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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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juhan (+ 도 니 +)
날 짜 (Date): 1996년01월19일(금) 00시16분27초 KST
제 목(Title): [ 아버지의 모습 ]



아버지가 처음에 그교회에 부임하셨을 적에, 정말 중학생이던 내 눈에도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부산 중심가에서 살다가 서울 변두리로 온 그 느낌, 지금이야 모두

아파트 밭으로 변해버렸지만, 당시의 그곳은 정말 논, 밭 투성이의 동네였다.

400 여명의 교인이 있던 부산을 떠나서 40 여명이 모인 서울의 한 교회로 오신 

아버지는 평소에 하시던대로, 부지런히 목회를 하시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나는

평생 아버지가 전도대회나 부흥회, 또는 전도지를 길에서 나누어주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설교준비하시고, 강의나가시고, 공산권 선교에 보다 더 열을 쏟으시고...

사실 아버지는 교인이 50명도 안되는 교회의 목사이면서도 소위 자가용이란 것이 

있었다.  70년대에 자가용을 굴리는 목사는 그리 많지 않았고, 그래서 주위에서

별로 좋지않은 말을 듣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셨다.

    - 심방, 공산권선교, 강의를 갈때 성경 옆구리에 끼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초라한 목사상을 사람들은 원한단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그런다면 존경

      할 것 같니?  아니야.. 오히려 목사가 가진것 없다고 더 깔보게 된단다.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그런 소리는 들을 필요가 없어. 

고1때, 교회의 의식있다고 하던 대학부 형들이 내앞에서 아버지의 자가용을 욕하는

소리를 들은 내가 아버지에게 따지고 들었을 때에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대답이다.


아버지는 자가용을 거의 2년마다 새차로 갈으셨다.  사치스럽게 들리는 소리다. 

하지만 아버지의 차를 담당하는 세일즈맨은 차의 달린 거리를 보면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거의 5-6 년 달린 차와 마찬가지로 달렸으니까...전국 어디에서라도 

공산권 선교에 대한 것이라면 그 차를 몰고 다녀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차종은 디자인보다는 무식하게 잘 달리고 튼튼한 차로만 바꿔왔다.   :>


외국, 특히 선진국엔 거의 없지만, 아직 우리나라엔 특히 교회안엔 가난한(여기서

'가난' 이란 극빈자를 말함) 신도들이 많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그런 신도들은 존재한다.  문제는 '자존심' 이란 건데, 자기가 가난하다고 교회의

도움을 받는것을 무지 쑥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실 교회조직을 운영하는 

분들은 그러한 분들의 존재를 자신도 모르게 잊고 넘어가기가 쉽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기억하기론 국1때부터) 절기만 되면 가마니를 싣고 어디로

사라지셨는데, 서울에 와서야 그 이유룰 발견했다.  그것은 쌀이 정말 아쉽지만

주위 사람들의 눈치때문에 함부로 손을 못벌리는 그런 교인들에게 쌀을 주시러 

가는 것이었다.  자동차에 쌀 몇가마 실으시고, 힘 좋은 부목사님 한분과 함께

하루종일 다니시다가 오시곤 하셨던 모습이 지금 선하게 떠오른다.  그리고나서

자동차 청소는 내몫이었다.  난 용돈이 나오니까 신나서 닦았다. 왁스도 매기고:>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신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의 자동차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셨다

가자마자 한대 큰것을 사시더니, 4개월 만에 다른 차로 갈아치우셨다. 

    - 미국차는 잘 안나가고 크기만 해. 일제차로 바꿨다. 아 좋다.  

    - 하하 아버지, 이젠 그 차 바꾸지 마세요. 그리고 싫증나면 저 주세요. :>

여전히 그곳에서도 미군들에게 버림받은 한국인 여성들의 가정을 다니시면서 뭘

그리 나누어 주셨는지, 나중엔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소연하는 전화가 올 정도였다


결국 1년6개월의 예정으로 가셨던 안식년 계획은 3년으로 연장이 되었고, 3년이 

다 차던 그 날, 심방을 마치고 집으로 오시다가 쓰러지셨고, 결국은 병원에서

Heart Failure 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지갑이 나왔다.  그 안엔 단 3불밖에 있진 않았다.

어머니 말로는 아침에 나가실땐 300 불을 들고 나가셨다고하니, 또 이사람 저사람

만나면서 손에 쥐어주고 오셨던 길이었다.  미국이 어떤 사회인데...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시면서도 순수하게 목회를 하셨던 분이라고 난 믿고싶다. 



칸트가 지적했던대로, 나 역시 인간의 자유 불멸한 영혼과 창조주에 관한 것은

이성에 의해서 결코 증명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과학적 사고의

메스를 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창조과학이니 신의 증명

이니 하는 기독교인들의 행위 역시 찬성하지 않는다.  단 우리 주변엔 아름답고

때론 가슴아픈 일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도한다는 것이다. 


Christian 보드가 너무나 현학적인 말들로, 때론 자기신앙 도취에 빠진 글들로만

가는 것 같아서 섭섭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모모님의 격려와, 그리고 오늘 

우연히 연구실로 오다가 본 그전의 아버지의 차와 똑같은 모델을 보고... 과거에 

잠긴 글을 하나 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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