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4월 6일 금요일 오전 10시 23분 54초 제 목(Title): Re: 꿈 꿈과 현실을 돌이켜보면 거기에는 공통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내가 있지요. 그렇지 않다면 꿈에서 깨고 나서 생생한 꿈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꿈 속에서도 꿈을 꾸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내가 있기에 기억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나'가 꿈에서 깨어 현실에 들어서도 꿈 속의 일을 기억하면서 기분이 찜찜하고, 무섭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저는 꿈 속의 일들이 우리 현실 속에서의 일들과 큰 차가 없다고 봅니다. 얼마전에 기묘한 꿈을 꾸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꿈에서 깨자마자 돌이켜보려해도 기억이 나질 않는거예요. 그때 깨달은 것이, 현실 속에서의 일도 이와 같은 허망한 것이란 걸 알았습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는 매일 걱정을 하고, 책을 읽으며 사색에 빠지고, 다른 사람들과 논쟁을 하며 살지만 한 1년쯤 지나면 그날 그때 무슨 생각했었는지, 무슨 고민에 빠져있었는지 기억을 잘 못합니다. 5년, 10년 지나면 아예 까맣게 잊어버리는게 우리네 허망한 삶입니다. 그러니 허망한 꿈 내용이나, 현실 속에서의 일, 생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한결같이 보고 듣고 하는 이 놈(나)을 알아야겠다 생각한 것입니다. 이 놈만 붙잡고 놓치지 않는다면 보고 듣고 느끼는 대상이야 무엇이 되었든, 꿈 속이든 현실 속이든 한결같이 깨어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좌선을 시작한 후에는 꿈 속에서 보았던 내용이 눈을 뜨면서 그대로 기억이 나는 경험도 하곤 합니다. 말 그대로 자다가 눈을 스르륵 뜨면서 똑같이 깨어있는 상태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꿈에서나 깨어있을 때나 자기 자신을 잊지 않고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게 뚜렷해져야만 이 몸 벗을 때 의식을 잃지 않고 해탈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꿈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이와 유사합니다.) 좌선 중에도 마찬가지로 눈을 감고 고요하고 깨어있는 자신으로 머물다가 테스트할겸 눈을 슬몃이 떠봅니다. 눈 앞에 어두운 방 안 풍경이 펼쳐져도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머뭅니다. 다시 눈을 감아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무념무상이면서도 돌이나 허공같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념무상의 고요하고 편안하며 몸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편안하다고 느끼는 놈이 바로 본래면목인 것입니다. 이 본래면목을 뚜렷이 지켜 여의지 않음이 참된 명상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서 선방에서는 "이 뭣고?" 화두를 들고, 마하리쉬는 "나는 무엇인가?"로 잡념이 일어날 때마다 따라가지 말고, 돌려서 의심하라 했습니다. 명상 중에 여러가지 장면이 떠오르곤 하지요. 그럴 때마다 돌려서 그 장면을 보는 것은 무엇인고?해야하는 것이죠. 회향, 되돌림은 근본자리, 즉 청정자성인 자기자신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이 생각이 어디서 왔지?하고 돌립니다. 이 기분 나쁨을 느끼는 건 무엇이지?하고 돌립니다. 되돌림의 근본은 철저한 의심입니다. 무엇이 소리를 듣는가? 무엇이 빛을 보는가? 무엇이 다리저림을 느끼는가? 무엇이 이렇게 앉아있는가? 대원선사님께 배웠던 좌선은 이렇습니다. 좌선 자세로 앉은 뒤, 눈을 감고 목구멍을 떠올립니다. 거울 앞에서 목구멍을 본 적 있으시죠? 목구멍을 본다 생각하면 그게 바로 心眼으로 보는 거죠. 그 상태에서 소리를 듣는 곳으로 옮겨갑니다. 지금 소리가 들리는데, 소리를 듣는 건 어느 놈이 듣는가? ... 칼로 베거나 물에 젖거나, 불에 타는 물건인가? 아닙니다. (이 상태에서 눈을 서서히 뜹니다.) 눈 앞에 사물이 보여도 그 상태가 유지되는가? 그 고요하고 무심한 상태가 저 밖의 허공이나 바위와 같던가? 다릅니다. "바로 그것이 네 참자신이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