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2월 3일 토요일 오후 01시 36분 26초 제 목(Title): Re: 겸손함과 자유 에고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단지 스스로 일어나는 감정에 너무 중요성을 두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행위입니다. 그 감정이 스스로의 내부에서만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즉시 중요도가 떨어지고 또한 그 이유를 생각하게 되어 적절한 해소를 하게 되면 감정이 사라집니다. 감정이든 생각이든 기계적이며 매우 치밀한 연관에 의해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주시는 의식적인 사고 활동입니다. 의식을 하지 않아도 상태를 기억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상태를 기억한다는 것은 내부의 모든 상황을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감정과 상관이 없이 있는 그대로 기억합니다. 따라서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것은 바로 이 능력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어떠한 괴로움, 즐거움, 골치가 아픈 상황이 생기면 그원인을 외부적인 데에서 찾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말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즉시 사람들은 스스로의 상태를 관찰하게 되고 그 과정을 더듬습니다. 이것은 의식적인 행위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의 움직임입니다. 이 중간에 스스로의 감정에 중요도를 두어서 이 움직임이 적절하게 가지 못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감정에 불합리하게 중요도를 주었다는 것을 인식하면 다시 적절하게 수정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심 혹은 대상의 전환인데 이것도 인간에게 기계적으로 주어진 혹은 구현된 기능이라 생각합니다. 이 대상의 전환과 사고의 기능이 인간에 있기 때문에 이미 깨달은 것입니다. ========================================================================== 이 부분은 혼동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이 혼동의 가능성 때문에 응시와 내성의 차이를 언급했지요. 내면을 돌아보아 과정을 관찰하고, 불합리하게 중요도를 주었다는 것을 인식하여 다시 적절하게 수정하는 활동은 분명 행위이며, 이것을 주관하는 행위자가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을 내성이라 하지요. 일기를 쓰는 것과 같은 반성의 일종입니다. 내성(안으로 돌아봄)은 호오를 일으키기 때문에 행위자가 남게 됩니다. 응시는 이러한 판단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순수관찰이죠. 판단-수정 작용은 그것이 아무리 제대로 된 것이라 해도 순수관찰의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번뇌즉보리이고, 번뇌와 보리 모두 거울 앞의 한점 티끌과 같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