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5월 11일 금요일 오후 07시 29분 10초 제 목(Title): Re: to staire 그렇더라도 문제는 그대로 남습니다. '절대로 알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다'면서 어떻게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요? --- ego에 붙어있어서는 없습니다. 동일시가 떨어질 때 가능합니다. --- 전제에 문제가 있군요. 저는 진리를 찾아나설 생각이 없습니다. 찾아나서야 할 진리 따위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나'라는 것 역시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의식하는 주체인 제가 여기에 있는데 더이상 뭘 찾아나서겠습니까. 여여하게 보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어차피 불가능할 뿐 아니라 여여하게 본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보람이 있어보이지도 않는걸요. 그리고 멈추어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니고 어디론가 가면 잘못이라는 식으로도 애초의 질문에 대한 답은 전혀 안됩니다. 저의 원래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 진실로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당신의 질문은 여기서 멈춰야합니다. --- 그러니 이렇게 묻는다 해도 마찬가지이며 당신의 답은 여전히 문제의 요점을 벗어나 있거나 묵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당신은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것은 잘못이며 머물러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는 판단을 하실 수 있는 건가요? 당신이 '어딘가를 향해 가는 것은 잘못이며 머물러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신 것은 판단이 아닌가요? 당신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하지 않으셨습니다. --- 만일 그렇게 제가 판단했다면 그것 역시 움직임이며, 판단입니다. (제가 완전히 정지한다면 이런 대화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 공기의 떨림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군요. "'여여하게 본다'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크로체님은 여여하게 보실 수 없다. neon님도 여여하게 보실 수 없다. 아무도 여여하게 볼 수 없다." (퀴즈보드인가 어디를 보면 Nobody라는 사람은 여여하게 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맞나요? 이런 추론에 따르면 '여여하게 보기'에 대한 크로체님이나 neon님의 논의는 별로 신뢰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되지만요. --- 누구도 가능하지 않다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 '누구'라는 것 때문에 불가능한 것 뿐이니까요. --- 첫째, 'neon님은 여여하게 보았습니다'라는 표현은 윗 단락의 논의에 따르면 무의미한 거 아닌가요? 여여하게 봄의 성질상 거기엔 주어가 붙을 수 없는 거 아니었나요... --- 그 'neon님'이라는 주어는 원래 무의미한 주어입니다. --- 둘째, 생각이 일어나 키보드를 두들기는 모든 과정이 무조건 여여하지는 않을 텐데 neon님께서 그 구절을 두들기시던 과정이 여여하다는 것을 neon님이 아닌 크로체님께서 어찌 아시는지요? 내용에 동의하기 때문만은 아니시겠죠? neon님께서 글을 올리시는 이면의 과정의 여여함을 어떻게 아실 수 있나요? 만일 제가 '여여하게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키보드를 두들긴다면 이 과정은 여여한가요? 안 여여한가요? 전에 크로체님께서 '마태가 ... 억지 이론이다'라고 키보드를 두들기시던 과정은 여여한가요? 안 여여한가요? 세 가지 과정 모두에 대해서 따로따로 답해주세요. --- 모두, 확연히 여여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알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여여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큰 모순입니다. --- 무엇과 무엇의 동일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세요. --- 당신의 의식과 당신 자신(육신과 자아)의 동일시입니다. --- 설명 없이 선언만 하셔서는 아무 소용 없다니까요... ^^;;; --- 설명도 별 소용이 없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