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1월 25일 목요일 오전 11시 52분 30초
제 목(Title): Re: to soulman,


말꼬리잡는 듯 생각되시겠지만..
'고민'하고 '보류'하는 것은 '나'입니까???

흐음.. 나를 나로 생각하는 인식주체로서의 '나'는 나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름은 우리가 그동안 사용해온 또다른 (아마도 더 넓은 의미의)
'나'와 혼동의 우려가 있다..면, 제가 알고 싶은 건 이 '잘못 사용 된 나'입니다.
어쩌면 나는 한번도 잘 못 사용한 일이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_^.
===========================================================================
soulman님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든 그것은 생각일 뿐이죠. 생각하는 자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로 남습니다.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든. 그렇죠?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중심은 자신의 내용과는 상관없죠.  








현실을 만드는 우리는 '나'입니까???
여전히 순수한 경험자가 텅 비어있다는 말은 이해가 안 갑니다.
비었다는 표현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꽉 차있다고 생각한다는게 아니고.
========================================================================
순수 경험자가 텅비어있다는 것은 직접 경험해보아야겠죠. 
이것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체험의 차원이죠. 
경험자가 비어있지 않다면 어떤 경험도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soulman님이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TV에서 
soulman님이 보고싶었던 영화를 해준다고 해요. 영화가 시작되지만 soulman님은 
영화를 볼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무엇을 보고 있는지, 영화의 스토리가 
연결도 안되고 멍하니 고민에 빠져 생각하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와 똑같은 경험이 없으실지도 모르지만, 비슷한 경험 한두번은 해보셨을 겁니다.
이 경우는 고민거리를 집중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케이스입니다. 고민거리가 가득차 
있는 경우에는 다른 어떤 경험도 불가능합니다. 다른 경험을 동시에 병행하게 되면 
그만큼 고민거리는 경험의 영역 바깥으로 밀려나죠. 

영화 중경삼림이었던가요. 주인공은 실연당하고서 운동장을 달립니다. 달리기라는 
경험을 통해서 슬픔을 밀어내는 거죠.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때에는 슬픔이 여전히 
지배적이었지만, 땀을 흠뻑 흘릴 정도로 달리다보면 달리기 자체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숨가쁨,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 피부 표면에 흐르는 땀, 
시원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변함없이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들.... 슬픔은 
어느덧 사라지죠. 











이상하군요. 자는 동안 저는 제 육신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불가능합니다.)
크로체님은 수면시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읍니까???
물론 무엇인가가 관찰을 한다면 그건 '관찰자'가 관찰하는 거겠죠.
관찰자 없는 관찰이 아니고... 그러니 모순은 아니군요.

무언가 몰두할 때 스스로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고 움직일 수도 있고

우리가 숨쉬는 걸 의식하지 않아도 숨은 쉬어집니다만,
(의지적인 행위가 아닙니다만)
그것이 관찰자 없는 관찰과 무슨 상관입니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관찰자 없는 관찰'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인듯 싶군요. 크로체님이 이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읍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
관찰자 없는 관찰이라는 것은 신경쓰실 일이 아니죠. 관찰이 있되 주체가 없는 이 
현상은 우리의 의지영역 바깥의 일입니다.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차원이 아닌 
거죠. 마치 호흡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같은 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관찰할 때, 거기에 우리 자신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관찰과 이 생각이 번갈아가며 일어나는 
것입니다. 관찰이 면밀하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내가 이것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중간에 방해를 놓게 되는 것입니다.










대단히 실용적인 주장이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멈춤'은 명확합니다.
여기서의 '자유의지'는 명확합니다. 왜 멈춰야 하는지도 명확합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나'도 비교적 뚜렷합니다.
그리고 이 글의 주장에 대체로 동감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우리가 며칠째 이야기하고 있는 - 제가 이해하려고 무단히도
애쓰고 있는 - 크로체님의 '나'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도 모순이 없읍니다.

"
나는 나를 나로 인식하는 인식 주체이며, 인식 주체로서 나는 내게 주어지는
자극에 대해  판단을 하고 태도를 결정 지을 수 있다. 자극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스스로의 '의지'를
발휘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

흐음.. 글을 쓰다 보니 사람마다 '무조건적' 반응의 정도가 다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내 뺨을 때렸다면 무조건 화를
낼 것이냐, 이유를 먼저 알아볼 것이냐라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오는 느낌을 그냥 '슬픔'과 '절망'으로 받아드릴 것이냐
아니냐.. 등등등. 만약 위의 글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의지를 발휘할
것이며 본능, 혹은 자극 ..whatever가 '진짜(?)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라는 뜻이라면...
그런 뜻입니까????????

웬만하면 '나'의 semantic meaning에 집중해 보려 했읍니다만
결국 인생 이야기로 흘러가는군요 ^_^
=========================================================================
soulman님은 지금까지 잘 따라오고 계십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과 
대화해보았지만 soulman님 같이 제대로된 질문을 해가며 성실하게 따라오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soulman님이 이해하는 바를 요약하셨는데, 이해와 판단은 각자 고유한 영역입니다.
거기에 그것은 틀렸다,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할만한 것은 없습니다.
soulman님이 받아들이는 바가 soulman님의 삶과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이죠.
결국 soulman님의 선택입니다.

단, 저의 '나'에 대해 그토록 관심을 가지시는데, 그것은 soulman님의 '나'를 
발견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발견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너무 쉽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미 soulman님은 예전부터 
발견했을지도 모르죠. 그것이 진짜 '나'라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일수도 있구요.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