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1월 9일 화요일 오후 04시 57분 40초 제 목(Title): 사마타와 위빠사나 명상의 종류는 초기불교를 참조하면 다음 두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하나는 사마타(samatha)라는 것으로서 집중법이다. 이것은 석가모니 이전 부 터 있었던 전통적인 명상법으로서 특정 상념 내지 관념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 마타로 깨달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마타로 마음의 집중을 이룰 수 있으며 이 집중력을 위빠사나로 돌릴 때 위빠사나 수련에도 도움이 된다. 사실상 전생부 터의 수련의 공덕이 별로 없는 초보자는 위빠사나로 가서 깨달음을 이루려 할 지라도 이 사마타 수행부터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수행은 더러운 물 을 컵에 가만히 놔두는 것과 같아서 때가 되면 컵의 물 속에 있던 부유물질들 은 밑 바닥으로 가라앉고 맑은 물만 컵의 윗부분에 남는다. 사마타를 이루면 앉아서 명상할 때는 선정에 있을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경계에 부딪히면, 즉 탐진치(욕구/성냄/어리석음)를 유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나면 밑바닥에 있 던 컵의 물은 흔들리어 컵 속의 더러운 물질들은 다시 솟아 힘차게 움직인다-- 깊은 선정을 체험한 후라면 더 힘차고 극단적으로 움직여서 혹세무민하는 마구 니가 될 수도 있다. 즉 사마타는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이루게 할 수 있지만 까르마(業障)을 해결해주진 못한다. 석가모니는 기존의 사마타 수행에서 최고 의 깊은 선정을 이룰 수 있었지만 선정에서 나와 일상 생활로 돌아오매 까르마 가 여전하여 위빠사나 수행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 경우도 사실상 사마타 수행 이 석존이 고도의 위빠사나 수행으로 가는데 도움이 안 됐다고 할 순 없다. 그 렇다고 석존이 사마타 수행만 하고 있었다면 석존은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까 르마에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이루겠다고 하면서 사마타 수행에 안주해있는 사람에게는 사마타 수행은 분명히 장애이며 거꾸로 가는 길 일 수도 있다--사마타 수행에도 관성과 습관이 붙을 수 있고 습관적 질환은 가 장 고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숙달된 집중력은 그 자체로 깨달음을 이룰 순 없다. 그렇지만 집중력으로 고 요하고 맑아진 마음은 깨어 있는 통찰력을 수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석존도 당장 위빠사나를 시작할 수 없는 사람에겐 먼저 사 마타 수행을 닦게 한 걸로 보인다. 이 사마타 수행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 중 에 선도 수련이 있다--신선의 길은 대표적인 사마타 수행이다. 기룰 돌리거나 단전호흡을 하거나 특정 호흡법을 행하는 것은 특정 관념을 육체적인 흔들림으 로부터 초월적으로 분리해내서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유지해내는 시간과 밀도에 따라서 색계 4선정, 무색계 4선정 등의 분류가 있을 수 있다. 촛불 명 상, 만트라 수행(주력), 도형(얀트라) 명상 등도 넓은 의미에서 이 사마타에 속한다. 또 사마타 수행으로 보편화된 것 중에 하나에 무통분만이 있다. 미국 에서 유행한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출산 할 때나 출산하기 좀 전부터 임산부가 자신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상상함으로써 출산시의 육체적인 고통을 잊는 것이다--물론 보통 출산 몇달 전부터 이 상상 집중훈련을 많이 해둬야 한다. 행복했던 순간의 상념을 얼마나 지속적이고 밀도 있게 유지하느냐에 따라 얼마 나 쉽게 육체적인 고통을 통과시키고 상념/선정의 세계에서 고통이 사라질 때 까지 머무를 수 있느냐가 결정된다. 석존께서 인도의 선도(仙道)격인 요가 선 정 수행 다음에 행한 심한 고행에서 "치밀어 오르는 고통도 나의 마음을 흐트 러뜨리지 못했다"고 말하는 데서 최고도의 사마타 수행을 석존께서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나머지 하나의 명상법은 대개 불교에 특징적인 명상법으로 위빠사나 (vipassana)라는 것으로 석가모니께서 새로 개척한 길이다--부처의 길은 신선 의 길인 사마타 수행이 아니라 위빠사나의 길이다. 이것은 몸과 마음의 현상들 을 특정 상태로 조작하거나 조절하려고 하지 않고 나타나는 그대로 바로 알아 차리는 길이다. 몸/느낌/마음/마음 현상의 법칙 등이 드러나는 그대로 상념/생 각을 거치지 않고 알아차림으로써 즉, 상념/생각으로 인한 왜곡된 인식으로 포 착하기 이전에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림으로써, 탐진치의 뿌리를 궤뚫어보아 까 르마[업장]를 넘어서서 해탈하는 것이다. 상념/관념에 의한 왜곡은 최고의 선 정에서도 있을 수 있을 만큼 끈질긴 것이다--중생은 말이요 생각이요 까르마적 습관의 덩어리다. 위빠사나를 충분히 닦지 않은 사람에게선 최고의 사마타 수 행에서 조차 미묘한 상념/관념의 왜곡이 있다. 맑고 고요한 마음도 마음인 이 상 사실은 관념이다--상당히 정화된 관념일 수는 있지만 말이다. 위의 자세한 수행법은 이 게시판에서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올라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위빠사나를 하더라도 처음 궤둠어 보는 데는 일단 고요하고 맑은 마음이 필 요하다. 전생 수행의 공덕으로 비범한 관찰력을 타고나지 않은 사람은 위빠사 나를 수행하더라도 처음에는 사실은 사마타적으로 수행한다. 그러나 수행자가 진실하고 꾸준히 깨달음을 향해 가는 자라면 스승이나 선배나 삶의 상황을 통 해 자신의 착오를 깨닫고 제대로 된 위빠사나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위빠사나의 길은 컵 속의 맑은 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닫혀진 공간을 나와 서 끊임없이 흘러서 바다로 가는 물과 같다. 위빠사나에 숙달된 사람은 흘러가 는 삶의 강물 속에서 순간 순간 나타나고 머물다가 사라지는 몸과 마음의 현상 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상황과 맞물려 일어나는 까르마를 통과시킴으로 써 깨달음의 바다로 들어간다. -해공, 천리안 정신과학동호회, 20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