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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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1월 25일 목요일 오전 12시 21분 57초
제 목(Title): Re: to croce


선방에서 실제로 사람의 육체를 때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로군요.

그저 말로만 30방이니 합이 몇 방이니 할 뿐....  이 보드에서 처럼 말이죠.

불교의 관념덩어리로 상식의 관념덩어리를 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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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의 시조인 덕산선감 선사의 기록을 보면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때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맞은 스님이 황당해서 입도 열지 않았는데 왜 때리냐고 항의하자 덕산 
왈, 입 열기를 기다려서 무엇하랴?고 했답니다.

또 신라에서 한 스님이 먼길을 왔는데, 어디서 왔냐고 덕산이 물었죠. 신라에서 
왔다하니까 배에 오르기 전에 맞았어야 했다고 했답니다. 

방을 만든 덕산선사는 이처럼 실제로 때리기도 하고, 말로 때리기도 하고, 가끔은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방은 물리적 아픔이나 심리적 위기에 몰아넣습니다. 무엇을? 
바로 관념의 덩어리인 自我(我相)입니다. bbasha님은 제가 때렸던 관념의 방이 
아프던가요? 아프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기분나쁠 수는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하얀바탕에 검은 글씨의 조합이 bbasha님의 自我를 
기분나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관념의 방이 관념을 친 증거입니다. 








무엇이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까 ?  

크로체님의 말은 단어의 의미가 정확히 약속되어 

있지 않아도 유의미한 말이라는 겁니까 

아니면 백두산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이해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 

여하간 일반적으로는 일대일 대면의 대화가 보드상의 대화보다 

꼭 우월하다고는 말하기 힘들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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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제 답을 이해하셨습니까?
그것을 이해못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계속 하시는겁니다.

부처란 존재하는가? 깨달음이란 무엇이며, 과연 있는가? 이런 질문 역시 마찬가지죠.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보셨는지요? 이 질문이 가능하려면 무엇을 
가지고 '나'라고 해야하는가부터 시작해야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묻는다고 해보세요. 그 사람은 아마도 '그렇게 묻는 건 니가 아니고 
뭐냐'고 되물을 겁니다. 질문 속에 이미 질문자가 생각하는 관념이 정의되어 
내포되어 있다는 얘기죠. bbasha님의 백두산 질문을 다시 이야기해보죠. 멀쩡한 
사람이라면 이 질문이 단순히 백두산이 있느냐는 질문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거기엔 다른 의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bbasha님이 
만들어낸 의도입니다. 그 백두산이 무엇을 가리키든 간에, bbasha님의 질문에 쓰인 
'백두산'이란 단어의 관념은 bbasha님의 머릿속에 존재하죠. 그러므로 대답은 
언제나 '예'이고, 그 질문의 뜻은 '백두산은 존재하느냐?'가 됩니다.
이 대답이 틀렸다며 방을 때린 bbasha님은 질문과 대답 사이에 벌어진 일을 전혀 
눈치 못채고 그저 남들 하듯이 방을 흉내낸 겁니다.









경험적 관찰에 의한 기록은 수 많은 오류를 포함할 수 있읍니다.

그 기록이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을 제대로 기술하고 있는 것인지 

어찌 자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신령을 만났다는 수 많은 사람의

체험고백이 신령이 실제 존재하는가를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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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험적 관찰은 신령을 만났다거나, 천국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거나하는
부류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죠. 마치 호흡을 관찰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신령이 눈 앞에 보이거나 천국에 도착했다고 하죠. 이때 관찰은
신령이 어떻게 생겼더라, 천국은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는게 아닙니다. 눈 앞에 생긴 이미지를 보는 행위 자체를 관찰하는 것이죠.












크로체님은 [나는 존재한다는 것도 상, 나란 것도 상]이라고 말했읍니다.

그럼, 제 질문의 의도를 다음의 크로체님의 말을 조금 바꿔 다시 얘기해 보죠.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질문은 단어의 개념정리에 따라 답이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크로체님', '존재' 등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상대방과
>정확히 약속이 되지 않는 한, 동문서답이 되고 마는 무의미한 질문이기 때문이죠.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언설]은 단어의 개념정리에 따라 [뜻]이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나]', '존재' 등이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상대방과

정확히 약속이 되지 않는 한, 동문서답이 되고 마는 무의미한 [언설]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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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계속 약속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많은 글들이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대화는 그때문에 있는 것이죠. 相에 대해서도 여러번 언급했습니다.
다시 예를 들어보죠.

나=相(아상)
나는 존재한다=相(존재상)
나는 사람이다=相(인상)
나는 죽는다=相(수자상)
나는 누구누구의 아버지다=相(父相)
나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다=相(子相)
나는 깨달았다=相(覺相)
기타 등등등......

相은 가없는 眞空이 妙有로 나올때 뒤집어쓰는 테두리입니다. 일종의 한계고, 
개체적 경험을 위한 옷입니다. 이 相이 문제되는 것은 이러한 相의 본질을 망각하고 
그것을 우리 자신의 본모습이라 착각하여 相에 끄달리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크로체님은 존재합니까?라는 류의 질문이 관념이라고 지적한 것은 상식적인 약속 
하에서는 나올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할거면 질문은 왜 
했을까요? 어떤 대답이 나오든 '크로체'라는 아이디를 가지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질문에 대한 답은 된 셈입니다. 실컷 대화해놓고선 당신은 
존재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이것이야말로 관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걸까요? 당연히 크로체에게 질문한 
겁니다. 너는 존재하느냐?라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절 때려주십시오, 저는 관념의 
세계에 헤매고 있어요라는 SOS 메시지입니다. 이런 질문하면 덕산이 아니라 
석가모니라도 다리몽댕이 부러집니다. 백두산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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