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ca (----용----) 날 짜 (Date): 1996년04월01일(월) 16시02분03초 KST 제 목(Title): [한백설교] '자유', 하느님의 대화법 이번 주부터 제가 다니는 교회의 설교를 올려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지금까지의 설교(96년분)을 일단 모아서 올립니다. 96년 1월 14일 '자유', 하느님의 대화법 김진호 한백교회담임전도사 로마서 8장 18사실 장차 우리에게 드러날 영광에 비해서 지금 이 시대의 고난은 아 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19피조물은 하느님의 아들들이 드러나 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20실상 피조물은 허무에 굴복했지만 제 본의가 아니라 굴복시킨 분으로 말미암아 (그리 된 것입니다). 그러나 희 망은 있습니다. 21그것은, 피조물 자신도 부패의 종살이로부터 하느님 자녀들의 영광과 자유를 위해 해방되리라는 (희망입니다). 22우리가 알 기로, 모든 피조물은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23그뿐이 아닙니다. 영의 첫 선물을 지니고 있는 우리 자신도 아들의 신 분을, 바로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면서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4 우리는 희망을 지향하도록 구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하겠습니까? 25그러 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희망한다면 우리는 참을성 있게 기다립니 다. 26이와 같이 영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떠받쳐 주십니다. 사실 우리 는 무어라 기도해야 마땅할지 모르고 있으나 영께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탄식으로 몸소 빌어 주십니다. 27그러나 마음을 꿰뚫어보시는 하느 님께서는 영의 뜻하시는 바를 아시니, 사실 영께서 당신게 맞갖게 성 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아십니다. 28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곧 (하느님) 결정대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만사가 선하게 이 루어져 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외계인이 지구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아무도 없는 허공을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데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임이 분명한 태양계의 한 푸른빛 혹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너무나 기뻤습니 다. 친구를 사귀고 싶은 욕망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올랐지만, 그 생명체 들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니 우선은 조심스럽게 관찰해야 겠다고 결정내립 니다. 그는 속으로 이 혹성의 생명체들 가운데 자신처럼 지능이 높은 존 재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지상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야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생각합니다. 이 지 능 높은 생명체가 포악한 존재가 아니기를. 어느 반도가 눈에 띄었습니 다. 매우 아름다운 땅일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땅에 가까이 이르자 곳곳 에서 격렬한 굉음이 들립니다. 연기가 치솟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스칩 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땅에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곧 콤퓨터로 이 생명체들의 언어를 자신의 말로 번역하는 일에 착수했습니 다. 내전이 벌어진듯 합니다. 두 내전 당사자들은 서로 자신의 사상만이 '진리'라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진리가 구현되는 사회만이 최고의 대안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두 적대세력 이 주장하는 진리가 동일한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 은 '자유'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었습니다. 한편은 '자유민주주의'를 설파 했고, 다른 한편은 '인민의 자유'를 주장했습니다. 외계인은 혼란에 빠 집니다. 그는 콤퓨터를 향해 '자유'라는 말의 뜻을 알아내라고 명령 내립니다. "자유라는 것은 '구속받지 않는 상태, 구속에서 벗어남' 등의 뜻하는 용어입니다." 외계인은 더욱 혼란에 빠집니다. 한 마을의 아낙네 가 두 개의 깃발을 갖고 있습니다. 한쪽 편의 군대가 나타나자 그녀는 동그라미가 그려진 깃발을 흔듭니다. 날이 어듭자 또 다른 편의 군대 가 나타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별이 그려진 깃발을 흔들어댑니다. 어 느 깃발을 흔들든 간에 그녀의 표정을 굳어 있었고, 심장박동이 격렬 해지는 것을 봐서는 공포감에 싸여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보니, 이 자유의 십자군들은 자기편 깃발을 흔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면 마구 폭행을 가하고는 죽여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구속에서 벗어나자는 진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사상을 구속하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외계인은 실망에 빠집니다. 이 혹성의 생명체들은 너무나 포악했습니 다. 서로가 서로를 내리 누르려고만 합니다. 또 그들의 말은 너무나 복잡 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같은 말로 표현되는 진리 를 가지고 서로를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차라리 침묵과 대화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며 무한한 허공 속으로 사라져갑니다. 혹 우리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우리를 본다면 어떻게 비추일까를 상상 하면서 이런 가상의 이야기를 떠올려 봤습니다. 만약 이 다른 존재가 하 느님이라면, 그분은 어떻게 느낄까요? 무엇을 생각하실까요? 잘은 모르 겠지만, 어쨌든 하느님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이나 외계인과는 다르게 판단하셨던 것임이 분명합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진리와는 다르 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향해 폭력을 휘둘려 대면서 '나를 따르라'고 호령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또 하느님은 이것 저것 마땅치 않은, 도무지 대화 할 구석이라곤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행해, '너희하고는 말이 안돼'라며 떠나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무한한 안타까움으로 하느님은 인간 세계에 개입해 들어오셨습니다. 하느님은 저 먼 곳 어느 곳에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그런 곳에서 독백조로 탄식하는 배우처럼 계신 것이 아 니라, 사람의 세상으로 와서 사람과 대화를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하 느님의 자기 비하', 하느님의 자기 도살' 행위입니다. 더욱이 하느님은 칼을 가진 대장군이나 권력을 가진 왕으로서 군림하면서 호령하는 자가 되지도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평범한 것보다 못한 모습으로 왔고, 그 모습조차도 비하해서 욕설을 한 몸에 받으며 처형당했습니다. 하느 님의 자기 비하, 하느님의 자기 도살은 끔찍스러울 만치 철저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대화법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바울은 하느님의 이런 대화법을 '자유'라는 소재 를 중심으로 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온 세상 만물이 고통 속에 있습니다. 억눌려 있습니다. 보다 강한 자는 보다 약한 자를 내리 누르며 강압합니 다. 자신의 논리대로 타자를 억죄입니다. 또 더욱 강한 자가 그 위에서 똑같이 처신합니다. 마치 먹이사슬처럼 온 세계의 질서, 세계의 문법이 이런 방식으로 구축됩니다. 요컨대 세계 질서의 '안보의 논리'는 억압과 고통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 만물은 고통에 신음합니다. 억눌림 속에서 탄식합 니다. 억죄임 속에서 하늘을 향해 호소합니다. 난도질 당해 땅 위에 뿌 려진 채 하늘을 향해 '피의 절규'를 하는 아벨의 핏덩어리가 됩니다. 그 래서 바울은 고통 속에 신음하는 온 피조물의 '고난'과 '탄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절망뿐임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고난'과 '탄식'의 구조는 전적으로 인간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이 냉혹한 먹이사슬의 구조, 세계의 안보의 논 리를, 아담으로부터 유래한 선악의 논법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 이래 인간은 세상 만물을 선과 악이라는 가치에 따라 구분합니다. 어느 것은 선한 것, 선한 동물, 선한 식물이 되고, 또 어느 것은 악한 것, 악 한 동물, 악한 식물이 됩니다. 나아가 선은 다시 가장 선한 것에서 가장 덜 선한 것까지, 그리고 악은 가장 덜 악한 데서 가장 악한 데까지 세분되 어 가치규정을 합니다. 이것은 세상 만물을 분별하는 지식이 됩니다. 즉 인간의 지식은 세상 만물을 선악의 가치에 따라 세분하여 규정하는 논리 인 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이른바 '율법체계'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 로 율법체계는 악한 것으로 규정된 것을 배제하는 논리체계가 됩니다. 여 기서 율법은 권력과 결합합니다. 악한 것을 배제할 만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체계는 권력에의 욕망과 결합되어 인간으로 하여금 타 인을 배척하고 공격하게 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어느덧 권력 의 화신이 된 인간은 자기 자신마저도 권력으로 정복하려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율법체계를 들이대며 억누릅니다. 그러나 언제나 정교한 지 식에 의해 세목화된 율법체계를 도무지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에 인간은 고통에 빠집니다. 탄식합니다. "아, 곤곤한 나의 존재여, 이 사망의 몸 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리하여 율법체계, 육의 논리가 추구하는 바는 곧 '죽음이다'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절망에 휩사인 채 나락에 떨 어질 대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바로 가장 깊은 곳으로 내팽개쳐진 절망과 탄식 한 가운 데에, 바로 그곳에서 '열망이라는 희망의 꽃'이 피어난다고 말합니다. 아 무리 헤아려도 헤아려지지 않는 그곳에서,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그곳에서 바울은 희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희 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하겠습니까?" 이 희망, 이 열 망이 꿈꾸는 희망, 그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바울은 바로 이것을 '자유 '라고 말합니다. 자유, 그것은 배제하고 억누르고 죽임으로 위협하고 기어이는 죽이 고 마는 그런 진리체계가 아닙니다. 비록 율법체계가 자유를 말할 수 있 고 그 진리에 따라 세상의 질서를 논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정 바울이 말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사망을 가져오는 육의 욕망, 곧 자유의 정반대편에 서 있는 '권력'인 것입니다. 자유는 이 권력에 의해 유린당한, 난도질당해 썩어가는 시체 더미 속에서, 그 한탄과 절규 속에서 터져나온 구원, 해방을 향한 염원입니다. 자유는 권력으로 부터, 그것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염원의 결정체입니다. 자유는 아 무도 배제당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폭력을 휘두르거나 폭행 당하지 않는 그런 신앙고백, 그런 결단 속에서 피어나는 진리체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유의 영이 추구하는 것은 '생명과 평화'라고 선언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본래 율법체계의 논리 속에서 권력의 화 신이자 동시에 권력의 포로였습니다. 끝없이 남에게 고통을 주고 고통 을 받아야 하는,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고통을 주며 괴로워해야 하는 그런 존재입니다. 탄식이 절로 나오는 그런 세계 속에 살고 있고, 우리 자신도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세계의 일원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를 향해 말을 건냅니다. 우리와 대화하고자 합니다. 우리와 당신 사 이에 가로놓인 담을 허물려고 이야기를 건냅니다. 힘으로 권력으로 강압 해서 우리로 하여금 대답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낮추심으로 권력을 포기하고 우리와 대화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억지로 고치 려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우리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 채 우리와 대화 하고자 우리를 향해 오십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기 비하로 나타납니다. 자신을 죽이기까지 하는 그런 철저한 자기비하를 함으로써 하느님은 우리 와 이아기를 만들자고 말을 건냅니다. 이야기는 독백이 아닙니다. 이야기 는 서로가 맞장구치며 대화할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그리하여 결국 남 은 것은 우리의 응답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만듦으로서, 이야기를 지속함으로써 권력을 넘어 서는 삶의 길에 접근해 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지만 동시에 세상에서 살지 않는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 를 권력으로 내리 누르려 하지만, '권력아, 사망의 논리야, 우리는 이미 너를 이겼다' 라고 외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를 향해 폭력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권력을 향해 맞대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아담의 방식으로 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대화법에 따라서 말입니다. 즉 우리를 비하함으로 써, 우리를 비움으로써, 우리를 낮춤으로서, 우리 자신을 죽임으로써 세상 에게 이야기를 건내야 합니다. 세상처럼 우리의 논리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서가 아니라, 세상을 교정하는 권력을 쟁취하려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세상 안에서 말을 건내는 방식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를 위 해서, 세상의 자유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때문에 탄식하는 하느님을 위해 서. 우리도 살아가고 하나님도 살아가고.. 짻SCA.. 우리도 살아가고 하나님도 살아가고.. 짻SCA.. 우리도 살아가고 하나님도 살아가고.. 짻SC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