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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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5년11월28일(화) 12시15분38초 KST
제 목(Title): 살기 위해서 ...



뼈를 깎는 고민은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위해서 고민하는 겁니다.

깨달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병을 고쳤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우리 자신은 병든 환자였습니다.
병든 환자가 어쩌다 의사를 만나서 병을 고쳤다고
그것을 새롭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소화불량에 걸려있다가 소화제를 먹고서 병이 나았는데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은 사람에게 소화제를 먹어야 한다고 말하다보면
걸리지 않은 사람들도 소화불량에 걸려야만 된다는
의미전달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병을 만드는 경우가 더욱
많습니다.

만일 병을 고친 기쁨으로 인하여
남의 병도 고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의사의 삶을
살아보아야 겠다라는 생각이 있을 경우에는
자신의 병만이 모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병에 대한 처방을 익혀야 하는 공부와 고민을 해야 합니다.
나는 모든 병의 근원을 해결했다. 근본이 해결되었는데
무슨 따로 따로의 처방이 있겠는가?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에고"에 의하여 발생이 된다. 그러니 "애고"만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에고"나 "진아"나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을 할 틈도
없이 고통에 빠져 헤매이는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인연이 안되서 그러니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나와 남이 없는 것이
진리라고 하면서 삶은 그렇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또 하나의
거짓을 만들게 됩니다.

주관과 객관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외도"로 "단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이 잘못되어서 단견이라고 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말 자체로 보면 그것은 한쪽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관과 객관이 허물어졌다고 말하지만 실제적으로
주관과 객관이라는 현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삶과 관계없는 어떤 다른 초월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삶과 병에 대한 고민에 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삶이란 것이 결론이 없기에 문제의 답을 제시하는 것이
곧 삶을 병들게 합니다.

저에게 견성실험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견성실험이란 것은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하는 겁니다.
삶이란 것은 온통 실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실험의 즐거움을
누릴려는 욕망으로 태어났습니다.
견성을 하건 안하건 그런 것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만남과 부딪힘... 언제나 새로 테어나는 경이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견성실험을 다 했다고 하는 것은 곧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아도 언제나 또한 새로 아는 것이 삶입니다.
저는 크로체님의 진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것은 크로체라는 사람이지 진아가 아닙니다.
진아를 어떻게 사랑합니까?
제가 사랑하는 것은 크로체라는 이름에 숨은 크로체의 진아가 아니라
진아가 피어난 크로체라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현상을 떠난 진아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예수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라"
이 말은 참으로 훌륭한 말입니다. 이말은 현상을 전혀 떠나지 않고
진아를 말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말합니다.
"관세음보살이란 이름을 듣고 그 이름으로 기도해라"
이 말도 현상을 전혀 떠나지 않고 진아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아를 잘 표현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에계
"진아"가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필요할까요?

삶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온통 스승밖에는 없는 것이
진실입니다.
크로체님의 삶이건 저의 삶이건 관계없이
우리는 된장찌게를 끓일 줄 모르는데 어떤 때에 된장찌게를
끓여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 때 된장찌계를 끊이는 것을
말해주는 사람이 있음.. 그는 곧 우리 삶의 스승입니다.

단순함을 거부하던 병에서 그 병을 치료하고 단순함으로
돌아왔으면 당연히 세상에는 스승천지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크로체라는 이름이나 아님 문사수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생명을 끝없이 키우는 선지식이라는 것을
삶속에서 매일 매일 확인하는 것이 견성실험입니다.

크로체님이 지적한 것처럼
저에게는 인아가 있습니다. 그 인아가 있는 것을
있다고 해야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인아가 있기에
"누가 때리면 ..."
"아야!.." 하고 비명을 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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