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Bluish ( a~ pril) 날 짜 (Date): 1996년04월10일(수) 10시16분46초 KST 제 목(Title): Re - 기도중에 생기는 분심 우리는 예수님을 " 부드러운 예수님, 온유하고 순한 분" 으로서만 생각한다. 예수님을 감정도 전혀 없는 수동적이며 엄격한 분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의 초인적 자아는 "분(노여움)"을 나쁜 감정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목사님이 "분"을 언제나 거룩하지 못한 감정으로 취급하는 비성서적이고 비인간적이며 파괴적인 설교를 하는 것을 들으며 자라왔다. 마가복음 3장 5절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분을 내시며 주위를 돌아보신"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예수님이 분을 내셨다는 말은 신약 가운데 오직 한 곳에서만 찾아 볼 수 있지만 예수님이 분을 내셨을 것으로 쉽게 추측되는 내용들은 그 외에도 많다.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을 채찍으로 내어쫓을 때도 그랬고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을 "소경과 같은 어리석은 자들","회칠한 무덤","살인자들","독사의 새끼들" "비참한 사기꾼"이라고 부르셨을 ㄸㅒ도 분을 내신 것으로 불 수 있다.(마23참조) 예수님께서 날카롭게 분을 겉으로 표현한 순간들이야말로 그의 거룩함이 가장 크 크게 나타난 때였었다. 많은 경우에 "완전한 사랑과 분"은 서로 같은 역할을 하며, 완전한 사랑의 결과로서 분이 나타나게 된다. 감정이란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니다. 감정이란 단순히 감정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분을 어떻게 표현하며, 분이 났을 ㄸㅒ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이다. 그러나 당신이 실제가 아닌 거짓된 초인적 자아의 이미지를 소유 하고 있을 때 감정이" 파멸과 우울증"에 빠지기 매우 알맞는 상태에 놓인다. 초인적 자아의 이미지를 소유한 당신은 절대로 분이라는 ㄱ마정을 표현하거나 경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분과 원망"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므로 혼동해서는 안된다. 바울 사도는 정당한 분과 원망과의 분명한 차이점을 말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고(엡4:26)"라고 명령형을 사용했다. 바울은 "분을 내는 것은 괜찮다. 나는 여러분들이 가끔 분을 내는 것을 허락해 주겠다"라고 말하지 않고 "분을 내라!!"고 말했다. 그는 곧 "그러나 조심하라"고 덧붙였다. 분을 매우 조심스럽게 처리하지 않으면 원망이나 악독, 그리고 비통한 감정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분을 나타내라 그러나 그로 인하여 어떤 형태로든지 비통과 원망 혹은 증오하는 ㄱ마정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다. 많은 결혼 생활들이 파탄 가운데 빠지는 이유는 남편과 아내가 그들의 분을 표현하는 적절한 방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깊게 쌓인 감정의 도가니를 뚜껑으로 꽉 막아 놓고 그것을 서서히 덮어가� 며 수천가지의 미묘한 방법으로 상대방과의 감정의 대립을 경험하게 된다. 분을 내라 그러나 조심하라. 분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면 원통함과 비통함이 생기게 된다. 완전주의자가 자신의 분을 겉으로 나타니지 않을 때 생기 는 감정들이 이런 것이다. 그런 부인된 감정은 그의 깊은 내적 자아 속에 깊이 쳐 박혀진다. 그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곪아 터진 분이 여러가지 종류의 위장된 간정적 문제들과 결혼 생활의 갈등 그리고 심지어는 신체적 질병의 형태로까지 나타난다. "분"은 하나님꼐서 허락하신 감정이다. 이것은 우리의 인격 속에 심겨진 하나님의 형상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반드시 건설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어야만 한다. ( 에고.. 본의 아니게 길어졌군요. 너무 좋은 말들이 많아서요. 예상하셨다시피 "상한 감정의 치유"라는 책에서 옮겼습니다. 꼬옥 읽어보시고, 치유받으시기 바랍니다. 샬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