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6월07일(금) 12시58분57초 KDT 제 목(Title): 불교인의 적.. 불법을 배우는 것은 나를 배우는 것이고 나를 배우는 것은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인에게는 자신의 불법적인 가치를 스스로 평가하는 귀중한 잣대입니다. 나를 잊어버렸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자기자신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지적해 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지적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나를 잊어버렸는지를 순간 순간 확인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적을 받기전에 알기 때문입니다. 불교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내부에 있는 "아만심 : 나 잘났다는 생각"이야말로 진실에서 멀어지는 가장 큰 사마외도입니다. 불교라는 종교에 목적성을 굳이 둘 수 있다면 "아만심"의 제거입니다. 왜냐면, 내가 사는 것이라는 입장 보다는 살려지고 있는 것이라는 존재의식이 진실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존재라는 이 순간을 현상적인 면만으로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살려지고 있는 것이지 스스로 어떤 것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만심을 나두고서 아무리 세상없는 경전에 대한 평가를 해도 이는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를 못합니다. 아만심이 그대로인 상태에서는 어떤 경전을 보고 어떤 책을 보아도 아만심을 더욱 확대하여 진실에서 멀어지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원효스님은 초발심자경문에서 "젓소가 물을 먹으면 젓이 나오지만 뱀이 물을 먹으면 독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진리이지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해석하는 아만심이 바탕이된 우리들의 노력이 아닙니다. 진리라는 이 물은 만물에 평등합니다. 진리가 천상이 되고 지옥이 되는 것은 아만심의 여부에 딸려 있습니다. 진리앞에서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하는 사람은 진리에 의하여 진리로서의 자신을 보지만 진리앞에서 자신을 내세우는 훈련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는 그것으로 스스로 지옥을 만듭니다. 우리가 본래부터 부처님성품이라는 이 말에는 우리가 인과법의 적용을 받아서 존재하는 생명이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공이란 생명의 진실은 현상적으로 지옥과 아비규환과 축생적인 상황을 발생시킬 준비가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아만심이 작용될 때에 현상은 지옥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실체성이 없다고 하더래도 대부분의 삶은 실체성이 없는 현상속에서 영위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