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3월 12일 월요일 오후 07시 02분 10초 제 목(Title): 증오심 마음 이야기 (둘) 오늘은 <증오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아무리 참고 그냥 넘기려 해도 좀처럼 잘 안되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때마다 대개는 시간이 약이 되기만을 기다리기 쉬운데, 사실 <증오심>의 본질을 알면, 거기에서 벗어나기가 그리 크게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여기 한 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친구로부터 사기를 당했더랍니다. 재물도 재물이지만, 친구에게 속임을 당하다니 그 분노가 어떠했겠어요? 자나깨나 그 가증스런 친구의 얼굴이 떠올라서 정말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더랍니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이 <증오심>에서 당장 해방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던 중, 어찌 어찌 해서 이 도망 간 친구가 있는 곳을 알게 되었더래요. 말할 것도 없이, 만나서 당장 요절을 낼 작정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너무 증오가 끓어올라서 걷는게 아니라 거의 뛰다시피 했대요. <증오심>이 마음에 꽉 차면 그렇게 되는 거지요. 아무리 가라앉히려 애를 써도 잘 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리나케 걷는데 갑자기 옆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옆 차도에서 교통사고가 난 거지요. 마주 오던 두 차가 충돌을 했는데 그 형체가 말이 아니었다나요. 한 동안 서서 이 광경을 바라보다가 다시 발길을 돌리는 순간, 그는 <아-!> 하고 크게 깨달았답니다. 그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자신의 <본래 마음>자리에는 <증오도 사랑도> 일체 없다는 거지요. 조금 전 교통사고를 바라보던 그 순간, 지금까지 그토록 그를 괴롭혔던 진심(성냄)이 남아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무심코 사고가 난 광경을 보고있던 그 순간에, 그의 마음 속에 증오심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이처럼, 우리의 마음 [성품]자리에는 본래 善도, 惡도 없고, 미움도, 사랑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중생들이 괴로워하는 것은 다만 끊임없이 망상(사물과 경계에 집착된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지요. 위에 말한 사람이 깨닫기 전후에, 외부 상황이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전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오직 달라진 것이라곤 <사기를 당한 사실>에 대한 <집착과 생각>, 즉 - 망상을 갖고 안갖고의 차이가 있었을 뿐입니다. 이와같이 우리의 모든 희로애락은 하나같이 <망상>에서 나타난 것이지, 경계 혹은 사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망상을 쉬는 것은 곧 우리의 본래 마음(성품)을 드러내는 것임과 동시에, 한 순간에 모든 구속에서 자유 해탈을 얻는 길이기도 합니다. 중생은 거의 매 순간 자신의 <마음>에 속임을 당하며 삽니다. 우리, 다시 한 번 자신의 <마음>을 살펴봅시다. 懶牛, 1997. 11.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