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2월03일(토) 10시56분55초 KST 제 목(Title): [일관성].. 생각해 보세요. 인생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병도 다양합니다. 크로체님은 위장병에 걸려있는데 거기에다 모든 병은 다 감기약으로 해결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요. 화두를 푸는 것은 제대로 공부하면 한번에 1800공안을 다 풀지만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면 1800가지의 병과 그에 따른 약의 구실을 공안이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깨닫지 못해도 상대방이 제대로 알고 있는 지 아는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처음에 크로체님이 주관과 객관이 없다고 말할 때 부터 이것은 깨달음의 추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도 혹시 표현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지켜보았던 것이고 주로 라즈니슁� 마하리쉬의 말을 답습하고 있어도 제대로 알고 있으리라 생각을 했기에 내버려 두었지만 남의 글을 인용하는 경우가 아닌 본인이 정리하여 말하는 글은 실제적으로 전혀 불가에서의 깨달음과는 조금도 맞지 않는 내용이 많아서 도데체 어째서 그런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더니.. 크로체님은 깨달았다고 세간에 소문들을 내고 다닌 사람들의 표현을 어떻게 해서든지 조합해 보려고 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인과와 연기를 부정하는 사람의 글을 그냥 올리는 것에서 아하! 크로체님이 불교의 깨달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리리 처음부터 노자의 깨달음.. 아니면 마하리쉬의 깨달음이라고 말을 했으면 좋았으련만 보편적인 깨달음이라고 말을 하게 되면 흔히 불자들은 그것을 이 사람이 연기법을 깨달았나 보구나 그렇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연기법을 깨달은 경우에는 주관과 객관이 없다는 실언을 할 수가 없고 바라보는 의식이 진아라는 실언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백장야호라는 위의 공안은 무위자연이나 아니면 명상에서 이루어내는 깨달음 비슷한 착각현상에 대한 병통을 방지하기 위한 공안입니다. 연기법이란 간단히 말하면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것이므로.. 주관과 객관이 없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주관이 있으므로 객관이 있고 객관이 있으므로 주관이 있다라는 말은 주관과 객관이 없다는 말과는 다른 차원의 말입니다. 크로체님이 노자의 깨달음이나 마하리쉬의 깨달음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되면 이번에는 불가의 깨달음도 한번 이루어보시도록 하십시요. 단 불가의 깨달음을 위한 그 길에 들어설 때는 노자나 마하리쉬의 견해는 모두 다 버리고 들어와야만 합니다. 어째서 "조론"을 읽어보라는 충고를 그렇게 간단히 무시했는지도 모르겟군요... 그리고 "바라봄"의 문제가 나왔으니 전에 한번 이곳에서도 말했었지만 불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생각이나 호흡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호흡사ㅇ이의 연기성... 생각사이의 연기성을 바라본다는 말로 쓰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미 천오백년 전에 이땅의 선각자들이 정리해서 갖다버린 그런 것들을 다시 들여와서 대단히 새오운 것인양 그렇게들 말하고들 있는 이 끝없는 윤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