잡지를 들춰 보 고 있었다. 낮시간을 빨래나 하며 보내는 게 짜증이 나는지 기탁은 따분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연신 하품을 해 댔다. 그런데 갑자기 세탁실 문이 열 리며 독대가 기탁을 불렀다. "기탁아.. 전화다." 기탁은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며 자리에서 일어섰 다. * * * * * "어서오세요!" 종업원의 친절한 인사를 받으며 기탁은 전에 소리와 일일데이트때 갔던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기탁은 전에 앉았었던 그 자리에 소리가 앉아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기탁은 낮은 목소리로 소리에게 물어보며 그 쪽으로 걸어갔다. "웬일이냐.." "그냥.. 병원 면회 시간까지 시간 때우려고.." "뭐야?" 기탁은 소리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소리는 웃으며 기 탁에게 말했다. "너 어차피 오늘 할일도 없잖아." "빨래외엔.." "자, 시켜 내가 줄께." 소리는 메뉴판을 기탁에게 건네주었다. 기탁은 짜증을 내며 소리에게 소리 쳤다. "당연하지! 그럼 얻어먹을 생각했냐?!" * * * * * "얘, 이 가게 기억나니?" "기숙사 전통행사인 1일 데이트." "그래.." "그 악몽의 날을 잊을리가 있냐." 기탁은 열심히 면발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1일 데이트 커플은 나중에 깨어지는 징크스가 있다고 했지?" 소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기탁에게 말했다. 기탁은 열심히 면발을 쪽쪽 빨 아 입에 넣다가 소리의 말을 듣고 갑자기 입을 딱 멈추며 고개를 들어 소리 를 바라 보았다. "흥.. 별걸 다 기억하는군...." 기탁에게 얘기를 하며 바깥을 보던 소리는 마침 건너편을 지나가는 강우를 우연히 봤다. 강우는 전에 기탁과 함께 미팅을 했던 희연과 함께 즐거운 듯이 웃으며 걷고 있었다. "어머.. 강우다." 소리가 말하자 기탁은 면발을 입에 그대로 매달은 채 고개를 돌려 강우 를 보았다. "늘 있는 일인데 뭐.." 기탁은 열심히 먹어 스파게티를 다 해치웠다. 소리는 기탁이 스파게티를 모두 해치우는 걸 보고 있다가 기탁에게 물었다. "코코아 더 안마실래?" "아니.. 됐어.." "염려말고 마셔." "슬슬.. 면회 시간이 되어 갈텐데.." "어머. 그렇구나." 기탁은 소리에게 얘기를 하며 유리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소리는 계산서 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 이제 수영시즌이 아니라 여자친구를 만들지 않으면 지루할 거야.. 간다.." "응.." 기탁은 여전히 컵에 입을 댄채 대답했다. * * * * * 소리가 밖으로 나가 병원쪽으로 가서 안보이게 될때까지 기탁은 팔짱을 끼고 창밖으로 소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 --------------------------------------------- 언제나 가던 학교 앞의 철판 구이집에 모여 강우, 태구, 기탁, 주현은 저 녁을 먹고 있었다. 철판에는 파전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고 있었다. 강우는 주현과 기탁을 보며 말했다. "내말 알았지? 여기서 결정하는 거다." 주현은 강우의 말을 들은체 만체하고 기탁을 보며 말했다. "기탁아, 간장 좀 줘." "그으래.." 기탁은 간장통을 집어서 주현에게 건네 주었다. 강우는 주현과 기탁이 딴 짓을 하는 걸 보다가 소리를 빽 질렀다. "얌마! 내말 듣는 거야?" "엥?" "우리도 거기에 낀단 말야?" 주현과 기탁이 놀라며 동시에 물었다. 강우는 젖가락으로 파전을 찢어 들 며 말했다. "짝만 있으면 스키도 스케이트도 다 된다고." "꿩먹고 알먹고!" "남녀 4대4 숫자만 맞추면.." 강우의 말에 태구가 맞장구를 쳤다. 기탁은 젖가락을 물고 뾰로통한 목소 리로 강우에게 물었다. "4대 4?" "내 그녀하고.. 태구의 그녀.. 그리고 각각의 여자 친구." "네 그녀의 여자 친구라고?" 기탁은 강우의 제안을 들으며 전에 연수와 함꼐 미팅에 나왔던 미희의 대 책없는 얼굴을 머리속에 떠올려 보았다. 이번엔 강우가 기탁의 물음을 들 은체 만체하고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태구야.. 간장좀 주라." "야. 네 그녀의 여자 친구라고?" 기탁은 젓가락을 물고 다시 강우에게 물었다. "시끄러.. 마음에 안들면 현지 조달해." "흥, 하얗게 눈덮인 산에 할일 없이 혼자서 올 여자가 있겠냐?" "맞아.." 주현이 기탁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 그런데, 소리는?" "강준영이 버티고 있는데 소리가 가겠냐?" "물어보기도 전에는 모르는 일이잖아. 한번 물어보기라도 해." "좋아 한번 물어 보지. 어쨌든 이번엔 꼭 가는 거다. 경치좋고 시설좋고.. 주인이 우리 아빠 아는 사람이니까 가격도 싸." * * * * * 저녁을 먹고 나서 넷은 추위에 오돌오돌 떨며 밖으로 나왔다. 기탁은 어 깨를 바싹 움츠리고 덜덜 떨었다. "으으.. 추워.." "하하~ 좋았어! 이정도 추위라면 눈 걱정은 없겠는데." "히히~ 신난다." 희연, 연수와 함께 스키장에 놀러 가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태구와 강우는 추운 줄도 모르고 좋아하기만 했다. 아까부터 가만히 있던 주현이 갑자기 목소리를 쫙 깔고 말했다. "고등학교 생활도 얼마 안 남았구나.." "응.. 그래. 내년 이맘때 쯤이면 놀러다닐 팔자가 못돼." "세월빠르다.." 기탁은 제일 뒤에 걸어가며 주현의 세월 한탄하는 소리를 들었다. 기탁은 지나왔던 고등학교 1,2학년의 시간들을 생각해 보았다. 1학년 초의 소리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매서운 눈초리로 '살인자'라고 말하던 모습이.. 기 탁은 자신의 기억들은 거의 모두 소리에 관한 일들로 가득차 있다는 걸 새 삼 깨달았다. 일일 데이트에서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던 일, 자전거 뒤에 태우고 공원을 가로질러 가던 모습, 사뿐히 다이빙대에 뛰어 내리던 아름다운 모 습, 상처에 밴드를 붙이고 기탁을 찾아왔던 소리의 모습, '내탓이야..'라 고 울먹이며 말하던 모습......... 이런 기억들로 기탁의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은 가득차 있었다. * * * * * 강우는 대화실에 기탁, 주현, 태구를 앉혀놓고 앞에 서서 말했다. "그럼, 29일 아침 8시까지 지하철 역 앞에 집합이고 반드시 시간을 엄수할 것." "옛썰~" "좋았어. 다 알아 들은 걸로 하고, 집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할것!" 강우는 얘기를 마치고 친구들과 대화실 밖으로 나왔다. 주현과 태구가 먼 저 앞으로 걸어갔고 그 뒤를 강우가 기지개를 켜며 따라갔다. 기탁은 강우 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걷다가 강우에서 넌지시 물었다. "역시 안간대니?" 강우는 걸음을 멈추고 서서 기탁을 돌아보았다. "소리가 말야.." "아... 음.. 가능한 갔으면 좋겠지? 환자 간호만 해서 그런지 기운이 없 어 보이드라. 때로는 바람도 쐬는게 좋을 텐데." "안간대?" "아, 아니 내일중에 연락하면 한 사람정도는 늘어도 상관없어." "너, 안물어 봤구나?!" 강우는 기탁의 물음에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뒤로 돌아서 계단으로 먼저 올라갔다. "한심한 녀석!" "채여서 그런지.. 물어보기가 겁나. 또 미안해라고 거절당하면 그땐 마음이 약해져서.. 소리의 미안하다는 말에는 꼼작못하겠거든. 내일 해도 괜찮으 니 네가 한번 해봐." "소리는 벌써 집에 가버렸어." "그래도 해봐.." * * * * * 소리 아버지는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소리 어머니가 거실로 들어오자 소리 아버지가 얘기를 했다. "여보.. 소리는?" "방에서 책 읽어요." "그래.." 소리 아버지는 말없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커피잔을 바라보다가 또 말을 꺼냈다. "조금 야윈것 같지 않아?" "어머~ 좋아라!" 소리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갑자기 화장대로 뛰어가 거울을 꺼내들고 얼굴을 살펴보았다. 소리 아버지는 황당한 표정으로 소리 어머니를 보다 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한심해......." "네?" 소리 아버지는 소리 어머니의 반문을 무시하고 그냥 거실 밖으로 나갔다. * * * * * "준영이는 연말은 집에서 보낸대니?" "내일 퇴원한다고 하니 그러겠죠." "그거 참 잘됐구나.." 소리는 거실로 내려와 이책 저책을 떠들어 보며 아버지와 얘기를 했다. "그래도.. 아직은 목발을 짚어야 하고.. 그러니, 수영할 수 있을 때까지 는.. 수영이 없는 오빠의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소리 아버지는 울먹이려고 하는 소리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약......" "준영이와 의사 선생님을 믿을 수 밖에 없지. 음.. 소리야, 너 방학인데 친 구들하고 어디 놀러갔다 오지 않으련?" "너무.. 늦었어요." 소리는 아버지에게 말을 하며 고개를 돌려 전화기를 보았다. 잘 닦여진 전 화기에서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다. "그럼 우선.. 차라도 한잔 마시자꾸나." "아네요, 됐어요.." "그러지 말구! 신상품 맛 좀 한번 보도록 해라." 소리 아버지는 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그때 갑자기 전화벨이 따르르르 ~ 울렸다. 소리 어머니가 전화를 받아 보고는 소리를 불렀다. "소리야.. 전화다." 아버지가 준 신상품 과자를 한 조각 베어 물고 있던 소리는 전화를 받으러 걸어가며 물었다. "누구?" "친구.." 소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혹시..하는 생각을 하며.. "여보세요...." 전화를 받던 소리의 눈빛이 갑자기 파르르 떨렸다. 소리는 갑자기 긴장하 며 주위를 한번 둘러 보고는 어색한 말투로 얘기를 했다. "에..아..응.. 저.. 잠깐만.." 소리는 고개를 돌리며 차를 마시고 있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29일에 1박으로 친구들이 스키장 간데는데.." "그러냐? 그럼 다녀와라.." 소리 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소리에게 말했다. 소리도 기쁜 얼굴로 씨익 웃어 보이며 다시 전화를 받았다. "괜찮다셔.... 응.. 그럼.." 예민한 아이 -------------------------------------- 용평 스키장 구석의 한적한 곳에 있는 콘도에서 기탁은 창문가에 서서 몸 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으으으.. 추워.." "우리가 지금 해수욕 온줄아냐? 계절이 겨울인데 추운건 당연하지.." 강우가 피식피식 웃으며 기탁에게 말했다. 강우는 기탁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가 우연히 어떤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 포스터에는 여름의 무슨 행사 에 대한 광고가 쓰여있었고 날짜가 6월 14일로 되어있었다. 강우는 그 포 스터를 확 잡아 뜯어 손을 구깃구깃 뭉치며 연수를 불렀다. "먹을래?" 입에 커다란 다이제스티브 비스켓을 물은채로 미희가 기탁에게 과자를 집 어 주었다. 기탁은 과자를 멀뚱멀뚱 바라보며 집어 들었다. "고마워.. 아.. 그런데 이름이 뭐라고 그랬더라?" "어머 잊고 있었니? 오미희야. 미희.." 기탁의 물음에 미희는 괜히 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기탁은 과자를 입에 집어 넣고 살짝 베어 물었다. 기탁이 미희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콘도 문 이 열리고 소리가 장갑을 툭툭 털며 들어왔다. 소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 다. "미안해.. 늦었지? 장갑을 찾을 수가 없어서.." 기탁은 소리를 본체만체 하고 다시 미희에게 물었다. "오씨라구? 어디 오씨인데??" * * * * * "다들 모였으니 출발하자!" 강우의 즐거운 목소리와 함꼐 다들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다들 스키복 차림으로 리프트를 타려고 서있는 사람들 뒤에 섰다. 주현과 초희의 뒤에 서있던 소리는 기탁이 뒤에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기탁아.. 리프트 타지 않을꺼야?" "쩝..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 물건이다." "어머? 그럼 처음이야?" "응.. 국민학교 3학년 이후로는 처음이야." "어머~ 그럼 내가 가르쳐 줄께." 소리는 미소를 지으며 살금살금 걸어 기탁에게로 갔다. 소리가 기탁과 마 주 보고 서서 한참 스키 강좌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위쪽에서 미희가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와 그들 앞에 섰다. 미희는 아까와 같은 웃음을 웃으 며 소리에게 말했다. "그럼~ 나도 가르쳐주라.." * * * * * 기탁은 한참을 배웠지만 스키 만큼은 수영같이 잘 돼질 않았다. 살살 내 려가던 기탁은 안정이 된다 싶다가 또 갑자기 다리가 붕뜨며 뒤로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기탁은 자꾸만 넘어지기만 하니까 화가 났는지 뾰로통한 얼굴로 눈속에 파뭍혀 누워 버렸다. 소리는 부드럽게 스키를 타고 내려와 기탁 앞에 섰다. "넘어지는 건 많이 늘었네?" "너 속으론 고소해 하고 있지?!" 기탁은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소리는 말없이 기탁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탁은 소리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내밀었다. 떨리 는 기탁의 손을 소리가 잡으려는 순간 바로 위쪽에서 스스스스~ 하는 소 리가 들려왔다. 기탁과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돌리자 마자 미 희가 달려들어 기탁과 소리를 덮치고 말았다. 덕분에 기탁은 소리의 손을 잡지 못하고 중심을 잃어 다시 뒤로 넘어지고 미희는 기탁의 위로 그대로 엎드려 버렸다. 미희는 몸을 다시 일으키고 씨익 웃으며 소리에게 물었다. "내폼 어땟니? 헤헤~" "음.. 좋아.. 조금만 더 무릎을 부드럽게 사용하면 될거야." "이렇게?" "좀더.." 소리는 미희의 옆으로가 차근차근히 미희의 폼을 교정해 주었다. 한참 소 리의 얘기를 듣던 미희는 뒤쪽에 꿔다논 보리자루같이 서있는 기탁을 돌아 보곤 말했다. "기탁아.. 너도 잘 들어둬.." * * * * * 기탁은 스키장 제일 아래쪽에 서서 부드럽게 턴을 하며 내려오는 소리를 부러운 듯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는 기탁에게 다가와 기탁의 바로 앞에 섰다. "알았어?" "너 스키 잘 탄다.." "응, 오빠한테 배웠거든.. 지금 내가 한대로 다시 해봐." "휴우.. 말대로되면 벌써 배웠게?" 기탁은 소리의 말대로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가보았다. "에그.. 그게 아니구.." 소리는 기탁의 옆으로 다가와 기탁의 허리를 앞으로 굽혀주며 교정을 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 또 미희가 멀찍이서 소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야~~~ 나좀 봐주라아아아~~~" 소리는 고개를 휙 돌려 미희를 바라보았다. * * * * * 다시 미희가 없는 틈을 타 기탁은 소리에게 말했다. "너희 아빠 웬일 이시냐? 너를 보내 주시고." "너도 있는 건 모르셔." "너희 엄마한테 이름을 밝혔는데도?" "엄마는 내편이야.." 기탁은 소리의 말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리가 다른 곳을 보고 있 었기 때문에 기탁은 마음대로 표정을 지을수가 있었다. 소리가 고개를 돌 려 기탁을 보자 기탁은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소리를 보았다. "그래도...." "으아아~ 기탁아 나 좀 잡아줘!" 쿵~ 하는 소리와 함꼐 미희의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탁은 미희가 넘어져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또야? 하는 듯한 얼굴로 미희를 보았다. 미희도 그제서야 뭔가가 이상한걸 느꼈는지 소리와 기탁에게 천천 히 걸어와 물었다. "호..혹시.. 내가 방해되는 건 아니겠지?" "뭐?" 소리가 되물었다가 기탁을 휙 돌아보곤 다시 말했다. "어머.. 그렇지 않아.. 그렇지? 기탁아?" "으..으응.." 기탁은 황당한 표정으로 떠듬떠듬 대답했다. 소리의 말에 미희는 모든 의 심을 털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헤~ 그렇구나.. 미안해. 이게 내 나쁜 버릇이야. 겉보기처럼 나는 너무 예민해. 남들이 그러더라! 애고~ 신경을 썼더니 배고프네.. 우리 밥먹으 러 가자. 어서 와~!" 미희는 싱글벙글 웃으며 아래쪽으로 걸어갔다. 기탁과 소리는 같이 서서 미희를 멍하니 쳐다 보고 있었다. * * * * * 기탁과 소리, 미희는 스키장 주변의 조그만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디 져트로 커피를 마셨다. 미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배를 통통 두 드리며 웃었다. "으아~~ 잘먹었다. 이제 살것 같아! 아, 미안, 나 화장실좀 갔다 올께.." 기탁과 소리는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화장실쪽으로 사라지는 미희를 멀뚱멀 뚱 쳐다 보았다. 소리가 미희의 그런 모습을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 렸다. "건강해서 좋구나...." "잘 먹고, 잘 떠들고, 저리니 우리 나라 사람 수명이 늘지." "으라│~~~ 기분이 참 좋다..." 소리는 기지개를 힘껏 켜고 나서 창밖을 보며 말㎎다. "정말 오길 잘했어.." "모두 네 걱정 한것 아니? 기운이 없어보인다고." "그렇게 보엿구나.. 역시.." "너무 무리했어.... ㎖로는 바람 쐬어도 괘찮잖아. 오늘처럼 말야." "고마워.." "고마울 것 없어. 강우가 한말이니까." 소리는 기탁을 바라 보았다가 바로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그..그래.. 음.. 강우 여자친구 참 귀엽더라.." "분에 넘치지 뭐.." 기탁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를 살짝 마시며 말했다. * * * * * 한참이 지나도 미희가 자리로 돌아오지 않자 기탁이 시계를 보더니 말했 다. "꽤 오래 화장실에 있구만.." "어머.. 정말." "잠깐 보고 올께." 기탁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나가는 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그 런데 그 문 바로 옆에 미희가 서 있었다. 기탁이 깜짝 놀라 미희를 보자 미희도 같이 놀랐다. 미희는 대충 얼버무리며 문을 열고 소리가 앉아 있는 자리로 갔다. "아~ 미안미안 화장실에 사람이 붐비는 것 있지.." 기탁은 싱글벙글 웃으며 소리의 앞으로 가서 앉는 미희를 보며 갑자기 미 안한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예민하다고 그래..' 하던 미희의 말을 생각하며 기탁과 소리를 위해 밖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미희의 행동에 기탁은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고백 -------------------------------------------- 식당에서 나와 소리와 기탁, 미희는 다시 스키장으로 갔다. 소리가 미희와 기탁 앞에 서서 말했다. "자, 그럼 좀더 연습해 볼까?" "아..아냐.. 이번엔 혼자서 해볼께 배우기만 하니까 그렇다야. 복습도 할겸 우리 둘이 갔다 올께." 기탁이 기지개를 펴며 소리에게 말했다. 기탁의 말에 미희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탁이 미희에게 눈짓으로 갈꺼냐고 묻자 미희는 당황하며 허둥지 둥 대답했다. "응.. 무..물론이지. 그래. 좋아.." "그래? 그럼 난 잠시 쉬도록 하지 뭐.." 소리는 미희와 기탁을 번갈아 보곤 뒤로 돌아 벤치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기탁은 소리를 지르며 위쪽으로 미희와 함께 올라갔다. "가자! 연습을 위해!" "조오아~~~~!" 소리는 천천히 걸어가다가 멈춰 서서 윗쪽으로 올라가는 기탁과 미희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소리는 벤치에서 잠깐 쉬다가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멋진 솜씨로 활강하며 코스를 타고 내려왔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강우가 놀란 목소리로 태구에 게 말했다. "어라라?" "왜?" "분명히 지난번에는... 스키 탈줄 모른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내가 가르 쳐 준다고 그랬는데.." "하하~ 그럼 같이 가기가 싫어서 거짓말했나부다.." 강우는 무서운 눈빛으로 웃고 있는 태구를 노려보았다. 쿵~ 소리와 함꼐 미희가 또 벌러덩 넘어졌다. 기탁은 미희를 따라 내려 오다가 미희옆에 섰다. "괜찮아?" "난.. 역시 운동 신경이 둔한가봐. 넌 넘어지지 않잖아. 아무래도 안되겠 어. 나 잠시만 쉬다 올께.. 피곤해서.." "정말 피곤해?" "응.... 왜?" 미희는 숨을 헥헥 몰아쉬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멀뚱멀뚱 바라 보았 다. 기탁은 또 미희에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탁은 곧 장갑을 고쳐 끼며 미희에게 말했다. "오오케이.. 그럼 이따 보자.." * * * * * 기탁은 리프트 타는 곳으로 가 혼자 리프트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갔다. 중간 쯤을 올라가던 기탁은 멋진 솜씨로 언덕을 활강해 내려오는 소리를 발 견했다. '오빠에게 배웠어..' 라던 소리의 말을 생각하니 기탁은 갑자기 가슴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 르는 걸 느꼈다. 기탁은 주먹을 꼭 쥐고는 정상을 바라보았다. 잠깐 쉬려고 멈춰섰던 소리는 생각없이 리프트를 바라보다가 제일 높은 곳으로 가는 리프트에 타고 있는 기탁을 발견하고는 깜짝놀랐다. "어머??" 기탁은 정상에 서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천천히 앞으로 몸을 밀었다. 스 키는 언덕을 타고 내려오며 천천히 속도가 붙기 시작해 바로 기탁이 제어할 수 없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기탁은 천천히 꺽어 지는 커브를 틀다가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기탁은 힘없이 미끄러져 관목숲 쪽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기탁이 비틀비틀 거리며 관목숲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발견한 강우가 소리를 쳤다. "기탁아!" 강우의 목소리를 듣고 근처에 쌍쌍이 서있던 친구들의 시선이 관목숲 쪽 으로 집중이 되었다. 그때 소리가 갑자기 그들 사이를 지나 관목숲 쪽으로 빠른 속도로 미끄러져 갔다. "기탁아아!! 기탁아아!!" 소리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있는 힘을 다해 기탁을 불렀다. 관목숲 안으로 들어간 소리는 나무에 기대어 손을 흔들고 있는 기탁을 발견했다. "괜찮아?!" "글쎄.. 아직 모르겠어.." "도대체 어쩌자구 그런 거니?" 기탁은 소리의 말에 대꾸도 없이 몸을 일으키며 옷에 쌓인 눈을 툭툭 털 어냈다. "다친데 없어?" "으응, 괜찮아.. 유감이다. 인대라도 늘어났으면 강준영 선수를 원망했을 텐데.." "누...누굴.. 원망해..?" 기탁은 소리의 차가운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 노..농담이야.." 기탁은 자기가 너무 심한 말을 했다는 걸 소리의 눈물이 글썽글썽 거리는 눈을 보고서야 알았다. 사과하려 했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소리는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기탁의 뺨을 때렸다. 소리는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며 기탁을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밑으로 내려갔다. 기탁은 뺨이 약간 아려오는 것도 모른채 소리의 눈물에 놀라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 다. "야! 괜찮니?!" 주현과 강우, 태구가 그때서야 뛰어와 기탁에게 물었다. 기탁은 멍한 눈 으로 조그맣게 보이는 소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중상이야.." * * * * * 기탁은 얼음이 하얗게 끼어 있는 콘도의 창문앞에 서서 창밖을 보고 있었 다. 기탁의 시선을 콘도에서 얼마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 숲에서 한 나무에 기대고 서 있는 소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소리는 꼼짝도 하지않고 나무에 기대어 서서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를 생각하 며.... * * * * * 소리는 나무에 기대어 서 있다가 조그맣게 들려오는 기탁의 눈 밟는 소리 를 들었다. 하지만, 소리는 모른체 하고 가만히 그대로 서 있었다. "한가지에 몰두하면 앞뒤 보지 않고 오로지 전력 투구...." 기탁은 천천히 소리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도 없고, 크게 다친적도 없고 크게 실패해 본 적도 없고, 눈을 떼어놔도 안심이 된다. 이게 아빠의 말을 빌린 내 모습 이야.." 소리는 그때서야 고개를 돌려 기탁을 살짝 바라보았다. "소리야.. 한마디 해도 되겠니?" 소리는 나무에 기댔던 몸을 일으키며 기탁을 보았다. "난.... 네가.. 좋아.." "나도......" 소리의 앞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서 말하는 기탁을 멍한 눈으로 바 라보며 소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경기 ------------------------------------ 소리는 옷을 차려 입고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소리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는 소리를 잡으며 깨끗하게 포장된 과자 상자를 소리에게 건네 주었 다. "다녀오겠습니다~" "소리야.. 이거 준영네 갖다 주거라." "신상품....?" "그래.." "잘 팔리지도 않는 건데.." "그래도 아빠 작품이잖니." "알았어요. 다녀 올께요!" 소리는 과자 상자를 받아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소리 아버지는 소리의 방에 들어가 소리가 찍어온 스키장 사진을 하나 하 나 펼쳐보고 있었다. 한참 사진을 넘겨 보던 소리 아버지는 기탁이 바닥에 넘어져 뾰로통한 표정을 지고 있는 기탁의 사진을 발견했다. 소리 아버지 는 인상을 찌푸리며 기탁의 화난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 * * * * "과자방에서 하는 악수회는 1시부터다." 기탁이 아버지가 가운을 입고 기탁의 방으로 들어와 말했다. 기탁은 황 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거.. 농담 아니었어요?" "야호~" 기탁이 버지는 담배를 입에 물고 소리를 지르며 팜플렛 몇장을 기탁에게 뿌렸다. 기탁은 팜플렛을 한장 집어 들어보았다. '과자방 신년 대특집! 한국 챔피언 오다!' '100미터 자유형 우승자 장기탁 악수회.' 팜플렛의 내용은 대충 이런 것이었다. 기탁은 팜플렛을 탁탁 치며 화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런게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을거라 생각하세요?" "벌써 전화가 오는걸? 30명은 넘을 거다.." 기탁은 아버지의 말에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봐~ 스타 녀석!" "스타는 강준영 선수같은 사람한테나 쓰는 말이에요." "네가 챔피언인건 기정 사실인데 아무려면 어떠냐." "으휴.. 저렇게 장사속만 차리시니 원.." "하하하하하~" 아버지는 대답대신 큰소리로 웃어버렸다. 기탁은 팜플렛을 콱 구겨버려서 휴지통에 집어 던져 버렸다. "에잇!" "수고비는 충분히 치뤄줄께.." 기탁은 팜플렛을 휴지통을 버리고는 창문으로 가서 밖을 보며 말했다. "그런 허세는 잠깐뿐이에요." "잠깐?" "진짜 스타가 곧 회복할테니까요.." "신문에서는 선수복귀가 불가능할거라고 하던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게 스타에요.." "너.. 그렇게 지고 싶냐? 강준영한테?" "지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요." "그건 그래.. 어㎎든 악수회 잊지 마라." 기탁은 아버지가 나갈때까지 창문앞에 서서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 참을 바라보던 기탁은 전에 스키장에서 잘 때 그 나무숲에서 있던 일을 다 시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오빠도 좋아..' 소리는 기탁에게서 눈을 떼어 바닥의 하얀 눈을 보며 말했었다. '부탁이야.. 지금은 선택하게 하지 말아줘. 두사람을 비교하고 싶진 않 아.. 지금은..' '그럼.. 일단 결승 경기의 참가 자격은 따두었네.' 소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기탁을 보았다. '쓸데없는 경기를 선택했구나..' '할수 없었어.......' 기탁과 소리는 한참을 그렇게 서로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 * * * 소리 아버지는 해가 질 무렵 준영의 집으로 찾아갔다. 준영은 소리 아버 지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란 모양이었다. 준영은 소파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 아버지를 맞이했다. "아니? 어서오세요!" "여어.. 그냥 그대로 있어." "소리는 금방 돌아갔는데요.." "알아.. 알아.." 소리 아버지는 안으로 돌아와 준영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미국의 유명한 선생이 코치로 왔다며?" "예?" "마음이 든든하군.." 소리 아버지는 담배를 꺼내 물으며 웃어다. "진짜 마음 든든한 사람은 소리입니다. 멋대로 말씀드려서 죄송한데요.. 잠 시만 소리의 힘을 빌려 주세요." "잠시 만으론 곤란한데!" "예?" "선수 복귀가 되는 안되는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일전에 말했지?" "그렇습니다." "난 미래의 일도 생각하고 싶어서 말야." 소리 아버지의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졌다. 준영은 허리를 앞으로 굽히며 소리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미래의 일이라뇨?" "소리와의 결혼...." 소리 아버지의 말에 준영은 한참동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소리 아버지는 담배를 한번 쭈욱 빨아들이고는 하얀 담배 연기를 내 뱉었 다. "물론 자네는 신경쓸 것 없이 지금처럼 재기만을 생각해 주면 되네.. 준 비는 이쪽에서 할테니까, 결코 자네를 번거롭게 하지는 않을거야." "........" "어떤가?" 준영은 소리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맡기겠습니다." 안도와 약간의 희망이 섞인듯한 말이 준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 * * * 집에 돌아와 책상위에 놓여진 사진을 다시 살펴보던 소리는 휴지통에 찢어 진채 버려진 기탁의 사진을 발견했다. 소리는 사진을 집어들고 놀란 눈으 로 사진의 하얗게 찢어진 부분을 보았다. leat퍼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