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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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ca ()
날 짜 (Date): 1996년04월01일(월) 16시04분05초 KST
제 목(Title): [한백설교] 다른 길


96년 1월 21일 설교

                            '다른 길'

                              김진호 
                        한백교회담임전도사

 루가복음 11장
  14예수께서 벙어리마귀  하나를 쫓아 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벙어리는 
곧 말을 하게 되었다. 군중은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15그러나 더러는 
"그는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들을 쫓아낸다" 고 말하였으
며 16또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
람도 있었다. 17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
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싸우면 쓰러지게 마련이고 한 집안도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는  법이다. 18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
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데 만일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
가 어떻게 유지되겠느냐? 19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
면 너희 사람들은 누구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냐? 바로 그 사람
들이 너희의 말이 그르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다. 20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
게 와  있는 것이다.  21힘센 사람이 빈틈없이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는 
한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그러나 그보다 더 힘센 사람이 달려들어 그
를 무찌르면 그가   의지했던 무기는 모조리  빼앗기고 재산은 약탈당하여 
남의 것이 될 것이다. 23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
며 나와 함께 모아 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무심코 길을  가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다짜고짜 머리통을 
후려 갈리면서 "이 나쁜 놈아"  하고  소리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경
우를 당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격이 괄괄한  사람이라면, 당장   
자신이 당한   것 이상으로 되갚음  하겠지요.  그런데  만일 나를 후려친  
사람이 백두급 씨름 선수처럼 거한에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다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요? 아마도 쉽사리  그를 향해 덤벼들기는 어려울 겁니다. 
몇년 전에 [카텐자]라는 연극이  공연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잔혹극
'이라는 것인데, 무대가 열리면  세조가 성삼문을 잡아다 고문을 가하면서 
심문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세조의 부하  몇이 관객   
속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사람들을 눈을 부라리며 쳐다봅니다. 갑자기 한  
여자를 번쩍 들어서 우악스럽게 끌고  나와서는 무대 한 가운데 있는 심문
의자에 앉히고 묶습니다. 그리고는  "네 죄를 알렸다!"  라고 호령합니다. 
영문을 모른 채  끌려나온 여자는 강하게 반발하면서  '내 죄가 도대체 뭐
냐'고 항변합니다. 강한 폭력만큼이나 여자의 저항은 당당하고 격렬했습니
다. 이윽고 고문이 시작됩니다. 옷을  찢고 무자비하게 몽둥이질 하고, 주
리를 틉니다. 인두질에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관객의 코를 찌릅니다.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이  소름을 돋게 합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세조는 "네 죄를 알렸다!" 라고   호령해댑니다. 여자의 항변은 점점 하소
연으로 변하다가, 마침내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횡설수설하면서, 간혹 자
신도 모르는 죄를 시인합니다. 반 미치광이 상태에서. 
   이유도 없이 온갖 잔혹행위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아니 죄인임을  시인하는  것 외에는  모든 항변을 금지당한 그녀
는, 자신을  그렇게 구속한   사회에 대해, 권력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를  
상실한 그녀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자백하는 것 외에는 실어증 환자가 되
도독  강제된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그녀  자신의 항변의 소리를 발합니
다. 목을 매고 자살하는 것. 그리고는 연극은 막을 내립니다. 
   이 연극에선  권력의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권력이라
는 것은 '폭력'을 그   필연적 속성으로 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치
자들은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을 향해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자애로우며 
정당성을 갖춘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온갖 노력을 합니다. 다른 권력에 비
해  자신의 권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람들에게 훨씬 유리한 것임을 입증
하고 싶어 합니다. 애써서   웃음지으며, 부드럽고  상냥한 이미지를 심어
주고자  합니다. 그런데 혹  이에  동의하지 않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습
니다. 이  연극에선 성삼문같은 이가  그 예입니다.  이에 대해 권력은 결
코 인내하지  않습니다. 그네들을 격리하고는  혹독하게 폭행을 가합니다. 
그런데 권력의  폭력적  속성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저항하는 이에
게만 대응하는  수동적인 폭력의 소유자가 아님을  보이고 싶어합니다. 아
니 사람들을 향해 인자한  모습을 가장해 온 것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문뜩문뜩 자신의 야수성을  폭로합니다. 그 대상을  찾아 물색합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익명의 누구를, 어떤 집단을  향해 그동안 참느라 애썼
던 폭력성을 마음껏  발휘합니다.  그래도 될 만한 대상을  골라서 말입니
다. 이른바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이 연극에서는 '여자'가 그 
대상이 됐습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폭력을 
가하는 권력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네들은 독재정치를 주도
했던  정치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부드런 체하는 미소 속에 야수
같은 송곳니가   불룩 삐져나온 것을  손쉽게 알아차렸습니다. 독재세력과 
민주세력   사이에 대치선이 쳐졌습니다.  적은 선명했습니다. 바리케이트 
저편의 세력을 향해 투쟁함으로써 우리는 폭력의 세력에 대항할 수 있었습
니다. 그런데 불과 몇년만에  바리케이트는 보이질 않습니다. 물론 폭력이  
없어진 탓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 녀석은 날카로운  송곳니를 번뜩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바리케이트가   보이질 않는 것은 선명한 폭력의 주체
가  없어진  탓입니다. 이른바  민주주의를  가장하면서 자신을 은폐한 체 
사회  여기저기에서 권력을 휘둘러댑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어느 순
간에 우리 사회는, 어느 특정한  정치세력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권력의 
주역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권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권력의  
주역이 됐습니다.  민주사회의 당당한   시민으로서, 성숙한 권력주체로서 
신사다운 풍체와 번드르한 이념적  논리를  가진 우리는, 예전과는 판이하
게 달라진, 다양하게 주어진 의견개진의   기회를 적극 활용합니다. TV 토
론프로에  전화를 걸고,  신문에 독자투고를 합니다. 술자리에서 사무실에
서 간간히 벌어진  토론마당에서 우리는 더 이상  말의 절제를 강요당하지 
않는,  더 이상 실어증 환자가 아닌, 떳떳한 인격주체로서 처신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어느덧  은연 중에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굶주린 
이리가 되어 있습니다. 만만한  대상이 선택되기만 하면  그네들에겐 감쳐
뒀던 폭력성이 발휘됩니다. 감히 그 희생양이 말하려 하면, 어디다 함부로 
떠벌리느냐고 눈을  부라립니다.  뜨거운  맛이 어떤지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습니다. 배제된 사람들, 
그네들은 이제 더 이상 자비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폭력성의 노리게꺼
리일 뿐입니다. 물론  대개는  우리 자신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표출되는 그런 폭력성으로 말입니다. 또 때로는 그런 것을 눈치채게  하는 
소리에 일부러 귀기울이려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예수께서 실어증걸리게 하는 마귀를  내쫓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
시 말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는  놀랐습니다. 왜 놀랐을까
요? 우선은 벙어리가 말하게   되는 기적이 놀라웠기 때문일 겝니다. 그러
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본문의 문맥을 보면, 사람들은  이것을 시기해서 
예수님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저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어 귀신을 내쫓
는다"고 비아냥거립니다.  '베엘제불'이란 '베엘'과  '제불'의 합성어입니
다. '베엘'은 구약성서에서 대표적인 이방신으로 나오는 '바알'의  변형체
로 보입니다. 아마도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표현일 겁니다. '바알'이라
는  신의 이름은 '소유자, 주인' 등을 뜻하는 일반명사에서 유래한 것입니
다. 즉 이 신은 소유자의 신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소유자'
란 궁극적으로 왕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토지,  모든 재산의 소유자
는 신이자 인간인 왕의  것이라고 공공연히 선포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유자는 실질적으로  토지나  그밖의 재산을  영유하는 주체인 대지
주  등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시대에 가까이 이르면 소유
자의 개념은 보다 확대되어 소자산가 등을 함의하기도 합니다. 한편 '제불
'은 '집'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베엘제불을 직역하면 '집의 소유자',  '
집주인' 등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소유의 개념이 '집을 소유하는 자'와 
연관이 있음을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베엘제불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신입니다. 그네들을  과대대표하고, 그네들을 보호하며 그네들을 
지켜주는 신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본문  속에 함축된 계층적 갈등을   시사받을 수 있습니
다. 이스라엘은 바알신앙에 대항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기에, 베엘제불
을  악령과 동일시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사실상 하느님을 베엘제불의  
모습을 한 신으로   이해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베엘제불 운운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선 저주의 욕지거리임에도,  사실상 그들은 베엘제불적 가치
관에  매여서 그런  가치에 저항하는 사람을 향해  '베엘제불같은 놈'이라
고 비난합니다. 그런데 이  가치란, 위에서 시사했듯이, 무산자가  아니라 
소유자의 세계관에 기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적 이야기는 세  공관복음서 모두에  등장합니다. 마르코복음서에
는 이런 비난을 퍼부은   사람을 '예루살렘에서 온 율사들'이라고  말합니
다. 마르코복음서에서 '율사'는 대체로  '예루살렘에서 온' 상류층 율법학
자를 가리킵니다. 한편   마태오복음서에서는 '바리사이들'이라고  표현되
어 있습니다. 마태오에서 이들은  (중앙출신이든 지역출신이든 간에) 종교
엘리트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체로 대지주이거나 소자산가입니
다. 어쟀든 마르코와 마태오는 모두 예수님의 적대자임이 분명한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비난이 나온 것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택
한 루가복음서는 이들을 '군중'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적대자
뿐 아니라 '예수님의  일반 청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일반 대중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궁이나 대저택의 
소유자, 노예를 거느린 그런 부류의  사람들뿐  아니라, 자그마한 집을 소
유한 보통 사람들도  예수님의 이 행동에 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통념의 
노예가 돼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루가복음서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실어증 걸린 사람'을  이해함으로써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말
을 못합니다. 그로 하여금 말을 못하게 하는 존재는 '베엘제불'입니다. 그
는 소유자적 가치를 상징하는  기성의 세계관, 기성의 통념으로부터  배제
된 사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는 중앙의  귀족이 특별히 배제하고  희
생양으로 삼고자 했던 부류의  사람입니다(마르코). 그들은 지역의 소자산
가들로부터도 증오와 배제의 대상이었습니다(마태오). 심지어 그들은 일반 
평민들로부터도 멸시와 천대와 배제의 대상이었고, 이들의 한풀이의  희생
양이었던 것입니다(루가). 
   이 사람이 배제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직 그것
은 그가 벙어리라는 사실 때문일  뿐입니다. 그를 향해 "네 죄를 알렸다!"
고 다구칩니다. 그리고 사회의 온갖   멸시와 냉대를, 심지어는 신적인 저
주를 퍼붓는 고문을  가합니다.  이 벙어리는 항변해서는  안됩니다. 그는 
침묵해야 합니다. 희생양은 가장  만만한 대상으로 선정됐습니다. 자기 표
현을 제약당하고 있는 대상을  향해 침묵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는  이중으로 '실어증 걸린자'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오직 이 냉대를  천
덕꾸러기처럼 더러운 웃음과 비굴한 표정으로 맞이해야 하는 일만 남아 있
습니다. 이 이야기에는 폭력적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악령에 의해 구속되
어  말 못하도록 강제된 사람이  있고,  악령을 내쫓는 이가 있습니다. 이
를 극언을 서슴치 않으며 힐난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예
수님의 비유적인 말로 사뭇 전투적입니다. '악령끼리 싸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나는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 그들을 내쫓는다.' 마지막으로  예수
님은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힘센  사람이 무장하고  자기 궁전을 지키는 
동안 그의 소유는 안전하다. 그러나  보다 힘센 사람이 덮쳐 와서 그를 무
찌르면, 그가 의지했던 무기를 모조리  빼앗고  전리품을 나누어 준다. 나
와 함께 있지  않은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것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흩어버리는 것이다.' 본문은 온통 폭력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나 통용될 수 있는 그런  언사들로 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벙어리는 이런 
폭력적 사회가 가하는  고문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위기에   저항합니다. 그 분위기의  희생양이던 이를   
고쳐줍니다. 사회의  통념에 따라 저주의 대상이었던  이를 해방시켜 줍니
다.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저항합
니다. 악령의 권능을 힘입어   그 일을 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예수님
은   격렬하게 말합니다. '나의   일은 악령에 힘입어  하는 일이 아니다.  
악령이 악령을 무찌른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이 말에는 아마도 다음
과  같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겁니다. '악령의 논리로, 악령의  세계를 
정의로운 사회로 바꾸려 하는 너희들의  기대는 틀렸다. 권력과 폭력을 추
구하는 것은  베엘제불의 논리일 뿐이다. 나는  그것으로 베엘제불과 싸우
지 않는다. 내가 싸우는 것은  모든  배제당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것이
다. 어떠한  논리로도 그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것이 베엘제불의 논리
에 대해 싸우는  하느님의 논리인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자는 결
단코 나와 함께  하는 자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는 공공연히  폭력을 드러내지는  않습니
다. 그러나 거기에는 권력이   교묘하게 은페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에
게초차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냥 지나가는 듯이 
말을 하고  처신하면서 희생양을 대합니다. 우리의  편견을 통해서 말입니
다. 그것이 우리도 모를 만큼 자연스럽고 세미한 소리로서 표현될 수록 희
생양의 비명은 더욱 은폐됩니다. 
   그런데 더욱 정교해져 가는 권력의 폭력성은 그 마수를 사회의 모든 곳
에 뿌리내립니다. 마치 우리 자신이  길을 지나다가  어떤 사람에게 '나쁜
놈'이라고 욕지거리를 들으며  실컷 두들려 맞을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
다. 우리  자신도 우리의   권력 남용의 '잠재적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항변할 수 없이 느닷없이 당합니다.  그저  운이 나빴다고 치부해야 할 만
큼 말입니다. 우리는 곳곳에서   그런 일을 만납니다.  우연을 가장하면서 
나타나는  그런 일을 말입니다. 실은 우리의 권력체계가 낳은 필연적 결가
인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이런 '희생양 경험'을 타자를  향해 
분풀이합니다. 엉둥한 곳에 말입니다.  실은 아무  데나가 아니라, 분풀이 
해도 될 만한 만만한 그런  대상에게 말입니다.  어느덧 이 세계가 가르치
는  '베엘제불적 논리'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러는 새, 이 세상은  배
제와 편견으로 가득차버렸고, 힘과  힘의 견줌 만이 우리의 세상사는 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베엘제불인가 하느님인가를, 권력의 언
어인가 화해의 언어인가를. 만일   베엘제불의 논리가 아닌 '다른 길', 즉 
하느님의 논리를 선택하겠다면,  그 선택을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고백해야 합니다. 골방같은 교회 안에서만  말고, 우리 사는 모든 생활 속
에서 말입니다. ▩

우리도 살아가고
하나님도 살아가고.. 짻SCA..
우리도 살아가고
하나님도 살아가고.. 짻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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