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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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AYANNIE (축복의이슬)
날 짜 (Date): 1996년03월05일(화) 08시05분01초 KST
제 목(Title): 예수가 떠난 뒤 남자들은 다시 돌을 던졌다


다음 글은 순신대 신방과 안정임 교수님의 글로

빛과 소금 95년 12월호에서 퍼온 것입니다.



<<도덕적 안테나를 뽑아버린 은밀한 가르침>>

-- 동성애, 깨진 혼전 순결이 미화된 "째즈", "베스트극장" --


요즘 텔레비전에는 성의 문제를 대담하고 노골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부쩍 많아졌다. 얼마 전 막을 내린 SBS의 드라마 '째즈'는 일부 신세대 젊은이들의

방향 잃은 성의식을 다루어 화제를 모았고 거기에는 동성애적 관계를 암시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텔레비전의 시청 공간이 가정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것은 상당한 파격이었다.



그러한 파격은 비단 '째즈'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요일 밤 방송되는 MBC의

'베스트 극장'은 최근 성을 소재로 한 노골적인 두 편의 드라마를 내보냈다.


방송이 되기 전부터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로 요란하게 선전을 했던

'두 여자의 사랑'과 '예수가 떠난 뒤 남자들은 다시 돌을 던졌다'라는

충격적인(?) 제목의 드라마가 바로 그것이다. '베스트 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의 수준이 정말 '베스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데는 '베스트'가 이름값을 독톡히 한 것만은 틀림없다.


<게이바, 자유분방, 간음한 여인>

우선 이들 드라마의 내용을 살펴보자. '두 여자의 사랑'은 말 그대로 함게 사는

두 젊은 여성간의 동성애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남성적 성향을

갖고 있던 여자가 자신의 친구에게 야릇한 감정을 느끼면서 겪게 되는 갈등이

주된 줄거리이다. 결국 동성에 대한 사랑을 고민하던 주인공은 남장도 해보고

게이바를 드나들기도 하면서 방황하다가 자살을 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한편 '예수가...'는 자유 분방한 이성 교제를 즐기던 한 독신 여성이

우연히 만난 연하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복잡한 과거 때문에 맺어지지

못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드라마는 그런 여자를 사랑하긴 하지만

끝까지 인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 주인공의 고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결론은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그 남자가 '간음한 여인'에게 돌을 던진

사람이라는 것으로 맺어진다. 말하자면 예수님 조차 그런 여자를 용서하셨는데

세상은 여전히 그를 단죄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드라마는 자유 분방한 성의식을

옹호하는 묘한 정당화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두 편의 드라마 모두 큰 관심을 가지고 시청하였다. 그러면서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을 이들 드라마가 모두 주인광들을 무척이나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점이었다.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자살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은 평범한 성장 배경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착한 여성이었고, 돌을 맞은 여주인공 역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간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었다. 즉 이들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삶을 원하지만 세상의 냉대로 인해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불행한 '인간'들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비록 드라마의 종말이 자살이나 파혼 등 불행으로 끝나지만

그것은 주인공들의 행위에 대한 단죄의 메세지로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은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텔레비전이 가족매체라는 가만할 때 동성애를 인정하거나 혼전 순결을

무시하는 파격적인 결론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결말은 비극이었지만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시선은 분명 그들에게 매우

호의적이었다.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주의해야 할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영향을 받는 것은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가 보다는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어떤 뉘앙스나 사소한 말 한마디, 또

행위 하나이다. 다시 말해 텔레비전은 영상매체의 속성상 전체적인 주제보다는

구체적인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우리들은 쉽게 등장인물을

동정하거나 연민을 느끼게 된다.


<아이를 여러번 지우는 '어쩔 수 없는 사랑'>

'예수는...'에서는 여주인공이 마음에 드는 남자와 쉽게 잠자리를 같이 하고

그로 인해 생긴 아이를 몇 번씩이나 지워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행위만을 놓고

얘기를 하면 당연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의 눈물과 고통을 보면서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할 수도 있다.


'두 여자의 사랑'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동성애의 문제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불행을 안타까워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가 저런

사람들을 판단할 권리가 있는가', '저런 사람들도 사회가 용납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텔레비전의 무서운 영향력이다. '동성애도 괜찮다', '혼전 순결은

불필요하다'라고 직접적으로 얘기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감을 표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한 주인공의 애절함을

통해서 그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방법으로 우리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미디어에서 다루는 성의 문제를 신체 노출의 정도로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나 노골적으로 벗었는가, 어떤 성적 행위가 이루어졌는가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우리의 성의식 자체를 뒤흔드는 은밀한 메세지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텔레비전이 제시하는 메세지가 우리에게 즉각적인 태도의 변화나 모방

행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중요한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성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가진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할까 말까를 망설일 때 '남들도 그러는데

뭘'이라는 생각은 커다란 유혹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는 '거룩과 순결'의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수많은 크리스쳔

젊은이들이 혼전 순결의 서약을 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자로 살아갈 것을

약속하고 있다.


텔레비전과 매스 미디어를 가르치는 나로서는 이것이 얼마나 필요한 운동인 지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젊은이들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맺어두지 않는다면

텔레비전에서 스며나오는 비거룩과 비순결의 목소리들로부터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얘기해본 크리스쳔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째즈'나 '두 여자의 사랑' 등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물론 동성애나 무분별한 성의식을

인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등장 인물들의 삶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동성애와 혼전 순결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텔레비전이 그것을 얼마나 아름답게

포장하고 미화하든 우리가 따라야 할 말씀은 오직 하나 뿐인 것이다.   


요즘 우리 텔레비전은 '인간적'이라는 포장법을 통해 아주 중요한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고 우리의 의식을 흐려 놓는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성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의 가치 전체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 마디로 텔레비전이 세상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위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크리스쳔들도 텔레비전의 숨겨진 메세지를 읽어내는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예수가 떠난 뒤 남자들은 다시 돌을 던졌다'와 같은 제목의 프로그램이

등장하는 마당에 텔레비젼은 관심 밖이라고 외면만 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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