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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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Enlight (D.S.)
날 짜 (Date): 2002년 1월  9일 수요일 오전 06시 50분 50초
제 목(Title): 달의 집에서 2


 고타마 붓다의 본질적인 가르침은 깨달음에 있을뿐, 전혀 가르침이 아니다.  
그것은
      더욱 깨어 있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는 그대에게 보는 방법을 일러 
줄뿐 존재에
      대한 교리를 일러 주지 않는다. 그는 신(神)하고는 관계가 없다.  그는 
초월적인
      내세와는 관계가 없다.  그의 모든 관심사는 그대, 그대 내면의 깨달음에 
있다.
         그러기에 붓다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오해되어왔다.  그가 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 까닭에 종교인들은 그를 이해할수 없었다. 그가 내세를 말하지 않는 
까닭에
      그들은 그에게 감사할수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들은 내세에 
의존한다. 그들은
      현세를 반대하고 미래 어딘가에 있을, 이 세상을 초월하고 이몸을 
초월하고 이 순간을
      초월한 환상의 세계를 지지한다.
         그들의 세상은 온통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허상을 
위해 진실을
      희생하도록 설득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아마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 것을 위해 현존을 희생하도록 설득한다. 그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도록
      설득한다. 어찌 그들이 붓다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는 도무지 내세를 
말하지
      않는데. 그는 내세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물질론자도 무신론자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흥겨워지는 이것이 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는 말한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그대는 물질의 표면 위에서만 살고 있다. 물질에는 심도가 있다. 
그 깊이는
      그대 자신의 존재 속으로, 그대 자신의 의식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때 
아수 있고
      측정할 수 있다."
         의식적이 될수록 그대는 더 강렬하게 산다. 의식적이 될수록 그대는 
더 실제적으로
      살수 있다. 오직 의식적이 됨으로써 그대는 실체를 초래할 수 있다. 
완전히 의식적일
      때 그대는 완전한 실재이다. 
         자연히, 물질주의자들이나 세속적인 사람들은 붓다에게 동의할 수 
없다. 그들은
      "이것이 전부이다. 표면적인 것이 전부이다. 외부적인 것이 전부이다. 
거기에 내면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아무도 붓다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붓다의 접근 방식은 
철두철미하다.
      그것은 세속을 반대하고 내세를 반대한다. 그는 새로운 빛과 새로운 
직관을 가져왔다.
      그 직관을 그는 '주의 깊음' 이라고 부른다.
         그대는 이 '주의 깊음'이라는 낱말을 이해해야 한다. '주의 깊음' 
이라는 이
      단순한 낱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붓다의 존재 전체를, 그의 전(全)접근 
방식을 이해할
      것이다. 그는 진리를 알고 있는 한 사람이다. 만일 그대가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면
      붓다 같은 사람에게 물어라.
         하지만 그의 접근 방식은 방법론이지 교리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다.
      사람들은 로봇처럼 산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산다. 붓다는 말한다. 
"기계적으로 살지
      말아라.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각성으로 빛나야 한다. 그러면 행동 
하나하나가
      그대에게 실체를 드러내 준다."
         또한 그는 세속과 신성을 구별 짓지 않는다. 거기엔 차이가 없다. 
세속은
      신성하다. 그대가 의식적으로 산다면.
         바로 아침 산책을 가는 것, 그대가 의식을 가지고 걸을 수 있다면 
그것이
      기도이다.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  기도는 교회나 절과 상관이 없다. 
기도는 각성의
      질(質)과 관련된 것이다. 그대는 놀이처럼 일을 할 수 잇다. 그것은 어떤 
것이라도
      좋다. 마루를 닦고 요리를하고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고 잠자는 것 어떤 
것이라도
      좋다.

          붓다의 측근 제자였던 아난다에 관한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아난다는
      붓다와 함께 40년을 살았다. 그는 하나의 그림자처럼 살았다. 그는 한 
순간도,
      심지어는 밤에도 붓다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붓다와 같은 방에서 잠자곤 
했다. 그는
      붓다에게서 약속을 받았다....
         붓다가 깨달았을 때 아난다가 입문하려고 왔다. 그는 붓다의 
사촌형제였는데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가 붓당게 부탁했다. "나는 당산의 형이오. 
일단 내가
      입문하게 되면 나는 당신의 제자가 될 것이오. 그때는 당신이 무어라고 
말하든 따라야
      할 것이오. 그때는 '싫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오."
        그것이 제자의 의미이다. "이제 나는 나의 스승에게 '예'라고 말 할 
것이다. 그가
      뭐라고 말하든, 그가 '뛰어들어 자살하라' 고 하면 뛰어들어 자살하리라. 
"아니오"를
      복종시키는 것이 제자됨의 비결이다.
         따라서 아난다는 말했다. "나는 당신의 제자가 되려하오. 당신의 
제자가 되기 전에
      당신의 형으로서 한 가지만 약속해 주오. 지금 당장은 내가 당신의 
형이니 당신에게
      명령할 수 있소." 이것은 인도의 전통이다. "당신의 나의 동생이니 
말이오. 내게
      당신을 떠나라는 말은 절대로 안한다고 약속해야 하오. 나는 당신과 함께 
머무르겠소.
      당신이 어디를 가든 나는 당신과 함께 있겠소. 당신을 그림자처럼 
따르겠오. 당신을
      그림자처럼 봉사하겠소. 심지어는 밤에도 바로 당신 곁에서 잠들겠소. 
언제든지
      당신에게 봉사할 준비를 갖출것이오"
         붓다는 약속했다. 그래서 아난다는 붓다와 함께 40년을 살았다. 다른 
제자들은
      그토록 가깝게 살지 못했다. 그는 너무나 가까웠기에 자연히 붓다를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는 너무나 가까웠기에 붓다를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붓다가 그의
      육체를 버리는 때가 찾아왔다.....
         아난다보다 뒤늦게 온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었다. 아난다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는 쓰디쓴 울음을 울었다. 그의 고통은 너무나 극심해서 
위안책이 없었다.
      지금 돌연 그는 그 40년의 세월을 방비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아주 희귀한
      행운으로 나는 이분과 함께 살았다. 붓다를 발견하는 것은 드문일이고 
붓다와 함께
      40년을 산다는 것은 드문일이다. 그것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40년이란
      긴세월..그러나 아직 난 놓치고 있다.."
          그는 음식 먹는 것을 그만두었다. 일체의 행위를 그만두었다. 그는 
너무 늦기
      전에 깨닫기로 작정했다. 이미 늦어있었다. 밤낮으로 깨어 있으려고 
노력했다...
         곧 대규모 종교집회가 있을 판이다. 깨달은 제자들이 일제히 모여 
붓다의 가르침을
      결집할 예정이었다. 아난다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원천이었다. 분명누구도 그토록 오랫동안 붓다와 함께 살지 않았다. 
누구도 그가
      가진만큼 많은 정보를 지니지 못했다. 또는 그는 기적적인 기억력을 
완벽한 기억력을
      보유하고 잇었다. 그는 완벽하게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에 초대받지 못했다. 
         그를 초대하는 일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붓다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말은 신뢰할 만한 것이었으며 그의 기억력은 완벽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적
      타당성을 지니지 못했다. 그 자신은 아직 붓다가 아니었다. 그렇다. 
사실들을
      수집하는 데 있어서는 그가 적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리에 대해서는? 
사실과
      진리는 별개의 차원이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진리가 아닐 수 있다. 
그리고 진리는
      진리이지만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 
        진리는 사실들의 합산이 아니다. 진리는 그 이상의 것이다. 사실은 
흔히 있으며
      피상적인 것이다. 진리는 표면이 아닌 내면에 있다. 아난다는 모든 
사실적인 것들을
      말할 수 있었음에도 내적타당성을 지니지 못했다. 그 자신은 관조자가 
아니었다. 하여
      심지어 붓다와 함께 지내지 않은 사람들도 그 집회에 초대를 받았지만 
아난다는
      초대받지 못했다.
         그는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모든 걸 걸고 매 순간 깨어 있으려고, 
민감하려고,
      유의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마지막 밤이 왔다. 내일 아침이면 집회가 집결될 것이었다. 
아난다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더욱더 긴장하게 
되었다. 그는 그가
      할수 있는, 인간적으로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그것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했다.
        자정이 왔지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광기로 몰고
      갔다. 여러 날 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았다.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한 시,
      두 시, 세 시, 새벽에... 그는 미친든가 깨닫든가 둘 중 하나가 되기 
직전이었다.
      거의 미치기가 쉬워보였다. 그는 폭발하고 말았다. 기진맥진해져 버렸다.
         그때 문득 붓가 항상 말해왔던 이 말은 상기해냈다. "깨어있되 편안한 
상태로
      있으라. 깨어있되 긴장하지 말아라. 긴장없이 주목하라. 평온하고 
고요하라.
      민감하라. 하지만 무리해서 노력하지는 말아라."
        그 기억은 제때에 찾아왔다. 그는 이완되었다. 그는 너무나 피로했다. 
죽도록
      피곤했다. 그래서 그는 자러 갔다. 그가 막 머리를 배개에 댔을 때- 
이완된 상태로
      완전히 깨어서- 깨닫게 되었다. 그가 베개에 머리를 댄 순간 그는 깨닫게 
되었다.
         아침이 찾아왔다.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다른 승려들이 그가 
이루어 냈는지
      어떤지 보기 위해 찾아왔다. 그들은 방안을 살펴보았다. 거기엔 붓다와 
똑같은 향기,
      똑같은 광휘와 똑같은 우아함과 고귀함이 있었다. 아난다는 깊이 잠들어 
있었지만
      그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잠속에서도
      주시하고 있었다. 우아함이, 침묵이 방안을 감돌고 있었다. 그곳은 
새로운
      공간이었다.
         그는 즉시 초대되었다. 그는 다른 승려들에게 물었다."왜 그러는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왜 어제는 나를 집회에 부르지 않았는가?"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 "바로 하루 전에는 당신의 기억이 단지 
외부적인 기억에
      불과했다. 이제 당신은 내부로부터 안다. 당신 스스로 붓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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