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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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경 수)
날 짜 (Date): 1996년02월03일(토) 15시30분09초 KST
제 목(Title): 앞 글에 이어


삶의 가장 비참한 순간에 예수님을 만난 행악자, 저는 바로 제 얘기를 성경을 빌어 
전하고 싶었습니다만, 어떠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제가 부흥성회 때 자주 
들을 수 있는 그러한 부흥강사님들의 간증과 같은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면 돌이켜볼수록, 또한 그 본질을 
깊이 생각해보면 볼수록, 제 삶의 겉모습이 어떠하던 간에 제 자신의 처지가 그 
행악자와 동일했다는 점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점은 아마 모든 
크리스찬이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신앙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바울도 스스로 
고백하기를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라 하였지요.

'죄인'이라는 말, 어찌보면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들 중에 하나일 겁니다. 
어저께 불교보드를 잠시 들렸었는데, 어떤 분이 기독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논하기를, 간략히 말하면, 기독교는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여 그 구원을 
하나님이라는 외적 존재에 의지하여 죽도록 노력하다가 잘 되면 그 죄를 
사함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인생은 죄인으로서 끝난다고 하더군요. 또한 불교는 
죄란 본시 없으며 스스로의 완성을 남이 아닌 자신에 의지하여 이루어 가는 
자유로운 삶의 양식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드러난 삶의 형태를 보고 
논하자면, 그 말이 하등 틀린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저 자신, 스스로 어렸을 때 
불경을 열심히 읽었고, 또 중학교때는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을 읽고 인생을 
불붙은 뜨거운 집, 즉 화택에 비유하며 출가를 강력히 권고하는 대목에 감동을 
받아서 출가를 결심한 적이 바로 엊그제 같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절대자 또는 
절대의 존재가 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어떤 분이 "범아일여"라 하는 불교의 
외도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더군요) 는 그 불교의 사상이 어린 제 마음을 감동시켰던 
것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불교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말들이 더 
많이 있지만 혹 제 짧은 지식으로 누를 끼칠지도 모르니 이만 하겠습니다.

다시 '죄'의 문제에 들어와서 왜 많은 사람들이 '죄'라는 단어를 혐오하고 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를 생각해보면 그 반응 자체에 어떠한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았습니다. 죤 스토트가 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책을 보면 특히 19-20세기에 들어와서 의학과 심리학의 제반 분야에서 활발히 
이루어진 인간의 죄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에 대한 분석과 그 분석의 결과로서 
나온 여러 가지 처방들이 어떻게 사람들의 죄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소간 알 수 있습니다. 즉, 의학자 심리학자들은 가르치기를 많은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내재적인 죄에 대한 불안감이나 히스테리는 하나의 고쳐야할 
질병일 뿐,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들을 통해 그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근원적인 죄의식을 희석시켰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연구결과들을 통해 우리가 얻은 긍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바와 같은 실제로 드러나는 범죄들의 만연과 
그 범죄의 결과들에 대한 책임 회피입니다. 즉, 이 범죄는 내 자신의 죄라고 
인정하기보다는 부모의 탓이다, 가정의 탓이다, 학교,직장, 사회의 탓이다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변명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적절한 예가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 지존파가 경찰에 붙잡힌 직후의 인터뷰 광경을 우리 
모두는 잘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즉,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한 죄의식이나 후회, 
또는 반성은 전혀 없이 오로지 서초, 강남의 오렌지족들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고 붙잡힌 것이 한스럽다고 당당히 밝히던 그들의 눈빛을 저는기억합니다. 
물론 그 말도 어느 정도 맞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조적인 원인이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덜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은 이러한 들어난 죄가 아니라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또는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성향이 원인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많은 가능성을 지닌 위대한 존재지만, 그 위대함 만큼이나 많은 모순을 
지니고있음을 또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의 글을 보니, 그러한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성경에서 주장하는 그 분의 전지전능하심에 
비추어 말이 되지않는다고 한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인간의 현 상황은 창조시에 의도했던 원래의 
목적에서 뒤틀어져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 뒤틀어진 상태가 타락이요, 
또한 죄라고 말할 수 있겠죠.


저는 성경을 통해서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뒤틀어진 나 (수긍하지 않는 분들을 
생각해서 우리가 아닌 나라는 단어를 적용했습니다.) 의 본 모습을 직시할 때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얼마나 절실한 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반면, 그러한 상황을 절실히 깨닫게 되면 될수록 저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크게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명확히 인식했다는 사실은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또한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반복하지만, 저는 
예수님을 통한 인간의 본 모습의 회복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의 이러한 글을 일고 겨우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장광설을 펼쳤느냐고 비난하신다면 사실이니 그 비난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한 번 자신의 삶과 그 속사람의 본질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삶에 
대한진지한 자세를 잃지 말아 주십시요. 저는 물론 그러하기를 소망하지만, 그러한 
끝에 나온 결론이 예수그리스도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우리 모두가 완전히 알 수는 
없기에 또한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이 완전한 것은 아니기에 마음을 연 
상태로 살아나간다면 언젠가는 서로가 통하는 날이 오겠지요.
* P.S. * ㅤ부연하자면, 제 짧은 군 생활동안 가장 내게 깊은 도전과 감명을 주었던 
친구는 같이 교회를 다니며 성경을 함께 토론했던 사람들 중에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 학교 경영대학원을 나와서 지금은 출가하여 스님이 된 한 친구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와 나는 처음에 한 내무반을 썼을 때에는 서로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를 하지 못하여 약간의 상처도 주었지만, 그 뒤에는저 자신 누구보다도 
그를 좋아했습니다. 그가 혹시 이 글을 볼 수 있다면 좋겠군요. 아직도 말하는 
대로 살지 못하는 나의 단점을 지적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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