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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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mason (  템플라)
날 짜 (Date): 2000년 10월 12일 목요일 오전 06시 41분 31초
제 목(Title): Re: 죄이야기가 나와서.




저번에 어떤 교수를 찾아갔더니 '욤 키푸르'라는 유태교축일이라 점심을
안 먹고 있길래, 종교에서의 '금제'와 '죄의식'에 대해 좀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이 글타래가 벌어져 있네요.

첫번째로 '금제'는 경험적이고 미신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날 이방인들의 마을을 방문한 '모이세'는 이들이 '돼지고기'라는 신기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모이세는 이 음식이 참 맛있는
고로 조금 싸들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돼지고기는 쉽게
상한다는 것을 모르던 모이세와 가족들은 그날 밤 식중독에 걸려
운명을 달리합니다. 이러자 모이세가 평소 이방인들 마을에 들락날락하던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동네어르신이 한 말씀 하십니다.
'여호와님의 저주를 받았구먼!' 그날부터 마을에는 이방인들이
먹는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는 '금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두번째는 종교체계(사회체계와도 밀접히 얽힌)가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한 것입니다. 라즈니쉬는 이런 우화를 듭니다.

어느 마을에 개들은 종교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달을 보고
짖으면 안된다.'는 금제를 가지고 있는 종교였습니다. 하지만
달을 보고 짖는 것은 개의 본성이므로 이것이 잘 지켜질리 없습니다.
이 금제를 어긴 개들을 꾸짖는 것에서 '성직자 개'의 권위가
유지됩니다.

즉, 풀어서 말하자면, 종교에서의 몇몇 금제들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제한합니다. 식욕, 성욕, 더 나아가서는 소유욕, 때로는
창작욕 등등.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유전자에 뿌리박힌
본능이므로 이런 금제들이 잘 지켜질 리 없습니다. 여기에서 이
금제들의 수호자로서 성직자들 및 종교시스템 자체의 권위가
생산됩니다. 이 금제들이 완벽하게 지켜질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영원히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이 죄를 징벌하고 때로는 치유하는 역할로서의 종교 또한
영속적인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종교 이외에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롤랑 바르뜨는 현대의 '다이어트'에 대한 '신화'는 '종교적'이라고
얘기합니다. 다이어트 신화의 생산자들은 계속해서 불가능할 정도의
굶주림을 이상-혹은 천국-으로써 제시하는데, 보통 사람들이 이러한
정도의 굶주림을 감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의
도전과 실패는 끝없는 죄의식을 유발해내면서 신화 제조자들의
권력을 공고히 해주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이 종교와 유사하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종교적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또 이런 관점은 '교사형'이라는 일본영화와도 유사합니다.
이 영화에서 한 소녀를 강간 살인한 조총련계 재일동포 청년은
사형집행 도중 사고로 기억상실에 빠집니다. 법률적으로 이 상황에서
형을 다시 집행할 수 없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이 청년에게
그가 무슨 죄를 어떻게 저질렀는지 상기시키고 또 거기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게 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은 이 청년의 '죄'가 사실은 이 청년의 잘못만이 아니고 사회의
모순들-재일동포에 대한 차별 등등-이 이 청년이 그 살인을 저지르도록
몰아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청년이 자유롭게 사형집행장을
떠나려는 순간, 청년은 자신이 사형집행에 반드시 처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왜냐하면 죄의 멍에를 짊어졌든 아니든 그가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사회는 더 이상 청년을 살려둘 수 없기 때문이죠.
요약하자면, 사회는 스스로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양으로서
죄인들을 생산하고 그들을 처벌함으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라즈니쉬는 이 이야기에 또 한가지 재미있는
변주를 첨가합니다. 마침내 어느날 모든 도시의 개들이 모여 '성직자 개'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단 하루만이라도 달을 보고 짖지 않기로 맹세합니다.
그리하여 그 날이 되어 결국 개들의 '초견적인' 인내심의 결과로 도시가 여느때와
달리 정적에 빠져들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성직자 개'는
극도의 불안감에 빠져듭니다. 자신이 개들을 너무 밀어붙인 나머지 개들이
정말로 이제 더 이상 달을 보고 짖지 않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그래서, '성직자 개'는 도시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 몸을 숨긴 후 여느 때
다른 개들이 그랬던 것처럼 달을 보고 '컹컹컹' 짖어댑니다. 그 순간
누군가 이 담합을 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모든 개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덩달아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성직자 개'는 홀연히 몸을 나타내
개들을 꾸짖기 시작합니다. '어허! 자꾸 이럼 구원받을 수 없다니까!'

다시 말하자면, 라즈니쉬의 설명은  종교는 욕망을 금제하고 죄의식을 심어
사람들을 자신의 영역에 공고히 묶어두는 것 이외에도 이 때문에 사람들이
'임포텐스'가 되어버리지 않도록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의 금지된 욕망을
은근히 부추키는 공작을 한다는 것이죠.

즉, 종교-혹은 유사한 사회권력-는 특정한 욕망을 금지하고 그에 동반하는
죄의식을 심는 동시에 이 죄의식이 고갈되지 않도록 계속적으로 이 욕망을
은밀히 공급하여 구성원들이 이 시스템에서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완벽한 덫인 셈이죠.

아마 이 두번째 부분은 상당히 재미있는 주제고, 찾아보면 읽을거리도
많을 거라고 짐작합니다만 저로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군요.

끝이 부실해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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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왼쪽은 너의 옳은쪽이다.

                                     :homo sapiens quantum gravitius:mason@k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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