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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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tide79.microsoft> 
날 짜 (Date): 2000년 9월  7일 목요일 오전 07시 09분 00초
제 목(Title): 김영민/ Y,혹은 종교와 관능 2


[김영민] [철학갸-론]제1장:"Y, 혹은 종교와 관능"② 

뒷날 소문에 턱없는 거품까지 일면서 얻게된 이름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다소 
비꼬아 '팔선녀 사건'이라고 불렀다. 그 사건이란, 대학시절의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일단의 젊은 여성들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종교현상적 삽화를 
가리킨다. 느슨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자면, 그것은 6-70년대의 부흥회식 
종교운동이 난문하는 가운데 빈발했던 자생적 성령운동의 일종이랄 수 있었다. 
이 '선녀'들은 거의 매일이다시피 교회의 으슥한 골방에 모여 밤을 새워가면서 
기도와 찬송으로 일관했는데, 이 와중에서 이른바 갖은 신비체험이 잦고, 또 
이로써 교회 전체회중에게 그 종교사회적·심리적 영향이 적지 않았다. 교회처럼 
교조적인 조직에서 당연히 이를 수수방관할 리 없었고, 특히 30년 이상을 한 
교회에서 군림하다시피해온 담임목사는 그 종교적 카리스마가 유별난 사람이라 
더욱 그러했다. 이들의 행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진귀한 종교체험으로 숭앙하는 
기운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따라서, 교회당국은 목회적 권위를 온존시키기 
위해서라도 자체 조사와 징계를 서두를 지경이었다. 

무심한 세월의 계몽이 선사한 입지와 거리감을 지닌 채 이제사 돌아보면, 그 
사건은 어김없는 종교병리학적 현상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당시의 나는 대학부(청년부) 회장으로서 회원 전체를 포용하고 대변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이 선녀들의 행태를 두고 쌈박하게 운신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내 나름의 신비주의를 오랫동안 주물럭거려왔던 전력이 있던 참이라, 
그 선녀들의 외진 세계를 무조건 모른 체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실 내내 조숙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꿈을 꾸며, 비판적 중립을 견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나로서도 솔직히 그들이 유포시킨 이런 저런 종교행태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심한 거부감을 느끼곤 했을 정도였다. 비록 언더힐(Evelyn Underhill)의 
지적처럼, "나의 신비는 오직 나만이 간직한다"는 그 기묘한 사밀성(私密性)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신비가는 성(聖) 버나드(St. Bernard)와 더불어 "나의 신비는 오직 나만이 
간직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필경 그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종교적 감동에 벅차서 더듬거리는 그의 진술은 이미 같은 체험을 공유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다.* 


그 여덟명의 선녀들이란 죄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노처녀들---특히 
스물서너 살이 여성들의 결혼적령기였던 당시로서는 빼도박도 못하는 
'노처녀들'이었다---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내 눈에는, '선녀'라는 별칭과는 
상관없이 남정네들의 연정을 부채질할 그런 미모는 그 중 아무에게도 없었다. 
불행히도 이 사실은 문외한들의 불온한 상상력을 자극해서 진부하고 메마른 
종교심리학적 메스를 가하도록 부추길 지도 모른다. 솔직히, 내가 정의한 바 있는 
'자발적 독신자'가 아니라, 이런 저런 이유로 타의에 의해 독신으로 방치된 
의사(擬似) 독신자들은 소외와 좌절의 경험이 겹치면서 공동체와 이웃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내면화되기 쉽고, 그 굴곡진 삶의 와중에서 종교적 출구---특히, 
그것도, 사사화된 신비주의적 출구---로 경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맥락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한국 개신교의 양적 
성장을 '온 몸으로' 떠받쳐온 여성 신자들의 종교심리학을 다루는 글에서도 이런 
식의 논급이 적지 않다. 가령, 노길명은 한국 현대사회의 종교현상을 설명하면서, 
근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상대적 박탈감이 "여러 측면에서 복합적으로 
연결되고 또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조건과 상승작용을 일으키게"**됨으로써 
종교성장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음을 밝힌다. 이 상대적 박탈감의 종교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어떻든, 우리 선녀들의 유별한 종교행태도 이 
'박탈감의 심리학'(psychology of deprivation) 속에 싸잡혀들어 설명될 소지가 
있었다는 점은 굳이 부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이 박탈감의 
심리가 내면적으로 고착되면서 종교적 환상성이 슬며시 피어오를 토양은 더욱 
기름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마치 신앙의 본분과는 분리된 
부가적인 문제인양 생각하곤"***하는 신앙심리주의는 이러한 종교적 환상성을 
정당화하고 증폭시킨다. 이런 행태를 자주 목도하노라면, "역사의 전개를 위기의 
관점에서" 보고, "배제-박탈의 메카니즘의 독특성에서 시공간적 구체성을 띠는 
위기"****를 적절하게 비판해주는 민중·정치신학적 실천과 그 보완을 우리 
교회현장에서 아쉬워하게 된다. 


*Evelyn Underhill, Mysticism (New York: E.P. Dutton, 1961), p. 72. 
**노길명, "한국 종교성장의 사회적 배경," 한국교회와 사회 이원규(편) (나단, 
1989), 103쪽. 
***김진호, "IMF시대의 민중신학: 오늘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1998년 
지식인 리포터: 한국좌파의 목소리> (현대사상, 1998), 215쪽. 
****같은 글, 217쪽. 


초청칼럼니스트 김영민 jajaym@hanmail.net 

한일대학교 철학과 부교수/저서 <지식인과 심층근대화>(1999)외 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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