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4월25일(목) 17시40분32초 KST 제 목(Title): 견성성불과 보살도.. 견성성불과 보살행에 대하여... 견성한다는 것은 자신의 성품을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성품을 아니까 그 성품이 부처님 성품이었기 때문에 부처님 성품외에는 다른 자기의 성품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견성하면 곧 그것이 성불이란 말이 나옵니다. 즉 견성한다는 말은 부처님 성품으로서의 자신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성품이 원래로 중생이었는데 갑자기 없었던 부처님 성품을 어디에서 끌어와서 보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원래 이 우주 전체에는 부처님성품밖에는 없기 때문에 원래 있는 부처님성품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있는 부처님성품을 보았을 때는 그럼 부처님이고 부처님성품을 보지 못하였다면 부처님이 아니다라는 말이 "견성성불"이란 말에 맞는 말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견성하면 세상에는 부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이야기이고 그것은 견성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부처님밖에 없다는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즉 견성했다고 해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난게 있지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견성하거나 말거나 부처님 성품밖에 다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불을 하겠다고 이 불법을 믿고 살아가는데 우리의 성품에 대하여는 이미 부처님께서 모두 말씀해주셨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성품을 보아도 부처님께서 모두 말씀해주신 것 외에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꼭 견성을 할 필요없이 부처님께서 우리 모두는 부처님의 성품이로 살고 있다는 말을 믿고서 살아가면 견성한 것이나 안한 것이나 별다른 차이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 "견성성불"입니다. 이 부처님의 성품은 불생불멸입니다. 우리의 성품이 곧 불생불멸이란 말입니다. 삼아승지겁을 보살행을 한다는 것은 성불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화엄경 십지품의 첫번째인 환희지를 삼아승지겁을 수행한다는 말들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환희지를 읽어보아도 그렇게 강요하는 말은 나오지를 않습니다. 보살행을 하는 것도 부처님 성품이 하는 것이지 우리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실제하지 않는 생멸하는 중생성품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 성품은 불생불멸이라서 삼아승지겁이 아니라 무량겁이라고 해도 사라지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보살행을 삼아승지겁만 한다는 것은 무슨말이 되냐하면 삼아승지겁 후에는 부처님 성품도 없어진다는 그런 말이 됩니다. 이 보살행을 나타내는 말이 다음의 말입니다. 중생계가 끝이 나면 보살의 행도 끝이 나겠지만 중생계가 끝이 나지 않으므로 보살의 행도 끝이 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생계란 말은 부처님이 성품이 피어나는 뭇 생명의 모습과 그 모습을 기준으로 하는 삶의 현장입니다. 이 삶의 현장과 고통의 현장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끝나는 것이 아니지만 내용상으로는 고통의 현장이 아니라 부처님의 성품이 무한히 성장하는 성장과정인 것입니다. 그 성장과정속에서 모든 괴로움과 맞서는 보살의 대비의 마음이 또한 끝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견성한다는 것은 자기의 성품을 바로본다는 것이고 바로 안다는 것이지만 자기의 성품은 이미 부처님께서 부처님 성품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부처님 성품에 대하여는 부처님께서 누누히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믿으면 견성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믿고 부처님 말씀과 부처님의 가피력에 의지하여 죽지않는 영원생명을 무한히 드러내고 확인해 나가는 영원한 삶의 모습이 보살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