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roxanne-as28.lab> 날 짜 (Date): 2002년 4월 18일 목요일 오후 08시 54분 20초 제 목(Title): 생명복제, 과연 하나님의 원하심인가 -4 3. 생명복제 찬반론: 어느 쪽이 하나님의 원하심인가? 인간복제는 단순히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을 떠나 놀라운 과학적 업적으로 마치 에베레스트 산정을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우생학자들은 복제기술의 여러 가지 사용 효과를 제시 하며, 복제는 정자 은행 보다 더 안전하게 품질이 좋은 아기를 재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왜 냐하면 우수한 인물들을 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복제를 주장 또는 지지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노벨상 수상자인 유전학자, 죠수아 레 더버그 (Joshua Lederberg)와 기독교 상황윤리학자, 죠셉 프렛쳐(Joseph Fletcher)가 있다. 한편 반대론자들에 의하면 복제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서 사회에서 차별을 받아 자 유를 상실하여 자연스럽게 결혼도 못하고 휴가도 가지 못하며 그가 탄생한 목적에 따라 도 구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즉 이는 인간의 비인간화의 극치인 것이다. 이에 대해 레더버 그와 프렛쳐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한다. 물론 미래에 어떤 독재자가 나와서 복제인간을 사 용할 수는 있지만 레더버그에 의하면 "우선 노예제도를 만들어야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며, 프렛쳐는 덧붙여 언급하기를 "인간복제가 독재권을 산출하지는 않으며 도리어 정반대로 독재자 때문에 복제인간이 자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한 인과관계로만 볼 수는 없다. 인간을 복제하는 것 자체가 자유를 위축시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며 이러한 사회 풍토는 다른 사회분야에도 확산되어 영향을 주 게될 것이다. 사회·정치적 우려 외에도 인간복제 반대론자들은 윤리적으로 심각한 과학적 이슈들을 지적한다. 자연생식은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치하여 유전적인 적응력을 보장하지만 복제된 인간일 경우에 그가 적응을 잘 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더욱이 복제된 인간이 이 성교제를 하고 자연생식을 할 경우에 그의 몸에 함유된 유해한 열성 유전자와 돌연변의한 유전자들이 투입될 것이다. 또한 복제하는 과정에서 큰 실수를 범했다면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개구리 복제 실험에서 비정상적인 올챙이들이 나오면 폐기처분하는 것과 같이 복제 인 간의 과정에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과학적인 여러 가지 이슈들 외에도 인간의 본성과 성성(sexuality)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 다. 자연생식을 거부하고 인간복제를 실시하게 되면 부모와 자식관계가 부모직의 의미가 위 태로워지며 가족제도에도 큰 위협이 된다. 자연생식의 거부가 인간의 인간성마저 위협하지 않겠는가? 남녀의 생식기능은 본질적으로 우리의 인간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인간 창조의 신비와 경외를 말소시키고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이슈들은 30년 전 인간복제문제가 처음 대두되자 램지(Paul Ramsey)에 의해서 제기되었다. 램지는 인간이 하나님의 역할을 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로 복제인간을 만든다는 것은 하 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인간의 한계를 넘어 스스로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며, 그 보다는 인 간은 인간의 한계 안에서 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그런 이슈들은 과장된 것이며 일부 신학의 교리와 전제에서 온 것 이기에 모든 기독교인들이나 비기독교인들에게 보편적인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레더버그와 프렛쳐에게 중요한 질문은 복제가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기여하는가에 달려 있으며 그 외에 다른 질문들은 모두 상대적이라고 한다. 이 경우 복제는 실용적이고 공리주의적인 차원에서 여러 가지 이득을 얻게 하는데 그 중에는 첫째, 식량문제 해결이며 이는 즉 동물 복제 기술로 식품을 대량 생산하여 지구촌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둘째로는 생태계 보호로, 이는 질환모델 동물이나 특수한 실험 동물이나 희구동물에 복제를 적용하면 증식이 가능케 될 것이다. 셋째로는 난치병 해결책으로 난치병의 치료를 위한 약 품 생산에도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왔다고 한다. 현재 유전공학 업체들은 암을 포함한 난치 병 치료제 개발을 목적으로 염소, 돼지, 쥐 등의 태아에 인간의 유전자로 변화를 일으키는 실험을 해 왔으며 현재 실용단계에 까지 이르고 있다. 넷째로는 장기 부족 해결이다. 포유 동물에 대한 복제기술 성공으로 사람에게 적합한 장기를 가진 유전자 조작 동물을 대량 생 산하여 인간의 장기를 대량 확보할 수 있다고 한다. 프렛쳐에 의하면 인간생식에 윤리지침 을 적용하고 규제하는 가운데 과학기술을 적용한다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것 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과학기술을 환영하고 받아드린다. 우리는 미래를 하늘의 별 속에서 추구하지 않고 우리 인간 가운데서 한다. 비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저수지를 만든다. 병치료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요 의약에 의존한다. 무지와 무력의 변명은 이 시대에 설 득력이 없으며 인간은 피조자에서 창조자 전환하는 점에 놓여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유전공학 혁명의 방향이다. 복제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혼란을 이루는 동안 구스탑슨(James M. Gustafson)은 이렇게 질문한다. "하나님의 섭리가 유전적 인간생명의 미래를 인도하는가. 아니면 우연과 인간의 판단에 모든 것이 맡겨져 있는가? 인간이 인간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지만 하나 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창조하거나 파괴시킬 수 있는 자유까지 주신다. 인간의 본성에는 선 과 악의 양면성이 있으며 인간은 위대한 존재이며 동시에 비참한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타적인 도덕적 지혜의 가능성이 있는 동시에 이기적이고 왜곡된 의지와 판단을 하기도 한 다. 따라서 복제에 관한 미래의 전망은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더 있듯이 낙관론과 비관론 둘 다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복제에 대한 공포는 과학기술 그 자체뿐만 아니라 인간본성에 대한 불신에 그 원인이 있다. 유전자 조작은 책임적이거나 무책임한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책임있는 인간행위는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복리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일부 기독교 윤리학자들은 원칙만 강조하 거나 이와 반대로 상황만을 강조하여 균형을 상실하고 한쪽만을 강조한다. 램지(Paul Ramsey)는 생명공학의 새로운 시도가 비록 사회의 복리를 이룬다고 할 지라고 절대로 옳지 는 않은데 그 이유는 새로운 시도가 본질적인 인간의 가치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프 랫쳐의 입장은 그와는 반대로 유전공학의 정책은 항상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의해서 판정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양쪽의 입장을 참고해야 하지만 한쪽의 입장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존엄하고 불가침의 인간의 생명을 극대화시켜 강조하다보면 뜻밖에 개인주의로 침 몰하여 급변하는 인간 공동체의 새로운 요구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만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의 선을 이룬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새로운 과학기술에 자신감을 갖고 강조하다 보면 본질 적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인간복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의 찬반 입장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한다. < 찬성하는 이유> * 생식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따라서 무성생식을 해서라도 복제하여 같은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낳을 자유가 있다. * 난치병 환자에게 장기이식을 위해서 * 의약품 개발을 위해서 * 불치병 어린이의 생명을 계승하기 위해서 * 독신자, 게이, 레스비언을 위해서 * 인간은 "창조된 공동 창조자"이기 때문이다-인간은 피조물 이상의 존재로서 상상력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대하는 이유> *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 때문이다. * 개인의 특수성, 개성, 정체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 자연법을 인위적으로 중재 또는 조작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 종의 다양성이 상실된다. * 영혼은 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무성생식은 가족파괴범이다. * 인체실험은 비윤리적이다. * 복제는 과학기술을 우상화하게 된다. * 사회가 복제된 어린이를 차별하고 억압할 것이기 때문이다-인종차별, 상업주의, 계급 주의. * 새로운 유전자 귀족층이 등장, 지배하게 된다. 위에 열거한 찬반론의 이유는 하나같이 모두 다 반론이 제기되어 있고 허점이 있으며 상대적이다. 인간복제 찬성에 대한 반대만 아니라 인간복제 반대에 대한 반대도 심각하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반대하는 이유가 잘못되었고 신학적으로 설득력이 없지만 인간복제를 금지 하는 것은 여하간 잘된 것이라고 한다. 4. 기독교윤리적 접근 기독교윤리는 신학 내에서 독립된 분야로서 아직 발전하는 도중에 있으며 윤리학자들의 이론과 방법론이 다양하여 통합된 체계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서 시도하는 접근은 필자의 입장으로 기독교 윤리학자들 간의 입장을 종합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인간 복제에 대한 찬반 논쟁에서 어느 한쪽만이 옳다라는 입장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한쪽 에만이 아니라 반대쪽에도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양쪽 사이에 이해와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i) 원칙있는 맥락주의(Principled Contextualism) 이 방법론은 필자의 윤리적 성찰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기독교윤리가 고정 불변한 원칙 만 주장하다 보면 구체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멀고 타당성을 상실해 버린다. 상황에 적합하 지 않은 원칙은 그 아무리 좋은 원칙이라도 실효성을 상실하는 문제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원칙을 중시하지 않고 구체적인 상황을 너무 강조하면 사회에 큰 혼동이 오며 극심한 경우 에는 아노미(anomie) 상태에서 사회가 붕괴될 우려도 생긴다. 그 동안 가톨릭 교회는 교회가 제정한 자연법을 준수해 왔다. 자연법에서는 모든 자연 생명의 과정을 인위적으로 수정하거나 중단시켜서는 안된다. 따라서 피임법, 낙태, 인공수정, 인간복제는 허용이 안된다. 개신교 일부에서 주장하는 상황윤리는 사랑의 법 이외의 모든 원칙들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어서 보편적인 원칙은 인정되지 않는다. 원칙있는 맥락주의 는 원칙과 상황을 연결시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자 한다. 원칙있는 맥락주의는 생명복제 에 대한 상반된 입장들의 장점을 수용하여 이를 정책수립에 반영하여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 고자 한다. 인간복제에 대한 찬반논쟁에서 대화와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어느 한 입장만을 절대적으로 옳다는 흑백논리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양쪽을 균형있게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 다고 본다. 오직 하나님만이 절대적이라는 급진적 신앙은 인간의 판단을 절대시하지 않고 상대화하며 반대쪽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따라서 원칙있는 맥락주의는 원칙적 으로는 인간복제를 수락하지 않으면서 상황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에만 예외적인 사례에 한 해 조심스럽게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허용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독교가 인간의 존엄성, 하나님의 형상, 창조의 질서, 자연법 등 원리 원론적인 것에 너무나 치중하여 지나치게 그것만 주장할 때에 폐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 사회변화 에 역기능이 된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진취적인,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건전한 유전공학 과 의학 기술의 발달에도 심각한 저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한편, 유전공학과 의술이 원칙 과는 무관하게 공리주의와 상업주의와 탐심과 오만심에 빠져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저하시키며 인간 생명을 수단으로 삼게 된다면, 이는 '프로메테우스 증후군'을 양산할 따름 이다. 인간복제는 어디까지나 인간 존엄의 명분 아래서 행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독 신주의자. 레스비언, 게이, 불임부부, 대리모 기업체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인간복제를 제 한없이 개방한다면 이 또한 사회에 큰 혼란과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능 성에 대해서는 기독교가 제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 -과학자, 신학자, 정치가, 시민-은 실제에 대한 인식이 모두 다르다. 하나님의 진리는 궁극적으로 하나이지만 여러 측면을 갖고 있다. 우리는 진리의 한 면만을 보는 코끼 리를 만지는 장님과도 같다. 우리는 상호 간의 대화의 길을 유지하고 확대해 나가야 하며 사회정책 형성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최선을 다하여 합의를 점진적으로 이루어 나가야 할 것 이다. 대부분 생명공학의 사회정책을 수립하는 위원회의 구성원들은 과학전문가들로만 구성 되어 있다. 물론 이들의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과학자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일반 시민대표도 중요하므로 위원회 구성원은 각 분야로부터 균형있 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잠재적으로 인류에게 유익하다는 이유로만 잠재적인 모험과 손실 을 덮어두고 생명복제에 대한 의사결정이 과학자 엘리트 사이에서만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 이다. 우리는 사고보다는 행동을 더 가치있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시대의 풍조에 따라 오늘의 과학자들은 선두에서 달리는 행위자들이다. 너무 서둘러 행동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선 생명복제 문제에 대해서 윤리적 성찰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지 식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는 가장 중요한 윤리적 이슈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과학전문가나 정치전문가에만 맡겨서는 안될 문제이다." 과학이 윤리를 앞서는 이 시대에 생명복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대화의 문을 열어 찬반론자들이 합의를 보면 실천에 옳길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실행을 유보해야 할 것이다. (ii) 책임사회윤리 우리는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사회에 살면서 기독교 신앙에 근거한 윤리가 채택되리라는 기대는 할 수 없다. 물론 기독교인으로서 그의 신앙을 고백하고 신앙 때로 생활을 추구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기독교 신앙을 고수하면서도 비기독교와 대화하고 타협하고 합의를 할 수 있는 윤리지침이 시급한 형편이다. 책임사회윤리는 생명복제 논쟁에서도 문제 해결하는데 중요한 지침이 되리라고 믿는다. 책임사회윤리의 주요 규범들 중에는 인격존중, 자유, 정의, 평등 등이 있다. 이러한 규범들은 기독교 신앙공동체는 물론 비기독교인에게도 타당성이 있으며 기독교인들이 과학자들과 시 민들과 대화하고 복제를 비판하고 합의하고 통제하며 지침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된다. 책임 사회윤리의 장점은 기독교가 기독교 고유의 성서적 비전과 하나님의 계시법을 고수하면서 사회정책에 비기독교계와 타협과 합의를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특별히 인간복제는 단순히 생명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기독교 윤리문제인 것이다. 그대로 전문가들이 하는 대로 방치하면 문제가 기업화 내지 상업화되며 권력과 부의 지배를 강화시키고 총체적인 인간의 무질서를 가지고 오며 인격존중, 자유, 정의, 평등에 큰 손상을 가지고 올 것이다. 책임사회의 맥락에서 생명복제 또는 인간 복제의 타당성은 얼마나 위에 언급한 규범들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해답조다 문제가 너무나 많기 때문 에 인간복제만큼은 억제해야 할 것이다. 이화여대 법학과 박은정 교수는 입법하는 것으로서 인간복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서는 안된다고 한다. 오히려 법을 제정함으로써 복제활동이 음성화되어 걷잡을 수 없는 처 지에까지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법학은 경계를 가리킬 수는 있어도 길을 가리킬 수는 없 다. 오늘날 생명복제에 대한 연구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주로 전문집단들의 활 동이 두드러지고 종교계와 일반시민들의 시야 밖에서 그들의 참여없이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우려할 만한 측면이다. 생명윤리 문제는 근본적으로 고통의 문제에 연관되어 있으며, 이 점에서 이들 전문가들은 사실 경험없는 제3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박은정 교수는 언급한다. 환자의 아픔, 자녀의 출생이 한 가정의 비극이 되는 상황에서 윤리적 결단을 내리 는 구성원들은 어떻게 짜여져야 하는가?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데서 전문가 못지 않게 경청 되어야 할 것은 종교인들, 보통 사람들, 환자, 출산기의 여성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전문가들 이 하는 일과 결점은 숨김없이 일반에게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서둘러 법을 만들기 전에 생명복제에 대한 책임공동체를 이루고 대화와 합의를 통한 책임공동체 윤리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건전한 생명복제문화는 민주적 참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과제이다. 막연한 불안감과 신학이론이나 교리적인 반대로서는 연구의 자유를 막을 수 없다. 박은정 교수는 어떤 면에 서 책임적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생명복제분야의 연구는 지금 보다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고 주장한다. 과학기술 엘리트 계급이 독점하기 전에 민주적 계획짜기가 요청된다. 이제 과학자들은 윤리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생명복제를 둘러싼 사회윤리문제에 접근하는 선진국의 새로운 모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생명공학 육성법 개정안을 놓고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기독교계가 동참해야 할 것이다. '할 수 있는가'와 '해야만 하는가'는 다른 개념이다. 과학은 '할 수 있다'를 다루며 '해야만 한다'는 윤리적 영역으로서 신학윤리가 다룰 문제이다. 과학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다하게 되면 최악의 경우에 종말이 곧 오게 될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신학 윤리가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을 그대로 준수하면 과학은 침체 상태에서 연구의 자유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여 러 가치들의 우선 순위를 책정하는 것은 과학자, 윤리학자, 신학자, 일반시민의 공동작업이 어야 한다. 물론 과학기술이 세상의 빈곤과 무력감과 고통을 덜어주어 사회 복지를 위해 공 헌한 바는 크다고 본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기술이 그처럼 발달했는데도 이 세상에는 아직 도 고통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심각한 불의와 불평등와 억압이 계속되는가? 복제기술로 우량종을 만들어 내는데 우선순위를 정하기보다는 사회환경을 개선하는데 주력한다면 이 세 계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더 가까워질 것이다. 빈곤과 질병과 고통의 근본원인은 책임사회가 지향하는 인격존중과 자유·정의·평등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과 해결책은 기독교의 세계관에 명료하게 드러나며, 기독교는 과학주의의 낙관론이나 유토 피아니즘의 허구성을 고발한다. 기독교의 근본신조는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나 누는 것이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이다. '고통을 없애므로'가 아니라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삼을 때' 거기에는 참다운 구원이 있다. 솔직히 이 세상의 빈곤과 고통은 과 학이 덜 발달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는 물론 사회의 구조적인 악을 분쇄하지 못하고 책임 사회공동체를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임사회를 이루는 것이 급선무이다. 결론 생명복제가 과연 하나님의이 원하심인가? 이 문제는 성서를 근거로 할 때 직접적인 해답은 불투명하며 모호성이 있다. 에덴의 이미지에서 다스림과 청지기의 윤리(창 1:26, 28, 2:15)를 전개할 수 있는데 이는 생명복제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와는 반대로 생명복제의 불가능으 로는 바벨의 이미지가 있다(창11). 하나님 같이 되어 보려는 과학기술의 힘,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오만심이 생명복제로 인하여 인류에게 큰 혼란과 저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에덴과 바벨의 이미지는 생명복제에 대한 구체적인 윤리규범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이에 대한 윤리 를 탐구하는데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신약성서를 근거로 할 때 초대교회는 인간의 몸을 복제하는 데는 지대한 관심이 있으나 DNA 복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것은 인간의 몸에 대한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교회 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초대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같이 되기를 원했다(요1서 3:2). 과학기술로 인한 인간복제는 비록 생명공학의 혁명이라고 하지만 조상의 유전자를 계승하는 보수적인 성격이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초대신앙공동체에서 약속된 복제된 몸은 조상의 DNA를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와 같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새롭게 복제된 피조물 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성서적 해답이 불투명하고 모호성이 있더라도 기독교인들은 생명복제에 대한 윤리규범과 지침을 마련해야 할 중대한 책임이 있다. 신학계가 인간복제에 대해서 반대를 하거나 의혹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반 응만 가지고는 충분하지가 않다. 기독교가 찬성을 하던 반대를 하던 과학기술자들은 권력층 과 부유층과 유착이 되어 생명복제는 기업화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주의로 갈 가능성 이 높다. 그들이 운전대를 쥐고 있으면 같은 배를 항해하는 우리 기독교인들도 그리로 갈 수밖에는 없지 않은가?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생명복제문화 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불 원간에 인간복제는 현실로 다가올 것인데 기독교인들은 이를 방치할 수는 없다. 노아의 방 주를 높이 쌓아 올려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지만 말고 교회의 문을 열어 기독교인들은 사회 로 진출해서 생명복제에 관여하는 사람들과 타협하고 합의를 추구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 이다. 그리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은 책임사회윤리의 지침을 수립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전한 생명복제문화를 이룩해 나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