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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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wolverin (GoBlue)
날 짜 (Date): 1996년02월22일(목) 11시25분52초 KST
제 목(Title): 하야니님께 (part II)


> 저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이미 "죽는다"는 개념을 이들이 몰랐다면 그렇게
>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 근거란 "성경은 진리이며 난 믿는다."가 되겠군요. 따라서 "권위에

의한 개념의 인식이 (어떤 형태인지 가능한지 여부를 떠나서) 있었을 것이다."가 

되겠구요. 이제 님의 주장에 대한 이해가 (동의가 아닙니다.) 좀 되는군요. 


> 한편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분명한 경험적 이성적 인식이 그리고 권위에 의한
> 인식이 모두 다 일어났음에는 동의하시죠?

부분적으로 설명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해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선악과 이전이

설명이 안되는 상황에서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권위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 약간 말꼬리를 잡히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원시적인 부족이 경험만으로
>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지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는 것을?
> 저도 말도 안되는 가정을 해보죠. 빙하기라면?

제 주장의 초점은 "경험과 이성이 따르지 않는 권위는 없다."입니다. 하야니님의

전 글에서 "이성과 경험도 필요하지만 권위가 인식의 중요한 부분이다."에 대한 답

입니다. 즉, 하야니님께서는 권위가 이성, 경험에 대한 상위 개념으로 생각하시는데

반해 전 이성과 경험의 결과로 보는 겁니다. 만약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왜 권위가 (인식에 있어서 이성이나 경험보다) 가장 중요한지 설명하시면 됩니다.

내용과 관계없는 "빙하기라면.."이란 가정이야말로 '말꼬리를 잡는 것' 아닌가요?


> 또한 경험을 하는 주체와 권위의 인식이 일어나는 대상간에 혼동을 하고 계신듯
> 합니다. 선악과 사건 이전의 문제에 경험이 논의될 수 없기에 경험이 인식에
> 있어서 얼마나 충분치 못한가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선악과 사건에 있어서 경험이란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지요.

따라서 일부 동의합니다. 다른 점은 "충분하지 않다."가 아니라 "없다."의 차이지

만요. 그러나 전에 무슨 말을 하셨는지 혼동을 하고 계신 듯합니다. 하야니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인식에 있어서 권위가 중요하다."였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예를

드셨지요. (백악관 - 워싱턴, 지구의 공전) 그런데 그 시점이 선악과 사건 때가

아닌 현재인 점이 문제입니다만.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인식이란 점을 상기해 주

세요. 분명히 백악관, 지구의 공전은 다른 예입니다.) 아무튼, 왜 "경험의 주체와

권위의 대상"이란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 그런가요? 꼭 필요하지 않아도 될텐데요? 중요한 것은 인간이 자신의 선택의
> 남용으로 (인간은 분명 무엇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 낼 수
>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는 것이죠. 뱀의 유혹을 원죄의 설명에
> 구지 빼버릴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선악과의 문제만이라면 그렇게 중요하게
>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안 그러면 자기 모순이게여?

하야니님께서 (개인적으로) 빼시건 안빼시건 성경 내용은 그래로입니다. 그 속의

모순점도 그래로이구요. 게다가 '유혹' 등의 개념들이 성경 해석에 필요하건 그렇

지 않건, 성경에 - 오류가 없어야 할 기록 - 그런 내용이 있고 그런 식으로 해석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 (이것은 분명 제 개인의 견해지만, 뱀은 구원 사역과 하나님의 찬란한 승리와
> 영광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인간에게 죄를 불러 들이게 하는데는 그다지
> 필수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뱀이 없었어도 결국 선악과
> 따먹었을 걸여?)

전에도 말했습니다만, 원죄 - 구원의 인과관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결국

원죄라는 개념은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만 인류가 평안을 얻도록 고안해낸 덫

이군요. 과연 그런 것을 죄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게다가 뱀의 유혹

(사실 문제가 많은 개념입니다만)이 없었어도, 어차피 인류는 하나님을 거역하도록

설계된 '문제많고 결함있는' 존재로군요. 그렇다면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도

자신의 뜻에 따르기를 기대한 하나님에게 뭔가 문제가 있긴 있네요.


> 적절치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또 제가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계속 있다고
> 주장한다는 말씀인지요? 기독교의 하나님을 모순을 가진 존재라고 해서 타당한
> 존재가 못된다고 해서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타당성만이 늘 참을 가져다주는
> 것은 아닐텐데요.

없는 나무를 있다고 하는 것이나 있는 나무를 없다고 하는 것이나 오류가 있다는

점에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믿는 하야니님과 없다고 믿는 저 중에

누가 옳은가를 따지는 것은 (그 존재에 대해 증명할 수 없는 한)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하나님'은 모순이 없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모순이 있다

면 그 존재는 없는 겁니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이런 식의 말장난은 더

하고 싶지 않습니다.


> 감히 말씀드립니다. 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많은 기독교인들의 가슴을, 또 그
> 보다 훨씬 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 자체에
> 관심 없는 것이 참 진리와 절대자를 찾는 자세에의 관심까지 저버리시는 것은
> 아니겠죠? ..

잘못 이해하셨군요. 제가 명확하게 쓰질 않았나 봅니다. 그러나 그 귀절은 여러 번

반복되었었는데 왜 이번에만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해가 되지 않는 한"이란 말은

"믿음이 저에게, 제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이란 뜻입니다. 예를 들자면,

타 종교(또는 그 믿음을 갖지 않는 대상, 이하 생략) 시설물을 때려부수지 않는 한,

타 종교 상징물을 고의로 훼손하지 않는 한, 타 종교인을 모욕하지 않는 한, 공공

질서에 반하지 않는 한 그 믿음에 별 관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쉽게 말하면, 누가 어떤 종교를 믿던지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는 뜻이죠. 물론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종교

장사군은 예외입니다. 전 시끄러운 걸 싫어하거든요. 제가 님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해서 가슴이 아프시다면 유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주장과 다른 것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요?   


> 또 한번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무슨 근거로 원조 싸움이라고 생각하시는
> 지요? 예전에 쓴 글들이 어땠기에여? 저는 카톨릭에 대해 모르므로 조심스럽게
> 이야기를 했으며 여전히 카톨릭의 교리의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똑같은 주님을
> 모시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제가 잘못 이해했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원조 싸움에 열심인 사이비들(자신의

교회에서는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할지도 모르지만)이 많이 있기 때문에 오해를 했

나 봅니다. 님의 글에서 보면 "천주교에서는 이러이러하다는데 사실이냐?"는 질문

이 많았지요. 좀 터무니없는 내용들이었습니다만.. 하야니님께서 그 질문을 하셨

다는 것은 그런 말을 들었다는 증거이고, 그 말을 한 사람이 원조 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사이비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오해를 했다면 사과합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으시나요?


>> 님께서는 윗 글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는 몰라도, 저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 단어들의 연속일 뿐입니다. 확실한 것은 한글로 씌여졌다는 정도지요.
> 그것은 어쩌면 울브린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관심이 없어서인지도
>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니까요.
> ..
> 가령,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제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런 구절까지도
> 전혀 알아들으실 수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님의 글에 담긴 주장에 동감하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

니다. 말 그대로, 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겁니다. 제가 쓴

것을 다시 올리지요.

"성경이면 충분하며 교리는 필요없다. 신학은 이단을 구분하는 필요악으로서 존재

한다. 성경 해석의 차이가 있어서 신학이 존재한다. 성경을 해석할 능력이 없다.

성경은 자기 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신학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아니다."

윗 글은 님께서 쓰신 글을 정리한 겁니다. 각 문장은 나름대로 뜻을 갖고 있습니다

만 전체적으로는 일관된 어떤 의미도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겁니다.


> 무엇이 비약이나 추측인지요?
> 저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예를 들었을 뿐입니다. 심지어는 그것 조차도
> 보는 견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 걸여?

오해가 있었군요. 전 제 글에서의 '모순'에 대한 답으로 생각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군요. '구체적인 예'가 무엇에 대한 예인지 설명이 없어서 잘못

이해했습니다. 다시 읽어보고 대답을 드린다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랑이냐 아니냐가 되겠죠." (<- 하야니님의 글에서 인용합니다.)


> 절대자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신다고 하시면서 기독교의 하나님이 절대자의 모습이
> 아니라고 어떻게 그렇게 자신에 차게 확신하시는지요? 그 하나님이 절대자일
> 가능성은 열어 놓지 않으시는 것인지요?

물론 저 나름대로의 자신이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성경에 있습니

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절대자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물론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중 하나를 지금 토론하고 있지요.

  
>                                    .. 아니면 하나님이 아니라 차라리
> 기독교 및 교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이 있으신지요?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 묻지 않기로 하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계속 부인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에 대한 감정은 없습니다. 어떤 종교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감정은 갖고있지

않습니다. 좀 정확히 말한다면, 일부 개신교의 광신자들에게는 감정이 있습니다.

종교 장사군들에게도 그렇고 한국을 기독교 국가(정확히는 개신교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는 정신이상자들에게도 감정이 있습니다. (그 어떤 종교라 하더라도, 종교가

국가를 지배하는 체제를 반대합니다.) 감정을 갖는 (또는 반대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사회에 해가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제 생각과는 별개입니다. 광신자들의 행태가 기독교의 본질이 아니라

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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