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5년08월19일(토) 10시47분02초 KDT 제 목(Title): 반야심경 12 12.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눈.귀.코.혀.몸.의지로 규정될 수 있는 주관적 생명은 없으며 모양.소리.냄새.맛.감촉.법칙으로 한정되는 대상도 없으며 그러므로 눈의 세계에서 뜻의 분별심의 세계까지 현상의 세계로 규정되고 한정할 수 있는 생명의 세계도 없슴이라.... 1) 12처 설법 아함부 경전에서 설해진 부처님이 밝혀놓으신 세계관중에 하나가 12처설입니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구성체를 말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말한 오온설이 그중 하나라고 말할 수도 있고 지수화풍의 사대설이 하나일 수 있고 그리고 12처설이 또한 세상을 설명하신 한 방법입니다. 인간의 주체적인 면을 말하는 눈.귀.코.혀.몸.의지의 여섯가지와 대상적인 객관성을 말하는 모양.소리.냄새.맛.감촉.법칙의 여섯가지를 합하여 일체를 설명합니다. 즉 우리가 세계라고 말할 때의 세계를 설명하는데는 이러한 열두가지외에 다른 것이 필요치 않다는 설법이 12처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도내에서는 분명히 이러한 열두가지 말고 다른 세계가 있지 않습니다. 주관인 6처의 마지막인 의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은 그 낱말의 뜻이나 원어를 파헤칠 것이 아니라 오관을 빼고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눈.귀.코.혀.몸인 오관만으로는 인간을 모두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오관만으로 말한다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동일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객관의 세계도 모양.소리.냄새.맛.감촉 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현상이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변화하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이 대상으로서의 6처의 마지막인 법칙을 말하는 것입니다. 2) 18계 설법 앞서 말한 12처에 근거하여 인식세계를 설명한 것이 18계 설법입니다. 눈.귀.코.혀.몸.의지에서 발생하는 주관에 의한 여섯가지 세계가 발생하고 모양.소리.냄새.맛.촉감.법칙에서 발생하는 여섯가지 세계가 있고 그리고 주관적 세계와 대상적 세계가 만남으로 인하여 인간의 분별하는 마음이 있게 되는데 눈의 분별심.귀의 분별심.코의 분별심. 혀의 분별심.몸의 분별심.의지의 분별심입니다. 즉 눈과 대상인 모양 혹은 색과의 만남속에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떤 모양은 좋은 모양이고 어떤 모양은 싫은 모양이라는 가치의 분별 척도가 생깁니다. 이를 눈의 분별심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 분별심은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의지의 분별심이란 것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려고 합니다. 그 특성이 의지입니다. 법칙이란 대상들이 생기고 유지되고 소멸되는 법칙입니다. 살려고 하는 우리의 의지와 생명의 법칙이 만날 때, 우리는 탄생은 좋아하고 소멸은 싫어하는 등의 분별의 척도가 생깁니다. 의지의 분별심의 한 단면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12처의 부정 :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그런데 부처님께서 반야심경에서 12처를 부정하십니다. 현상의 세계를 설명한 12처를 부정하십니다. 12처가 세계를 모두 설명한다고 해서 생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생사의 괴로움을 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위의 12처설을 이해한다고 해서 생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12처는 우리의 인식한계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부처님께서 생사를 해탈하신 차원은 우리의 인식 차원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차원을 모두 포기하자 마자 본래 있는 무한절대의 차원에서 해결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나무아미타불"로 생사해탈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안이비설신의로 규정합니다. 이것을 일러서 나의 생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안이비설신의가 있기 전에는 생명이 없다가 갑자기 어떤 시점에 생명이 생긴 것이 됩니다. 그럼 마찬가지로 안이비설신의가 없어지면 "나"라는 생명은 그것으로 끝이나지 윤회를 하고 뭐고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분명 생명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생명은 분명 있었고 또 그 이전에도 생명은 분명 있습니다. 전에 있다기 보다 그냥 있습니다. 그것을 안이비설신의라는 틀로서 묶을 래야 묶을 수가 없습니다. 즉 안이비설신의라는 것으로 생명을 보는 것은 상대유한적인 생명관입니다. 부처님께서 반야심경에서 설하시는 것은 우리의 생명은 그렇게 안이비설신의로서 규정되는 상대적이고 작은 생명이 아니라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무안이비설신의 입니다. 세계라는 것이 색.성.향.미.촉.법으로 한정해서 볼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무색성향미촉법입니다. 4) 18계의 부정 :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12처가 부정되기 때문에 18계는 처음부터 18계라는 것으로 한정될 수 없는 것입니다. 눈에 의한 세계는 눈에 의한 세계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즉 주관에 의한 세계는 주관에 의한 세계로 한정된 세계가 아닙니다. 모양과 색상에 의한 세계는 모양에 의한 세계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분별의 척도인 여섯가지의 분별심도 여섯가지의 분별심이라고 한정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12처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18계의 세계속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원래 스스로 있는 생명의 입장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12처를 생명으로 잘 못 판단한 입장에서 사는 것입니다. 공으로 표현된 부처님의 절대무한 생명이 우리의 본생명입니다. 생명은 무한합니다. 생명은 상대가 없습니다. 시간적으로 영원하고 공간적으로 절대인 우리의 참생명은 12처로 규정되지 않는 생명이기에 안계에서 무의식계인 분별심에서 나오는 세계를 가지고서 생명현상이나 객관세계를 단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