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5월 13일 일요일 오전 09시 31분 41초 제 목(Title): Re: 오직 모를뿐 나와 네가 명확히 구별되는 '자아' 혹은 개개의 주체를 인정하신다면 - '살인과 처벌에 대해서는 상식적인 의견으로 보고 있'을 정도로 - , 예전에 하셨던 님의 다음 말들이 좀 우스워 지는거 아닙니까 ? --- 예. 그것을 인정하고 있지만, 연속적인 동일한 주체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망상이라는 얘기죠. 이미 말했듯이 10년전의 자아와 지금은 자아는 비연속적인 다른 것입니다. 진정한 주체를 말하라면 자아 이전의 경험자를 찾아야만 하지요. 그것을 찾아낸다면 우리의 기나긴 대화는 결말을 맺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래의 말은 제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읍니다. 좀 부연 설명해 주실 수 있겠읍니까 ? '특정 육신과 자아의 차원'과는 다른 '의식의 차원'이란 것이 무얼 뜻하는지..... --- 설명하는 저로서도 상당히 난감한 문제입니다.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데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지요. 자칫 잘못하면 끝없는 오해의 소지로 읽는 이들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다시 설명해보자면, '특정 육신과 자아의 차원'의 의식은 개별적인 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식을 물에 비유하자면 이 개별적인 의식은 물컵에 담긴 물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때 물컵은 특정 육신이며, 자아는 물컵에 담긴 물에 특성이 생겨난 것입니다. 물컵이 깨지면(육신이 죽으면) 물(의식)은 쏟아져서 증발되어 어디론가 날아가버립니다. 물에 있던 특성과 이물질들 역시 쏟아져서 어디론가로 흘러가겠지요. 윤회란 이 특성과 이물질들의 재생이라 할 수 있고, 인과응보, 카르마는 물컵과 특성, 이물질의 역학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물컵에 물이 담기면 이 전에 다른 물컵에서 기록되었던 정보나 이물질이 이 물의 특성에 덧입혀지는 것이죠. 그러면 이 새로운 물컵에 담긴 물은 그 특성과 이물질을 자신의 前生의 증거로 삼습니다. 그러나, 이 물은 그 전의 물컵의 물과 화학적으로 동일하지만, 완전히 같은 물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요. 같지만, 동시에 같다고 할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무엇을 '나'라고 할 것인가 역시 이 물(H2O)의 문제와 비슷합니다. 이 물만이 진정한 경험자이기 때문에 이것은 '나'라고 해야할 것인데, 물은 다른 '나'들과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법무아죠. 무아라고는 하지만 물 자체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크로체, 빠샤와 같이 구별 가능한 것은 물컵(육신)이 다르고, 특성과 이물질(자아)이 다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경험자는 다른 육신과 자아 안에 갇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구별이 불가능하죠. 그렇다고 해서 동일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공간, 육체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게 짜장면 얘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