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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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3월 12일 월요일 오후 06시 10분 11초
제 목(Title): 부처를 죽여라


〈부처를 죽여라〉

엊그제 본 신문기사 중에 문득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그것은 영국의 한 
인종차별사건에 관한 기사였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지금부터 6년 전 어느 날, 런던시내에서 한 흑인 청소년이 백인 인종주의 
깡패들에 의해 이유없이 죽음을 당했다. 그런데 경찰마저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해 미온적인 수사로 일관해서 급기야는 결정적인 용의자 다섯 명이 
나타났는데도 법정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는 것.
그래서 이 사건은 범인이 누구인지 영국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있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처벌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데일리메일>紙가 1면에 이 사건용의자들의 사진과 
《살인자들》 이라는 기사를 함께 싣고는, 용의자들에게 "만약 이 기사내용이 
틀렸다면 우리신문을 고소하라" 고까지 했다고 한다. 사회의 공기(公器)임을 
자부하는 언론으로서 참 대단한 신념이다. 잘 알다시피, <데일리메일> 이라면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바로 그 신문이다. 

만약 「신념」에 있어서라면 선가(禪家)에서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중국 불교에서 임제(臨濟)선사라고 하면 현재 한중일(韓中日) 3국 선종(禪宗)의 
주류인 임제종의 개조(開祖)로서 선불교의 거목으로 불리는 분이다.
그는 본래 황벽(黃蘗)스님의 문하에 있었으나 깨치지 못하고, 나중에 
대우(大愚)스님한테 가서야 마침내 도(道)를 깨닫고는 다시 스승인 
황벽스님에게 돌아와서 지냈다. 

그런데 임제가 어느 날 행각(行脚)을 떠나려고 스승에게 마지막으로 하직인사를 
하자, 황벽스님은 시자에게 선판(禪板)과 궤안(机案)을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시자가 선판과 작은 책상을 가져오자 황벽스님이 말하였다. 

"여기 이 선판과 궤안은 백장(황벽의 스승)큰스님께서 나에게 물려주신 것이다. 
이젠 내가 법을 전하는 징표로써 너에게 주겠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임제는 눈 하나 꿈쩍이지 않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시자야, 당장 불(火)을 가져오너라!" 

이게 무슨 소린가? 그 말은 바로 '무슨 놈의 징표가 소용 있느냐. 필요 없으니 
당장 불태워 버리겠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법을 전하는 의미가 담긴 소중한 물건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미 
불법(佛法)의 진리를 깨쳤으니 그 나머지는 모두 불쏘시개나 같다는 뜻이다.
이야말로 엄청난 '확신'이 아닐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제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이렇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제자는 
몇이나 될까. 

언젠가 임제선사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함께 도를 닦는 여러 벗들이여!
그대들이 만약 참다운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안팎으로 만나는 것마다 모두 
죽여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해탈하여 어떤 경계(境界)에서도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불교를 비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모름지기 진리를 
깨달아 부처의 가르침을 한 눈에 꿰뚫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감히 꿈에서라도 할 
수 없는 말이다.
스승이라면 누구나 "모든 망상과 집착을 버리고 무심하라."고 가르칠 수는 
있다. 그러나 임제선사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라"는 
극단적인 표현도 서슴치 않고 있다. 그것은 이미 철저한 깨침을 통해서 스스로 
분명히 확신했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서 당신에게는 지금 어떠한 신념이 있는가? 돈만 번다면 평생 
불행에서 멀리 떨어져 영원히 행복을 구가할 자신이 있는가? 내 자식만 크게 
출세하면 지금 당장 달리는 트럭 밑에 깔려도 좋을 자신이 있는가? 

내가 평생을 바쳐서 추구할만한 확신은 과연 어떤 것인가? 불행히도 지금 내게 
확신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내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긴 겨울이 지나고 또다시 새롭게 시작되는 이 3월에... 

懶牛, 1999. 3. 5 <과천문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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