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nuiwa (큰바우얼굴() 날 짜 (Date): 1996년04월27일(토) 10시56분53초 KST 제 목(Title): 고고학으로 본 구약 속의 역사 (11) 2. 약속의 땅 출애굽 사건 침묵의 기간이 지난 후에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욥의 고난 기에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갑절의 복을 주셨고, 구약 이후 4백여 년의 침묵 기간을 지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강림하셨다. 그리고 애 굽 체류 4백 년의 침묵 기간이 지나면서 구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모 세가 출현하여 출애굽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앞에서 모세 이름의 애굽적 성격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출애 굽의 지도자 모세에 관한 애굽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출애굽 직전의 대사건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운 대건축물이라든지 열 가지 재앙 등 에 관한 기록도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성경 외적인 증거가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애굽"하면 떠오는 것이 거대한 피라미드이지만 이러한 석조물이 일반적인 건축믈은 아니었다. 보통 건축은 흙벽돌로 만들어졌으며, 그보다 더 오랜 형태 의 집은 갈대로 엮은 다음 진흙을 발라 붙이는 식으로 지어졌다. 나일 강은 매년 홍수 때마다 대량의 진흙을 하류에 퇴적시킨다. 이 진흙을 파내� 편평한 땅에서 물을 붓고 잘 반주하여 벽돌을 만드는데, 지푸라기 등 을 집어넣으면 더 단단해지고 오래간다. 보통 벽들의 크기는 12x11.5x7.5 cm 이고, 큰 건물에는 40x20x15 cm의 큰 벽돌이 사용되었다. 벽돌 제조 작업은 12명이 한 조를 이루며 각 조에는 조장을 세우고 602명 이 하루에 39,118개의 벽돌을 생산했다고 한다. 주전 13세기의 기록에는 목표 량이 적혀 있고 실제 생산량과 부족한 수량을 적고 있어서 작업 지시와 감독 이 시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이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 스라엘 백성들의 벽돌 제조 작업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또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사흘간 말미를 달라고 했지만, 바로는 작업량을 줄여 주지� 않았고 벽돌에 넣을 짚조차 주 지 않았다(출 5:1-19). 그런데 "왕들의 계곡"에 있는 파라오의 무덤 벽화에 일 꾼들이 한꺼번에 축제와 예배를 위해 며칠 떠날 수 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서 모세가 며칠간의 말미를 요청한 것이 상식 밖의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비돔과 라암셋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원해서 지은 것으로 (출 1:11), 오늘날 산 엘하가르(San el-Hagar)에서 라므세스 2세의 명칭이 기 록된 벽돌들이 발견되어 성경의 라암셋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조사 결과 라암셋은 상업의 중심지로 많은 건물들이 세워졌는데, 라암셋 건설을 위해 바 로 인근 지역인 고센에 살던 이스라엘 민족들의 노동력을 강제로 동원하였을 것이다. 애굽 왕이 이스라� 백성들을 놓아주기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열 재앙으 로 애굽의 바로와 백성들을 심판하셨다. 열 재앙 중 다수는 애굽의 토속적인 것이어서 심판의 애굽적 성격이 명확하며, 장자의 죽음에 대한 기록도 찾을 수 있다. 비록 고대에 유아 사망율이 높아서 첫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치 못한 여러 예가 있으나, 두트모세 4세의 왕위 계승 기록은 특이한 점이 있다. 그가 어느날 스핑크스 그늘 아래 쉬고 있을 때 신이 나타나 왕이 될 것을 말해 주 었고, 그후 자기가 왕이 되자 스핑크스 앞에 기념비를 세우 놓았다고 한다. 두 트모세 4세 직전에는 두번에 걸쳐 시리아에원정하여 9만명의 포로를 붙잡아 온 잔인 무도한 아멘호텝 2세가 다스렸는데, 장자에게 왕위를 계승하지 않은 점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주� 15세기 후반으로 출애굽 전기설의 연대와 근 접하고 있어서 아멘호텝 2세를 출애굽 당시의 왕으로 볼 수 있다.(한상인, 1996, {고고학으로 본 구약속의 역사}, 예인, pp. 56∼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