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oulman (그림자) 날 짜 (Date): 2001년 1월 25일 목요일 오전 01시 38분 25초 제 목(Title): Re: to soulman, 이것을 '나'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간 사용해온 '나'와 혼동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간 무엇을 두고 '나'라고 해왔는지를 기억해보세요. 무엇을 갖고 '나'라고 할 것인지를 고민해보세요. 이런 고민없이 습관적으로 '나'라고 불러왔던 것들과 ~~~ 혼동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보류하는 겁니다. ~~~ ================================================= 말꼬리잡는 듯 생각되시겠지만.. '고민'하고 '보류'하는 것은 '나'입니까??? 흐음.. 나를 나로 생각하는 인식주체로서의 '나'는 나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 이름은 우리가 그동안 사용해온 또다른 (아마도 더 넓은 의미의) '나'와 혼동의 우려가 있다..면, 제가 알고 싶은 건 이 '잘못 사용 된 나'입니다. 어쩌면 나는 한번도 잘 못 사용한 일이 없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_^.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사실 우리가 그동안 '나'라고 불러왔던 것이 우리가 만들어낸 현실을 경험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 순수한 경험자는 텅비어있기에 그런 것이 가능하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니므로 진공묘유라 하는 것입니다. ======================================================================== 현실을 만드는 우리는 '나'입니까??? 여전히 순수한 경험자가 텅 비어있다는 말은 이해가 안 갑니다. 비었다는 표현이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꽉 차있다고 생각한다는게 아니고. 관찰자 없는 관찰이 가능한 것은 모든 相 가운데 으뜸되는 我相을 여의고도 모든 작용이 여여하게 일어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무엇을 행할 때, '내가 이것을 한다'는 생각이 없이 몰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이 되는 경우지요. 관찰자 없는 관찰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잠을 잘 때, 우리의 육신은 우리가 잠든 사이에도 숨을 쉬죠. 분명 내가 없을 때에도 숨을 쉬고 있습니다. 관찰자 없는 관찰이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의지적인 행위가 아니란 거죠. 이것을 관찰해야겠다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관찰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 이상하군요. 자는 동안 저는 제 육신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저로서는 불가능합니다.) 크로체님은 수면시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읍니까??? 물론 무엇인가가 관찰을 한다면 그건 '관찰자'가 관찰하는 거겠죠. 관찰자 없는 관찰이 아니고... 그러니 모순은 아니군요. 무언가 몰두할 때 스스로의 행동을 의식하지 않고 움직일 수도 있고 우리가 숨쉬는 걸 의식하지 않아도 숨은 쉬어집니다만, (의지적인 행위가 아닙니다만) 그것이 관찰자 없는 관찰과 무슨 상관입니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관찰자 없는 관찰'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인듯 싶군요. 크로체님이 이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읍니다. 좀 더 설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눈 앞에 사과가 있어 그것을 먹고싶다는 욕구가 일어났습니다. 이 욕구의 자극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 자유의지입니다. soulman님, 잠시 멈추고 손을 바라보세요. 손을 마음대로 꿈틀거리면서 바라보세요. 우리의 손은 절대로 우리의 마음이 '움직여야지'해서 움직이는게 아닙니다. 마음을 쓰지 않고 우리가 직접 근육을 컨트롤합니다. 거기엔 어떤 사상도 이데올로기도 없습니다. 순수한 움직임이죠. 반면 파리가 손 위에 앉는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손 위의 촉감을 통해 시각을 돌려 파리를 인지하죠. 파리는 더럽고 불결한 것이라는 相이 작용하여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 후에 손에 근육을 움직여서 파리를 쫓아냅니다. 여기에는 마음이 개입됩니다. 이때 자유의지는 相에 응하거나 멈출 수 있습니다. 파리는 더럽고 불결한 것이라는 相에 응하지 않고 멈추면 우리는 파리의 움직임을 촉각과 시각을 통해 느끼게 되죠. 만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相에 응하기만하고 멈출 줄 모른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족쇄를 차고 구속된 삶을 사는 노예일 뿐이죠. ================================================================ 대단히 실용적인 주장이십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멈춤'은 명확합니다. 여기서의 '자유의지'는 명확합니다. 왜 멈춰야 하는지도 명확합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나'도 비교적 뚜렷합니다. 그리고 이 글의 주장에 대체로 동감합니다. 하지만, 이 글은 우리가 며칠째 이야기하고 있는 - 제가 이해하려고 무단히도 애쓰고 있는 - 크로체님의 '나'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도 모순이 없읍니다. " 나는 나를 나로 인식하는 인식 주체이며, 인식 주체로서 나는 내게 주어지는 자극에 대해 판단을 하고 태도를 결정 지을 수 있다. 자극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스스로의 '의지'를 발휘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 흐음.. 글을 쓰다 보니 사람마다 '무조건적' 반응의 정도가 다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내 뺨을 때렸다면 무조건 화를 낼 것이냐, 이유를 먼저 알아볼 것이냐라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오는 느낌을 그냥 '슬픔'과 '절망'으로 받아드릴 것이냐 아니냐.. 등등등. 만약 위의 글이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의지를 발휘할 것이며 본능, 혹은 자극 ..whatever가 '진짜(?)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라는 뜻이라면... 그런 뜻입니까???????? 웬만하면 '나'의 semantic meaning에 집중해 보려 했읍니다만 결국 인생 이야기로 흘러가는군요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