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깜찍이중독) 날 짜 (Date): 1999년 11월 26일 금요일 오전 01시 07분 36초 제 목(Title): [퍼옴]카오스이론과 불교12-직업윤리와 불� 제 목: 카오스이론과 불교12-직업윤리와 불교 PAGE: 1/10 ─────────────────────────────────────── 불교의 기본 개념은 "모든 것은 변한다(제행무상)"이다. 이 변화의 파도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길이 중도이며, 그때마다 적절한 방법, 즉 방편이 있다. 한편 복잡계의 과학 또한 변화를 중심의 과제로 삼는데 생산적인 변 화와 무질서적인 구조를 파헤친다. 그 핵심은 요동, 카오스와 새로운 질서의 자기조직이며, 그것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경직과 무질서의 늪에 빠져들 수 있음을 경고한다. 실천적인 생활 불교철학은 2천5백년 전 생존했던 석가모니 부처님에 의해 처음으로 개진된 것이다. 대철학자이자 대종교 천재이기는 했으나 시대적인 여 러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이 철학은 당연히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제 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부처님은 변화의 본질을 통찰했으며 어느 시대에도 적응 할 수 있는 현실 생활의 실천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중생은 누구나 생 명을 유지하고, 가족의 생활을 위해 경제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불교의 가르침에 생활의 실천 방법에 관한 실질적 지침이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2500년 전은 생산수단이 단순했고 직업의 종류도 극히 적었을 때였 다. 그랬음에도 불교의 팔정도(팔정도)에는 "정업(정업)"의 항목이 있다. 이는 오늘날에는 바른 직업,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에 종사하며 남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구체적인 지시로 받아들여 진다. 부처님은 어느날 젊은 바라문으로부터 "마음의 평안함을 찾는 방법 "에 관한 질문을 받고 4개의 방법을 실천할 것을 말했다. 그 첫째는 "방편구족(방편구족)", 즉 옳은 직업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비록 수도자일지라도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 이다. 화엄경에서는 선재동자가 차례로 여러 현인을 만나는 데 이들은 직업을 갖고 중생을 구제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바른 작업 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경제적으로 독립하 고 있었다. 둘째는 "수호구족(수호구족)"이며, 얻은 수입을 낭비하지 않고 도박 이나 유흥에 쓰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가르침은 "선지구족(선지구 족)"으로 여러 현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기향상에 노력하라는 것이 다. 넷째는 "정명구족(정명구족)", 즉 가게를 바르게 운영하여 수입, 지 출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집안을 안정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들 네 가 지 항목은 옳은 직업관과 건전한 경제의식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가르침이 산업화 사회, 정보화 사회가 된 요즘 세상에서는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세상의 변화에 따른 직업에 관한 올바른 불교적 해 석이 절실한 것이다. 산업사회의 불교윤리 불교는 탐욕, 특히 물욕을 금한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일방적으로 물욕을 억제하는 일은 비현실적이며 건전한 근로의욕과 경제 관념이 사회를 유지한다. 일본은 개화 이후 자본주의가 급속히 발전했다. 그 정신적인 밑바탕에는 근대사회에 어울리는 불교적인 윤리관이 있 었다. 서구사회의 자본주의 발전에 대해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 과 개신교의 윤리>라는 저술을 통해 자본주의의 발전이 개신교의 윤 리에서 나왔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불교는 세상의 변화에 어울려 현실 적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이 시대를 사는 중생을 안심입 명(안심립명)으로 인도하는 것이 부처의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직업의 다양화를 야기하는 것이므로 정업에 관한 사상이 분업의 윤리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화엄경에서는 중생을 위한 여러 기술, 예술의 의미를 강조한다. "문자, 수학, 도서, 인쇄, 자연과학을 배우고 의료에 관한 지식, 토목, 수리 농업에 관한 일, 중요한 자원의 발굴., 등 중생의 현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 모두를 개발.발전 시킬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지식의 불교적 의미 또한 과학 지식이 전쟁 등에 이용되고 중생을 해치는 일은 엄격히 금 지되고 있다. 불교는 살생을 엄하게 금하고 있으며, <화엄경>에는 " 무기를 손에 잡는 일", "폭력을 휘두르는 일" 등에 관한 구체적 지 시가 있다. 요즘의 과학 지식이 대량살상에 이용되는 일, 또는 자연이 파괴되는 일은 불교적인 입장에서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과학은 결코 과학 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의 맹목적인 발전을 경계하고 중생의 복리를 위한 것이어야 한 다. 이것이 불교적인 발전관이다. 불교라고 하면 흔히 산중에서 은둔 생활을 하거나 조용히 수도하는 수도자를 연상하는데 이들도 최소한의 음식을 먹고 비바람을 막는 집이 있어야만 한다. 이 일을 뒷받침하는 것이 중생으로부터의 보시이며, 이들의 경제생활 은 긍정되어야 할 것이다. 보살행의 입장에서 수도자와 정업에 종사하 는 일반 중생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수도자는 결코 자신만을 위한 깨우침이 목적이 아니다. 그 존재가 연 기의 씨가 될 것이며, 정업을 일삼는 중생은 현실생활과 어울려 온누 리에 자비의 빛을 발할 수 있다. 17세기 말 불교의 한 갈래인 일본 석문심학(석문심학)에서는 불교가 개신교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이 현실적인 윤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농민의 은혜, 여러 장인의 은혜, 상인의 은혜, 모두가 서로 도움이 되 어 이 세상을 산다. 주인을 대할 때는 주인의 마음이 되고 하인을 대 할 때는 하인의 마음을 가져라. 모두가 밤낮으로 일하며 애쓰기에 세 상이 잘 된다. 직종.생김새가 다르다 해도 원래의 마음은 하나이다. 어디가 다르며 나와 너가 구별이 있겠는가. 일체중생 실유불성(일체중생실유불성, 모 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이라는 이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위.아래없이 정업이라면 모두 "불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생과 수도자에게는 한결같은 불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농업은 불행 (불행, 수행)인데 다만 스스로 그것을 고된 일로 여길 때에는 천한 직 업이 된다. 장인의 일 역시 불행(불행)이며 여러 장인이 없으면 사회의 여러 일 을 할 수 없게 되고 정치도 성립되지 않는다. 농민이 없을 때 식량이 있을 리 없고 상인이 없을 때 세계의 자유가 없다. 모두 하는 일은 부 처의 뜻을 따르고 있다. 상인은 무엇보다도 이익을 얻을 것을 명심하고 오로지 마음과 몸을 바쳐 정직하게 돈을 벌어라. 이 내용은 돈을 버는 목적보다는 그 과정 을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프로테스탄트의 경우와 같다. 앞서 이야기 한 수호구족에서는 돈의 낭비를 금한다. 이들 주장은 자 신의 일에 성의를 다하며 중생의 복을 생각할 때 모두가 보살행이라는 것이다. 최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지난날 우리가 겪었던 대국난, 임진란, 조선식민지화, 그리고 IMF 관 리체제까지 모두가 유교의 탓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근대화 혁명은 조선주자학의 존왕양이론에서 이 루어졌으며, 근대화 이후 교육의 기본 방향 역시 유교였다. 특히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시부사와 에이치는 <논어와 주판> 에서 경제 발전의 정신적 원동력이 유교에 있음이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유교를 시대적 상황에 어울릴 수 있도록 재해석한 것 이다. 불교는 마음의 수양을 중히 여긴다. 하지만 결코 현실생활을 무 시하지는 않는다. 조선식민지화, IMF 관리체제 등의 불행은 결코 유 교, 불교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며, 시대적 상황에 어울릴 수 있도록 방편의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이다. 불자라면 누구나 시대적 상황에 어울리는 불교적 실천을 제대로 다하 지 못했다는 차원에서 이들 일련의 대국난에 대해서 일단의 책임을 져 야 할 것이다. 복잡계와 불교는 한결같이 제행무상, 시대의 흐름에 어 울릴 수 있는 것이 슬기로운 지혜임을 강조하고 있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발행일(1743호):1999년 11월 23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