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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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5월30일(목) 14시12분44초 KDT
제 목(Title): [이재원님] 좋은 지적들 입니다.



인과율의 확장개념이 윤회라는 말입니다. 다섯살 때
나를 지적할 수 없지만 다섯살 때의 내가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곧 윤회가 있다는 말로 전개가 되는 것이
논리적 비약으로 보인다는 것은 인정이 되는 군요.
그렇다고 하더래도 세상에 태아나는 것이 아무런 원인이 없이
돌연하게 나왔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미국의 예언자인 에드카 케이시는 기독교 신자이면서
윤회에 대한 실증을 말한 사람입니다. 병자들의 병을
연령역행이라는 방법에 의하여 전생을 추적하여 고치는
그런 일들을 많이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책이 아마도
일반서점에 나와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참된 생명이 우주보다 더 크다는 말은
이재원님의 전공 입장에서의 우주 개념으로 볼 때에는
당연한 것입니다. 소우주, 대우주 이런 개념에서의 우주라면
우리의 참된 생명을 우주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말한 우주는 공간적 크기의 우주가 아니라
우리가 하늘을 바라볼 때에 우리 눈에 들어오는 그 우주입니다.

위로 올라갈 수록 생명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은 철저하게
지금의 현재의 눈으로 확인하는 사실에 근거해서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우주에 대하여는 이재원님 만큼 아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주에 대한 탐구는 이재원님의 몫입니다. 불교에서의 명제는
우주가 아니라 우주에 대한 탐구를 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불교는 인생의 고통과
직면해서 불확실한 자신의 근원을 확인하는 종교입니다. 즉 실존적인
고뇌에서 출발하는 종교이므로
사실 부처님께서도 우주의 시작이라든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는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다음에 기왕 문제가 나왔으니 시간에 대하여
조금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재원님께서 "심리적 시간"이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그럼 심리적 시간말고 다른 시간이 있는 가에 대하여
관찰을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심리적 시간외에
어떤 시간을 지칭한 적이 있을까?
가령 시계의 초침이 한 눈금 이동하는 것을 우리는 1초라고 하자 이렇게
알기 전에 시간을 인식한 적이 있는 지를 우리들 스스로의 경험을
통하여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옛날에 육조 혜능 스님이 두 스님이 말다툼하는 곳에 계셨습니다.
절에는 당간이라는 법을 상징하는 기둥이 있는데 그 위에
진리를 상징하는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습니다.
한 스님은 깃발이 날라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한 스님은 아니다 깃발이 날리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라고
다투는 중이 었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육조스님이 하는 말이
두 사람 다 틀렸다.
깃발이 날리는 것도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다. 당신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저것을 깃발이라고 하자. 혹은 바람이라고 하자
누가 그렇게 하고 있냐는 것입니다. 깃발은 깃발인적이 없고
바람은 바람인 적이 없었으나 우리의 마음은 깃발이다 바람이다 그러면서
다투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고 따져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깃발도 인정하고 바람도 인정하는 그 마음이란 것은 도데체 무엇일까?
무엇이 깃발이라고 하고 무엇이 바람이라고 하고
무엇이 시간이라고 하고 무엇이 공간이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이와같이 자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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