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2001년 2월 13일 화요일 오전 04시 51분 58초 제 목(Title): Re: to staire 다음 두가지 말을 비교해볼까요...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느니라'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느니라' 어떻습니까?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심리적으로 가지고 있는 재산(내용물)이 적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富와 관계없는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진 자에 대한 적의와 질투, 원망이 있고, 생계에 대한 걱정이 끊이질 않습니다. 부자들은 생계에 대한 걱정은 덜하겠지만, 자기보다 더 부자인 사람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구, 정신적 공허감과 같은 많은 심리적 내용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솔직이 말씀드리자면 '크로체님께서는 성경공부 다시 하셔야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 그러나 크로체님께서는 전에 엄밀한 성경 공부를 하신 적이 없으리라고 생각되므로 (어디까지나 저의 짐작입니다만) '다시' 라는 말은 빼기로 하겠습니다. 위의 인용문처럼 자신있게 성경을 인용하고 해설하려 하신다면 우선 "성경 공부를 좀 하셔야겠습니다." 현대의 텍스트를 읽듯이 성경을 읽으시기 때문에 이런 웃지못할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성경 저자의 머리 속에는 '가난한 마음 --> 번잡한 내용물이 없음 --> 구원'이라는 식의 모던하고 산뜻한 개념이 전혀 없었거든요. ... 할 수 없지요. 기초부터 시작합시다... ^^;;; 우선 신약 성경을 뒤지면서 '가난하다'는 형용사가 쓰이는 장면을 주욱 체크해 봅시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표현은 문제의 마태 5:3 이외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먼저 눈에 띌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할 것이나 나(예수)는 그렇지 못하리라... 어째서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지 않는가... 잔치를 벌이거든 차라리 가난한 이들과 병신들과 절름발이들과 장님을 청하라...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실제로 이보다 더 많은 예가 나옵니다만 어디를 보더라도 특히 '마음이' 가난하다는 표현은 마태 5:3 이외에는 안 나옵니다. 그리고 위에 열거한 '가난'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빈곤입니다. 마음의 가난 따위와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그렇다면 마태 5:3을 봅시다. 다른 곳에서는 경제적인 가난을 말했더라도 특별히 이 장면에서만은 마음의 가난을 말한 것일까요? 전문적인 신약학자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왜냐면 마태 5:3의 원형이 되는 좀더 오래된 구절이 누가복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 행복하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 것이다. 나(예수)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가 > 받을 상이 클 것이다... (중략) ... 그러나 부유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누가복음 6:20-25) 보시다시피 여기에는 '마음의' 가난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으며 배부른 자, 부유한 자와 대비시켜 이 세상에서 물질적 풍요와 권력을 누린 자들이 '이미 받을 것을 다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나라(천국?)에서는 더 누릴 것이 없다고 선언하고 가난한 자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클 것'이라고 위로합니다. 예수의 경제관이란 이처럼 단순소박합니다. 이 세상에서 핍박받고 굶주리는 자들은 나중에 큰 상을 받으리라, 지금 배부른 자들은 더 받을 게 없으니 너무 좋아하지 말아라... 여기에는 마음의 재산이 어떻다는 식의 우아한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는 그렇게 사변적이고 머리가 복잡한 인물이 아닙니다. 신약학자들은 이처럼 소박한 예수의 발언을 마태가 변질시켜 그럴싸한 현학적 경구들로 바꾸었다고 보며 '가난한 자'에 한 단어를 추가시켜 '마음이 가난한 자'로 고친 것 역시 마태의 소행으로 봅니다. 혹시 그 반대 아니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의 발언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이었는데 그걸 도저히 알아듣지 못한 누가가 제멋대로 '마음'이란 단어를 빼버림으로써 유치한 - 사실 가난한 자는 무조건 천국 가고 부자는 무조건 지옥행이라니 유치한 선악관이죠 - 경구로 변질시켰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약학의 왕초보가 아니고서는 좀처럼 그렇게 생각하기 힘듭니다. 누가와 마태라는 두 저자의 성격과 역사관, 신학관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고 복음서 문학의 발전 과정과 집필에 이용된 자료의 문체와 표현과 구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당연히 마태보다는 누가의 구절이 원래의 형태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외경인 도마 복음서에도 평행기사가 실려 있으며 역시 누가의 서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으... 정말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그러나 이 점에 대해 상세히 논의하는 것은 신약학의 초보에게는 무리이므로 좀더 간편한 논증으로써 대신할까 합니다. 야고보서 2:1-5에는 경제적인 의미의 부유함이 아니라 심령의 부유함에 대한 표현이 나오거든요. >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신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우하지 마십시오. 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왔다고 합시다. 그 때 >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여기 윗자리에 >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밑바닥에 앉든지 하시오" >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 대우를 하는 >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내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 택하셔서 믿음을 부유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신 그 > 나라(천국)를 차지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여기에서 발견되는 개념 역시 누가의 구절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가난한 (마음이 가난한 게 아니라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그대신 심령이 부유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죠. 즉, 신약에서 마음이 부유하다는 표현은 '질투나 부러움, 욕구 등의 부정적인 심리적 내용물이 마음을 번잡하게 한다'라는 크로체님의 해석과는 정반대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마음이 풍요로워야 구원을 받습니다. 마음을 정갈히 비워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믿음으로 철철 넘쳐야 구원을 받습니다. 적어도 신약의 구원관은 그렇게 생겼습니다. 마음과 구원에 대한 크로체님의 관념 자체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마음을 비우는 데에 구원이 있다... 멋있는 얘기죠. 그렇지만 전혀 그런 세계관을 갖고 있지 않았던 유다야의 경전에 나오는 - 그나마 왜곡된 - 구절의 표현이 단지 당신의 세계관과 '부합되는 듯이' 보인다고 해서 함부로 끌어다 붙이는 것은 위험합니다. 전에 "법화경과 신약성서"라는 책을 추천하신 적이 있죠?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책이 신약을 너무 편한 대로 (김용옥의 표현대로라면 '지 꼴리는 대로')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텍스트를 엄밀하게 공부한 사람이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을 실수들이 너무 자주 저질러지고 단지 '법화경 구절과 비슷해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신약 구절들이 함부로 해석되고 있었던 거죠. 이번에 제가 느끼는 것도 그때와 비슷합니다. 아무튼 성경이 씌어지던 당시의 정황이나 성경 집필자들의 사상적 배경과 성경의 텍스트적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현대인의 감각으로 현대어 텍스트를 읽듯이 성경을 해석하시는 분께 '성경 공부 다시 하라'는 얘기를 듣게 되니 재밌습니다... ^^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