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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leat ()
날 짜 (Date): 1996년02월28일(수) 23시23분30초 KST
제 목(Title): [퍼온글]Rough 7/10



▶      ROUGH       7/10      ◀

소리의 컨디션 ------------------------------------

 시대항 수영 대회 이틀째였다. 중거리 경주를 마친 기탁은   자전거를 몰고 
다이빙 경기장으로 갔다. 기탁은 자전거를  세워놓고  경기장 밖에서 울타리 
너머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다이빙 경기장은 관중이 그리  많지 않았다. 
덕분에 기탁은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태구와 희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저 녀석들.. 내가 수영할 때는 콧배기도 안보이더니.. 으휴."

 한 선수가 뛰어들었고 그 뒤를 이어 현주가   긴장된  표정으로 다이빙대에 
올라섰다. 태구은 망원경으로 현주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야! 다음은 채현주다!"

 희민이 대답이 없자  태구은 망원경을 내리고 고개를 돌려 희민을  보았다. 
희민은 다이빙대는 보지않고 선수 대기실을  보면서 손을  마구 흔들어 대고 
있었다. 태구가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야.. 너 지금 뭐하냐?"
"아.. 아냐 아무것도."

 대기실에 있던  소리는 선생님의 지시를 들으며  희민이 앉아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희민은 소리가 고개를 돌리자 또  손을 마구 흔들어 댔다. 

 소리는 현주에  이어 두차례 다이빙을 했다.  울타리 너머로  보던  기탁은 
생각보다 좋은 소리의 기록에 놀랐다. 거의 모든   심판들이 7~7.5점을 주고 
있었다. 기탁은 뒤이어 다이빙을  한  선수가 보통 3~4점을 얻는  것을 보고 
씨익 웃으며 자전거에   다시 올라탔다. 기탁은 자전거를 몰아  수영장 쪽으
로 가며  중얼거렸다.

"옳지.. 잘하고 있군.."

       *          *          *          *          *

 태구는 열심히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사실 태구는   망원경으로 선수
들의 수영복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희민은  울타리 쪽에 기탁이 다
시 서있는 것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구가 망원경을  눈에서 떼고 
희민에게 물었다.

"어디가냐?"
"오줌누러.."

 방금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린 소리는 풀밖으로  나오며   점수를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희민은 울타리에 얼굴을 대고 서있는 기탁을 뒤에서  툭툭  쳤다.

"여어~! 바쁘구나. 왔다리 갔다리.."
"아.. 시간이 좀 있어서 어떻게 되가나 살피러 온거야."
"그래그래.."

 희민은 손에 들고 있던 노트를 기탁에게 건네 주었다.

"이게 지금까지의 소리의 득점표야."
"얼래? 뭐 이리 들쑥 날쑥하냐?"
"뭔가 짚이는 거 없어?"
"뭘?"
"그 기록은 네가 보러 온거랑 관계가 있어."
"아항.. 그러고 보니.. 난 소리가 컨디션이 좋을 때만 보러  왔었네.."

 희민은 기탁의 말에 답답한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말을 했다.

"으.. 그게 아니고.. 네가 보고 있었기 때문에  점수가  좋은거야."
"무슨 소리야? 난 몰래 보고 있었는데 소리가 그걸 알리가 없잖아."
"내가 가르쳐 줬어."
"뭐....뭐???"
"네가 올때마다 소리한테  손짓으로.. 그러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인어처럼 
 들어가더라. 물론 그때마다 고득점이지. 어떻게 된거냐?"

 희민은 기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기탁은 희민을   바라보았다가 갑자기 
노트를 희민에게 던지며 말했다.

"나하곤 관계가 없어 임마. 소리는 아직 실력이 없는거야."

 기탁은 뒤로 획 돌아서 걸어갔다.

"야.. 다시 가는 거냐?"
"400m 릴레이가 아직 남아있어."
"소리가 마지막 경기  때까진 돌아와라! 마지막엔 난이도가 제일 높은  게임
 이라구. 막판에 점수가 뒤집혀 질지도 몰라!"
"그러니까!! 내 탓이 아니라고 그랬잖아 임마."

 기탁은 고개를 돌려  희민에게 말하고는 수영장으로  걸어갔다. 희민은  노
트를 팔에 끼고는 기탁을 뒤에서 바라보았다.

       *          *          *          *          *

 기탁은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기탁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이빙 경기장
을 향해 있는 힘을 다했다. 하지만  다이빙  경기장 입구는  경기를 마친 선
수들로 북적 거리고  있었다. 기탁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경기장앞에  자전
거를 세웠다.   기탁은  밖으로 나오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숨을 몰아  쉬었
다.

"소리는 2위야.."

 기탁은 현주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샘은 났지만  멋있었어. 마지막 연기.. 내가  보기엔 어쩌다  걸린  운같지
 만."
"현주야아~~!"

 한양고교 선수들이 현주를  불렀다. 현주는 기탁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  쪽
으로 뛰어갔다.

"그래! 그럼 또 보자 기탁아."

 기탁은 아까 희민이 했던 말을 생각해 보았다. 

'네가 보고 있으니까 점수가 올라간 거야.'

 소리가 2위를 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도 기탁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
니 오히려  자기가 없는데도 그런 좋은  기록이 나왔다는 사실에 화를  내고 
있었다.

"왕!"

 소리가 갑자기 뛰어와 기탁의 뒤에서 소리를 빽 질렀다.

"하하~ 어땠어? 기막혔지? 너도 놀랬을 거야."
"뭘??"
"사실 제일 놀란건 나야. 연습때도 그렇게 잘하진  못했거든. 내가 생각해도 
 기특해. 호호~ 나 강소리가  그렇게  멋진  연기를 펼칠 수 있다니.  으아~ 
 너 내가 도중에 발이 살짝 미끄러 졌던거 봤니?"
"음. 그러니까! 난! 그때 말이야!"

 기탁은 '여기 없었단  말이야...'라고 말하려다가 말을  멈추었다.  희민이 
소리의 뒤에 서서 손짓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뭐? 그때 뭐?"

 소리가 답답한지 기탁에게  계속 물어댔다. 기탁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
고만 있었다.

'어어.. 이게 아닌데.. 저.. 희민이 저녀석이.. 소리를  속였구나!'

       *          *          *          *          *

"기탁아!!!"

 기탁이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데 소리가 뛰어 오며 기탁을 불렀다.

"얘~ 얘~ 글쎄 야구부가 5:0으로 이겼어!"
"아직 1회전 인데 웬 호들갑이냐? 음.. 5:0이라??"
"그래! 3안타에 완봉승이야!"
"올해는 제대로 된 투수가 없다고 들었는데 이상하다."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누가 던진지 아니?"
"몰라?"
"희민이가 던졌어. 희민이!"

 기탁은 희민이 투수를 했다는 사실은 뜻밖이었다.

"몰랐지? 희민이는 사실 중학교때 투수였어! 그것도 상급생을  다 제낀 주전 
 투수. 그러다가 갑자기  타자로 바꾼거라구. 그애 말로는 피곤해서  바꿨다
 고 그러더라. 투수는  9회전 다 합쳐서 평가가 내려지지만 타자는  안타 한
 두개만 쳐도 유명해지잖아.  우리 학교에는 변변한 투수가 없으니까,  할수 
 없이 했나봐. 자기가 스스로.."
"희민이가 투수를..?"
"그래. 굉장하지? 연습도  제대로 안하고 말이야. 올해는 기대해봐~ 우리  2
 차전 부터는 같이 응원하자~"

 소리는 기탁을 툭툭 치며  말하고는 교실로  뛰어갔다.  기탁은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희민이 했던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때 팔꿈치를 다치고 말았어.. 가끔  의사한테 진찰을 받아보이
 긴  하는데.. 걱정할것  까진 없대.  3루수 정도만  한다면... 3루수  정도
 만..'

 기탁은 희민이 투수로  나섰다는 사실은 곧 팔의 상처에 무리를  준다는 것
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          *          *          *          *

 저녁이 되어  기탁은 희민을 만나기 위해  희민과 태구가 쓰는 방에  갔다. 
방안에는 태구가 과자를 입에 물고 잡지책을  보고 있었다. 

"여어~ 어서와라 기탁아."
"희민이는?"
"응.. 대회중에는 학교에만 틀어박혀 있어."
"그래...."

 기탁은 태구의 책상위에서 태구과 희연이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보았다. 

"잘 나가는 모양이다 너?"
"하하.. 희민이 덕분이지 뭐. 사실은 다 말해버렸어.  희민이를 미움받게 할 
 이유는 없으니까. 채일 각오하고 솔직히 말했어."
"그게 적중했나 보구나."
"응.. 정말로 좋은애야."
"아..그래.."

 기탁은 그 사진이 꽂혀 있는 액자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아아.. 아니 희연이 말고 희민이 말이야. 저 밖에  모르는 놈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이번에 확실히 알았어. 짜식.."

 기탁은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5:0이라고..."
"응?"

 태구가 뭐라고 중얼거리는 기탁을 보고 말했다.

       *          *          *          *          *

 팡~ 소리와 함께  볼이 포수의 미트에 꽂혔다. 희민은 인상을  쓰며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았다. 희민은 다시 공을 던지기  위해 고개를 들다가 
울타리 뒤에 서 있는 기탁을  보았다. 희민은  잠깐 연습을 멈추고 기탁에게 
걸어갔다. 

"다 알고서 처신하는 거지?"

 라고 기탁이 말했다. 희민은 모자를 벗어 들고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물론.. 프로 지망인 내가 무리해서  상품가치를  떨어뜨릴리가 없지."
"그래.. 올해는 잘 안된다해도 너에겐 내년이 있으니까.."
"으음..."

 희민은 별다른 말없이 야구부원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희
민은 한참을 서 있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기탁에게 말을 했다.

"넌 도대회?"
"응?"
"올해에는 어떻게든 해봐야지."
"글쎄.. 고교 2위인 오현석이 버티고 있어서.."
"그럼 고교대항은?"
"거긴 이창우가 있어."
"그럼 한국 선수권은?"

 희민은 씨익 웃으며 기탁을 보았다. 기탁은 다른 곳을  보며 울타리에 기대 
멍하니 서 있었다. 희민은 기탁이 대답이 없자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강준영 선수까지는 가야돼. 넌 할수 있어 기탁아.."
 
 기탁은 수건을 메고 야구부원들 사이로 걸어가는 희민을   물끄러미 바라보 
았다.

       *          *          *          *          *

 한통고등학교 야구부는 희민의 활약에 힘입어 2차전도  큰 점수차이로 승리
를 했다. 


마지막 경기 --------------------------------------

 기탁은 시대항 야구대회의  대전표에 선을 하나 더 그어 나갔다.  한통고등
학교는 2차전가지 승리를 해  16강에  오르게  되었다. 시대항  결승전은 24
일, 3차전은 22일에  있었다. 기탁은  펜뚜껑을 닫으며 옆에서  서있던 소리
에게 말했다. 

"다음이 22일? 그 다음이 24일이네?"
"응. 염려없어."
"뭐가?"
"아.. 25일에 약속했어. 그러니까 경기는 모두 볼수 있다구.""약속?"
"응.. 아빠들하고 나가기로 약속했어."
"아빠들..이라구?"
"응. 아아.. 오빠도 함께."
"흥~! 다른건?"
"그것 뿐이야."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그랬냐?"

 기탁은 펜을 던졌다 잡았다 하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니?"
"강준영.. 혼자만 숨기려 들 필요없다 그거야."
"내가 언제 숨기려 들었냐!"

 기탁은 펜을 들어 소리의 볼을 콕 찌르며

"잘난체 하지마. 바보야.. 내가 질투할거라고 생각한거지? 그렇지?"

 라고 말했다. 기탁은 뒤로  돌아 나가면서 펜을 휙  집어  던져  소리를 맞
추고는 말했다.

"잘못 짚었어. 현상범 같은 아버지를 가진 여자애.  난,   흥미없어."

 기탁은 문을 콱 닫고  나가 버렸다. 소리는 닫혀버린 문을 멍하니  보고 있
다가 발밑으로 또르르  굴러오는 펜을 집어서 던져 버렸다. 펜은  문을 맞고 
다시 굴러와 소리의 발앞에 멈춰 섰다.

 기탁이 코치실 앞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박경석 코치가 기탁을  발견하고는 
큰소리로 말을 했다.

"야! 장기탁! 어디 갔다 이제 오는 거야?!"
"전 화장실에도 못갑니까??"

 기탁은 더 큰소리로 소리 질렀다.

"알았어요!!! 다음부턴 물속에다가 볼일 보죠!!!"

 멀찍이서 이 모습을 보던 주현은 멀뚱멀뚱 눈을 뜨고는 중얼거렸다.

"열받은 모양이군..."

       *          *          *          *          *

 어둑어둑해질 무렵  기탁은 수영 연습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었
다. 야구부 앞을  지나던 기탁은 수돗가에서 뭔가를 하고 있는  희민을 발견
했다. 희민은  커다란 양동이에 얼음을 가득  담아 놓고 팔꿈치를  찜질하고 
있었다. 기탁이 희민을 불렀다.

"희민아.."
"여어.. 너도 연습 끝났니?"

 희민은 팔을 들어 올리며 기탁에게 말했다.

"너.. 그 팔꿈치.."
"아.. 이거? 건강한 사람도 전력투구하면 병이 나는  법이야. 하물며 병자야 
 오죽하겠어. 다음에도 꼭 응원와라. 그리고..  소리도 데려와."
"흥~ 내가 오지 말래도 올 위인이야."
"보여주고 싶어. 여름만 되면 생각이 나도록.."

 희민은 언제난 진지한  편이었지만 양동이를 들고 가며  기탁에게  한 말은 
여느 때와는 다른 어떤 무게가 있었다. 기탁은 약간  이상하긴 했지만 그 생
각을 떨쳐버리고 중얼거렸다.

"흥~ 아니꼬와서~~"

       *          *          *          *          *

 주혁이 다니고 있는  서창고등학교와의 야구 시합이 있는  날이었다.  기탁
은 수업을 마치고 시간이 약간 늦어  정신없이   야구 경기장에 도착해 경기
장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 한쪽  코너를 돌던 기탁은 반대쪽
에서 달려오던 조그만  꼬마아이와 부딪히고 말았다. 그 꼬마아이는  그대로 
넘어져 땅바다에 머리를 부딪혔다. 

"아야~"
"엥? 아.. 미안해 꼬마야. 괜찮니?"
"으응... 아아~ 쉬아마려~"

 아주 귀엽게 생긴 조그만 여자아이는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 갔다.

       *          *          *          *          *

 1회 한통고등학교의 수비는  희민의 활약으로 무득점으로  끝났다.  기탁이 
경기장에 들어올 때는  1회 공수교체를 하고 있었다. 기탁은 자리를  찾기위
해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주현, 강우, 태구에게 둘러싸여 있는 소리를  발견
했다. 기탁은 뭔가 찝찝한 기분에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찾
았다. 기탁이  두리번거리고 있을때 아까의 꼬마가  계단을 뛰어 오다가  또  
기탁의 등에 머리를 부딪혔다.

"아야~"

 기탁은 꼬마를 데리고 빈자리에 가서 같이 앉았다.  1회 공격도 무득점으로 
끝나고 희민이  투수로 등장했다. 꼬마는 희민이   투수석에 오르자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으아~ 잘한다! 강희민! 화이팅!"
 
 2회 수비도 희민의  멋진 투구로 무득점으로 끝이 났다. 기탁은  꼬마가 자
기 학교를 응원하는 걸 보고는 이상히 여겨  물어보았다.

"너 한통에 아는 사람있니?"
"응! 야구부에 우리 오빠가 있어."
"오빠??"

 기탁은 '오빠'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준영과 소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호칭이 이상한데??"
"응?"
"아.. 아냐아냐.. 오빠 이름이 뭔데?"
"강희민.."

 꼬마가 말을 하자마자 한통의  한 선수가 안타를 때렸다.  기탁은  안타 소
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경기장을 보고 소리 질렀다.

"오에~ 잘한다!!"

 기탁은 한참 환호성을 지르다가 꼬마가 자기 오빠가   강희민이라고 말한걸 
떠올렸다. 기탁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꼬마를 보았다.

"에에? 아.. 그럼 항상 응원하러 왔겠네..?"
"아니. 난 야구에 별로 흥미가 없어. 하지만  이게  마지막이니까."
"꼬마야. 너 뭘 모르는 것 같다. 고등학교는 3년을 다녀야돼."
"그걸 누가 몰라?!"

 마침 한통의 2회  공격 두번째 타자로 희민이 배트를 들고  나왔다. 기탁은 
알수없는 꼬마의 말을 곱씹으며 희민을 바라보았다.

 꼬마는 턱을 괴고 오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어, 탁아 ---------------------------------------

 기탁은 전에 희민이 걸어 나왔던 병원을 찾아가 보았다.   병원을 들어갔다
가 기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왔다.   기탁은 한숨을  내쉬고는 
학교쪽으로 걸어갔다.

       *          *          *          *          *

 야구부원들은 다음에  있을 결승 시합을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었고 
희민은 한쪽 구석에 서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배들 두명이 
뛰어와 희민을 불렀다.

"야 희민아!"
"왜요?"
"잠깐 이리 와봐 어서."

 선배들은 희민을  끌어다가 자기들 사이에  집어 넣었다. 그러고는  한명이 
뛰어가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선배는 자기가 다시 희민  옆으로 뛰어
오며 카메라는 다른 선수에게 주었다. 

"아~ 교대~"
"자.. 김치!"

 갑작스런 선배들의  행동에 희민은 멍하니 서  있다가 옆에 있는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뭐하는 거예요? 지금?"
"아~ 증거 사진이야. 너랑 같은 야구부였다는 것을  자랑  하려고."
"네?"
"아. 선배가  변변치 못해서 미안해. 지금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지만.. 
 우리가 좀더 열심히 했으면 너를 이렇게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텐데.."
"기회는 아직 있어요. 앞으로 연습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판도는 달라집
 니다."
"그래.."

 선배들은 카메라를 가져다 놓고 다시 배트와 글러브를  집어 들고 운동장으
로 뛰어갔다.

"좋아~~ 연습하러 가자!!"

 희민은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  보았다. 희민은  고개를  돌리다가 
기탁이 한 쪽에서 콜라캔을 들고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 희민은 모자
를 벗으며 기탁에게로 갔다.   기탁은  캔을 하나 희민에게 주고 자기도  마
시며 말을 했다.

"내일은 강적이겠구나.."
"음.. 투수력, 공격력, 전부가 1위인 팀이지."
"음.. 희민아.. 나 어제 네 동생 만났다."

 기탁의 동생을 만났다는  말은 희민을 잠시 침묵하게 만들었다. 기탁도  콜
라만 마실 뿐 아무말  없이 서 있었다. 기탁은  희민이 말이 없자  이야기를 
계속 했다.

"야구엔 흥미가 없는데 마지막 게임이라서 응원왔대.  그리고.. 네가 다니는 
 병원에 갔다 왔어."

 희민은 기탁을 바라 보았다.

"후회는 안하는 모양이지?"
"앞일은 모르는 법이야. 그런건 미리 말할게 못돼.  하지만.. 여기서 그만둔
 다면 틀림없이 후회할 게 뻔해. 그것만은 분명해!"
"난 입다물고 있어야만 되니?"
"그렇게 해주리라 믿어.."

 카메라를 가져 왔던 선배  한명이 카메라를 들고  희민과  기탁 앞을  지나
갔다. 희민을 손을 들며 선배를 불렀다.

"선배님~ 필름 아직 남아 있어요?"
"응.."
"그럼 한장 부탁해요."

 희민은 팔을 들어 기탁의 어깨위에 올려 놓았다. 기탁은  희민의 행동에 약
간은 어색함을 느꼈다. 

"희민아.."
"넌 자랑스러운 친구가 될거야. 틀림없이.."
"엥?"

 희민이 계속 알수없이  무슨 죽으러 가는 환자같이 얘기를 하자  기탁은 이
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희민을 바라 보았다. 

"찍는다~"

 선배가 카메라를 눈에 대고 말했다. 희민은 카메라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웃어.. 탁아.."

 기탁은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보며 씨익 웃었다.

       *          *          *          *          *

 한통고등학교의 결승 시합은  당일 내린 비로 다음날로  연기가  되고 말았
다. 태구는 기탁의 방에서 창밖을 내다 보고 있었다.

"유감이다 오늘 시합."

 기탁은 침대에 앉아 책을 보며 말했다.

"희민이에겐 잘 됐지 뭐.."
"너 방 혼자쓰면 심심하겠다."
"응.."
"난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혼자  있으면   쓸쓸하고 어색해. 희
 민이가 시합 마치고  돌아올때까지만  여기에  있을께.."

 태구는 침대위로 올라와 기탁의 옆에 누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사감선생님께 부탁해서 그렇게 해."
"아냐.. 그렇게까진 할 필요없어. 희민이가 올 때까지만 잠시 있을께."

 기탁은 태성이 '잠시'만 이라고 하는 말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있었다. 희
민은 다시 돌아 오더라도 태구의 말대로 '잠시'만 있을테니까.. 

"쩝.. 그래라.."

 기탁은 생각을 그만두고 태구를 보며 말했다.

       *          *          *          *          *

"야~ 서둘러 기탁아! 다른 애들은 벌써들 갔단 말야."
"짜샤! 너 코고는 소리 때문에 한잠도 못잤다!"

 기탁은 티셔츠를 급히 입으며  말했다. 기탁이 옷을 입는  동안  태구는 창
밖을 내다 보며 말했다.

"7월 25일 오늘 맑음.. 엄청 덥겠는데.."
"음.. 25일??"
"응? 왜?"

 기탁은 소리가 전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25일 약속했어. 아빠들하고..'

 기탁은 그리고 희민이 착잡한  말투로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희민의 그 
진지한 표정도..

'보여 주고 싶어.. 내 모습을..'

 기탁은 희민이 그렇게  말했던 이유를 이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가 경
기장에 가보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태구는  기탁을 
재촉했다.

"가자! 기탁아.. 뭐해.."

 기탁은 기숙사 밖으로 뛰어 나가며 말했다.

"먼저 가!"
"어디에 가는데?"

 기탁은 여자 기숙사 관리실로 뛰어 갔다. 기탁은 관리실   아저씨에게 소리
가 있냐고 물었다. 소리는 방금전에 기숙사를  떠나고  자리에 없었다. 기탁
은 혹시나 하고 밖으로 뛰어 나왔다. 기탁이 나오는  바로 그때 소리는 준영
의 갤로퍼에 올라타고  있었다.

"소리야 빨리 타!"
"네!"

 기탁은 그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힘껏 뛰었지만 잡을 수는   없었다. 갤로
퍼는 먼지를 피우며 학교 정문으로 빠져 나갔다.   기탁은 숨을 헐떡이며 멀
리 사라져 가는 갤로퍼를 멍하게 바라 보고만 있었다.
 

이유는 나중에 ------------------------------------

 기탁은 힘없이 서서 정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히  멀리 사라
졌던 갤로퍼가 기탁이 서있는 쪽을 향해 다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갤로
퍼는 정문을 들어와 기숙사 앞에 섰다. 

"평생가도 못 고칠거다. 또 잊은 물건이 있다니."

 소리 아버지가 말했다. 소리는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차에서 내
렸다.

"아빠가 서두르시니까 그렇죠."
"그럼 천천히 가도록 하죠."

 준영이 자동차의 시동을 끄며 말했다.

 소리는 차에서 내려 기숙사 쪽으로 뛰었다. 기탁은 차에서   내리는 소리를 
발견하고는 소리에게 뛰어와 소리의 팔을  잡았다.  소리는 달려가다가 팔을 
잡혀 중심을  잃어 움찔하며  멈춰섰다.  소리 아버지는 기탁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기탁에게  말했다.

"여어~~ 철이구나. 오랜만이다."
"저.. 아버지. 소리 좀 잠깐 빌릴께요."
"뭐??"

 소리는 기탁을 보며

"무슨 소리야?"

 라고 물었다. 기탁은 소리의 팔목을 아직도 꽉 잡은채 말했다.

"오늘은 희민의 시합이 있는 날이야."
"알아.. 비 때문에 연장했잖아. 누가 그걸 모를까봐?"

 소리 아버지가 이제  차에서 내려 기탁과 소리가  서 있는  쪽으로  걸어와 
말했다.

"철아.. 오늘은 그전부터 약속했던 날이야. 선약 몰라?"
"그럼 날을 바꾸어 주십시요."
"얘야.. 나도 바쁜 몸이란다. 그렇게 할 형편이 못돼."

 소리 아버지는 약간 무례한  기탁의 행동에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기탁은 이번엔 소리에게 말을 했다.

"소리야.. 부탁해. 함께 가줘."
"철아. 도대체 소리를 어디에 데려가려고 그러는 거냐?"
"야구장요."
"야구장? 야구장엔 왜?"
"시합을 보러 가야 합니다."
"뭐라구? 너 지금 누구 놀리니?"

 소리 아버지는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놀리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소리가  가봐야  합니다."
"소리야!! 빨리가서 잊은 물건 가져오지 못해?!"
"소리야.."

 기탁은 소리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채 소리의 팔목을 더욱 힘주어  잡고 소
리를 바라보았다. 소리도 갑작스런 기탁의 행동에 놀랐는지  멍한 눈으로 기
탁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 그 손 놓지 못해!"

 소리 아버지는 기탁을  소리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
만, 준영이 차에서 내려 소리 아버지를 막았다. 준영은  아버지를 손으로 막
고 소리에게 말했다.

"소리야.. 네가 결정해라...."

 소리는 준영의 말에 기탁을 바라 보았다. 기탁은 다른  때의 화나거나 약간
은 장난스러운 듯한 표정이 아니었다. 아니  그때와는 전혀 달랐다. 

"미안해 오빠.."

 소리는 고개를 돌려 준영에게  말했다. 소리  아버지는  소리의  행동에 또 
흥분을 하며 소리쳤다.

"뭐? 이런 경우가 어딨니?!!"

 하지만 준영은 아버지를 막고 미소를 지으며 소리에게 말했다.

"알았다.."

 기탁은 미소를 짓고 있는 준영을 한번 쳐다보고는  소리를 데리고 경기장으
로 뛰어갔다. 소리 아버지는 뛰어가는 기탁과  소리를 보며 소리쳤다.

"저녀석 괜찮은 녀석인줄 알았더니 예의도 없는 녀석이잖아?!"

 소리 아버지는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준영은 계속  미
소만을 짓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눈빛만은 감출수가 없었다.

       *          *          *          *          *

 소리와 기탁은 다행히 경기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1회초 한
통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기탁은 경기장을 바라보며 소리에게 낮은  목소리
로 말을 했다.

"미안해.. 억지를 써서.."

 소리는 미소를 지으며 기탁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유는 나중에 말해도 좋아.."
"응.."

 1회초 한통의 공격이  끝나고 공수 교체가 되어 희민이   투수석에 올랐다. 
기탁은 희민을 바라보다가  전에 연습장에서 들은 희민의 말을 생각해  보았
다.

'엄마가 병에 걸리셨어.'
'앞으로 몇년을 사실지 모른대.'
'물론 본인은 모르시구...'
'그래서 아빠가 가족을 데리고 부산으로 가신대.'
'엄마가 편하게 느끼시는 환경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게   하신다고.. 아빠와 
 엄마의 고향이거든. 부산이..'
'아빠는 졸업할 때까지기숙사에 있어도 좋다고 하셨지만..  유감스럽게도 난 
 타고난 효자라.. 함께 가기로 결정했어.'
'그래서..  이 대회가  마지막이야. 이  대회뿐아니라  앞으로의 야구  인생
 도..'

 희민의 힘있는 투구에 힘입어 한통은 한점도 빼앗기지  않고 마지막 수비까
지 오게 되었다.  한통도 마찬가지로 점수가 없긴 했지만 희민이  마지막 타
자만 잡아 준다면 연장전에 기대를 걸 수 있었다.  희민은 고통을 참으며 이
를 악물고 힘껏 공을 내  던졌다.

 하지만, 공은 타자의 배트를 맞고 하늘 높이 쭉쭉 뻗어 갔다.


기념 파티 ----------------------------------------

 타자가 때린 볼은 힘있게 날아가 아슬아슬하게 팬스를 넘겼다. 

'팔꿈치는 괜찮아?'
'내년 1년은 천천히 쉴 생각이야..'
'전학 학교에서도?'
'적어도 고교 야구는..'

 기탁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며 홈플레이트를 밟는  주자를  보며  희민과 
얘기했던 것들을 생각했다.

'저 녀석들이 아닌 다른 녀석들과는 진학을 하고 싶지 않아.'

 상대편은 다들  소리를 지으며 좋아하고 있었고  한통  고등학교  야구부는 
웃음을 지으면서고 다들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희민은 그들  사이에 서
서 알수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웃어.. 탁아..'

 기탁은 희민과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을 생각하며  멍하게  경기장을  바라 
보았다. 기탁은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소리에게  말을 했다.

"소리야.. 잊지마.. 오늘의 저녀석을.."
 
 소리는 처음으로 보는  기탁의 슬픈 표정을 보고는 떨리는 눈으로  다시 희
민을 바라 보았다.

       *          *          *          *          *

"앗뜨~ 앗뜨~"

 태구는 욕탕에 들어오며 뜨거웠는지 호들갑을 떨었다.  욕탕 안에는 희민이 
수건을 덮고 앉아  있었고 강우도 앉아 있었다.   강우는 태구를 보고  말했
다.

"임마, 점잖게 좀 굴어라.."
"꼭, 영감 같은 소리하고 있네.. 앗뜨~ 앗뜨~"

 태구는 계속 호들갑을  떨며 욕탕안으로 들어갔다. 태구는 희민의 옆에  앉
아 희민에게 말했다.

"수고 많았어.. 비록 지긴 했지만.. 그게 홈런이 될줄  누가  알았겠냐.. 때
 린 녀석도 놀랜 모양이더라. 볼이 너무 높았나?"
"잊었어..."

 희민은 수건을 덮은채로 말했다. 강우는 샤워기 앞에 서서   희민의 샴푸를 
집어들며 희민에게 말했다.

"희민아 샴푸 좀 빌려쓴다."
"오냐, 써라,.."
"아직 가득 남아있네..?"
"네가 다 써.."
"짜식 통 커서 좋다."

       *          *          *          *          *

 희민은 대화실로 들어와 텔레비젼을 보고 있던 주현에게  말했다.

"주현야, 내가 전번에 돈 빌렸었지?"
"아무 때나 줘도 돼."
"잊기 전에 줘야지.. 자 2천원.."
"응.."

 희민은 2천원을 꺼내 주현에게 주었다.

       *          *          *          *          *

"기탁아 뭐 좀 사러 가는데 같이 안가래?"

 희민이 기탁의 방에 들어와 말했다. 책을 읽고 있던  기탁은 책을 내려놓으
며 말했다.

"그래..."

 기탁은 희민과 같이 편의점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언제 출발이니..."
"응? 으응..."

       *          *          *          *          *

 기탁과 희민은 강우와  주현의 방으로 가 편의점에서   사온  콜라,  과자, 
캔 들을 쏟아 부었다. 주현과 강우는 깜짝 놀라 물었다.

"이게 웬일이야?"
"기념 파티야.."

 희민이 웃으며 말했다.

"야야~ 거기좀 치워.."

 희민, 강우, 주현,  기탁, 태구는 새벽까지 웃고 떠들며 영문도  모르는 기
념(?) 파티를 했다.

 그들이 너무 시끄럽게  놀아서 그 소리에 잠이   깼는지  초희가  창문밖을 
보며 퉁퉁거렸다.

"으잇~ 시끄러.. 저방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글쎄에....."

 소리는 창밖을 보았다가 다시 책상위에 올려놓은 책에  집중했다.

       *          *          *          *          *

 강우와 주현, 태구는 먹다  버린 쓰레기로 가득 찬 방에서 코를  골며 정신
없이 자고 있었다. 

 희민은 가방을 둘러메고  기숙사 앞에 서서 자기가  쓰던 방  창문을  한참 
동안 바라 보았다.  희민은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힘없이 발을  돌려 
정문 쪽을 걸었다. 

 그런데, 정문에는  소리가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소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녕..."

 희민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서서 인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번엔 희
민의 뒤에서 기탁이 손을 호호 불며 희민을 불렀다.

"안뇽~ 헤헤..."

 새벽이어서 그런지 여름인데도 날씨가 상당히 추웠다.

 
희민의 편지 --------------------------------------

"어떻게 안거야?"
 
 희민이 기탁에게 물었다.

"네가 솔직하게 작별 인사를 하리라곤 생각 안했어."
"네 성격을 아니까 말야."

 소리도 기탁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희민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그런건 눈치가 엄청 빠르네.."
"그러엄~~ 내가 누군데.. 알고도 남지."

 소리가 웃으며 말했다. 

"팔꿈치는 어때?"
"견딜만은 해.. 마지막 홈런을 내준거.. 그게 내  한계였는지도 몰라."
"그건 어디까지나 부상 때문이야."
"젠장!"
"나중에.. 프로야구에서 활약을 기대해 볼께."
"글쎄..."

 어느새 셋은 전철역에 도착을 했다. 희민은 개찰구 앞에  서서 기탁에게 말
했다.

"기탁아.. 껌좀 사다 주지 않을래?"
"하~ 됐어 껌정도야 내가 사다 주지."

 희민이 꺼내 준 동전을 받지 않고 기탁은 웃으며  매점으로 걸어갔다. 희민
은 기탁이 매점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는 소리에게 말을 했다.

"소리야.. 한가지만 물어 볼께.. 정직하게 대답해 줘."

 소리는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희민을 바라보았다.

       *          *          *          *          *

"아 여기 껌~"

 기탁이 껌을 들고 뛰어 와서 희민에게 주었다. 희민은  껌을 받아 들고서는 
기탁을 불렀다. 

"기탁아."
"응?"

 기탁은 희민이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희민은 씨익 웃으며   주먹으로 기탁
의 배를 힘껏 내려 쳤다. 

"건강해람마.."
"켁! 켁!"

 소리는 말없이 그 희민과 기탁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애들에게 전할 말은?"
"나중에 편지 쓸게.."
"그래.."
"그냥 모른체하고 가만히 있어줘."

 기탁은 아직도 배가 아픈지 켁켁 거리고 있었다. 희민은  손을 내밀어 소리
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럼.."
"건강해야되.."

 희민을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개찰구 안으로 들어갔다.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
"희민아!"

 개찰구 뒤에 서서 희민을 바라보던 기탁이 희민을 불렀다.

"만약 야구가 개인 경기였다면 넌 틀림없는 영웅이야."
"나도 안다."

       *          *          *          *          *

 희민이 탄  열차는 출발하였고 기탁과 소리는  철도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 서서 열차를 바라  보고 있었다. 기탁은  아직도 아픈지 낑낑 대며  배
를 문지르고 있었다.

"으그그.. 저녀석, 진짜로 때렸어."
"희민이도 이젠  어른이 다 됐어.. 중학교때  나한테 데이트를 했던  애들은 
 희민이때문에 모두 병원에 입원했었어."
"흥~! 그게 나랑 어쨌다는 거야?"
"글쎄........"

 소리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열차가 떠나버려 텅빈 철로를 바라보았다.

       *          *          *          *          *

 희민의 남은 짐을 보내준  후에.. 희민이에게서  편지가  왔다.  강우는 화
를 내었고,  태구는 울고, 주현은 냉정히  있었지만.. 쓸쓸한 건 모두  같았
다. 모두.. 

 그리고 그 다음날.. 난 고교 2위인 오현석을 이겼다.  '넌 할수 있어. 강준
영 선수까지는  가야돼'라고 말하던 희민이  녀석이 생각난다. 그러나  내가 
이러는 중에도  강준영 선수는 한국 신기록을  계속 갱신해 그 길은  여전히 
멀고도 멀었다..

 여자 다이빙에선 소리가  3위로 8월의 고교 대항 출전권을 따냈다.  물론 1
위는 현주..

 희민이가 떠난 야구부는  내년의 여름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우리의 여
름은 아직 시작의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단지 시작의 단계에..


가장 소중한 사람 ---------------------------------

 기탁은 연습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기숙사로 가기  위해  학교 앞의  건널
목을 건넜다. 기탁이  건널목 앞에 서자마자  신호등은 파란불로  곧 바뀌었
고 기탁은 들고 있던 가방을 어깨에 둘러 매고  건널목을 건넜다. 기탁은 건
널목을 건너면서 건너편에   예쁘장하게 보이는 한 여학생이 서 있는  걸 언
뜻 보았다.   건널목을 반쯤 건너왔을때야 기탁은 그 여학생이  현주인 것을 
알아  보았다.  

 겨울이 아니어서 자기 학교의  수영장을 빌리러 올  일도  없을 텐데  학교 
앞의 건널목에 현주가 와 있는게 이상해서 기탁은 놀란  표정으로 현주 앞에 
서서 멀뚱멀뚱 바라 보고 있었다.  현주는 바로 기탁을 알아 보았다.

"어머? 벌써 연습이 끝났니?"

 현주가 말을 걸었는 데도 기탁은 아직도 멀뚱멀뚱  현주를 바라보고만 있었
다.

"얘, 너 그 놀란 얼굴은 뭐니?"
"아, 아냐. 아냐. 순간 어느집 따님인가 하고.."
"뭐하고 있었니? 여기서?"
"응.. 살게 있어서."
"그래? 잘 됐다. 시간 있으면 나랑 같이 가자."
"어딜?"
"창우가 생일 선물 좀 골라 달라구."
"그 애 취향도  모르는 데 내가 어떻게? 네가  골라. 그 편이 그 애  한테도 
 좋을거야."
"그럼. 밥사줄께."
"얼마짜리 선물을 예정하는데?"
"5천원 정도.."
"너무 비싸. 3천원만 쓰고 나머진 먹자. 헤헤~"

 기탁은 곧 현주와  약간의 서먹함을 없앨 수  있었고 다정한  친구들  같이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한통 고등학교의 근처의  빌라에 살던 준영
이 그들 앞을 지나갔다.   준영은  평소에 타고 다니는 갤로퍼를 타고  있었
다. 하지만  기탁은 현주와의 대화에 열중하여  준영의 갤로퍼를 알아  보지 
못했다. 준영은  잠시 속도를 늦춰 기탁임을  확인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집을  향해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          *          *          *          *

 소리는 전기 청소기를  들고 열심히 준영의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시간은 
4시를 약간 지나가고 있었다. 소리는  시계를  슬쩍  보곤 청소기를 내려 놓
은 채 전화기가 놓인 곳으로 가 수화기를 들었다. 

"아.. 여보세요? 거기 기숙사죠?"
"207호실 장기탁군 돌아왔습니까?"
"아..예..아직요?"
"예.. 감사합니다."

 소리는 입을 삐죽이며 수화기를 신경질 적으로 내려 놓았다. 

"칫~!"

 그때, 현관에서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준영일꺼라 생각하고 
현관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준영이 
아닌 영선이었다.  소리와 영선은 서로 초면이었고  둘다 자기가 볼  사람이 
준영일꺼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뜻밖의 인물의 출연에 놀라고 있었다.  영선
이 먼저  말을  꺼냈다.

"누구세요?"
"네? 그러는 당신은?"
"난 준영씨의.... 음.. 그런데 준영씨는?"
"오빠는 안 들어왔어요."
"그리고, 어째서 학생이 이집에...."

 소리를 다구치던 영선은  '오빠'라는 말에 갑자기 얼굴색을  바꾸었다.  영
선은 갑자기 상글상글 웃으며 소리에게 말을 했다.

"오빠? 아.. 어머머.. 동생이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호호호호~"
"전 강소리라고 합니다.."

 소리는 허리를 굽혀 영선에게 인사를 했다. 

"자..잠깐잠깐! 뭐라고?  강소리? 동생인데 왜  성이 틀리지?   너 날  속였
 어?"
"전 친동생이라고 말한 적 없어요."
"너 준영씨와 어떻게 되는 사이지?"

 영선은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들어 소리의 목 아랫 부분을  꼭 누르며  소
리에게 다구쳤다. 그런데, 갑자기 문쪽에서 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소중한 사람...."

 영선은 준영의 목소리에 뒤로 고개를 돌렸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준영은 웃으며 다시한번 말했다. 영선은 실망한 표정으로 떨며 말했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냐."
"거짓말...."
"전부터 말했었잖아. 좋아하는 아가씨가 있다고. 난 몇번이나 말했는데."
"거짓말.... 거짓말...."

 영선은 울먹거리며  뒷걸음질치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문밖으로  뛰어 
나갔다. 준영은 요란하게 닫히는  문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소리
는 준영의  약간은 갑작스런 말에 당황한  얼굴이었다. 준영은 소리를  힐끔 
바라보았다. 소리는 곧 얼떨떨한 표정을 떨어내 버리고 말했다.

"여자 떼어버리는데 나는 왜 팔아먹어?"
"오해마! 난 저 애하고 사귄 적이 없으니까.."
"나를 미움받게 만들었잖아!"
"할 수 없지 않니.. 그건 사실인걸.."

 준영은 또 한마디  애매한 말을 남기고는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준영은 
방에 들어가서는 현관에 있는 소리에게 약간 큰소리로 말을 했다.

"아, 그래.. 우리 별장에 가는 거 아빠랑 맘대로 정한다."
"엥?"

 소리는 준영의 방으로 들어갔다.

"먼저 약속을 ㏄건 너니까 불평하기 없기야."
"그땐 어쩔수가 없었어. 아.. 참.. 전화해야 돼."

 소리는 준영의 방에 한 발을 들여 놓았다가 다시  마루로  뛰어나가 수화기
를 들었다.

"어디에?"
"기탁이 녀석!  연습은 옛날에 끝났는데 아직  안들어 왔대. 열쇠를  안돌려 
 줬거든. 관리 아저씨한테 얼마나 혼났는데."
"음.. 아직 안돌아  왔을 거다. 한 시간  전에 기숙사 반대  방향으로  가는 
 걸 보았어. 여자애하고 단둘이."

 준영은 소리의 뒤에서 뒷짐을  지고 서서 말했다. 소리는 약간 놀란  듯 전
화기를 성급히 내려 놓고는 고개를 돌려 준영을 보았다.

"여자애?"
"아아.. 그애 있지? 작년에 다이빙 대회에서 2위 한 애."
"채현주?"
"그래 그 애 맞아."
"난또.. 그렇담 괜찮아."
"괜찮다고?"
"그 애한텐 이창우라는 남자 친구가 있거든."
"그런데?"
"응?"
"뭐가 괜찮냐구?"
"뭐가라니? ..... 응..?"

 소리는 준영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다.

       *          *          *          *          *

 어둑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현주와 기탁은 다시  기숙사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둘은 기숙사 앞 건널목에 멈춰서서 말했다.

"잘먹었어.. 별로 도움도 안 됐는데 너무 잘먹어서 미안해."
"아냐 덕분에 나도 잘  먹었어. 너를 우연히 안 만낫으면 대강  라면으로 때
 웠을거야."
"그럼 잘가.."
"응.."

 현주는 뒤로 돌아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현주는  몇발짝  가다가 뒤
로 돌아 기탁에게 말했다.

"우연이 아니었어...."
"응?"
"사실은.. 돌아오는 길에 기다리고 있었어.."

 현주는 말을 마치고는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 갔다. 기탁은   이쑤시개를 하
나 물고서 버스에 올라타는 현주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더블 데이트 --------------------------------------

 여름도 이제 거의 절정에  다다라 밤에 잠도 못 잘 정도로  더웠다. 너무나 
더운 여름 날씨에 지쳤는  지 기탁은 기숙사 방에 누워 책으로  얼굴을 덮고 
축 늘어져 있었다. 

"으아~~~"

 기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찐다! 쪄!"

 기탁이 바닥에 앉아서  잡지로 얼굴을 부채질하고 있는데  태구가  문을 열
고 안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온 태구는 씨익  웃으며 기탁에게 말했다.

"방에서 잠만 자니까 그렇지. 따라나와."
"어딜?"
"롯데월드 수영장."
"롯데월드? 뭐하러?"
"뭐하긴 수영하러 가는거지."
"얌마! 너 지금  시비거냐? 내가 하루에 몇시간 동안 수영하는지  다시 한번 
 가르쳐 줘?"
"연습이 아니라 놀러가는 거야. 거긴 학교하고 달라서 볼거리가 많다구."
"흥~!"

 기탁은 다시 잡지로 얼굴을 덮으며 침대로 뛰어 올라갔다.

"넌 희연이랑 같이 갈텐데 내가 왜 방해하냐?"
"음.. 소리도 같이 갈거야."
"....... 그래서?"
"하~ 글쎄올시다."

       *          *          *          *          *

 태구의 말대로 롯데  월드 수영장은 학교와는 달랐다. 태구의 말을  빌리자
면 볼거리(?)가 많았다. 소리가 태구와 희연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한가하구나.."
"누가 할말.."

 기탁은 맨 앞에 가방을 둘러매고 가며 툴툴거렸다.

       *          *          *          *          *

 기탁은 사람들이 많은 눕기 좋은 장소를 찾아가  타올을   깔고 누웠다. 태
구는 기탁에게 "잘자~!"라고 한마디 하고는 풀로  뛰어  들어가 희연에게 헤
엄쳐 갔다. 기탁은  누워있다가 풀의 상황이 궁금해 고개를 살짝  들어 풀을 
보았다. 태구는 희연과  즐겁게 놀고 있었고 소리는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
았다. 

"여기에 와서도 잠만 자니?"

 소리가 갑자기  기탁의 머리 위로 걸어와  말했다. 기탁은 한쪽 눈을  살짝 
뜨며 말했다.

"남이사.."

 기탁은 한쪽을 떠서 소리를 보았다. 기탁은 갑자기 자기  시야에 소리의 하
얀 피부가 보이자  나머지 한쪽 눈도 자기도 모르게 떠버리고  말았다. 항상 
원피스 수영복만 입던 소리가 오늘은 화려한 색의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너.. 그런 수영복도 있었냐?"
"어제 산거야. 다음주에 바다에 갈거거든."
"바다?"
"음.. 여럿이 준영이 오빠네 별장에 갈거야."
"여럿?"
"아빠도 같이.. 재밌을 거야."
"흥~!"
"...... 고마워."
"뭐?"
"그 시합을 못 봤으면 크게 후회 했을 거야. 정말 고마워.."
"..........."

 기탁은 대답없이 파란 하늘을 멍하니 쳐다 보았다. 소리는   기탁이 대답이 
없자 풀에서 놀고 있는 태구와 희연을  보며  말했다.

"저애들은 예외였어."
"희민이 덕분이지."
"응?"

 기탁은 그때 희민이 큐피드 역활을 했을때 자기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쉽게는 안풀리는 모양이다.. 너희 둘은..'

 기탁은 그 생각을 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시끄러 짜샤..."

 소리는 기탁이 뒤로 돌아 앉아 뭐라고 중얼거리자 물었다.

"뭘 그렇게 중얼거리니?"
"요오잇~ 자아 그럼 수영해 볼까나.. 놀이삼아서."
"그래.."

 기탁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운동을  했다.  기탁은 그
리고는 풀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소리도 기탁의 뒤
를 따라 걸어갔다. 몇발짝 걸어가던  기탁은 앞을  보고 걸어가며 뒤에서 따
라오는 소리에게 말했다.

"소리야.."
"응?"
"그 수영복 잘 어울린다."

 소리는 기탁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소리는  기탁에게 달려들어 기탁을 풀  안으로 확 밀었다.  소리는 
기탁을 밀며 큰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          *          *          *          *

 창우와 현주는 'Woody  Land'라는 커피샵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우가 메뉴판을 들고 현주에게 말했다.

"스파게티라도 시킬까?"
"응?"
"아무거나 시켜. 선물 보답이야."
"아. 그래? 그럼.. 에.. 스파게티."

 현주는 창우에게서 메뉴판을 받아 들고 말했다.

       *          *          *          *          *

"말한대로 됐어."
"뭐가?"
"장기탁."

 창우와 현주는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길을 걸었다. 

"여기 와서의 기록 신장은 생각 이상이야."
"그래도 너하곤 차이가 나잖아."
"녀석을 만나고 싶어."
"연습장에라도 가볼까?"
"없을꺼야. 오늘은 오전 연습만 있어."
"아.. 그래? 그런데, 너 자세히 아는 구나? 네가 거기 학생인거 같다.."
"뭐? 그래?"

 현주는 창우의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하지만  현주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현주를 이  상황에서 구제해 주었다.

"여어! 거기 두 사람!"

 주현과 강우였었다.


자신감 -------------------------------------------

 기탁은 정말로 오래간만에  여유있고 즐거운 수영을 했다. 연습이 아닌  진
짜 수영을.. 

 기탁은 수영장 한쪽  끝에서 시작하여 반대편까지 배영을 했다. 기탁은  누
워서 하늘을 보며 수영을 하다가 문득 오른쪽을   보았다. 풀 한쪽에는 여자
들이 죽 늘어서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기탁은 멋진  수영복 차림의 여자
들을 보는데 정신을 팔다가  한쪽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으윽.."

 기탁은 바닥에 서서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벅벅 긁었다.  머리를 긁던 기탁
은 강우와 주현이  누군가를 찾는 지 두리번 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기탁은 
손을 멈추고 물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주현과 강우는 기탁을 찾으며 풀을 뒤지고 있었다. 기탁은   강우와 주현이 
지나가자 풀에서  빠져나와 살금살금 따라갔다.   강우와 주현의 뒤에  바짝 
붙어서 등을 확  밀치려던 기탁은 반대쪽에서 걸어오던 창우와 현주를  보았
다.

"오랜만이다. 장기탁."

 창우가 웃으며 말했다. 기탁은 힘없이 강우와 주현의 어깨에  팔을 털썩 걸
쳤다. 

"이창우.."

 한쪽에서 놀고있던 태구도 강우와 주현을 발견했는지 손을   흔들며 소리쳤
다.

"어어이~~"
"안녕~ 소리야!"

 강우가 웃으며 태구의  옆에 걸터앉아 있던 소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소리
는 이상하다는 듯 태구에게 물었다.

"쟤네들 어떻게 알았지?"
"내가 게시판에 써놨거든. 보복이 끔찍해서 말야~ 헤헤~"
"응.."

 주현과 강우도  소리를 지르며 풀로 뛰어  들었다. 기탁은  강우와  주현이 
풀로 뛰어드는 걸 보고 고개를 돌렸다. 기탁이  창우에게 물었다.

"너희들 우연이니?"
"길에서 저 애들은 만났지."
"아.. 오늘이 네 생일이지? 현주야 선물은 전해줬어?"

 기탁이 현주에게 묻자 현주는 잠깐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응? 으응.."
"얘 웃지 않디?"

 기탁이 창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창우는  웃지않고 현주를 바라보았
다. 현주는 창우의 눈빛에 놀라 바로 설명을 해주었다.

"얘가 선물사는 걸 도와줬거든."
"암, 그랬지. 물론~ 이것 저것 골라줬는데. 결국은 자기가  사고 싶은 것 사
 더라."

 기탁이 웃으며 말했다. 창우도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린 듯 했다.

"아.. 그랬니. 고맙군.."
"대신에 실컷 얻어 먹어서 괜찮아."

 현주는 그들 사이에  서있기가 이상했는지 다른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
며 말했다.

"난 다이빙대 쪽에서 놀고 있을께.."
"그래.."

 현주는 다이빙대로 뛰어 갔다.  창우가 현주를 계속 보고  있자  기탁이 말
을 했다.

"내게 무슨 용건 있니?"
"응.."

       *          *          *          *          *

 강우는 다이빙대에 서서 폼을  잡고 있었다. 강우는 밑을  한번  힐끔 바라
보고는 고개를 뒤로 돌려 소리를 보았다. 소리는 살짝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현주가 다이빙대위로  올라왔다. 강우는 이때다 싶었는 지 뒤로  후다
닥 뛰어 와서는 현주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흐하~ 먼저 하시지요. 아가씨~"

 강우는 아래로 내려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으아.. 10미터라... 휴.."
"바보.."

 주현이 옆에서 팔짱을 끼고 서서 말했다.

"안됐다.."

 소리가 현주에게 말했다.

"뭐가?"
"오랜만에 창우 만난거잖아. 모처럼  만났는데  방해꾼이  많아서.."
"넌 강준영 선수랑 같이 있어야 되잖아."
"응..?"
"음... 나.. 있지.. 기탁이가 좋아졌어."

 소리는 현주의 말에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랗게 떴다.

"너..너한텐 창우가 있잖아.."
"창우가 싫어졌다는 건 아니야. 단지 기탁이가 좋아졌어."
"그.... 그런...."
"알고 있어!!"
"그래서 나도 고민스러워.."
".............."

 갑자기 뒤에서 우악스럽게 생긴 두여자가 소리와 현주에게  소리쳤다.

"야 너희들 뭐하는 거냐?!"
"오를땐 쉽게 올라왔지만 내려 가는 건 쉽지 않을걸? 낄낄"
"다리가 떨려서 혼자서는 못내려 갈거다."

 소리와 현주도 한마디씩 했다. 소리는 웃으며 현주는 화를  내며..

"말이 많군..."
"아.. 미안해요. 호호~ 금방 내려 갈께요."
"아아~ 무리하지들 마셔. 어중간한 용기로 뛰어내릴 높이가 아냐."

 소리는 그 여자의  말을 듣고는 웃으며 현주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내고 동
시에 다이빙대에서  뛰어 내렸다. 소리는 다리를  굽혀 머리에 대고  두바퀴 
돌아 수면으로 들어갔고 현주는 손을 굽히며 공중돌기를  했다. 밑에서 소리
와 현주의 멋진  다이빙을  본 남자들의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으와...."
"와...."

 소리와 현주를 윽박지르던  두 여자는 소리와 현주의  다이빙을  보고는 사
색이 되어 있었다. 소리와 현주가 풀 안으로 뛰어   들어간후 남자들의 시선
은 다시 다이빙 대  위에 서 있는 두 여자에게로 집중되었다. 더욱 더  멋진 
플레이를 기대하며 군침을  꿀꺽.. 하지만 두 여자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살살 기어 아래로 내려왔다. 풀장 안은 순식간에 남자들의  웃음 소리로  가
득차고 말았다.

       *          *          *          *          *

 창우는 풀 바로 옆에 서서 기탁에게 말했다.

"같이 수영하지 않을래. 장기탁..?"
"싫어. 시합도 나가기 전에 자신감을 잃고 싶진 않아."
"하.. 자신이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군."

 기탁은 고개를 돌려 창우을 바라보았다. 

"너도 참 한가하다. 생일 선물 받았다고 시간까지 내주다니."
"그 때문만은 아니야. 내겐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
"하하~ 그렇게 계속 슬럼프에 빠진다면 나는 좋지 뭐."
"그런데 그 이유를 알았어.."
"그러셔~ 유감이당~"
"그래...... 네 말이 맞아......"

 창우는 수면에 반사된 자신의 어두운 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일 밴드 ----------------------------------------

 기탁은 대회를 10여일  남기고 전보다 훨씬 열심히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다른 친구들의 기숙사에서  쉴 동안에도 기탁은 체력 단련과 수영에  전념을 
했다. 

 연습을 마치고 샤워를  한 기탁은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화실에  들렀다. 
대화실 안에는 강우, 태구, 주현이 모여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되지 않았냐?"
"그래.."
"좋아! 우선은 이렇게 적어두자."

 기탁은 친구들이 뭔가 일을  꾸미는 듯이 보여  대화실  안으로 들어가  물
어보았다.

"무슨 얘기야?"
"방학때 놀 계획."

 태구가 말했다. 

"어디 가는데?"
"넌 대회가 멀지 않았으니 좀 빠져."

 강우가 화를 내며 말했다. 자기가 우승을 하지 못해서  요즘 강우는 기탁에
게 약간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었다.

"아직 열흘이나 남았어."
"겨우 열흘이야. 학교의 기대를 져버리지 말아야지."
"흥! 걱정도 팔자셔.."

 강우가 태구를 콕콕 찌르며 말했다.

"너 초희에게 말해서 소리랑 같이 가게 해야돼!"
"하하~ 알았어."
"아~ 소리는 대회에 안나가던가?"

 기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열흘이나 남았다고 네가 말했잖아!"

 강우가 소리쳤다. 기탁은  강우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말없이 대화실  밖
으로 나왔다. 기탁은 대화실을 나와 방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아.. 그런가??"

       *          *          *          *          *

 기탁은 기분이 답답해서 기숙사 밖을 돌아 다녔다. 기탁은   한참을 걷다가 
다이빙부 실내 연습장옆을 지나게 되었다. 

"으휴~ 기대는 무슨 기대야.."

 기탁은 중얼중얼 거리며 혹시 소리가 있는지 목을 쑥  빼고는 2층의 연습실 
창문안을 살펴보았다.

"자~"

 갑자기 웬 여자애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자아.."

 하고 그  여자애가 접는 사다리를 건네  주었다. 기탁은  무심코  사다리를 
받아 들고는 바닥에 세워 놓고 올라가  2층을   들여다 보았다. 기탁은 안을 
들여다 보다가 자기가  지금  뭐하나   하고 문득 생각이 나 뒤를  돌아보았
다. 그런데,   사다리옆에  서있는 여자애는 소리였다. 기탁은  사다리를 내
려와 사다리를 접어  소리에게 탁 밀어주며 말했다.

"너 지금 나한테 뭐 주는 거야~!"
"저기에 세탁물이 걸려서 내려 달라구.."
"엥..?"

 기탁이 고개를 돌려 나무를  보니 하얀 티셔츠가  하나  나무에 걸려  있었
다. 기탁은 사다리를  들어다 나무옆에 대고 셔츠를 걷었다. 기탁은  셔츠를 
걷어서 내려오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 분홍색  팬티가 걸려 있는 걸  발견했
다. 기탁은 그  팬티를  몰래  쓱  집어보고는 소리를 바라 보고 씨익  웃었
다. 소리도 웃으며 기탁을 바라 보고 말했다.

"아직 멀었니? 셔츠하나 내리는 데 왜 그리 오래 걸려?"
"으응.. 잠깐만.."

 기탁은 팬티와 셔츠를 챙겨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영자가 
나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며 소리에게 말했다.

"소리야.. 내 세탁물 내렸니?"

 기탁은 사다리에서 뛰어 내려 영자에게 옷을 주었다.

"아.. 여.. 여기."
"어머~ 고마워. 저.. 있잖아.. 기탁아. 나 좀 살 빠진 것 같지 않니?"
"빠졌냐고? 너 어디 아프냐?"
"어머~ 역시 빠지긴 빠졌나봐."

 영자는 온 얼굴에 미소를  흠뻑 지으며 옷을 받아 들고  기숙사로 뛰어  갔
다. 기탁은 인상을 쓰면서 중얼거렸다.

"말뜻도 못 알아듣는 저 바보! 내가 언제 살빠Ф댔나?"

 소리는 기탁의 뒤에서 씨익 웃으며 기탁에게 말했다.

"너.. 팬에겐 잘 해줘야 돼."
"팬??"
"그래. 여자 기숙사엔 네 팬이 많아."
"얼씨구~"
"언뜻 보아 친절해 보이고, 좀 자세히 보면 잘생긴것  같고, 멀리서 보면 체
 격이 멋있고, 머리도 좋아 보이고, 자고 있으면 어른스럽고.."
"어렵쇼~"
"그야말로.. 전국대회에 출전할 만한 최고의 스포츠맨.  거기에 이창우를 이
 긴다면 학교의 영웅이지."

 소리는 사다리를 접어 들고 기숙사 쪽으로 걸었다. 기탁이   압장서며 말했
다.

"난 여자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수영하는 게 아니야."
"그럼 뭐 때문에 하는데?"
"몰라서 묻냐?"

 기탁은 뒤를 돌아 보았다.

"음.... 자기 실현.."
"허이구~ 이유한번 근사하네.."
"시끄러!"

 소리는 고개를 다시  돌리며 걸어가는 기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기탁을 
보고있자니 수영장에서 현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난.. 창우가 싫어 졌다는 게 아냐.. 단지  기탁이가  좋아졌다  는 것 뿐이
 지.'

 소리는 딴 생각을 하며 걷다가 들고 가던 사다리에  다리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소리가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기탁은 뒤로 돌아 서며 말했다.

"너 혼자서 뭐하냐?"
"아야야.."
"이그.. 덜렁대긴.."

 소리의 무릅이 사다리에 긁혀  피가 나고 있었다. 기탁은  깜짝  놀라며 소
리를 사다리에 앉히고 기숙사로 뛰어가며 말했다.

"너. 조금만 기다려! 응급 상자 빌려 올테니까."
"아.. 괜찮아. 곧 멈출텐데 뭐.."
"기다려!!"

 기탁은 소리에게 소리치고는 기숙사로 뛰어갔다. 소리는   다리는 다쳤지만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넘어진 사다리에 앉아  있었다.

       *          *          *          *          *

 마침 그 앞을 지나가던 박경석 코치가 소리를 알아보았다.

"아니 너? 너 뭐하다가 다쳤니? 아.. 마침 잘  됐구나 나한테 대일밴드가 있
 어. 자 여기.."

 코치는 주머니에서  대일 밴드를 꺼내  소리에게 주었다. 코치는  소리에게 
밴드를 주고는 휘파람을  불며 기숙사로 걸어갔다.  소리는 코치가  주고 간 
대일 밴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슬쩍 집어 넣고는 기탁이  뛰어
간 쪽을 바라보았다.

       *          *          *          *          *

 기탁은 학교 앞의 자판기에 서서 콜라를 뽑아 마시고  있었다. 한참 콜라를 
벌컥 벌컥 마시고 있는데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철이!!"

 기탁은 깜짝 놀라 먹던 콜라를 왕창 흘리고 말았다.  기탁은 소매로 콜라를 
허겁지겁 닦으며 뒤를 돌아 보았다. 소리 아버지였다.

"아.. 저.. 지난 번에.. 죄..송..했습니..다.."

 기탁은 전번에 소리를 납치(?)해 간일로 한번 얻어 맞을  걸 각오하고 있긴 
했지만 갑자기 이렇게 소리 아버지를 만나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
만 소리 아버지의 태도는 의외였다.

"하하하하~! 이유는  소리에게 다 들었다. 희민이  때문에 그랬다며? 그  앤 
 중학교때부터 소리를  따라다녔지. 그  녀석 마지막 시합이었다며?  기막힌 
 우정이야. 난 감탄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보진 않았어. 핫핫핫핫~"

 소리 아버지는 한참  기탁에게 얘기를 하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앞에 세웠
던 차에 다시 올라 탔다. 

"아참.. 너도 내일  소리랑 준영이네 별장에 가는데 같이 가고  싶으면 준비
 해라.."

 소리 아버지는 자동차  문을 닫고 기탁이 앞을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갔
다. 기탁은 콜라가 겉에 줄줄 흐르는 캔을 들고  서서 중얼거렸다.

"예... 친절한.. 아저씨.."


아버지 -------------------------------------------

 아주 아름다운 한적한 바닷가의 별장이었다. 

 기탁은 창밖의  아름다운 경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  아버지가 
기탁이 있던 방문을 열고 들어오며 기탁을 불렀다.

"철이야.."
"예? 아.. 예!"
"마음에 드냐? 이방?"
"제겐 너무 과분한 방이에요."
"바다는 여기서 멀지 않단다. 안내 받을 겸 소리랑 산보라도  하고 오렴.."
"아..아뇨. 괜찮.."

 소리 아버지는 문을 다시 열고 나가 소리가 방문을 열며  소리를 불렀다. 

"소리야.. 철이좀 바다에 안내해 줘라.."

 소리는 마침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방문 두개를 넘어 소리와  기탁은 눈
이 마주쳤다.

"엥?"

 기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소리는 베개를 휙 집어 던져  문을 닫
으며 대답했다.

"네!"

       *          *          *          *          *

 기탁은 소리의 뒤를 따라 해변으로 가는 길을 걸으며 소리에게 물었다.

"강준영 선수는?"
"해지기 전에 오겠대. 너 생각보다 잘따라 오더라.."
"모르는 소리!"
"자는데 억지로 깨워서 데리고 온 사람이 누군데.. 흐암~~"

 기탁은 보라는 듯이 하품을 해댔다.

"아빠는 좀처럼 그런 행동을 안하시는데.. 네가 꽤 마음에 드셨나봐."
"그래봤자 김철이지.. 조심이나 해야지.. 정체가  드러나면   난 그대로 끽~ 
 이니까."
"그러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해도 재밌어. 하하~"
"야.. 바보야. 나만 끝장이냐? 너도 마찬가지야."
"뭐?"
"외동딸이 원수 집안의 아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사실을   아셔봐라. 그 순간
 엔 전학이지."
"설마.."
"너 설마가 사람 잡는거 모르냐?"
"대대로 원수지간이라고는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관계도 아닌데 뭘.."
"누가 줄리엣인데?"
"누가 로미오더라?"

       *          *          *          *          *

 잠시후에 소리과 기탁은 해변가에 도착했다. 소리는  모래를 밟으며 기탁에
게 말했다.

"너희 아빤 어떠셔?"
"뭘?"
"만약 외아들이 원수 집안 딸과 산보하고 있다는 걸 아시면?"
"별로 놀라지 않으실  거야. 전국 수영대회 3위 상장위에 당신의  동네 골프 
 대회 4위 상장을 덮쳐 놓는 분이시니까.. 별 상관도 안 하실거야."
"그러니?"
"그래.."

 기탁은 신발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나.. 뵙고 싶다. 너희 아빠.."
"햐~~ 너 아마 우리 아빠를 보면 나를 다시 보게  될거다.  저런분의 아들인
 데도 이렇게 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니 하면서 말야."
"평소의 네 성격을 보면 솔직히 자신의 부모님을 칭찬하진 않을 것 같다."
"바보야. 이 이상 솔직히 한 말도 없어."
"그럴까?"

 소리는 살짝 웃으며 앞으로  먼저 걸어갔다. 기탁은 아직도  발을  물에 담
근채 첨벙대고 있었다. 그런데, 바닷가에 와서  헌팅을  하는 건지 대학생으
로 보이는 학생 두명이 소리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어디서 왔니?"
"우리 팥빙수 먹으러 가자."

 기탁은 씨익 웃으며 소리과 그 두 남학생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기
탁은 인상을 팍 쓰고 소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이봐.. 아가씨.. 나 배고픈데 냉면사줘. 응?"
"좋아.."

 소리는 웃으며 대답하고는  기탁의 팔을 잡고 같이 걸어갔다. 소리에게  말
을 걸엇던 두 학생은 기탁이 했던 행동이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자 놀란 눈
으로 서로 쳐다 보다가  지나가던  다른 여자에게 실행해 보았다.

"이봐.. 아가씨.. 나 배고픈데 팥빙수사줘. 응?"

 튜브를 들고가던 아가씨는  고개를 돌려 그 학생을 바라 보았다.  순간 '찰
싹!!' 소리와 함께 학생의 안경이 날아가 모래위에 푹 박혔다.

       *          *          *          *          *

"여름.. 바다.. 수영복.. 헌팅.. 참 평화롭다.. 그치.."
"글쎄올시다.. 내 눈엔 안보이는데."

 기탁은 냉면의 쫄깃쫄깃한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들며 말했다. 

"어느 시대나 여자를 차지하려는 남자들의 전쟁은 마찬가지야."
"으암.. 냉면이 왜 이리 불었나아~"

 기탁은 냉면을 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가 기탁을 보고 물었다.

"어디 가니?"
"소변보러.."

 기탁은 화장실쪽으로  걸어가다가 해변가에서  여자 꼬마애들 세명이  서서 
소리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겨라~ 건아~"
"지면 안돼! 준수야!"

 여자애들 앞의 바다에서 남자애 둘이 수영 시합을  하고  있었다.

"옳지! 옳지!"
"좀더 힘내!"

 기탁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화장실로 걸어갔다.

"남자는 고달퍼.."

       *          *          *          *          *
 기탁은 화장실에  갔다가 기지개를 한번 켜고는  다시 소리와 함께  있었던 
식당 앞으로 뛰어 갔다.  기탁이 소리과 있던 곳으로  왔을때 소리는 웬  아
저씨의 뺨을 때리고  있었다. 소리는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아저
씨는 미안한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기탁은 멀리 
걸어가는 아저씨를  슬쩍 보고는 소리에게 가 물었다.

"왜그래?"
"왜 그러냐니? 네가 변변치 못하니까 껄렁한  사람들이  추근대지."
"헌팅?"
"죽은 자기의 딸과  똑같이 생겼담면서 추근대는데 내가 열 안받게  생겼냐? 
 다 늙어 가지고 정말.. 젊은 애라면 귀엽기라도 하지.  부인과 자식도 있을 
 텐데.. 아휴~ 재수 없어."

 소리는 중얼중얼거리며 별장으로 가는 길로 걸었다.

"그래?"
"가족이 보면 울었을거다."
"그 정도는.. 익숙해져 있어."

 소리는 기탁의 말에 깜짝 놀라 기탁을 보았다.

"이젠 날 다시 봤겠지..?"
"뭐?"
"저 사람이... 바로 우리 아빠야.."

 소리는 침을 꼴깍 삼키며 기탁을 바라 보았다.

"뭐..뭐??"
"정말 바보같이 구네.. 몇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어? 저  사람이  바로 네가 
 만나고 싶어했던 우리 아빠셔."
"말이 되니? 너희 아빠가 어떻게 이런 곳에..?"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하필 이런 곳에서 아빠를 만나다니.. 흥!"

 깔끔하게 차려진 과자  가게 앞을 지나던 소리는 갑자기 멈춰서서  그 가게 
간판을 바라 보았다.

'과자방 - 바다의 휴양소'

 기탁은 황당한  표정으로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가 기탁에게  물었
다.

"너.. 몰랐니?"
"내 표정 보면 모르냐?"

       *          *          *          *          *

 소리 아버지는  제방에 나가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던 
소리 아버지는 오래간만에  입질이 오자 소리를 지르며 낚싯대를 잡아  올렸
다. 하지만 낚시  바늘에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그런데,  뒤에서 박
수 소리가 들렸다. 

"여어.. 큰게 물었군요. 하하하하~"

 소리 아버지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기탁이 아버지였다. 

"하하~ 오잉~~"
"이..이.. 과자방..!!!"
"여어~ 우리 과자였구먼.. 오랜만이군요."
"왜 네가 이곳에 왔지?"

 소리 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휴양 시설로 여기에 과자방 지점을 내었거든.  바빠  죽겠어.. 하하.."
"휴양 시설? 빛 좋은 개살구구먼."
"뭐라구?"
"사람 우습게 보지마. 그쪽과는 차원이 다른 과자점이니까."
"잘난체 그만하시지. 한가한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봐? 지난 달
 에도 가게하나 처분했지?"
"지난 달에? 어라? 내가 그랬나?"
"반드시 이 세상에서  과자방이라는 간판을 모조리 없애  버릴테니까.  두고 
 봐!"
"그럼 3대째에 봅시다. 그때도 떵떵거릴 처지가 되는지 보자구.  난 이미 은
 퇴 준비를 하니까. 핫핫~"
"부전 자전 일텐데. 안봐도 뻔하지 뭐.."

 뒤로 돌아 서던 기탁이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돌아섰다. 

"나에 대해서는 뭐라  말해도 상관없지만.. 내 아들에게  욕하는  건 절대로 
 용서 못해."
"그래? 그럼 어디 한번 붙어 볼까? 유도 3단인 나와.."

 기탁이 아버지는 가만히 서서 담배를 뻑뻑 빨았다. 

"아... 그래..  내 아들에게 그대로 전하지.  나중에  후회할껄? 내  아들은 
 검도 3단에 태권도 4단이야. 한번 난폭해지면 아무도 못말려!"
"그걸 자랑이라고 하냐?"
"정말 우리 아들한테 이를거야?!"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겠다."
"나중에 울어도 나는 몰라!"
"시끄러!"

       *          *          *          *          *

"오빠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소리가 낚시 가방을 메고 별장 안으로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몰라!"

 기탁은 식탁에 앉아 소리 아버지에게 물었다.

"뭐 좀 잡으셨어요?"
"송사리!"

 소리는 커피 포트를 렌지에서 집어 들며 말했다.

"그래서 기분이 언잖으신거에요?"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즐기려 했더니 초치는 놈이 있어서.  에잇!"
"누구 말이에요?"
"그놈처럼 재수없는 놈은 생전 처음이다. 과자방집  주인  말이야!"

 기탁은 깜짝  놀라 커피를 살짝 흘리고  말았다. 소리는 피식 웃고  천장을 
보며 걸레로 식탁을 닦았다.

"어머머~ 조심을 하셔야지~ 기탁쓰~"
"젠장.. 휴가와서도 그 녀석 얼굴을 봐야 하다니. 에잇! 재수없어!"
"너무 열내지 마시고 커피나 드세요."
"내가 열  안받게 생겼냐? 그 녀석과  같은 해수욕장에 있자니 소름이  돋는
 다."

 기탁은 말없이 뜨거운 커피를 훅훅 불었다.

"한대 먹였어야  했는데 다람쥐처럼 잽싸게 도망치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
 네.. 으휴.."
"자. 여기요."

 소리는 커피를 담아 아버지 앞에 놓았다.

"애비가 그런데 아들도 뻔하겠지 뭐.."
"아들요?"
"검도 3단에 태권도 4단, 한번 난폭해지면 아무도  못말린다고? 흥~!"

 기탁은 자기가 검도  3단에 태권도 4단이라는 얘기에 속으로 피식  웃었다. 
소리가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

"참 믿음직스럽겠는데요.. 한번 만나고 싶네.."
"뭐야!!!!! 그런일이  있으며 하늘이 두쪽 나는  줄 알아! 할아버지  유언을 
 잊었어?! 원수를 갚아라! 그리고 그들을 모두 죽여라!"

 소리 아버지의 말을 들은 기탁은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소리는 이상하다
는 듯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런 유언이었어요?"
"조금 과장 됐는지 모르지만 내용은 대충 그래. 우리  대에서의 승부는 이미 
 끝났어. 문제는 너희대에서다. 알았니?"

 소리는 씨익 웃으며  기탁을 바라보았다. 소리 아버지는 기탁을 보며  말했
다.

"철이야.. 커피 더 마실래?"
"아.. 아.. 됐어요."

       *          *          *          *          *

 소리 아버지는 목욕을 하며 흥얼흥얼거리고 있었고 소리와   기탁은 거실에 
있었다. 소리는 흔들의자에  앉아 잡지책을 읽고 있었다. 창밖을 보고  있던 
기탁이 말했다. 

"강준영씨 늦네?"
"응? 아. 그래.."

 목욕이 다 끝났는지 소리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뒈져라! 과자방!!"

 기탁은 그 소리를 듣고는 중얼거렸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내가 로미오가 아니라 다행이다."

 소리는 기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소리야, 나가봐. 로미오님의 도착이시다."

 창문밖으로 준영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leat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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