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roxanne-as28.lab> 날 짜 (Date): 2002년 4월 18일 목요일 오후 08시 51분 10초 제 목(Title): 생명복제, 과연 하나님의 원하심인가 -3 2. 신학계의 반응 (ⅰ) 가톨릭의 입장 가톨릭교는 인간복제를 낙태와 같은 선상에서 보고 이를 금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생명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인공유산과 유아 살해는 저주할 죄악이다"(<사목헌장>, 51항)라고 단죄한다. 생명은 너무나 근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극히 중대한 위험이 있을 때에라도 그 가치는 보존되어야만 한다. 또한 비 록 치료의 목적이라도 직접적인 낙태는 배격해야 하며, 낙태를 범한 자는 자동적으로 공동 체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생명 의학 분야에서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기원과 출산에 개입하 는데 있어서 자연적 도덕률이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여기서 자연적 도덕률은 가톨릭의 전통적으로 지켜온 자연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가톨릭이 의미하는 자연법은 인간 생명에 관한한 자연현상의 과정을 인위적으로 중단하거나 변경하거나 조작하면 안된다는 것 으로 과학기술과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다. 가톨릭대학교의 이동호 교수는 가톨릭 교회가 인간복제의 시도 또는 실험이 결코 윤리적으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를 대략 네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인간복제 실험은 인간 생명이 결혼한 부부 사이에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조작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거슬리는 패륜행위이 다. 둘째, '핵치환'의 인간복제 무성생식행위는 하나님이 정해준 남녀 양성에 의한 생명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행위이다. 인간의 난자를 임의로 추출해서 핵을 제거하고 세포의 유전 인자와 융합시킨 다음 또 다른 인격체인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킨다는 것은 여성의 자궁을 하나의 대체된 기계처럼 사용함으로서 여성의 존엄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새끼양 돌리 한 마리를 탄생시키기 위해 277개의 난자와 체세포가 유린되었고, 그 중 29개의 배아를 얻었지 만 착상에 성공한 것은 오직 13개뿐이다. 그리고 나머지 12마리는 모두 폐기시켰다. 인간생명의 시초가 잉태되는 순간부터임을 상기할 때 이러한 방법으로는 인간복제행위에서 얼마나 많은 희생이 생길 것인지 상상을 불허한다. 셋째, '수정란 분할'의 인간복제행위는 인간의 개체적 존재의 자연적 결정을 무시하고, 인간 임의로 인간 생명의 운명에 대해 무책임한 장난을 하는 행위이다. 먼저 부부행위 밖에서 정자를 채취하는 방법도 하나님의 법을 거스리는 것이며 실험용으로 쓴 난자를 임의로 채취 하는 것도 정당하지 못한 행위다. 이미 한 인격으로서의 인간 생명인 수정란을 실험용 재료 로 사용함은 인간 배아의 존엄을 거스리는 행위이다. 각종 실험도구와 화학물질, 전기자극에 의해 비록 살아있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평생 불구의 위험에 대해서는 무책임하고 잔인할 뿐이다. 정상적으로 착상이 되더라도 나머지 쌍둥이를 누가 원할 것인가. 결국 폐기되거나 실험재료로 사용되거나 하나만 선택하고 낙태되어 버릴 것이다. 따라서 수태 순간부터 보호 되어야 할 인간존엄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넷째, 인간복제 실험은 부모에게서 자연스럽게 탄생해야 할 자녀의 권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기에 인간의 존엄성을 원천적으로 모독하는 행위다. 이 실험은 하나님의 선물인 자녀 를 자유로운 독립 인격체로 보기보다는 기성 인간의 소유물로 간주하는 행위이기도 한다. 가톨릭 교회가 생명복제에 관하여 하나님의 법과 자연법을 혼용하는 이유는 자연법 안에 하나님의 법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연법을 위반하면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가톨릭의 자연법은 중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 의해 그 당시 기독교와 문화가 종합과 통합을 이루었을 때 형성된 법으로서 신 학이 "과학의 왕'(King of Science)으로 불리었을 때 채택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자연을 보는 시각이 달라져 "자연은 신성하다"는 관점은 사라져 간다. 과학기술의 혁명으로 인해 "자연은 프라스틱(plastic)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관 점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그가 원하는 대로 형성할 수 있고 또한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오직 유일한 한계는 인간이 스스로 자연을 지배하고 조작하기를 제한하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자연은 인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이 되며 가톨릭이 주장하는 자연법과 하나님의 법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ⅱ) 개신교 보수진영의 입장 과학자들이 장성한 양의 비생식세포로부터 양을 복제했다는 뉴스는 과학공동체의 충격일 뿐 아니라 마치 지진이 일어나듯 전세계를 진동시켰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에 대한 신학 계는 강한 반발과 반대를 하고 있지만 기이하게도 인간복제를 전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취 소해야 한다는 발언은 잘 들리지 않고 있다. 수많은 신학자들의 부정적인 반응 가운데 본 논문에서는 최근에 소개된 미국 남침례교 신학대학교 총장인 알버트 모흐러 박사(R. Albert Mohler, Jr)의 입장을 요약해 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그가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생명복 제를 반대하는 이유가 대다수 신학자들의 입장을 명료하게 대변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 다. 그가 제시하는 여섯 가지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물복제와 다스림의 윤리. 농기업이 가축의 질과 양을 개량하고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할 때 동물복제는 별로 심각한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돌리'는 생명공학자들이 인공적으로 동물을 만든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서 에 의하면 인간이 동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고 관리하는 이중 책임을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 또한 다스림과 관리의 권리는 조건부로 하나님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 하다. 인간은 동물을 보살피고 사용하고 즐기는 책임을 부여받았으나 인간 마음대로 새로운 동물의 종을 만들거나 인위적으로 유전자 조작을 하여 변질시키도록 허락받지는 않았다. 둘째, 인간복제와 생식의 혁명. 복제양 돌리의 파문이 크게 확산된 이유는 단순히 동물 복제 때문이 아니라 인간복제의 가능성이 실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느 때나 곧 인간 복제가 이루어지리라는 뉴스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윤리적 제재를 제쳐놓고 희귀한 유전병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부부가 복제의 방법을 택한다면 바람직하다는 기사가 네이쳐 (Nature385:6619, February 27, 1997) 학술지에 실렸고, 죽어가는 아기를 복제하는 것도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입장도 대두되고 있다. 또한 장기이식을 위해 아기를 복제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며 이런 이유들을 반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시험관 아기와 복제한 아기 사이에 윤리적인 차이점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도 한다. 복제야 말로 인간생식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으며 유전자 혁명이 새로운 천년 대에는 가능한 일로 다가오므로 과학자들은 생명과학의 혁명을 망설이지 말고 수용할 것을 건의하고 있다. 하지 만 인간복제는 피할 수 없는 심각한 윤리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즉, 누가 복제 아기의 부모 가 되는가? 특허를 받아야 할 시기에 복제 인간을 누가 '소유'해야 하는가? 이외에 수많은 윤리적 문제들에 관하여 과학자들은 대답이 없다. 오직 기독교 세계관만이 인간복제의 윤리 문제에 대한 권위있는 답변을 제공할 수 있다. 셋째, 하나님의 형상: 인간과 하나님의 목적. 인간은 비록 죄로 인해 타락했지만 하나님의 형상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모든 다른 동물과 구별되며 이로써 인간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에 근거 한 것이다. 과학적인 또는 세속적인 인간관이나 세계관에는 이러한 개념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화학물질에서 생명이 진화한 것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산물 이 아니며 우발적인 사건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이런 세계관을 현대 사회가 배척할 때 낙태, 안락사, 유전자 조작, 유아살해, 인종살해까지 범하게 되는 것이다. 넷째, 유전자 조작과 우생학의 유혹. 우생학적으로 인간을 번식시키려는 욕구는 매우 강하고 실상 불가피하다. 유전자에 대한 폭발적인 지식을 소홀히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이다. 과거 우생학자들은 "열등한" 인종의 번식을 금지하고 의도적으로 "월등"한 인종을 번 식시킬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잔인한 인종학살을 계기로 우생학은 한동안 잠잠했 었다. 그러다가 새로운 유전자 DNA 구조가 1953년 왓슨(James Watson)과 크릭(Francis Crick)에 의해서 발견되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생학의 관심은 다시 고조되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21세기에 가장 심각한 윤리적 도전으로 부각된 다. 신(新)우생학은 히틀러 때처럼 권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소비자 선택으로 이루어 진다. 소비자는 유전자의 지식을 요구하면서 디자인된 아기를 주문하게 된다. 이 시나리오에 의하면 주문한 아기와 태아가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낙태를 하게 된다. "생식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로버트슨(Robertson)은 소비자가 우량아를 선택할 권리를 주장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태아는 언제나 낙태시킬 수 있는 자유를 주장한다. 우량한 유전자를 배양하고 열등한 유전자는 차단시켜 수퍼 인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유전학의 비젼인 것이다. 그 결과는 도덕적으로 매우 심각하다. 복제는 인류를 무성생식화하여 자연생식을 피하도록 하며, 유전자 조작으로 거의 모든 배아의 유전자 구조를 주문에 맞추어서 제공하게 되며, 대폭적으로 무성생식으로 인한 수많은 쌍둥이 배아들을 허용할 것이다. 이러한 유전학의 비 젼은 배아가 양어장 같은 곳에서 배양되는 헉스리(Huxley)의 Brave New World를 연상케 한다. 자율적인 인간의 선택으로 인종차별이나 국가의 강압이 없이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유전공학은 부모에게 엄청난 압력을 가해 국가의 강압에 못지 않을 것이며, 인종차별이 제거 되지도 않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유전학의 비젼은 피조물인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와 운명을 규정하려는 시도이며 유전자 코드의 비밀을 들추어내어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결정 하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 마음에 드는 인간을 만들어내고 인간 자신을 구원 해 보려는 유혹이다. 이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 오만의 최종적 행위인 것이다. 다섯째, 인공생식과 가족의 파괴. 현대 사회는 자율적인 개인주의와 전통적인 체제로부 터의 해방에 초점을 맞추면서 가족을 위협하고 있다. 성의 해방은 부부관계를 갈라놓았고 현대 피임법은 생식 없이도 무한정의 성관계를 허용하여, 가족은 그 소중한 위치와 가능에 서 물러나게 되었다. 현대 페미니즘은 가족을 여성의 감옥으로 보고 어머니의 직분을 생물 학적인 부담으로 보며 동성애자 운동은 가족을 재규명하고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수락하라고 주장한다. 인공 수정으로 독신 여성들이 임신을 하고 레즈비언 집단들은 수정란 센터 설립과 이를 지지하는 그룹을 조직하고 있다. 분명히 전통적인 핵가족은 인간 생식에 유일한 생식 단위가 아닌 것이다. 인간복제의 가능성은 생식이 부부관계로부터 마지막 해방의 단계를 의 미하고 남성이 생식에 필요없게 되며 이제 가족은 불필요하게 된다. 현대 세속주의는 이런 현상을 축하하겠지만 기독교 세계관은 이러한 환상을 깨뜨리고 배척한다. 가족은 진화로 이 루어진 우연한 산물이 아니며 편리한 성관계를 위한 것도 아니다. 성서에 의하면 가족은 은 혜로운 하나님의 선물이다. 인간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며 인간은 가 정에서 태어나야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장"은 헉스리가 미래의 생식에 관 하여 사용한 언어로 결혼관계와 가족의 몰락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섯째, 우리 자신, 우리의 형상을 만들자: 창조주로서의 피조물. 다른 유전과학 기술과 더불어 인간복제는 피조물 인간이 그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피조물 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이 창조주가 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개조하려고 한다. 현대 인은 인간의 진화방향을 그가 원하는 대로 정하려고 한다. 세속적 자연주의는 그러한 결론 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을 부인하면 결국 간은 인간 자신의 신이 될 수밖에 없다. 하늘과 땅을 지은 하나님이 없다면 인간은 스스 로 창조할 수밖에 없다. 일찍이 램지(Paul Ramsey)는 유전자 조작으로 인한 "위조인 간"(fabricated man)의 출현을 예견하였다. 우생학적인 유혹은 너무나 거세기 때문에 오직 기독교 세계관만이 이를 제재할 수 있다. 성서만이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정체성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창조주가 아니며 우주 통제권은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창조주 하나 님이 우주 만물을 통치하신다. 오늘날 현대 세속적 과학주의와 성서적 기독교가 서로 상반된 대립관계로 보기 때문에 결국은 복제와 같은 문제에 대화는 부재하거나 대단한 혼동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기독교 인들은 이에 대한 토론을 성서적 용어로 대응하고,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피조물과 창조주 의 분별성을 명료화해야 한다. 모든 과학기술은 성서적 계시와 기독교 세계관에 의해서 평 가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생명복제 과학기술을 무조건 반대하거나 찬성해서도 안될 것이다. 이 세대의 기독교인들은 도덕적 통찰력을 가지고 우리의 문화 속에 성실하게 봉사해야 할 것이다. 모흘러가 제시한 이상의 여섯 가지 쟁점들은 한국 신학자들이 공감하고 반대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본다. 하지만 장차 어느 때에 가서 인간복제가 실수나 부작용이나 위험이 없 이 과학기술로 가능하게 되고 복제 기술이 일반에게도 사용 가능하게 된다고 가정할 때, 위 에 언급된 우려만 가지고는 미흡한 감이 든다. 우려도 중요하지만 다음단계는 과학자들과의 대화의 장을 마련해서 찬반론을 면밀히 검토하고 인간복제에 대한 지침과 정책을 마련하여 기독교가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