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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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HAYANNIE (축복의이슬)
날 짜 (Date): 1996년02월23일(금) 23시49분03초 KST
제 목(Title): RE: 하야니님께 (part II)


>그렇다면 그 근거란 "성경은 진리이며 난 믿는다."가 되겠군요. 따라서 "권위에
>의한 개념의 인식이 (어떤 형태인지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서) 있었을 것이다."가
>되겠구요. 이제 님의 주장에 대한 이해가 (동의가 아닙니다.) 좀 되는군요.

단순한 믿음에 근거가 아님을 이해하시는지요? 성경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씀드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믿지 않는 분들에게야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 있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또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거꾸로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말인지 이해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죄에 대한 인식의 문제를 권위에 의한 인식으로만 자꾸 한정시키시는데

그것이 중요하긴 해도 전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담에게 이성과 하나님  

말씀의 "경험"의 기회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것이니까여.


>제 주장의 초점은 "경험과 이성이 따르지 않는 권위는 없다."입니다. 하야니님의
>전 글에서 "이성과 경험도 필요하지만 권위가 인식의 중요한 부분이다."에 대한 답
>입니다. 즉, 하야니님께서는 권위가 이성, 경험에 대한 상위 개념으로 생각하시는데
>반해 전 이성과 경험의 결과로 보는 겁니다. 만약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왜 권위가 (인식에 있어서 이성이나 경험보다) 가장 중요한지 설명하시면 됩니다.
>내용과 관계없는 "빙하기라면.."이란 가정이야말로 '말꼬리를 잡는 것' 아닌가요?

저의 권위의 정확한 뜻은 오히려 신뢰라고 해야겠군요. 우리가 아무리 이성과

경험으로 인한 인식이 있을 지라도 그를 매개로하는 대상에 대한 아무런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울브린님께서는 울브린님의 성함이 "XXX"임을  

이성과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도 있지만 이미 거기에는 울브린님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이미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죠.

경험과 이성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어떤 대상에 관한 

신뢰라는 귄위가 들어와야 분명한 인식이 가능해지는 것이죠. 이성과 경험은   

권위만큼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죠. 이성은 다만 이성에 의해 알 수 있는 것,  

가령 2+2=4, 혹은 모든 독신 남자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라는 사실 정도를

이성이 말해 줄 수 있죠. 경험도 마찬가지구여.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지하는

부분 중 아주 작은 부분만이 그런 류의 정의에 의존합니다.

한편, 이러한 이성과 경험은 예컨대 길을 건너는 것이 안전한 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해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안전하다고 믿고 건너는 것이죠.

무엇인가 100 퍼센트 확신을 못하면서도 완전히 믿고 길을 건너는 것이죠.

그것은 완전히 입증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신뢰를 뜻합니다.

(참고로 이런 결정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선악과 사건에 있어서 경험이란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지요.
>따라서 일부 동의합니다. 다른 점은 "충분하지 않다."가 아니라 "없다."의 차이지
>만요. 그러나 전에 무슨 말을 하셨는지 혼동을 하고 계신 듯합니다. 하야니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인식에 있어서 권위가 중요하다."였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예를
>드셨지요. (백악관 - 워싱턴, 지구의 공전) 그런데 그 시점이 선악과 사건 때가
>아닌 현재인 점이 문제입니다만.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인식이란 점을 상기해 주
>세요. 분명히 백악관, 지구의 공전은 다른 예입니다.) 아무튼, 왜 "경험의 주체와
>권위의 대상"이란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의 상태에 대해서 불확실한 점들을

누누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고 저의 답변은 그 상태에 대해서는 울브린님께는

불충분했구여.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아담과 하와의 경험적 지식으로

되었을 때는 이 모든 것이 적용가능합니다.

또 경험의 주체와 권위의 대상이란 말은 제가 든 예에 대한 혼동이 있어서

그렇답니다. 천문학자와 그 권위의 경우 경험적 인식이 일어나는 관계는 자연과

천문학자입니다. 그러나 권위로 인한 인식이 일아나는 관계는 천문학자와 그의

말을 듣는 사람이죠. 결국 주체와 대상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이것도 우리가 자연 현상의 규칙성에의 신뢰라는 권위에

의존하고 있죠.


>하야니님께서 (개인적으로) 빼시건 안빼시건 성경 내용은 그래로입니다. 그 속의
>모순점도 그래로이구요. 게다가 '유혹' 등의 개념들이 성경 해석에 필요하건 그렇
>지 않건, 성경에 - 오류가 없어야 할 기록 - 그런 내용이 있고 그런 식으로 해석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울브린님께서 말씀하신 오류란 무슨 뜻인지요?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오류는 없지만, 인간 기록으로서의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입에서 그냥 땅으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왜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모순이 아닐 가능성을 계속 아규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만약 울브린님께서 믿으실 수 있는데도 (믿으라고 강요하는

거가 아닙니다.) 그러한 것 때문에 못믿겠다고 하시길래 하는 일종의 전도차원의

시도입니다(스스로의 확신에 자신이 있으시다면 이런 말에 토론을 그만하시지는

않으시길 바랍니다.) 물론 영이 깨이고 마음이 열리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은

전적으로 아니지만요.(이 말씀은 이 글을 읽으시는 다른 분들까지 고려해서

하는 말입니다.)


>전에도 말했습니다만, 원죄 - 구원의 인과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원죄라는 개념은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만 인류가 평안을 얻도록 고안해낸 덫
>이군요. 과연 그런 것을 죄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뱀의 유혹
>(사실 문제가 많은 개념입니다만)이 없었어도, 어차피 인류는 하나님을 거역하도록
>설계된 '문제많고 결함있는' 존재로군요. 그렇다면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도
>자신의 뜻에 따르기를 기대한 하나님에게 뭔가 문제가 있긴 있네요.

하나님 맘대로 하시는 것을 우리가 뭐라고 하겠어여.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완전자가 우리를 만드신 분으로서 계시다면 그 분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분명한 죄입니다. (물론 울브린님이야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다고 전제하시고   

보시니까 이 부분도 계속 순환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그것이 죄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왜 아담과 이브가 찍소리도 못하고 쫓겨나나요?

하다못해 잘못한 것인 줄 몰랐다고 발버둥치겠군여. 저라면.

하나님을 거역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꼭 설계 잘못일까요? 잘못이라면 너무 잘

만든게 잘못이겠죠.


>없는 나무를 있다고 하는 것이나 있는 나무를 없다고 하는 것이나 오류가 있다는
>점에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하야니님과 없다고 믿는 저 중에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것은 (그 존재에 대해 증명할 수 없는 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토론에서도 의미가 없는 것이죠.

옳고 그름과 믿음의 문제는 별개이며, 또 증명 가능과 믿음의 문제도 별개라고

생각해요. 울브린님께서는 하나님의 부재 혹은 존재가 증명된다고 해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기독교의 하나님'은 모순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모순이 있다
>면 그 존재는 없는 겁니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런 식의 말장난은 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이 모순이 없는 존재인지 있는 존재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또 모순이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고요? 모순이 없다와 한결같다는 말은

성경적 의미에서 보면 다른 말입니다. 또 사람의 눈으로 모순인 것이

무한한 존재에게도 모순일런지요. 문제는 늘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은 완전자이기 때문에 모순이 없는 존재여야만 하는 것인가요?

거꾸로, 완전자이기 때문에 모순이 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죠.

완전이라는 개념은 늘 모순을 낳는 것을 아시는지요?

이것은 좀 다른 예이지만 울브린님께서는 한 분이 삼위라는 것도 모순으로

생각하시는지요?

모순이 있다면 그 존재는 없는 것이다. 가령 창과 방패와 같이 우리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다시 한 번

묻습니다(대답을 안하셨기에).

"절대자의 모습이란 무엇인가요? 울브린님께서 존재 여부를 모른다고 하시는 그

 절대자는 어떤 모습이죠? 혹 사람의 관념과 테두리안에 속박된 절대자는
                         ~~~~~~~~~~~~~~~~~~~~~~~~~~~~~~~~~~~~~~~~~~~
 아닐런지요? 결국 어쩌면 유한함으로 무한함을 이해하려는 것은 자연스런   
 ~~~~~~~~~~
 모순을 낳는 것이 아닐런지요?"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쉽게 말하면, 누가 어떤 종교를 믿던지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뜻이죠. 물론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종교

그런데 왜 모세의 신앙에는 그리도 관심이 많으시고 모세의 믿음에는 왜 그리

불평이 많으신지요? (하나님은 사랑이 아니고, 모순이 있는 존재라 없는     

존재다 등) 왜 모세의 신앙의 기록을 거짓이라고 주장하시는지요?

모세가 이 세상에 없는 게 이유는 아니겠지요? :)

(울브린님의 위의 말씀하신 태도, 해가 없으면 관심이 없다라는 것의 예를

 드신 것은 (크리스쳔이면 더더욱) 누구나가 가져야할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장사군은 예외입니다. 전 시끄러운 걸 싫어하거든요. 제가 님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시다면 유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주장과 다른 것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요?

울브린님의 주장 자체가 저와 다르기 때문에, 제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리 말씀드릴 것을 그랬군요. 하나님을 아는 자가
 
모르는 자에 대해 갖는 보편적인 마음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견 차이에서 오는

답답함하고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죠. 울브린님께서 저의 주장에 동의하시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데 그것으로 인해 마음이 아프지는 않겠죠.

(주: 지하철에서의 종교장사군이란 예수님 믿으라고 다니면서 떠드는 사람들을

     말씀하시나요? "종교 장사"란 무슨 뜻이에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거니까   
 
     오해 없으시길.)


>이 많았지요. 좀 터무니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만.. 하야니님께서 그 질문을 하셨
>다는 것은 그런 말을 들었다는 증거이고, 그 말을 한 사람이 원조 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사이비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오해를 했다면 사과합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으시나요?

하하하 그래요. 제 글들이 조금은 천주교에 대한 감정이 있는 듯하게 들리셨을 
 
수도 있었겠네요. 실은 얼핏 지나치면서 그렇게 들었던 내용이 설마? 그럴리가?

하면서 너무나 이상해서 그런 표현들이 나왔던 거죠. 주로 친구들한테 그렇게

들어요. 불확실한 소스이기 때문에 이 보드에서 다시 묻는 것이고, 교회의

목회자님들은 가급적이면 조심해야할 문제이므로 언급을 안하시더라구여.

알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시고.
 

>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님의 글에 담긴 주장에 동감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

>니다. 말 그대로, 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겁니다. 제가 쓴
>것을 다시 올리지요.
>"성경이면 충분하며 교리는 필요없다. 신학은 이단을 구분하는 필요악으로서 존재
>한다. 성경 해석의 차이가 있어서 신학이 존재한다. 성경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
>성경은 자기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신학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아니다."
>윗 글은 님께서 쓰신 글을 정리한 겁니다. 각 문장은 나름대로 뜻을 갖고 있습니다
>만 전체적으로는 일관된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겁니다.
 
앗.. 죄송해요. 주어 생략 문장을 잘못 이해했군요.

교리라는 말도 어쩔 수 없이 존재하며, 신학 역시 필요악으로 (단순한 기독교의  

방패막이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은

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깊은 해석이 없어도

않아도 성경의 중요한 메세지는 얼마든지 이해가 가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신도에게 신학이 있어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죠.



>물론 저 나름대로의 자신이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성경에 있습니
>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절대자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중 하나를 지금 토론하고 있지요.
 
다시 물어볼게요.

울브린님께서 생각하시는 절대자의 모습이 궁금해요. 그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않습니다. 좀 정확히 말한다면, 일부 개신교의 광신자들에게는 감정이 있습니다.
>종교 장사군들에게도 그렇고 한국을 기독교 국가(정확히는 개신교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신이상자들에게도 감정이 있습니다. (그 어떤 종교라 하더라도, 종교가
>국가를 지배하는 체제를 반대합니다.) 감정을 갖는 (또는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사회에 해가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제 생각과는 별개입니다. 광신자들의 행태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
>면요.

우선, 논외의 이야기가 저로 인해 나왔지만 나온 김에 말씀드립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광신자, 울브린님께서 말씀하신 종교 장사군, 또 위와 같은

정신이상자들, 모두가 진정한 크리스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조심스러운 것은 이것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해요.)

"광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죠. 진실되고 올바른 믿음을 소유한 자는 절대로

세상이 말하는 "광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광신을 두가지로 봅니다.

1. 세상이 이야기하는 "광신"

   어쩌면 정말 미친 사람들이다. 아니면 이단이다.

   어쩌면 예수님을 잘못 사랑해서 미친 것일 수도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미쳤다고 한다(예: 92년 10월 휴거 주장하던 사람들은 뭐지?)

2. 크리스쳔의 "광신"

   예수님한테 너무 미친 것이 문제다.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 문제다.

   믿음이 너무나 신실하고 올바로 서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 사람들 보고 예수쟁이라고 할 수는 있을 지 모르지만

   미쳤다거나 "광신자"라고는 이야기 하지 않으며 할 수도 없다. 티가 안나니까. 

   그들은 모두 세상의 빛과 소금이자, 모든 일들을 주께 하듯 하는 사람들이니까.

   나도 이런 "광신자"가 되고 싶다. 그러나 이런 "광신자"가 주위에 얼마나 

   되는가? 한국 교회에 얼마나 있을 것인가?

   우리는 1번의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고 다만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기독교의 본질은 잘 아시겠지만 세상이 이야기하는 "광신"과는 무관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세상 것을 사랑할 때 주님의 그 마음 아프게

  한다네.//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수아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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