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bbasha () 날 짜 (Date): 2001년 1월 25일 목요일 오후 01시 05분 14초 제 목(Title): Re: to croce >방을 만든 덕산선사는 이처럼 실제로 때리기도 하고, 말로 때리기도 하고, 가끔은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방은 물리적 아픔이나 심리적 위기에 몰아넣습니다. 무엇을? >바로 관념의 덩어리인 自我(我相)입니다. bbasha님은 제가 때렸던 관념의 방이 >아프던가요? 아프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기분나쁠 수는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하얀바탕에 검은 글씨의 조합이 bbasha님의 自我를 >기분나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관념의 방이 관념을 친 증거입니다. 문자는 대화의 한 방편입니다. 대화를 통해 상대방이나 자신의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관념의 방이 관념을 친 증거입니까 ? 잘 알고 지내던 어떤 사람의 부음에 접하면 저는 슬플겁니다. 지원했던 회사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았다면 저는 기분이 좋아질 겁니다. 이런 것이 관념의 방이 관념을 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면 뭐 맘대로 생각하라고 말해드리고 싶습니다. 참, 크로체님이 생각하시는 '관념'의 뜻을 물어봐야겠군요. '관념'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 머릿속만의 생각 ? 크로체님의 관념은 빠샤의 관념보다 우위의 관념인가보죠 ? >부처란 존재하는가?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과연 있는가? 이런 질문 역시 마찬가지죠.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셨는지요? 이 질문이 가능하려면 무엇을 >가지고 '나'라고 해야하는가부터 시작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고 해보세요. 그 사람은 아마도 '그렇게 묻는 건 니가 아니고 >뭐냐'고 되물을 겁니다. 질문 속에 이미 질문자가 생각하는 관념이 정의되어 >내포되어 있다는 얘기죠. bbasha님의 백두산 질문을 다시 이야기해보죠. 멀쩡한 >사람이라면 이 질문이 단순히 백두산이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거기엔 다른 의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bbasha님이 >만들어낸 의도입니다. 그 백두산이 무엇을 가리키든 간에, bbasha님의 질문에 쓰인 >'백두산'이란 단어의 관념은 bbasha님의 머릿속에 존재하죠. 그러므로 대답은 >언제나 '예'이고, 그 질문의 뜻은 '백두산은 존재하느냐?'가 됩니다. >이 대답이 틀렸다며 방을 때린 bbasha님은 질문과 대답 사이에 벌어진 일을 전혀 >눈치 못채고 그저 남들 하듯이 방을 흉내낸 겁니다. 맞습니다. 멀쩡한 사람이라면 제 질문이 단순히 백두산이 있는냐는 질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다른 의도'란 걸 무슨 뜻으로 쓴 건지 제가 짐작하긴 어렵지만 - 예전에 제게 씌우셨던 그 '미묘한 상'을 떠올려 볼 수는 있겠읍니다 :) - 아무 의도없이 질문하는 경우도 있읍니까 ? 무엇인가에 대해 더 잘 이해해 보려는 시도일 수도 있고, 자기 학생이 어떤 걸 잘 이해하고 있는지 시험해 보려는 것일 수도 있고, 내일 소풍가야 하는데 날씨가 걱정되서 기상청에 전화문의 할 수도 있는 겁니다. 제 질문에 쓰인 '백두산'이란 단어의 관념이 내 머릿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백두산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언제나 '예'라고요 ? 혹시나 이런 대답이 나올까봐 '산은 존재하는가'란 질문 대신 굳이 '백두산은 존재하는가'란 질문을 했던 건데요. 뭐 위와 같은 대답에는 '산'이나 '백두산'이나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제 질문 속의 '산'이 관념으로서의 '산'이 아니란 걸 말하고 싶었읍니다. 내 나름대로는. 흠. 혹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관념일 뿐이다'란 말을 하고 계신 건가요 ? 그리고 또 '이 질문이 무슨뜻인가'와 같은 질문을 추가했던 건 '예','아니오' 같은 단답형 답을 피해보자는 뜻이 있었읍니다. 물론 제 시도는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읍니다만. '나는 존재하는가?'와 같은 질문이 불교의 근본적 질문이 아니라면, '나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와 같은 언설이 불교의 근본적 언설이 아니라면, 제가 완전히 헛다리 짚고 있는 것이 되겠지만요. 저는 백두산질문을 통해 불교의 질문과 언설을 이해해 보려고 했던 겁니다. 그것에 동의하고 안하고야 그 후에 문제이고요. '백두산'과 '나'는 동등한 것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 것인지, '있다' 혹은 '없다'는 것은 불교에서 어떤 뜻으로 쓰이는 말인지, 핵심적으로는 지금 이 보드에서 활발히 얘기되고 있는 바대로 '나'라고 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정의해서 쓰고 있는 것인지 등등을 이해해보려는 시도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제가 때린 방이야 당연히 남을 흉내낸 것 뿐이죠. 방의 의미를 아직도 잘 모르고 있으니. 그 방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미묘한 상'을 느끼거나, 그 사람의 질문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의도'를 헤아리느라 고생하시는 분께 드릴 수 있는 거 아니였읍니까 ? 한마디 덧붙이자면, 저는 생각을 머리속으로 합니다. 발가락이 아니고. >이 경험적 관찰은 신령을 만났다거나, 천국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거나하는 >부류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죠. 마치 호흡을 관찰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신령이 눈 앞에 보이거나 천국에 도착했다고 하죠. 이때 관찰은 >신령이 어떻게 생겼더라, 천국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는게 아닙니다. 눈 앞에 생긴 이미지를 보는 행위 자체를 관찰하는 것이죠. 전혀 설득력없는 얘기입니다. 물론 자신의 '관찰'이 남들의 '관찰'과는 격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는 있읍니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가 문제이지요. >저는 계속 약속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많은 글들이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대화는 그때문에 있는 것이죠. 相에 대해서도 여러번 언급했습니다. >다시 예를 들어보죠. > >나=相(아상) >나는 존재한다=相(존재상) >나는 사람이다=相(인상) >나는 죽는다=相(수자상) >나는 누구누구의 아버지다=相(父相) >나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다=相(子相) >나는 깨달았다=相(覺相) >기타 등등등...... > >相은 가없는 眞空이 妙有로 나올때 뒤집어쓰는 테두리입니다. 일종의 한계고, >개체적 경험을 위한 옷입니다. 이 相이 문제되는 것은 이러한 相의 본질을 망각하고 >그것을 우리 자신의 본모습이라 착각하여 相에 끄달리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크로체님께서야 계속 약속을 해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어떤 단어가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상대방과 정확히 약속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나란 것은 상이다'라고 말할 때 '나'란 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약속되어 있읍니까 ? 아니면 '상'이란 것이 정확히 약속되어 있읍니까 ? '相은 가없는 眞空이 妙有로 나올때 뒤집어쓰는 테두리'라고요. 이게 상의 정의, 즉 약속입니까 ? 저는 도대체 '眞空'이 뭔지 '妙有'가 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데요. 이런 걸 약속이 되어 있다고 하면 곤란하지요. 물론 그 쪽 전문가들에게는 분명한 약속일 수 있고 저의 말들은 문외한의 불만일 뿐일 수 있겠읍니다만, 그 약속이란 걸 잘 알려고 하는 시도를 관념덩어리라고 하시면 안되죠. 문자를 통한 대화자체가 관념덩어리라고 생각하신다면, 글쓰기는 왜 하고 계신가 묻고 싶습니다. >크로체님은 존재합니까?라는 류의 질문이 관념이라고 지적한 것은 상식적인 약속 >하에서는 나올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할거면 질문은 왜 >했을까요? 어떤 대답이 나오든 '크로체'라는 아이디를 가지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질문에 대한 답은 된 셈입니다. 실컷 대화해놓고선 당신은 >존재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이것이야말로 관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걸까요? 당연히 크로체에게 질문한 >겁니다. 너는 존재하느냐?라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절 때려주십시오, 저는 관념의 >세계에 헤매고 있어요라는 SOS 메시지입니다. 이런 질문하면 덕산이 아니라 >석가모니라도 다리몽댕이 부러집니다. 백두산도 마찬가지죠. 저런 류의 질문이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나오고 있는 많은 불교의 언설들이 바로 상식적인 약속하에서는 나올 수 없는 언설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님을 흉내내 '그런 말을 할거면 말은 왜 했을까요 ?' 라고 할까요 ? 님이야 말로 머릿속 만의 세상에서 나오세요. 남의 질문가지고 다리몽댕이 부러뜨릴 생각이나 하지 마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