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neon) <210.106.200.26> 날 짜 (Date): 2002년 8월 5일 월요일 오전 08시 55분 15초 제 목(Title): Re: 시작과 끝. 저는 중국인의 선사들을 그렇게 신용하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은 위경이란 것을 많이 만들어 낸 민족이기도 하고 진시황때 유교학자들을 생매장 시킨 사건과 최근의 문화혁명때의 모든 문화 파괴등을 일삼은 전력들을 볼 때 중국인들의 기록은 그렇게 신용할 만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보다는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인도의 경전이 더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중국의 불교는 신학을 기반으로 불교가 성립된 것이 아니라서 불교의 핵심교리를 까 먹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아시다 시피, 불교의 근본 불교는 브라만교의 신학비판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도 수보리 장자의 경우, 바라문입니다. ( 바라문이라는 것은 종교적 제사를 지내는 계급 . 그 밑에 왕족과 귀족 계급이 있음 . ) 부처님 자체가 20 대까지 그러한 신에 대한 신앙생활을 해오신분입니다. 그외에도 많은 바라문들이 불교에 귀의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브라만교의 신학의 맹점때문이었다고 저는보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의 목사들이나 유럽에서의 불교의 배움의 노력과 2500 년전의 인도에서의 불교의 배움에 대한 것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보는 것이지요. 불교를 배우려면 적어도 신학을 제대로 배우고 나서 한다면 불교에 아주 잘 적응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각스님. 그는 하바드신학대학원을 나온 사람입니다. 그는 신학의 맹점에 눈을 뜨고 불교를 배우게 된 것입니다. 또한 예를 들면 도올 김용옥, 그는 한국신학대를 나오고 고대를 거쳐서 동양학을 하고 있지만, 그 집안은 도올을 어릴때 아침마다 성경 한 귀절을 강제로 외우게 하고 나가게 했던 어머니가 계시던 집안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불교에 귀의 하는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곘습니까 ? 바로 신학으로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이 불교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도올이 달라이라마를 만나고 깨달음에 대한 질문을 하고 나선 그 답을 듣고, 눈물이 글썽거렸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 도올이 책 팔아 먹기 위해 달라이라마를 만났던 것일까요 ? ( 하기야 도올은 자기가 느꼈던 것은 아무거나 다 쓰는 재주가 많기는 하죠. ) 아무튼 저는 중국선사들의 이야기는 인도의 초기 불교나 원시불교와는 거리가 있어서 별로입니다. 그리고 불친절한 설명들... 팔리어 경전을 한글로 번역한 것들은 엄청나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중국의 선사들처럼 건방지고 자기 잘난 맛으로 살지 않으셨습니다. 친절한 설명, 자비심,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들이 그 설명에 자세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인도의 근본 불교와 원시불교가 불교의 핵심이며, 그러한 것은 당시의 신학과 베다 성경에 대한 모순을 파헤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시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