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경 수) 날 짜 (Date): 1996년02월03일(토) 13시53분58초 KST 제 목(Title): 기분 좋음(2) 글이 자꾸 깨지곤 해서 이렇게 중간에 글을 나누어 올리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요. 지금부터 저는 자유로운 마음으로 시간이 허락하는 한 굇邦� 쓰고 싶습니다.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기 오신 여러분들을 과연 어떻게, 그리고 왜 예수님을 알게, 그리고 믿게 되었습니까? 물론 알기는 하지만, 믿지 않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죠. 아마 크리스찬이라 자칭하는 저도 혹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도록 하는 데에 일조를 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삶이 나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과 나 스스로를 너무나 자주 실망시켜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을 믿기 전이나 믿고난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그 분을 믿고 의지한다는 그 사실하나를 제외한다면,... 사실은 강 민형님이나 양 희수님처럼 논리적이고 치밀한 글으 써볼까도 생각했지만, 프로젝트에 너무 많은 힘을 뺏긴 지금 이 시점에서는 제게는 너무도 무리인 것 같아서 붓 가는대로 (즉, 손가락이 키보드위를 노니는 대로) 글을 적어봅니다. 저는 제가 흔들리고 어려울 때 늘 되돌아보는 제 신앙, 아니 제 삶의 출발점이 있습니다.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한 광경은 누가복음 23장 39절 이하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골이라 불리는 한 산의 꼭대기에 지금 세 명의 사내들이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못 박혀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수 많은 군중들은 그 세 명 가운데에서도 유독 나약해보이는 가운데에 매달린 한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하고, 저주하며 비웃기를,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라고 외칩니다. 힘이 들어 축 늘어져 있던 나머지 두 사람 중의 한 건장한 사내가 이말을 듣자 그도 곧 이렇게 외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가운데 매달린 사내는� 여전히 반응도 없이 묵묵부답입니다. 만일 여기서 성경이 전하는 그 장면이 그렇게 끝이 났더라면 어떠했을까하고 저는 생각을 해봅니다.그러나 성경은 계속 기록하기를,맞은 편에 매달려 있는 다른 한 사내가 이렇게 얘기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리나." 그리고 그는 이어서 가운데 매달린 그 사내를 향해 이렇게 나직이 얘기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생각하소서!"... 왜 "구원하소서!"가 아닌 "생각하소서!"일까? 그러나, 저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바로 그 사내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 자신이 예수와 함께 골고다 언덕에서 자신의 죄로 인하여 벌거벗긴 채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야만 하는 그 한 사내였습니다 (성경은 그들을 행악자라고 지칭하고 있지요.). 차마 자신을 돌아볼때, 구원해달라는 말을 할 수 조차 없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인지하고, 이제 잠시 후에 죽음이 그 곳에 매달린 세 사람에게 찾아올 때에, 죽은 뒤에 영혼이 있는 지, 있다면 그 영혼이 어디로 가는 지는 잘 모르지만, 분명한 한 가지, 가운데 매달린 그와 나는 서로 다른 곳에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에게 자신을 생각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죽은 것 같이 매달려 있던, 가운데에 있는 그 사내가 조용히 입을 엽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자신을 생각하기만 해달라던 그 사내 - 바로 나 - 조차 기대하지 않던 말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