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didier) <211.202.95.138> 날 짜 (Date): 2001년 2월 18일 일요일 오전 01시 26분 17초 제 목(Title): 두분께 한말씀 올립니다 저는 스카님처럼 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의견은 그저 지나가는 문외한의 한마디 정도로 치부하셔도 좋겠습니다. 저는 성경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있는 모태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며 한때 성경 스터디 그룹에도 몸담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일단 크로체님께서 무리를 하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스테어님의 견해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이전에 분명히 스테어님의 독단적인 아집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의 '마음이 가난한 자'가 크로체님의 지적대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와 똑같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문자적인 표현 차이를 인정할 수 있을 뿐 스테어님께서 주장하시는 대로 물질적인 부와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자들을 가리킨다는 점에 동의하는 수많은 성경학자들이 있으며 그런 견해가 실제로 현대 신학의 주류의 일부를 이루는 큰 흐름임이 사실입니다. 마태가 원문에 '마음'이라는 구절을 삽입했다는 견해도 스테어님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물론 저는 기독교인이므로 원문의 변질을 주장하는 스테어님의 주장에 대해서 일단 저항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견해에 동의하고 않고를 떠나서 스테어님께서 그런 주장을 제멋대로 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크로체님께서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주장에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으나 실제로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음을 인정하셔야 합니다. 하물며 3651번 글의 말미에 쓰신 대로 '예수에 대한 相이 너무나 강력하게 작용하여 예수가 그러한 말을 할 리가 없다는 식으로 결론이 자연스럽게 유도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마태가 단순무식한 예수의 말을 그럴 듯하게 뜯어고쳤을 거라는 가정이 이러한 지식과 판단, 분별의 체계에서 나온 죽은 진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때문에 스테어님께서 그런 억지를 부리고 계시다고 쓰신 구절은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습니다. 왜냐면 마태가 원문을 고쳤을 것이라는 스테어님의 주장은 사실 스테어님의 주장이 아니라 많은 성경학자들의 오랜 연구의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에 대한 너무나 강력한 선입견 때문에 예수가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스테어님께서 자신의 해석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님께서 확신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성경을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압니다. 예수에 대한 선입견이 마태를 불신하게 한것이 아니라 원문에 대한 문맥 분석과 자료 비평을 포함한 엄밀한 연구를 통해 스테어님께서 거론하신 대로 누가 6장이 원형이며 이것을 변조한 텍스트가 마태 5장이라는 결론이 얻어졌다는 사실이 Crossan의 책을 비롯한 여러 신약 연구서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는 번역본이 서점에 나와 있습니다. 스테어님께서 이 책을 지적하며 근거로서 거론하셨다는 점으로부터 스테어님께서 이러한 연구사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시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습니다. 너무 장황해진 감이 있습니다만 크로체님께서 '스테어님께서 선입견에 눈이 멀고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제멋대로 마태가 원문을 뜯어고쳤다고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어거지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크로체님께서 잘 모르시기 때문에 저지르신 실수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실수일 뿐 아니라 실례이기도 합니다. 잘 모르시는 분야에 대한 너무 섣부른 판단으로 큰 실례를 하셨습니다. 이러한 선입견을 먼저 재검토하지 않으신다면 실수가 실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글이 뜻하지 않게 길어지는군요. 이제부터는 짧게 쓰겠습니다. 크로체님께서는 혹시 텍스트에 너무 집착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읽고 있는 텍스트가 원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담고 있으며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을 불식간에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논점은 단지 한가지 뿐입니다. '가난'은 '가난한 마음'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스테어님의 반론의 극히 일부에 대한 답변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글자와 구절구절에 집착하고 계신 쪽은 크로체님입니다. 스테어님께서 '의에 목매달고 있는 사람도 마음이 가난한 것인가' 라고 물으셨습니다만 크로체님께서 문맥을 무시하고 마음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지 않으셨다면, 마태복음 5장 전체를 넓게 조망하셨다면 스테어님의 지적이 타당함을 금방 아실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타당함이란 곧 옳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만 (휴우.. 할 수 없네요. 저도 역시 기독교인이니만큼 스테어님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으니까요.) 적어도 스테어님께서 '성경 공부 다시 하셔야겠습니다'라는 빈정거림을 당했어야 할 만큼 억지를 부리신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위의 kimdh님께서 지적하셨듯이 크로체님 께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계신가 하는 점입니다. 스테어님께 보낸 그 많은 공격적인 말씀들이 그대로 당신에게 적용됨을 모르십니까? 혹시 당신이 마음을 닫아걸고 계시지는 않는지 스스로 되새겨 보셨습니까? 스테어님께도 한말씀 드립니다. 전에 기독교보드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당신의 글이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한번만 더 생각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성경 공부 다시 하라는 글이 결코 훌륭한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님은 사실입니다만 꼭 이렇게 잔혹하게 반응하셔야 했습니까?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스테어님께서는 쉽게 흥분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뜻 흥분하신 듯 보이면서도 논리의 가닥을 정확히 짚고 계신 점에서 크로체님에 비해 더 냉정을 견지하시는 분은 분명히 스테어님인 듯 합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스테어님께서 불교보드에 최근에 올리시는 글이 더 무섭습니다. 의도적으로 이러시는 건가요? 이것이 스테어님의 '매운탕'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