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3월 12일 월요일 오후 05시 54분 17초
제 목(Title): 禪


선(禪)...
세상에선 아마 선(禪)처럼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그 두 가지 이미지란, 하나는 禪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禪이 너무나도 쉽다는 것이다.
앞의 경우는 예나 이제나 세속사람들이 흔히 내는 생각이며, 뒤의 경우는 禪의 
본질을 바로 파악한 사람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禪이 극단적으로 다르게 보이는 것은 禪이 가진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곧 禪은 우리의 생각, 즉 '사고작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사고력(思考力) 으로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무릇 세상의 거의 모든 이치가 우리의 사고작용으로써 파악되어 알기 마련인데, 
선(禪)에서는 이러한 사고작용이 도리어 그것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하니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참으로 이상한 존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禪을 바로 알고 행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선이 쉽다는 
것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모든 생각과 지적(知的) 분별작용을 다 
놓아버리면 언제 어디서나 훌륭한 禪이 된다. 즉, 생각과 분별을 놓아버리면 
당장 그 자리에서 밝고 두렷한 지혜의 작용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자성(自性)의 지혜'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禪을 하는 사람은 일상에서 태고(太古) 적부터 자신에게 갊아 
있는 이 지혜를 넉넉하게 쓰기 때문에, 백 천가지 일을 한들 매사 무엇을 
'한다'고 할 것도 없으니, 그 까닭은 털끝만큼이라도 일부러 힘을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두고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며, 모든 
선사들의 생활인 동시에, 흔히 어렵기로 유명한 노장사상(老莊思想)의 
핵심이기도 한 것이다. 

어느 날 석두(石頭)선사가 약산(藥山: 751-834) 스님에게 물었다.
"너는 거기서 무엇을 하느냐?"
그러자 제자인 약산이 대답하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함이 없는 생활, 즉 무위(無爲)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만히 있느냐?"
"만약 가만히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됩니다."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니, 하지 않는다는 그것은 무엇인가?"
그러자 약산이 말하였다.
"일체의 성인들도 모릅니다." 

그렇다. 참다운 禪이란 일체의 생각과 분별을 떠난 자리이니, 부처님인들 어찌 
알 수 있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인들 헤아려 볼 수 있겠는가?
아! 모든 언어와 분별이 끊어져버린 자리, 함이 없는 그 자리여! 

懶牛, 1999. 5. 14 



-출처: 上同(넷츠고/부드맨)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