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tide79.microsoft> 날 짜 (Date): 2000년 9월 7일 목요일 오전 07시 10분 03초 제 목(Title): 김영민/ Y,혹은 종교와 관능 3 [김영민] [철학갸-론]제1장:'Y, 혹은 종교와 관능'③ 하여튼 이 대목을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노처녀와 독신여성 독자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할 것이니 매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컴플렉스가 개인의 것이든 사회의 것이든, 이를 비판적으로 건드리려는 사람이 처하게 되는 딜레마는 자신의 입장과 상관없이 어떤 전형을 보인다. 이를테면, 여성문제를 보는 우파적 시각이 종종 조악한 성차별주의를 숨기고 있듯이, 좌파적 시각도 본의 아니게 동조주의(同調主義)로 심하게 기운 경우가 적지 않은 법이다. 아무튼 나 역시 이미 소문난 '자발적 독신자'인데다, "독신도 하나의 떳떳한 삶의 선택이 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서와 각종의 문화가 나름의 풍경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비껴갈 수 없는 성숙과정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터, 이 문제에 손쉬운 방관자적 해석을 덧댈 욕심은 없다. 신앙적으로는 일치단결, 합심동체의 모습을 보였지만, 이 선녀들의 관심이나 성벽, 외모 등등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간호사, 신학생, 점원, 교사, 음식점 주인 등등, 직업도 다양했으며, 얼핏 보아서는 그 공모(共謀)의 흔적을 좇아 한 동아리로 엮을 끈이 보이지 않았다. 복음서를 전하는 이들의 말을 빌어 해명하자면, 신은 세속의 잣대로 사람을 가려쓰지 않으니, 세속의 눈으로 그 잣대를 쉽사리 알아볼 수 없다고 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들의 잣대---키에르케고르에서 싸르트르로 조심스럽게 이행 중인 종교적 실존주의, 포퍼(Karl Popper)류의 비판적 합리주의, 아빌라의 데레사나 에카르트(Meister Eckhart)식의 신비주의, 그리고 잡탕의 정치신학적 사금파리들을 뒤섞어놓은 형태---에 올려놓은 이 선녀 동아리는 아무래도 수상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아심여칭(我心如秤)이라고, 물론 이런 문제에 잣대 운운하는 것 자체가 필경 우스운 짓이긴 하지만. 그리고 게중에는 한때 내 데이트 상대였던 J라는 아가씨도 끼어 있어 나를 무척 곤혹스럽게 했다. J는 이른바 내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지속적으로 만나고 사귄 여성으로는 난생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약 일 년 전의 어느 날, 나는 그녀와 마지막으로 만나면서 완곡한 결별의 이유와 수사(修辭)를 용장스레 동원하느라고 세 시간 이상 진땀을 흘렸다. 그리고는 낚시추처럼 늘어진 마음을 추스리며 곧장 교회로 향했다. 나로 인해 상처받았을 J의 영혼---당시의 나는, 그 시절의 유행처럼 남녀사이의 연정도 플라톤식으로 영혼의 문제로 소급시키고 있었으니까---을 위해 밤새워 기도했다---"나보다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무릎을 찧고 또 찧었다. 밤을 밝혀 비지땀을 흘리며 쭈그리고 앉아 기도한 보람이 있었던지, 그녀는 곧 예수라는 벽안의 미남자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그녀는 낮에는 버젓하고 분망한 직장생활에 충실하면서 세속의 합리에 순응했지만, 오직 예수를 그리워 하는 열정으로 피곤을 잊은 채 교회에 나와 매일 날밤을 새우며 그 이름을 울부짖었다. 나는 J의 종교적 행적을 돌이켜보면, "종교는 대개 그 '부(副)작용'에서 은혜를 입는다"는 속언이 실감을 더해온다. "종교는 인류의 보편적 강박 신경증"(S. Freud)이라든지, "신성이란 인간성, 즉 개별성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서 보편적이며 자유롭고 정화된 인간성에 다름아니다"(R. Feurebach)든지, 혹은 "지식과 정보의 유일한 원천인 자연과학은 신에 대한 전통적인 신앙의 근거를 뒷받침해주지 않는다"(B. Russell)라는 식의 통찰을 나름대로 거치고 난 뒤, 나는 마침내 종교와 비종교의 접선을 타면서 이 '부작용'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근대 과학적 세계관의 총아인 뉴턴은 작용-반작용으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인문학자로서의 나는 오히려 '작용-부작용'이라는 틀로서 종교와 이를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선녀 동아리의 정점에는 Y라는 아가씨가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영적 카리스마를 누리고 있었다. 내게는 여름밤의 교회 입구를 배경삼아 그녀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는데, 눈대중으로 얼추 서른 살 쯤 되어 보인다. 이 동아리는, 그 태동의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세세한 운영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존재와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레닌과 트로츠키 이래 Y에 이르는 현대사---다원(多元)과 미시(微示)를 숭배하는 그 현대사--에서조차도, 지도자의 카리스마는 여전히 결정적인 법. 우리 교회는 속칭 '한국 부흥사의 대부'라는 별칭의 P목사---근래 한국 개신교 부흥운동을 주름잡는 이들이 대체로 그의 '가방모찌'를 거쳐갔다고 하는 그 P목사---가 비상한 영적 권위를 누리며 30년 이상이나 목회를 해오던 곳이었다. 따라서, 사실 그녀가 우리 교회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P목사의 종교적 카리스마와 충돌할 수 있는 독자적인 종교 세력을 구축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어느 날 출처도 없이 불쑥 나타난 Y의 존재는, 교회의 청년부에 제도적으로 흡수되지 못한 채 이곳 저곳에서 차가운 못처럼 외롭게 굴러다니며 "주변적 잉여의 아노미적 경험"을 속으로 삭이고 있던 여러 아가씨들을 단숨에 끌어 모아서, 그야말로 순식간에 '팔선녀 동아리'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Y는 외모나 입성에서부터, 교회를 채우고 있는 또래의 믿음좋은 처자나 아주머니들의 전형과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한 마디로 대단히 선정적이어서 '성도'(聖徒)들의 눈총을 받았고, 이로 인해 불경과 이단의 소문은 급속히 번져갔다. 그녀는 중키에 보기 좋을 정도로 살이 붙은 몸매였는데, 워낙 윤곽이 짙은 데다가 밤일 나가는 여자처럼 화장이 거칠었고, 표정이나 동작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도발적이고 자유분방했으며, 어떻게 보면 매우 육감적, 관능적으로 비치기도 했다. 또 음량이 풍부하고 음성이 낭낭(浪浪)했으며, 직설적인데다 말수도 많았고, 마치 여왕벌처럼 주위에 후배들을 잔뜩 모아놓고 늘 대화를 주도하는 타입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성의 손만 잡으면 아기가 생길 것처럼 파르르 떨었던 이십대 초반의 종교적 도덕주의자들 사이에서, 아무런 과장이나 어색함도 없이 스킨쉽을 구사했을 뿐 아니라, 종종 바울이 말한 바 '거룩한 키스'**의 흉내조차 서슴지 않는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조신하게 다소곳하거나, 설혹 활달하고 직설적이어도 결코 여성성을 여과없이 내비치지 않는 모습에 익숙했던 일반 신자들에게 Y의 존재는 단연 이채로웠다. 또한 니체의 말처럼 '위험한 삶'을 살지 않으려 하는 기독교회 내에서는 매우 위험해보일 지경이었다. 이채(異彩)란 곧 이단(異端)이며, 이단(heresy)이란 흥미롭게도 그리스어인 '선택'(hairesis)에서 유래한 말***이고, 그리고 피터 버거(Peter Berger)의 유명한 말처럼 근대야말로 바로 선택의 시대가 아니던가: 이제, 근대의식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요소들 중의 하나는 바로 선택의 자유가 폭증했다는 것이다. 고쳐 말하자면, 근대의식은 '운명에서 선택으로' 옮아가는 추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초청칼럼니스트 김영민 jajaym@hanmail.net 한일대학교 철학과 부교수/저서 <지식인과 심층근대화>(1999)외 14권 ------------------------------------------------------------------------------- - *김영민, "독신자 오계(五戒)," <한겨레 21>, 1998년 9월 24일.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할 것. 차정식, "바울과 키스의 사회학: '거룩한 키스'에 관한 추리," 미지의 신을 위한 변명: 바울신학비평 (대한기독교서회, 1998). ***다음에서 재인용. R. 파니카, 종교간의 대화, 김승철 옮김 (서광사, 1992), 4쪽. ****Peter L. Berger, The Heretical Imperative: Contemporary Possibilities of Religious Affirmation (Gardern City, New York: Anchor Press, 1979), p. 1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